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
강림 (여기까지가 무료분이었습니다.)
반전은 순식간에 이뤄졌고 검은 교단의 기세는 파도처럼 계속 밀려들었다.
변절자 쿼트
그가 들고 있는 야네크는 스네이크라고 불리는 작은 단검이었다. 그 단검은 채찍처럼 자유자재로 길이를 조정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단검을 휘두르면 유형의 채찍이 나와서 상대를 공격한다.
다크 영의 힘에 심취한 쿼트는 최전방에서 불꽃 교단의 인물들을 도륙하는 중이었다.
쉬잉! 슁!
쿼트는 검은 불꽃의 날개를 등에 달고 있었다. 머리 위에는 불꽃 대신에 슈브를 상징하는 문양이 떠 있었다.
쉬잉!
커트가 스네이크를 한 번 휘두르자 긴 채찍이 나와 적을 훑고 지나갔다.
“크아아악!”
“도망쳐!”
한 번 훑고 지나간 것으로 수 십명의 적이 죽었다. 쿼트의 스네이크는 마치 레이저와 같았다. 방패를 들면 방패가 잘려나가고 보호막을 펼치면 보호막을 베어버린다. 딜레이도 없이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채찍에 일반 유저들은 별다른 대항을 할 수도 없었다.
마법사들이 쿼트를 공략하려고 해보았지만 그의 주변에는 호위 병력들이 상당히 많이 있었다.
“야. 저거는 들어갔다가는 난리 나겠는데.”
검은 교단은 중앙 쪽으로 치고 나오는 중이었다. 사방에서 검은 교단을 압박하던 불꽃 교단 쪽은 변절자 쿼트를 처리하지 않는 이상 전쟁에 승산이 없다고 보고 쿼트가 있는 쪽으로 병력을 집중했다.
카시마르도 거기에 같이 합류한 상태였다.
전투는 치열했다. 사방에서 마법이 쏟아지고 전투가 펼쳐졌다. 단연 압권인 쪽은 쿼트가 등장한 곳이었다.
쿼트는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저건 무리겠지?”
“어. 아무래도 플랜 B로 가야겠다. 정보에 따르면 스네이크가 원래 저런 물건이 아니래.”
“그러면?”
“말 그대로 채찍 같은 용도인 거야. 저렇게까지 절삭력 있는 물건은 아니라고 하던데. 아마 야네크의 힘을 최대한 끌어내서 쓰는 거겠지. ”
“지금 24시간 내내 계속 전방에서 싸우는 중이지?”
“슈브의 지원을 받으니까 지치지도 않나보지. 유저도 아니니 잠을 잘 이유도 없고. 끔찍한 혼종이지. 야네크에 불꽃의 기수 버프도 사용하고 거기다가 지치지 않는 체력, 어마어마한 회복력, 힘. 능력 강화까지. 사기 오브 더 탑이다.”
“차라리 거대 괴수라면 잡기 편하겠습니다. 저거는 지능도 되게 높게 설정된 거 같아요. 전투 엄청 잘합니다. 틈이 없어요.”
“불꽃 기사니까 지능을 저능아 같이 설정해놓지는 않았겠지. 아무튼 운영진 진짜 견과류 같은 놈들이야. 이거 검은 교단이 밀리니까 패치 한 거 아니겠지?”
“위원회 있잖아. 그런 짓 했다가는 죄다 모가지야.”
“아우. 짜증난다.”
“아무튼 플랜 B로 가자.”
단독 행동을 하기 좋아하는 카시마르가 대규모 전장에 나온 이유는 하나였다. 이곳에 불꽃의 기수들이 다 모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카시마르의 목적은 쿼트를 잡을 수 있다는 판단이 들면 달려들어서 쿼트를 잡고, 그게 아니라는 판단이 서면 불꽃의 기수들에게 후퇴를 명령하기 위해서였다.
카시마르는 주저하지 않고 교황의 카드를 불꽃의 기수들에게 전달했다. 교황의 카드는 교황의 명령과도 다름없는 물건이라 불꽃의 기수들은 그 명령에 무조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카시마르는 불꽃의 기수 자격으로 다른 불꽃 기수들에게 전량을 보냈다. 마침 하늘에서 싸락눈이 내리고 있었다.
싸락눈이 내리면서 시뻘겋게 물든 대지에 조금씩 스며드는 중이었다. 곳곳에서 비명과 포효가 섞여 들렸다.
“불꽃 기사 카시마르. 나는 불꽃 기사 레온드라고 하오.”
레온드는 백발에 흰 수염을 멋지게 기른 사내였다. 백사자라는 별명을 지닌 그는 불꽃의 기수 중 하나였다.
“불꽃 기사 카시마르요.”
“이 카드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겠소? 저 괴물을 잡지 않고는······.”
“변절자 쿼트를 잡는 것보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게 중요하다는 게 윗분들의 판단이오.”
“후퇴 한다고 방법이 생기는 건 아닐 텐데.”
“포말에서 공성을 하는 계획이 있소.”
