# 89
카시마르와 600명의 강도(2)
강도와 도둑의 차이점이 무엇일까?
차이점은 많이 있겠다만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도둑은 적어도 ‘모르게’ 라는 단어를 전제로 깔고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강도?
강도는 그런 거 없다. 도둑이 몰래 들어가서 훔치는 게 주라면 강도는 주인에게 직접 말한다.
내놔!
싫어?
그럼 뒤지시던가.
드······드리겠습니다.
달랄 때 안 줬으니 좀 맞자.
이 얼마나 폭력적인가.
도둑은 일이 틀어지면 칼을 들지만 강도는 일단 칼을 들고 들어온다. 당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도둑보다 강도가 훨씬 공포스럽고 짜증 나는 것이었다.
***
카시마르 일행이 도착한 곳은 루콘 성 내부에 있는 지하 시설이었다.
“아직 애들이 발견 못한 것 같은데?”
“그러게.”
출입구를 찾는 것은 간단했다. 계단을 타고 올라가서 문을 여니 성의 내부로 바로 이어졌다. 성을 지키는 보초들은 보이질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카시마르가 나타난 지하 시설의 출입구는 벽에 존재했다. 안에서 밖에 열리지 않는 구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위치를 모른다면 찾기 힘든 것이 당연했다.
카시마르가 제일 먼저 나가서 상황을 확인했고 그 다음에 사람들을 불렀다. 순식간에 성 복도가 꽉 차는 상황이 발생했다.
“형. 지도 좀 확인해봐. 여기가 어디야?”
“기다려 봐. 이미 확인하고 있다. 왼쪽이다. 위치 선정 하나 기가 막히네. 여기가 루콘 성이랑 신전이랑 이어지는 바로 그 통로나 다름 없어. 여기서부터는 지도도 필요 없다.”
“왜 지도가 필요 없어?”
“바로 신전이 나오니까. 신전 지도는 못 구했거든. 갑자기 생긴 건물인데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
“하긴 있으면 이상하지.”
루콘 성에 솟은 신전들은 루콘 성과 이어져 있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독립된 건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근데 저거 봐라. 얼마나 나쁜 짓을 했으면 순식간에 저런 건물을 세우냐.”
핏불킹이 우뚝 솟은 신전을 보며 말했다.
“그러게요. 무슨 두바이 온 줄 알겠습니다. 그 두바이 타워 크기 만한데요?”
골낳괴가 말했다.
"그건 좀 오바고."
"아무튼 사람을 겁나 죽인 건 확실하네요. 어휴 나쁜 놈들."
“사람들에게 전달은 잘 했지? 우리는 일단 잡히면 구해주고 그런 거 없다. 다 각자 알아서 살아남는 거야.”
“이미 다 전달했어요.”
“대신에 스트레스는 확실히 풀어도 된다. 아이템 같은 거 그냥 다 뺏어버려. 걸려도 페널티가 없어요. 잘 때리고, 부수고, 훔치고, 뺏고 해서 잘 돌아오기만 하면 된다는 말씀이야.”
“잘 돌아오는 게 문제지.”
카시마르의 말에 핏불킹이 인상을 구겼다.
“야. 너는 꼭 이런 타이밍에서 초를 쳐야겠냐? 원래 전쟁에서는 사기가 엄청 중요한 거야.”
“그래요. 이번에는 핏불킹 형님 말씀이 맞습니다.”
“사기도 중요하지만 작전대로 움직이는 것도 중요해. 사기를 끌어올리는 타이밍은 따로 있다고. 지금은 최대한 안 들키고 넘어가는 게 중요해. 낳괴야.”
“네. 형.”
“잘 전달해둬. 1차 계획은 최대한 안 걸리고 오래 그곳에 있는 거라고.”
“다들 알고 있어요.”
“이제 가자.”
“기다려. 인마.”
“왜?”
“멤브가 마킹을 해야 가지. 너 진짜 저기 들어가서 안 돌아올 생각이었어?”
“멤브가 누군데?”
