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
역소환
“그가 달로스였어.”
“그라니? 누구?”
“롯다오 있잖아.”
“롯다오?”
“우리 포탈 열어주었던 사람. 신전으로 가는 포탈.”
“그가 달로스였다고?”
핏불킹은 여전히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카시마르를 따라왔던 사람들은 별다른 일이 없다는 걸 알자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었다.
“형님. 그가 달로스라면 강숭이를 그레이트 올드 원으로 변모시킨 것도 그가 한 짓······.”
“그 아이템을 준 게 그였어. 롯다오.”
“롯다오. 혹시 스펠링이 lothdao 아닌가요?”
“그건 모르겠는데 맞을 거야. 그걸 조합하면 달로스가 될 테니까.”
“발음이 그게 맞는 거야?”
“발음이 맞던 안 맞던 중요하지 않을 거에요. 어차피 우주적 존재의 이름은 인간이 제대로 발음할 수 없다고 되어 있으니까요. 크투가만해도 크투가 크쑤가, 크투그아,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니알라토텝도 트알라 느알라 뉘알라 여러 발음이죠. 아베다도 그렇고요 아게다 아루다 아리다 많아요.”
“근데 롯다오가 그런 자라면 이거 대박 사건인 거 아냐? 그레이트 올드 원만 떠도 행성 하나는 가볍게 날릴 수 있다는 설정인데, 그 상위 호환 격의 신인 달로스라면. 미쳤네. 근데 외 우주의 신들은 엘더 갓의 견제 때문에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는 거 아닌가?”
“그래서 모습을 바꿔서 온 거겠지. 직접 움직이지 않고. 직접 움직이는 건 반칙일 테니까.”
“검은 교단 쪽 항의가 장난 아니네요. 아이템이 죄다 소멸된 거 같아요.”
“아이템이?”
“네. 그게 강철 원숭이의 능력인가봐요. 강철 원숭이는 다른 그레이트 올드 원과 다르게 자기 세력을 불리는 권능은 그다지 없지만 아이템을 금속으로 변환시켜서 잡아먹고 무한대로 성장이 가능한가 봅니다.”
“그럼 강숭이가 다 먹어치운 건 다시 복구가 안 되는거야?”
“아마도 그런가봐요.”
아르케가 말했다.
“근데 그거 어쩔 수 없는 거 아냐?”
“어쩔 수 없다고?”
“응. 어쨌든 게임 상의 문제니까. 누가 버그를 사용한 것도 아니고. 본인들이 만든 세계관 내에서 일어난 일인데. 큰 문제 있겠어?”
“그것도 그렇겠네요. 근데 분위기는 보상을 해주려는 것 같은 분위기던데요?”
“보상?”
“네. 아이템이 한두 개 깨진 것도 아니고 있는 거 모조리 날아간 상태인가봐요. 게임 시작할 때 있는 기본 면티 빼고는 싹 다.”
“싹 다?”
“네. 심지어 인벤토리에 들어가 있던 골드까지도 싹 사라졌데요. 간이 금고 배낭을 넣어둔 사람은 그것까지도 털렸나 봅니다.”
“이 미친 원숭이 새끼 대체 얼마를 처먹은 거야?”
핏불킹이 헛웃음을 내면서 말했다.
“어어어. 형님. 이제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마세요. 그레이트 올드 원이에요. 형님. 재수 없으면 그대로 끽입니다. 끽.”
골낳괴가 호들갑을 떨면서 말했다.
“그레이트 올드 원이고 모고 강숭이 이제 나가리 된 거 아냐? 계약 위반으로 끌려간 거잖아.”
“그거야 모르지. 모르는 거지만 내 통제를 벗어난 건 확실해.”
“그럼 나가리 된 거지. 달로스한테 끌려가서 뒤지게 맞던가 소멸 되던가.”
“소멸 되는 건가요?”
“아마 그런 계약일 거야.”
“어. 소멸이면······. 형. 괜찮으세요?”