“저 기세를 포말까지 몰고 간단 말인가.”
“저 기세는 시간이 지나면 꺼진다는 계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판단을 한 듯 합니다. 레온드.”
카시마르 대신에 대답을 한 사내는 또 다른 불꽃의 기수 갈파난이었다. 갈파난은 레온드를 보자마자 가볍게 인사를 했다. 레온드와 다르게 그는 온몸이 상처 투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유 있는 표정이었다.
“당신 답지 않게 많이 당했구려. 갈파난.”
“수하들을 많이 잃었습니다. 쿼트. 그는 이제 가망이 없는 듯 합니다. 가능하면 제 손으로 쉬게 해주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지요. 그런 여유를 부릴 정도의 상황이 아니니. 얼른 손을 쓰시지요. 더 있다간 희생만 늘어날 겁니다.”
레온드는 인상을 쓴 채 수하에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그가 데리고 온 어마어마한 병력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교단의 병력들은 명령에 따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포말로 움직였다. 포말에 가면 포말하우트로 넘어가는 대형 이동 마법진이 있기 때문이었다.
“잔인한 선택이긴 하지만······ 나쁜 선택은 아니야. 어떻게 보면 최적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어. 포말하우트는 천연의 요새나 다름 없으니까.
절벽으로 둘러싸인 포말하우트는 육로 길이 없었다. 그러니 검은 교단이 많은 병력을 밀고 들어와도 포말하우트로 넘어오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지체될 것이었다. 불꽃 교단에서는 그걸 이용해서 시간을 벌 속셈이었다.
240시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현실 세계로 10일이라는 시간.
북제국의 전투는 혼돈의 교단이 압박하고 검은 교단이 그것에 저항하는 것으로 모양새가 잡혔고, 제국의 전투는 검은 교단의 일방적인 진격이 주였다.
검은 교단은 어마어마한 속도로 루콘에서 제국의 중심부까지 치고들어왔다. 치고 들어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학살하고 검은 교단의 신도로 만들었다.
완벽한 다크 영이 된 램파드는 이제 산제물의 제단을 열어서 이계의 괴물들까지도 소환해서 부리기 시작했다.
작은 전투는 있었지만 대부분의 불꽃 기사들이 포말하우트로 귀환했기 때문에 큰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다. 검은 교단은 유유히 제국의 수도인 포말을 점유하고 포말하우트로 진격했다.
***
“신의 힘이 대단하긴 하네. 몇 킬로미터 짜리 다리를 소환으로 만들어 버리네.”
육로가 막혀 있기 때문에 검은 교단의 진격을 늦출 수 있을 거라는 것은 착각에 불과했다. 다크 영은 포말하우트가 보이자 지상에서 포말하우트까지 바로 건너갈 수 있는 커다란 다리를 소환해버렸다
포말하우트 근처까지 이어진 다리는 시간이 지나자 두 개로 늘어났고, 지금은 다섯 개의 다리가 포말하우트까지 생성된 상황이었다.
불꽃 교단의 인물들은 그 다리에 진을 치고 필사적으로 포말하우트를 사수하고 있었다.
“아니. 유저 숫자가 전보다 더 는 거 같아.”
“말도 마라. 불꽃 교단이던 애들이 재네들한테 죽고나서 검은 교단으로 개종한 다음에 다시 성전에 참여하고 있단다.”
“그게 가능해?”
“검은 교단 쪽은 그런 기능도 있나 봐.”
전투로 인해 체력이 바닥까지 소모된 카시마르는 장비를 정비하기 위해 포말하우트 성으로 다시 되돌아왔다.
전투의 소리는 계속 들리고 있었다.
검은 교단은 공중으로도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쿠웅!
강력한 마법 하나가 소환되었고 포말하우트 전체가 우드드하며 흔들렸다.
포말하우트의 공성전은 40시간 동안 지속되는 중이었다. 이제 하루 정도만 버티면 불꽃 교단이 승리를 가져올 수 있었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불꽃의 기수 대부분이 적의 손에 넘어가 산제물이 되어 버렸다.
이제 포말하우트에 남은 병력은 몇 만 정도밖에 되질 않았다. 그 몇만이 다섯 개의 다리를 필사적으로 커버하는 중이었다.
반면에 검은 교단 쪽은 대체 얼마나 많은 병력이 모여들었는지 셀 수 없을 정도였다. 행렬이 까마득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검은 교단은 계속 공격을 퍼부었고 불꽃 교단은 점점 뒤로 밀려나는 상황이었다.
“상황이 많이 안 좋은가 봅니다.”
쉬고 있는 카시마르에게 사제 한 명이 다가왔다. 포말하우트의 사제들은 대부분 기도를 드리는 중이었다.
“네. 많이 안 좋네요.”
“계시의 시간까지 버틸 수 있겠습니까?”
“아무래도 어렵겠지만 끝까지 해봐야죠.”
카시마르에게 다가온 사제는 롯다오였다. 그들에게 이동 마법진을 알려줘서 검은 교단에게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게 해준 장본인.