“우리 길드원. 이번 작전의 핵심.”
“뭐 다른 작전이 있었어? 들어가서 기둥 부수고 나오는 게 우리 작전 아니었나?”
“미친놈. 여기가 무슨 동네 은행이냐? 뚝딱 들어갔다 나오게? 이 인원으로 저 큰 곳을 커버 하려면 작전이 있어야 한다고. 작전.”
“나 없는 사이에 무슨 작전을 만들어 놨는데?”
“일단 저 친구 봐. 저 여자애 보이지? 마녀 모자 쓴 친구. 저 친구가 멤브야.”
“보이네. 벽에 뭐 그리고 있네. 저거 락카인가?”
핏불킹이 나온 출입구 쪽에 락카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여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멤브는 딱 달라붙는 원피스에 마녀 모자를 쓴 여인이었다. 그녀는 열심히 락카로 벽에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라피티.
“그라피티 하는 거 같네.”
“그거 맞아.”
“그러니까 저 그림이 포탈처럼 활용 가능하다는 거지?”
“그래.”
“되게 독특한 능력이네.”
“야. 우리 내가 몇 번을 말했냐. 우리 길드는 규모는 작아도 유니크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고. 그래서 네가 들어와도 손해 아니라고.”
“그랬어?”
“확 씨! 아무튼 두 번째 핵심 인물이 있는데 그건 조금 있다가 알려주고.”
“몇 번째까지 있는데?”
“세 번째.”
“세 번째는 누군데?”
“나.”
“형이?”
“인마. 형 직업이 뭐냐. 지략가 아니냐. 지략가. 내가 그랬지? 단위가 큰 전투가 벌어지면 벌어질 수록 나의 힘이 강력해진다고. 조금 있다 봐. 이 형이 최근에 더 업그레이드가 되었어요. 아주 끝내준다니까.”
“저번에 대스 해적단 붙을 때 보니까 별 거 없던데.”
“와아. 이 뻔뻔한 거 보소. 인마. 너 그때 나 아니었으면 지금쯤 물고기 밥이야! 밥!”
“물고기 밥은 무슨. 두 번째 건 뭔데?”
“그건 조금 있다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짧은 시간에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웠네.”
“이 형님 직업이 뭐라고?”
“알았어. 지략가. 어디로 가면 돼.”
“저쪽. 저기 넘어서 통로 넘어가고 신전 안으로 들어가면 이제 지도는 필요 없다.”
“근데 인원이 저번에 비해서 많이 늘었네. 대스 때문에도 20명 정도가 전부 아니었어? 얼마전에 60명 찍었다고 말하더만 더 되어 보이는데?”
“며칠 전에 80 찍었다. 저 맴브라는 친구가 들어 온지 얼마 안 되었어. 근데 다들 저 친구랑 던전 돌고 싶어서 난리다.”
“그래?”
“저 능력만 있으면 던전 공략하기가 아주 쉬워지니까.”
핏불킹의 말이 끝나자마자 맴브가 작업을 끝냈다. 맴브가 길드장인 빨간 메리에게 알렸고, 빨간 메리가 핏불킹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협력 작업을 많이 하는 길드들은 수신호를 만들어서 쓰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어떨 때는 말보다 그게 훨씬 효과적일 때가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지금처럼 최대한 은밀하게 움직이는 게 도움이 될 때는 더욱 그랬다.
카시마르는 말없이 핏불킹이 일러준 곳으로 움직였다. 그의 일행들은 별다른 소음을 만들지 않고 있었다. 침입한 사실이 최대한 늦게 발견되는 게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카시마르는 신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보초들이 있는 걸 발견하자 뒤쪽으로 팔을 내밀었다. 잠시 대기하라는 제스처였다.
탁!
주저하지 않고 안쪽으로 들어가 보초들을 제압하는 카시마르.
상황이 종료되기까지는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큰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안쪽에 들어간 카시마르가 다시 얼굴을 내밀고 손짓을 하자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도적이 적성에 맞는 거 아니냐?”
