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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캐로 멱살 캐리-95화 (95/205)

# 95

이름

“씨발! 영감탱이! 다 지켜보고 있었으면서! 다 지켜보고 있었으면서!”

이상한 기운을 가장 먼저 감지한 건 당연히 강철 원숭이 아베다였다. 눈치가 빠른 강철 원숭이는 얼른 빛이 쏟아지는 지역에서 벗어나려고 했는데, 벗어날 수가 없었다. 온 우주에서 무서울 게 없는 그레이트 올드 원인 그가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존재의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바로 달로스.

강철 원숭이는 수틀리면 아우터 갓에게까지 덤벼드는 통제 불가의 존재였지만 달로스의 권능 앞에서는 조금도 힘을 쓸 수가 없었다. 그의 힘이 달로스에게서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강철 원숭이는 까마득한 시간을 살면서 달로스의 권능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쳤다.

그러나 달로스의 권능에서 태어난 그가 달로스의 권능에서 벗어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렇기에 강철 원숭이는 달로스의 권능이 미치지 않는 다른 우주적 존재의 힘이 담긴 아이템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아베다의 이런 계획은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중요한 순간마다 달로스의 개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강철 원숭이는 여러 작전을 썼다. 달로스를 향해 모든 계획을 포기한 것처럼 굴어보기도 하고, 달로스를 열렬히 숭배하는 사람처럼도 연기하고, 달로스에게 쌍욕을 하면서 반기를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 어떤 방법을 사용하여도 강철 원숭이가 달로스의 권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법은 없었다.

어떤 방법을 써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강철 원숭이는 광기에 물든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쾅! 쾅! 쾅!

"다 보고 있었으면서어어!"

강철 원숭이가 달로스의 결계를 마구치면서 말했다. 강철 원숭이는 코즈믹 게이트 영역 안에 있는 곳이라면 달로스의 힘이 미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500년 넘도록 이곳에 숨어 지냈다.

500년 넘도록 나타나지 않았던 달로스.

강철 원숭이는 달로스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보고 있었으면서어어어!”

광기에 찬 목소리로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강철 원숭이는 움직임을 거짓말처럼 멈추고 어느 지점을 노려보았다.

“근데 날 왜 가둔 거지? 난 계약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엉? 달로스님! 이 영감탱이야! 난 계약을 위반하지 않았어. 그를 치려고만 했지 직접 해를 가하지는 않았단 말이야!”

힘으로는 절대 그의 속박을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아는 강철 원숭이는 다른 방식을 사용했다.

“직접 해를 가하지 않았다고!”

슈웅!

달로스의 힘에 의해서 어디론가 소환되던 강철 원숭이가 다시 한 번 빛에 휩싸였다. 잠시 세상이 암전되었고 강철 원숭이의 시야도 암흑으로 바뀌었다.

***

그레이트 올드 원의 출현에 가장 놀란 것은 유저들이 아니라 바로 운영진들이었다. 코즈믹 게이트의 세계관은 아주 방대했다. 그 중에서는 운영진들도 아직 파악하지 못한 세계가 있을 정도였다.

그 이유는 코즈믹 게이트라는 세계 자체가 그들이 만든 게 아니라 양자 컴퓨터의 연산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었다.

방대한 데이터를 무작위로 집어넣고 몇 가지 키워드만 설정해서 만들어진 세계.

복잡한 세계관이기 때문에 그들이 컨트롤 할 수 있는 것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검은 교단과 불꽃 교단 혼돈 교단의 삼자구도를 기획했던 그들이었지만 그것도 그들의 마음대로 세세하게 컨트롤 할 수가 없을 정도였으니까.

그러니 당연히 그레이트 올드 원의 등장도 그들이 의도한 게 아니었다.

그레이트 올드 원은 세계관의 정점에 있는 존재였다.

코즈믹 게이트는 여러 세계관이 혼재된 방대한 세계.

지금 유저들에게 공개된 세계는 그중 일부일 뿐이었다.

“대체 그레이트 올드 원이 이 타이밍에 왜 나타나는 거야? 그레이트 올드 원 관련 컨텐츠가 지금 풀릴 수 있어? 그게 가능해?”

“유저들이 가장 처음 만나볼 수 있는 그레이트 올드 원이 강철 원숭이 이긴 합니다만······.”

“그거야 알지. 시작 지점에서 만날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그가 진정한 모습을 찾는 타이밍이 지금이 아니었잖아. 안 그래? 구 팀장?”

그레이트 올드 원의 출현은 자고 있던 임원들까지 깨우기에 충분했다. 컨텐츠 담당을 총괄하고 있던 황이사는 잠을 자던 도중에 회사로 나와 긴급 회의를 소집했다. 그레이트 올드 원의 출현 시간은 짧았지만 그 여파는 어마어마했기 때문이었다.