그는 차분한 표정으로 카시마르를 바라보고 있었다. 카시마르를 빤히 보던 롯다오는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에는 작은 시계가 들려 있었다. 놀랍게도 그가 건넨 시계는 전자시계였다.
“이건······."
“이 세계의 물건이 아니지요.”
“이게 뭡니까?”
“잠시 동안 착용자의 시간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물건이지요. 그분은 이런 상황에서 사용하라고 이런 물건을 이곳에 두었나 봅니다.”
“타임머신 같은 거란 말입니까?”
“다릅니다. 이걸로 시간을 조종하면 잠시 동안 그 시간 속의 모습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됩니다.”
“잠재력을 끌어내는 물건이군요.”
“그렇습니다. 이걸 당신에게 주는 이유는 이번 전쟁에서 당신이 가장 많은 활약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선택해주십시오. 누구에게 주는 것이 이 물건을 가장 가치 있게 쓰는 거겠습니까?”
“100년 후에 죽음을 맞이할 예정이라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건 미래의 단면을 보고 그 잠재력을 끌어내는 물건입니다. 미래는 불확실한 가능성 중에 하나니까요. 그중에서 하나가 선택되겠죠. 아마 못해도 변절자 쿼트보다는 더 강해질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강해진다고 해도 시간을 벌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카시마르는 시계를 받았다. 그는 시계를 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다시 롯다오에게 질문했다.
“혹시 이 물건이 과거로도 갈 수 있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다만 과거는 정해진 기록이기에 더 확실한 모습을 보여주겠죠. 그 사람의 과거 모습 그대로 나타나게 됩니다. 단 한 번만 쓸 수 있는 물건이니 정말 필요한 순간에 쓰도록 하시길 바랍니다.”
롯다오의 말에 카시마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밖으로 움직였다. 꿀매너 길드의 사람들은 상처를 치료하며 회복을 하는 중이었다. 카시마르는 그들을 지나쳤다. 그러자 핏불킹이 그를 불러세웠다.
“야! 어디가! 같이 움직여야지.”
“다 밖으로 나와봐.”
카시마르는 전투가 포말하우트의 입구에 서서 전투가 벌어지는 장면을 바라봤다. 그리고 강숭이를 내려다보았다.
“강숭아.”
“네. 선생님.”
“네가 활약하던 시절이라면 몇 시간이나 버틸 수 있겠냐?”
“제가 활약하던 시절이라면······.”
“달리 달로스에 있던 시절 말이야.”
“선생님. 허풍 같지만 말입니다요. 제가 달리 달로스에 있었던 시절이라면 이 정도는 그냥 껌입니다요. 제가 그냥 숨만 쉬어도 다 쓰러집니다요.”
“그 시기가 언제냐?”
“네?”
“네가 최고로 강했던 시기가 언제냐고.”
“글쎄요. 흠. 제가 제일 강했던 시기라면. 다곤 뚝배기 깰 때라고 해야되나. 아니면 카이로 잡을 때라고 해야되나.”
“년도로 따지면?”
“한 4000년 정도 전일 겁니다요. 선생님 지금 그런 의도로 물어보시는 겁니까요?”
이야기를 하던 강숭이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그래. 네가 써라. 이거.”
“선생님? 진짜입니까요?”
“그래.”
카시마르는 강숭이의 손목에 전자시계를 채워주었다. 그리고 -4000년을 입력했다.
“선생님!”
“아무 일도 안 일어날 수 있어. 그냥 도박한 번 해보는 거야. 버튼 눌러.”
강숭이는 카시마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삐빅!
강숭이가 스타트 버튼을 누르자 그의 손목시계에서 기이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강숭이의 모습이 엄청난 빛에 휩싸였다. 빛은 하늘 끝까지 치솟기 시작했다.
“히히히히히!”
빛 속에서 기괴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강숭이의 웃음 소리였는데 원래 강숭이의 웃음 소리보다 훨씬 크고 소름 끼쳤다.
“하하하하하!”
허공에서 전투 갑옷을 입은 강숭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빛으로 반짝이는 갑옷을 입은 강철 원숭이.
팔을 벌리고 하늘을 보던 강철원숭이는 시선을 돌려 다리 건너편에 있는 검은 교단의 무리들을 바라봤다.
짝!
그들을 보며 가볍게 박수를 친 아베다.
다크 영이 만든 다리가 모조리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저들에게 떠오르는 메시지.
[우주적 존재가 강림했습니다.]
[그레이트 올드 원 - 아베다. 주변에서 재빨리 대피하십시오.]
[그레이트 올드 원 - 아베다 -* 본질을 꿰뚫어 보는 눈을 가진 자. 입에 담기 힘들 정도의 수많은 색으로 빛나는 존재. 그는 이곳과 저곳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넘나드는 존재의 적자이며 달리 달로스의 진정한 지배자이니 그의 앞에서는 그 어떤 추악한 존재도 실체를 드러내고야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