슭곰발이 카시마르에게 물었다. 말 못하는 펫에게도 정을 주는 것이 유저였다. 지랄 맞은 원숭이이긴 했지만 그만큼 재밌고 귀여운면도 많은 녀석이었다. 그러니 카시마르 입장에서는 강숭이가 소멸되는 게 마냥 기분이 좋을리 없었다.
“그레이트 올드 원인데 그렇게 쉽게 소멸 되겠어? 내가 보기에 그놈은 저어기 용광로에다 떨어트려 놔도 살아돌아올 놈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라.”
“크게 걱정 안 해.”
담담하게 말하는 카시마르였지만 속으로는 복잡한 기분이었다. 개인적으로 카시마르는 강철 원숭이가 힘을 되찾았어도 계약을 어기지 않았으면 했다. 물론, 계약을 어기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에 이유에는 위험과 관련된 생각도 있지만 강숭이와 지내면서 정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혹시나 계약을 어겼다가 진짜 계약서의 내용대로 소멸이라도 당하게 된다면 카시마르 입장에서는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강숭이가 그를 공격하려 했을 때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강숭이의 소멸 관련된 걸 더 걱정했던 카시마르였다.
“공지 떴어요.”
“어떻게 떴는데?”
“검은 교단에 쪽에 소멸 아이템 따로 보상해주려나 본데요?”
“복구가 아니라?”
“복구는 아니고 공헌도 관련해서 주는 것 같은데. 논의 중에 있다고만 공지가 올라왔네요. 확정은 아니에요.”
“하긴 그런 거 함부로 해주고 그러면 문제가 생기지. 불꽃 교단 쪽 애들은 뭐 그럼 호구인가? 어차피 변절자 쿼트 잘 물어가지고 쭉, 쭉 민 것도 그쪽이었잖아.”
“당연하지.”
“거기다 강철 원숭이는 우리가 직접 소환한 거라고 해도 무방한데. 왜 검은 교단을 퍼주냐고. 이거 항의글 올려야겠네.”
“아이템이 속옷만 빼고 다 갈렸으니 이성적인 판단이 어렵긴 할 거에요. 특히 다크 영의 제자급 인사들은 미치겠죠. 그 사람들이 들고 있는 아이템만 해도 어마머한 가격일텐데요.”
“난 뭐. 털려도 괜찮았어.”
핏불킹이 너스레를 떨면서 말했다. 그러자 사람들의 시선이 핏불킹에게로 향했다. 핏불킹은 착용할 수 있는 아이템이 극도로 제한된 직업이기 때문에 여전히 누더기와 같은 패션으로 다니는 중이었다.
누가 보았다면 변태로 오인 할만큼 헐벗은 복장.
당연히 핏불킹 입장에서는 아이템이 갈리더라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다른 유저들이 다 핏불킹과 같은 마음은 아니었다.
“형은 꼭 욕 먹을 짓을 골라서 하더라.”
“그래요. 형. 당장 아이템 한 두 개에게 플레이 스타일이 달라지는 유저도 있는데 큰일이죠. 상대 쪽이긴 했지만 제가 검은 교단이었다면 진짜 끔찍했을 겁니다.”
아르케가 말했다. 아르케의 말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 유저들 중에는 가지고 있는 아이템에 맞춰서 육성 방향을 정한 사람들도 있었으니까. 코즈믹 게이트는 무척 자유도가 높은 게임이라 다양한 플레이 스타일이 있었고, 그 중에는 주객이 전도 되었다고 할만한 유저들도 상당수 존재했다.
직업, 스킬이 먼저가 아니라 아이템에 맞춰서 스킬을 세팅한 유저들
물론, 이런 유저들은 대부분 극초반에 엄청나게 좋은 아이템을 얻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코즈믹 게이트는 아이템이 레벨 제한이 없기 때문에 간혹가다 로또처럼 레벨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좋은 아이템을 얻는 경우가 있었으니까.