핏불킹이 말했다. 쓰러진 보초들은 모두 여섯이었다. 카시마르는 여섯이나 되는 보초를 짧은 시간에 소리 없이 제압한 것이었다. 그들을 이렇게 쉽게 제압할 수 있었던 건 야네크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컨신의 기술과 암기를 한 번에 사용하면 보초 여섯을 제압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쪽으로 전업하면 형네 집부터 방문할게.”
카시마르의 대답에 뒤에 있던 골낳괴 친구들이 킥킥거렸다. 잿빛 기사단은 여전히 심각했고 별다른 말이 없었다. 카시마르의 뒤만 묵묵히 따라다닐 뿐이었다.
빨간 메리는 가까이에 있는 슭곰발의 등을 살짝, 툭 하고 쳤다. 조용히 하라는 의미였다.
“왜?”
“기다려.”
보초를 가볍게 처리하고 신전 쪽으로 이동하려던 카시마르를 핏불킹이 막았다. 신전 앞의 보초들만 처리하면 이제 신전으로 들어가는 건 일도 아니었다.
“두 번째 핵심인물. 포트야.”
“저 사람은 뭐하는 사람인데?”
“가죽을 벗겨.”
“가죽?”
“어. 몬스터나 사람이나 다 가죽을 벗길 수 있지.”
“가죽을 벗겨서 뭐하는데?”
“던전 같은데 들어가면 같은 분류의 몬스터들이 쭉 나오잖아. 그치?”
“그렇지.”
“저 친구는 일단 고블린이면 고블린, 거인이면 거인 이렇게 딱 정해서 가죽을 벗기고 그 가죽으로 간단한 옷을 만들어. 그 가죽으로 된 옷을 입으면 그 계열의 상대에게 어마어마한 보너스를 받지.”
“가죽을 벗겨서 버프 받는다는 거 아냐.”
“그렇지.”
“그런 걸 뭘 그렇게 어렵게 이야기 해.”
“제대로 이야기 안 하면 제대로 안 했다고 지랄할 거면서.”
포트가 가죽을 벗기는 작업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보초들을 모아놓고 그들을 향해 손을 내밀고 스킬을 쓰자 가죽이 벗겨졌다. 그리고 그걸로 옷을 만드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근데 저 보초들은 사람이잖아. 저게 사람한테도 돼?”
“돼.”
“진짜?”
“어. 되는데. 사람한테는 못 쓰지. 쓰면 바로 PK로 간주 되어서 현상금 붙거든. 근데 지금은 괜찮지. 전쟁 중이잖아.”
“근데 저 보초들을 뭐로 묶는 거야? 검은 교단 소속?”
“그러취.”
“신기하긴 하네.”
포트는 보초들의 가죽을 이용해서 간단한 소품을 만들었다. 카시마르는 조금 찝찝한 느낌이었지만 포트가 건넨 아이템을 받았다. 아이템의 효능은 생각보다 좋았다.
[포트의 검은 교단 가죽 아대를 착용하였습니다. 검은 교단과 전투 시에 30퍼센트 데미지를 덜 받습니다.]
“뭐야 이거?”
“어떠냐. 끝내주지?”
“효과 장난 아니네.”
“이제 여섯 개지만 앞으로 더 털면서 갈테니 금방 다 맞출 수 있을 거다. 근데 영구적인 건 아냐. 이건 지속 시간이 한 나절 정도 밖에 안 돼.”
“그래도 좋네.”
"그렇지."
카시마르는 다시 복도를 지나 신전 입구로 들어섰다. 루콘성에서 신전까지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고, 딱히 보초도 없었다. 다만 신전 입구에는 보초가 있었는데 카시마르는 야네크와 암기를 동시에 사용하여 그들을 간단하게 처리했다.
월드 자크르 챔피언쉽의 우승자이자 불꽃 기사인 카시마르.