벌써부터 유저들에게 항의 문의가 빗발치고 있었다.

특히 검은 교단과 관련된 유저들의 항의는 항의 수준이 아니라 분노를 표출하는 수준이었다.

“그렇긴 하죠.”

“아니. 이런 것도 미리 감지 못할 거면 운영팀은 왜 있는 거야? 엉? 너네들 다 눈 뜬 장 님이야 뭐야!”

평소 화를 내지 않던 황이사가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그 말은 지금 일이 그만큼 심각한 상황이라는 뜻이었다.

“강철 원숭이가 잡혔다는 건 이미 보고드린 상황입니다.”

“강철 원숭이가 잡히면 뚝딱 그레이트 올드 원이 될 수 있는 거야? 완전한 모습으로 변하려면 달리 달로스 세계가 열려야 되는 거 아니었어?”

“원칙적으로는 그게 맞습니다.”

“원칙적으로 맞는데 왜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건데?”

“그게 저희도 알아보는 중입니다. 왜 강철 원숭이가 그 타이밍에 나타났는지에 대해서······.”

“왜 나타났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봉인을 풀었는지도 모르고. 달리 달로스 세계가 열린 거야? 아직 게임 상으로는 루테스 대륙도 다 열리지 않은 거 아니었나?”

“아직 루테스 대륙도 다 열리지 않은 건 맞습니다.”

“신세계가 열린 건 아니라는 거네?”

“예. 그건 확답드릴 수 있습니다. 신세계가 열리면 확실히 조짐이라는 게 있어서 미리 알고 대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달리 달로스는 신세계 중에서도 뒤에 공개될 곳이라서······.”

“그러면 어떻게 강철 원숭이가 나타난 건데?”

“그건······.”

“아무런 조짐 없이 그레이트 올드 원이 나타나려면 한 가지 이유 밖에 없습니다.”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용인식 팀장이 말을 꺼냈다.

“그게 뭔가?”

“그게 뭡니까?”

용인식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게이트의 법칙을 어기고 활동할 수 있는 존재들은 하나밖에 없죠. 다른 우주적 존재들의 개입이 아니고서는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우주적 존재가 개입했다면 그럴 수 있지. 그들은 우리의 손을 벗어난 존재들이니까.”

우주적 존재는 코즈믹 게이트 세계관에서 신과 버금가는 힘을 지닌 자들이었다. 그들은 운영진의 힘으로도 컨트롤이 불가능하게 설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들과 관련된 컨텐츠를 만들 때는 그들을 움직일 수 있는 몇 가지 토대 설정이 필요했다.

검은 교단의 경우에는 그 토대가 바로 성지였다. 다크 영도 그런 토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이렇듯 우주적 존재와 관련된 컨텐츠를 진행하려면 운영진들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쳐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강철 원숭이는 이러한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도 않았는데 뜬금 없이 강림을 했기에 운영팀에 비상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른 그레이트 올드 원이 같은 그레이트 올드 원인 강철 원숭이의 봉인을 풀어주었다고? 그게 가능한 일이야? 아우터 갓이라도 불가능한 일일텐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능력이라면 가능합니다. 아마 달로스의 능력인 것 같습니다.”

“달로스의 개입이라면 더 이상하지. 달로스는 현재 크투가처럼 긴 잠에 빠져 있는 중 아니던가.”

“그렇지만 시공간을 다루는 능력은 우주적 존재 중에서도 능력을 가진 자들이 극히 드물어서······요그 소토스는 지금 엘더 갓들의 견제를 받고 있으니 이 일과 관련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 달로스라는 이야기인데······ 그는 강철 원숭이를 탄생시키고 힘을 많이 잃었다고 들었는데.”

“그래도 아우터 갓이라는 설정이니 간단히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달로스는 아우터 갓들 중에서도 가장 밝혀진 게 없는 존재라서요. 아우터 갓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다른 아우터 갓들과는 성향도 많이 다르고요. 일단 달로스는 다른 아우터 갓들처럼 그리 사악한 존재가 아닙니다.”

“어렵군. 어려워. 그럼 이제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 되는 건가? 강철 원숭이가 씹어먹은 유저들의 숫자만 해도 어마어마해. 전쟁 중에 죽은 거야 어떻게 할 수 없지만 아이템은 어떻게 하지? 다 소멸된 상태라면서?”

“그게 제일 문제입니다. 그 때문에 항의도 많이 들어오고 있고요.”

구소형이 말했다.

“복구시켜주면 어떨까?”

“하아.”

황이사의 말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유저의 아이템을 복구한다는 건 단순히 버튼 몇 번 누른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특히 게임 위원회가 철저히 감시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관련 서류만 수십 장을 작성해야 했다.

유저 한 둘의 아이템을 복구하는 것만으로도 업무량이 상당한데 이번 사건에 휘말린 유저들의 숫자는 셀 수도 없이 많았다.