“그쪽 일은 운영자들이 알아서 처리 잘 할 거야. 게임 위원회도 수시로 모니터링 하는 곳이니까. 오류 없게 잘 처리하겠지. 그보다 여기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카시마르가 물었다.
“뭐, 전쟁에서 승리했으니까. 보상 받아야지. 너 공헌도 얼마냐?”
“공헌도? 2만 정도 되는데?”
“2만?”
“헉.”
“2만이요?”
“어. 왜?”
“언제 그렇게 찍었어? 나 겨우 오천 정도인데.”
핏불킹이 말했다.
“저도요.”
“전 팔천이요.”
“넌 무슨 짓을 했길래 2만이나 되냐. 불꽃의 가수는 뭐 공헌도 두 배로 받고 그러냐?”
“저번에 신전 갔을 때 다 올렸는데?”
“아. 그때 카시마르 형이 혼자서 다크 영의 제자들 열 명 넘게 때려 잡았잖아요. 열 두 제자도 한 명인가 잡고.”
“그거 공헌도 다 같이 공유하는 거 아니었어?”
“갈라졌을 때 잡은 거니까 카시마르형 한테만 들어 갔나보죠.”
“거참. 그게 그렇게 되나.”
“근데 오천 정도만 되도 공헌도 쪽에서는 거의 탑일 걸요? 우리 쪽은 유저들 숫자도 별로 없었고. 변절자 쿼트 뜬 뒤부터는 매번 지기만 했으니까요.”
“공헌도로 뭐가 나오려나. 근데 전쟁 끝난 건데 왜 보상이 안 나오냐?”
“보상이 내려지겠죠. 수습이 되면.”
“그게 아니라 아직 300시간이 안 되었잖아요.”
“아. 그러네.”
카시마르와 사람들은 전투가 종결된 상황인데도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포말하우트에 머무르면서 시간을 보냈다. 카시마르 일행만 그런 게 아니었다. 다른 유저들도 어마어마한 전쟁을 겪은 여운으로 자리에서 떠나지 않고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보다 더 좋은 대화 주제를 찾기 어려울 테니까.
***
[깡통! 너 내가 자식 새끼 제대로 관리하라고 했지.]
걸걸한 여성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렸다. 그녀는 놀랍게도 우주적 존재 중 하나인 슈브 니구라스였다.
[무슨 일로 전화를 다 주셨습니까?]
[지랄하고 있네. 야! 그 미친 원숭이 새끼 제대로 관리하기로 했어. 안 했어? 그 새끼가 한 짓 어떻게 할 거야? 엉? 내 새끼를 그 새끼가 씹어 먹었다고!]
[거참.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야기를 해보세요.]
[염병하고 있네. 다 보고 있으면서 뭔 개소리야! 이번 일 어떻게 수습할 거야! 어떻게 수습할 거냐고!]
슈브 니구라스는 상당히 분노한 목소리였고, 달로스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우리의 약속은 서로의 영역에 대해서 침범하지 않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그니까 그 원숭이 새끼가 나를 따르는 놈들을 싸그리 쓸어버렸다고!]
[제가 알기로는 방금 일이 벌어진 곳은 그쪽 영역이 아니라 불꽃의 영역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니까 그 일에 왜 개입을 하냐고. 제대로 신전 세워서 작업하고 있는 곳에! 어디서 그런 근본 없는 자식 새끼를 싸질러가지고. 지금 그 새끼가 사고친 게 몇 번째야?]
[자꾸 새끼 새끼 하지 마시고요.]
[뭐?]
[여전하네. 화나면 대가리 안 돌아가는 거. 너는 그냥 자식 새끼들 우유나 계속 짜주세요. 거기 네 영역이 아닌데 막말로 내 새끼가 네 새끼를 잡아먹든, 말던 무슨 문제가 있어요. 거기는 불꽃 영역이라니까. 네가 불꽃 자는 틈을 타서 거길 침범한 거고. 이 도둑년아.]
[도둑년? 그렇게 나오겠다는 거지?]
[무슨 문제 있어요? 또 회의 소집해서 지랄 하시게요?]