그는 야네크라는 템 하나 얻은 것으로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포트는 쓰러진 보초들을 향해 다시 스킬을 사용했다. 금방 그의 인벤토리에 아이템 여섯 개가 추가되었다. 그는 그걸 다른 길드원들에게 건네주었다.
“이제 다들 긴장 좀 합시다. 최대한 조심해서 안 들키는 게 1차 목표에요.”
핏불킹의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핏불킹의 말이 끝나자 카시마르가 얼른 신전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다행이 신전 안에는 어떠한 인기척도 없었다.
“보초가 개네들 밖에 없나보네.”
“다행이지 뭐.”
그러나 마냥 다행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그 이유는 바로 카시마르가 신전에 들어서자마자 알림 메시지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불꽃의 기수가 검은 교단의 신전에 침입했습니다. 지금부터 불꽃의 기수가 사라지는 순간까지 검은 교단은 지속적으로 페널티를 받습니다. 반대로 불꽃 교단은 보너스를 얻게 됩니다.]
“야. 뭐냐 이게? 너 알고 있었냐?”
“내가 알았으면 왔겠어?”
“아. 돌겠네. 이러면 이거 나가린데.”
“몰라. 들어왔으니까. 빨리 가자. 이왕 들켰으니 속전속결로 가야지.”
“야! 이럴 때는 차라리 둘로 갈라지는 게 나아. 어차피 신전 더럽게 넓어. 우리 꿀매너 길드 사람들은 따로 움직이고, 넌 기사단 데리고 움직여라. 멤브가 곳곳에 마킹 해놓을 거야. 잘 보고 이용해. 손만 얹으면 바로 사용 가능하다.”
“알았어.”
카시마르는 잿빛 기사단을 데리고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꿀매너 길드는 반대로 움직였다. 비상 상황인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계획 변경은 아주 빠른 시간 안에 이루어졌다.
카시마르 일행이 신전에 침입한 순간에도 새로운 제자들을 맞이하는 의식은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잡아야죠. 불꽃의 기수가 신전 안에 들어왔잖아요! 빨리 가서 잡으세요! 이건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그럼 저희들은 침입자를 잡겠습니다. 이쪽은······.”
“이쪽의 의식은 제가 알아서 마무리 하겠습니다. 불꽃 기사도 아니고 불꽃의 기수입니다. 불꽃의 기수. 그를 잡아서 산제물로 바칠 수만 있다면 이 전쟁은 생각보다 쉽고 빠르게 끝낼 수 있습니다. 빨리 가서 잡으세요.”
“예!”
램파드의 명령에 열두 제자들이 재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열두 제자들은 의식이 펼쳐지는 장소를 빠져나와 길드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근데 어떻게 들어왔을까요?”
메디아가 말했다.
“지금은 어떻게 들어왔냐를 따질 때가 아닌 것 같아요. 일단 잡아야지. 쥐가 독 안으로 스스로 들어온 꼴이잖아요.”
성격이 급한 로드로드가 수하들을 데리고 먼저 움직였다. 메디아는 그 모습을 보고 로드로드를 불러세웠다.
“왜 그러시죠?”
“그쪽이 아니에요. 그쪽은 의식이 치러지는 장소입니다.”
“아!”
메디아의 말을 들은 로드로드는 방향을 틀어서 다른 곳으로 움직였다.
신전은 크고 넓었다.
그런데다가 아주 복잡했다. 외부의 침입자를 막기 위한 천연 요새나 다름없었다. 내부도 아주 복잡해서 침입자가 들어왔다간 길을 잃기 아주 쉬웠다.
카시마르 일행은 그런 신전을 아주 적은 병력으로 들어온 상태였다. 그러니 로드로드의 비유도 마냥 틀린 것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신전이 넓고 복잡한 건 카시마르 일행 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생겨난 거대 신전.
신전이 생겨 난지는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어디로 가야 계단이 나오는 거야?”
주변을 빙빙 돌던 로드로드가 이내 짜증을 터트렸다.
갑자기 솟은 거대 신전의 의외의 약점.
그건 검은 교단 인물들도 길을 잘 모른다는 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