이건 업무량 문제를 넘어선 수준이었다.

“게임 상의 오류로 그렇게 된 거라면 복구시켜주는 게 당연히 맞습니다. 게임 위원회에서도 그렇게 하라고 나올 거고요. 하지만 지금은 게임 상의 오류로 이리 된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레이트 올드 원은 코즈믹 게이트라는 세계의 한 축을 담당하는 우주적 존재입니다. 복구를 해준다는 건 그 축 자체를 오류로 지정한다는 건데 그러면 게임 자체가 흔들려 버리게 되죠. 그건 불가능한 방식입니다.”

용인식 팀장의 논리 정연한 말에 황이사도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럼 이대로 넘어가라는 말이야? 유저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아?”

“컨텐츠 때문에 생긴 문제면 컨텐츠로 풀어야죠. 어차피 검은 교단 관련된 컨텐츠가 나오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그러니 검은 교단 관련해서 보상을 크게 해주면 될 거 같습니다. 교단 관련 컨텐츠 중에 공헌도 시스템 있지 않았어요? 구팀장님?”

“설정 했었죠.”

“그거 이용하죠.”

“죽은 유저들에게 공헌도를 올려주라는 말입니까? 그러면 불꽃 교단 쪽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텐데요.”

“강철 원숭이에게 희생당한 유저들을 ‘순교’라는 카테고리에 넣어서 공헌도를 어마어마하게 올려주는 겁니다. 그런 다음 공헌도로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의 숫자를 대거 늘리는 거죠.”

“소멸 당한 아이템의 가치를 계산해서 등급으로 나눈 다음 순교로 받는 공헌도를 차등해서 올려주자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그냥 보상만 해주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으니 적당히 달콤한 것들도 넣어주죠.”

“그거 좋네. 그래! 용팀장 말대로 그렇게 좀 진행해봐. 근데 교단 삼자구도는 어떻게 되는 거야?”

“일단 검은 교단 쪽이 실패한 게 되었죠.”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냐? 실패를 하더라도 성지를 지킬 병력은 남아 있어야 되잖아. 다크 영, 다크 영의 아들들 싸그리 죽어버렸는데 성지를 지킬 수나 있겠어?”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 당장 정하기가 어려울 거 같습니다. 일단 순교 문제부터 처리해도 시간이 꽤 거릴 거거든요.”

“그래! 그건 나중에 이야기를 하도록 하고. 일단 유저들 아이템 문제부터 해봐. 나는 위원회 사람들 만나서 약 좀 치고 있을 테니까. 위에다 보고도 하고. 자! 내가 언성을 좀 높여서 미안했어요. 다들 바쁘고 피곤하고 힘든 거 알지만 이번 일 잘 마무리되면 최대한 보상을 할테니까 잘 좀 해봅시다. 그리고 다른 부서에서 귀찮게 하거나 꼬장을 부리면 저한테 이야기 하세요. 제가 아주 갈아마셔버릴테니까. 자! 파이팅!”

황이사의 외침에 다른 팀장들도 따라서 움직였다. 황이사 휘하에 있는 여러 팀들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국 시간으로 새벽 2시의 일이었다.

***

“존나 놀랐네. 야! 너 괜찮냐?”

핏불킹이 카시마르에게 다가오면서 물었다. 강철 원숭이가 카시마르에게 공격하는 순간 그가 다른 곳으로 소환되었다. 카시마르는 강철 원숭이가 사라진 곳을 계속 응시하는 중이었다.

“괜찮아.”

“강철 원숭이가 너 씹어먹는 줄 알았는데 역소환당했네. 계약서의 힘이겠지?”

“그런 것 같아. 근데 아무래도 이상한 게 있어.”

“뭐가 이상한데?”

“그 시계······.”

카시마르는 시계라는 말을 중얼거리더니 포말하우트 내부로 뛰기 시작했다. 카시마르가 갑작스럽게 뛰자 핏불킹이 따라 뛰었고, 그 모습을 본 꿀매너 길드의 사람들이 핏불킹을 따라서 뛰기 시작했다.

“야! 왜! 무슨 일인데!”

꿀매너 길드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불꽃 교단에 속한 다른 유저들도 카시마르의 행렬에 동참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카시마르의 뒤로 수 백명의 사람들이 달라붙었다. 카시마르는 포말하우트 내부에 들어서마자마 한 사제를 붙잡고 롯다오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롯다오요?”

“네. 그 사제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죄송합니다만. 저희 포말하우트의 사제들은 이름이 없습니다. 외부에서 사용하던 이름을 밝히는 것이 금지되어 있으니까요. 어떤 사제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으신 겁니까?”

“······.”

젊은 사제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카시마르의 머릿속으로 주마등처럼 어떤 장면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조언 감사합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저는 포말하우트의 사제일 뿐입니다. 포말하우트의 사제들은 이름이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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