[아니. 너 이번에 카라스 행성 쪽으로 진출하려고 하는 거 같더라?]
[그쪽은 내가 의도한 부분이 아닌데?]
[그러시겠지. 의도한 부분이 아니면 다행이고. 아이들 조금 보내놨으니까 잘 한번 해봐. 이 깡통 새끼야.]
[거참. 아니라니까 그러네.]
슈브 니구라스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걸고 일방적으로 끊어버렸다. 달로스는 묘한 표정으로 수화기를 내려놓고 중얼거렸다.
“그쪽에 아직 신전 남아 있는 거 까먹었나 보네.”
짝!
달로스가 손가락을 튕기자 그는 다시 사제 롯다오의 모습으로 변했다.
“이미 눈치 챘을텐데. 한 번 더 가라고 하면 가려나?”
달로스는 카시마르에게 다시 한 번 모습을 드러낼 생각이었다. 이번에는 신전 내부의 기둥이 목표였다. 다이렉트로 카시마르를 그쪽으로 보내 신전 자체를 무너트릴 생각인 것이었다.
“그 전에······.”
달로스가 한 켠에 놓인 작은 유리병을 바라봤다. 유리병 안에는 강철 원숭이가 고함을 지르면서 발광하고 있었다.
딱!
아주 가볍게 박수를 친 달로스.
그러자 강철 원숭이를 가둔 유리병이 깨지면서 강철 원숭이가 어딘가로 소환되었다.
***
“이번 일 위원회에서까지 나서나 본데요?”
“그래?”
“네. 제대로된 컨텐츠라고 판단하고 있는 모양이에요. 그니까 강철 원숭이의 출현이 제대로된 거라는 거죠.”
카시마르 일행은 투기장으로 넘어와서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었다. 포말하우트에서 할 일은 끝난 상태였기 때문에 투기장에서 가볍게 게임을 하기로 한 것이었다. 카시마르의 대기실은 아주 넓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도 큰 문제가 없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무슨 게임 할 거야? 게이트 로얄은 인원 수가 안 맞잖아.”
“팀전 하러 갈까요?”
“그것도 인원이 안 맞아. 적당한 던전이나 도는 게 나을 거 같은데.”
슝!
그때 강렬한 빛이 다시 한 번 나타났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빛이었다. 빛은 한동안 가시지 않았고 그 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씨발! 내가 언제 직접 때렸어? 때렸냐고! 때리는 시늉만 한 거라고! 시늉만! 그리고 내가 그 새끼한테 두들겨 맞고 굽신 거리는 거 봤으면서! 그냥 내버려 뒀다는 거지? 이 시발! 빨리 풀어줘! 풀어달라고오오!”
카시마르 일행은 그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아주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잠시 뒤, 빛이 완전히 사라졌다.
강철 원숭이는 빛이 사라진 줄도 모르고 어린 아이처럼 바닥에서 발버둥을 치며 욕을 퍼붓고 있었다.
카시마르는 그런 강철 원숭이를 가까이가서 바라봤다.
“······.”
“씨이바······아···사···아카타하.”
“······.”
강숭이는 금방 카시마르의 시선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는 상황을 빠르게 파악했고 그 어느 때보다 달로스에게 욕을 퍼붓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랬다가는 더 잣되는 수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숭이는 어떤 면에서는 달로스보다 카시마르가 더 무섭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적어도 달로스는 강숭이에게 손찌검은 하지 않는데, 카시마르는 그런 거 상관하지 않고 두들겨 패기 때문이었다.
“하하하하. 선생님······.”
“야.”
핏불킹이 카시마르의 옆으로 와서 물었다. 핏불킹과 골낳괴 일행들도 자연스럽게 강숭이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응?”
“네가 생각하는 거. 나도 해도 되냐?”
“응.”
“선생님들? 폭력은 어떤 것도 해결해주지 않습니······ 크헉!”
“누가 때린 데?”
“그럼요······.”
“죽일 거야.”
빡!
그 어느 때보다 지독한 구타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