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주캐로 멱살 캐리-97화 (97/205)

# 97

히페르보레아

“야! 카시마르야!”

“왜?”

“강숭이가 나 보면서 막 무섭게 째려보고 협박하고 그랬져. 힝! 무서웡!”

핏불킹이 소녀처럼 몸을 꼬면서 말했다. 그러자 강숭이가 억울하다는 듯이 고개를 다급하게 흔들었다.

“형. 징그러. 그런 건 하지마.”

“그럴까? 아무튼 강숭이가 막 째려보네.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것 같아.”

“그래?”

“아...아닙니다요! 선생님! 저 정신 두 배로 차렸습니다요! 억!"

강숭이를 구타하는 일은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한 두 번의 구타로 강숭이의 인성이 바뀌지 않는다는 걸 잘 알아차렸기 때문에 카시마르는 초강수를 두고 있었다. 그것은 조금도 풀어주지 않고 강숭이를 드잡이질 하는 것.

덕분에 강숭이는 이전보다 훨씬 많이 눈치를 보고 있었다. 다시 학대에 가까울 정도의 구타가 한 타임 끝났다. 강숭이는 구석에서 벽을 보면서 훌쩍이는 중이었다. 도무지 그 압도적인 위용을 보여주었던 그레이트 올드 원으로는 보이질 않았다.

또르르

카시마르는 주먹만 한 돌을 강숭이 앞에 떨궜다.

“선생님! 머...먹겠습니다.”

“누가 먹으래?”

“예?”

“그거 먹으라고 준 거 아냐.”

“그러면?”

“앞으로 네 위치가 그 돌 이하라는 것만 알아둬라.”

“선생님!”

“잘 지켜라. 그 돌에 흠집 하나 날 때마다 네 도가니에 구멍이 송송 나는 거야. 그리고 앞으로 밥은 없다.”

“예? 선생님 그럼 전.......”

“너 이번에 먹은 것만 해도 한 500년은 식사 안 해도 되겠던데.”

“아닙니다요! 그거 이미 소화 다 됐습니다요!”

“그래서 어쩌라고?”

“선생니임! 절 얼마든지 혼내셔도 됩니다요! 그렇지만 밥을 끊는 건 너무 하십니다요!”

“이참에 채식을 해. 밖에 널린 게 풀이야.”

“선생니이임!”

“거참.”

카시마르가 난감한 표정으로 있자 강숭이가 얼른 달라붙었다. 카시마르는 잠시 머리를 긁으면서 강숭이를 내려다보았고, 강숭이는 카시마르의 마음을 돌리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강숭이의 착각일 뿐이었다. 카시마르는 허리춤에서 카이로의 꼬리를 꺼내고 있었다.

“선생님?”

“이게 그렇게 맞고도 정신을 못 차렸네. 형!”

“응?”

“이 새끼 좀 잡아.”

“그럴까?”

“선생님!”

“입도 틀어 막자!”

“선으으읍!”

“야! 이놈 좀 더 교육해야겠다. 입 아직 안 막았는데 연기하는 거 봐. 소름. 어쩜 이렇게 뻔뻔하냐.”

“역시 쉽게 변하지 않아.”

“변하겠어? 평생 두들겨야지.”

다시 구타가 시작되었다.

***

“왜 공헌도를 올려주는 거 가지고 그러는 거야?”

황이사는 오늘도 흥분 상태였다. 아마 그의 흥분은 이번 일이 완전히 해결되기 전까지 가라앉지 않을 것 같아 보였다.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겁니다.”

“그레이트 올드 원 출현은? 그걸로 유저들 아이템 죄다 날라간 거는 아무 문제 없다는 거예요?”

“예. 위원회에서는 그 부분은 문제없다고 했습니다. 게임 시스템 내부의 문제이니까요.”

게임 윤리 위원회는 게임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감시하는 곳이 아니었다. 그곳은 엄밀히 말하자면 게임 운영에 대한 부분을 감독하는 곳이기 때문에 시스템 내에서 일어난 헤프닝에 대해서는 문제 제기를 할 이유가 없었다.

게임 위원회의 모니터링 대상은 운영진.

과거 게임사들이 운영 문제로 여러 일을 벌인 적이 있기 때문에 생겨난 법이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확률형 아이템 확률 조작이었다. 조작 사실이 몇 번이나 드러난 적 있음에도 많은 게임사들이 확률 조작을 시도했고, 결국 게임 윤리 위원회가 적극적으로 운영을 감시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물론, 유저들은 이 상황을 아주 좋아했다. 적어도 자신이 하는 게임이 형평성에 어긋나는 운영을 하지 못하게 최소한의 브레이크가 걸려 있는 셈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용팀장 생각은 어때요? 권고대로 진행해야 하는 건가요? 기존 그대로 가게 되면 유저들이 대거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많죠. 그들이 지니고 있던 아이템의 가치는 가볍지 않습니다. 특히 이번 성전에 초기부터 참여했던 대형 길드들은 그냥 문을 닫아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게임 내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을 생각해본다면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문제죠.”

“그렇습니다. 대형 길드에는 스타 유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이탈하게 된다면 라이트 유저들도 많이 이탈하게 될 거고요.”

“검은 교단 쪽에 참가한 유저들의 숫자가 많지?”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대부분이 검은 교단 쪽으로 붙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불꽃이나 혼돈 교단은 NPC들이 구축한 세력이 탄탄하게 있었지만, 검은 교단은 없었으니까요.”

“골치가 상당히 아프군. 그냥 진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렇죠.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말이 아예 틀린 것도 아니니까요.”

“그런가?”

“다른 교단의 유저들도 열심히 싸운 건 사실이니까요. 검은 교단 쪽이 아이템이 소멸되었다고 그쪽에만 보상을 더 해준다는 게 알려진다면 불만의 목소리도 나올 겁니다.”

“결국은 다 처리해야 한다는 거네?”

“예.”

“지금 모든 교단 통틀어서 공헌도 1위인 유저가 누군데?”

“당연히 뭐... 카시마르죠.”

“북제국 쪽까지 통틀어서?”

“네. 상대가 안 되죠. 공헌도가 2만이 넘었습니다.”

“2만. 대체 무슨 짓을 하면 그런 공헌도가 나오는 거야. 하아. 골치 아프네. 그 양반은 뭐 건드릴 수가 없어. 차라리 대놓고 밀어주는 게 편하지.”

“대놓고 밀어주면 안 된다는 걸 잘 알지 않습니까.”

“그래. 그 양반이 또 그런 걸 싫어하기로 유명하거든. 그 양반은 그냥 내버려 둬. 매뉴얼 대로 말이야. 문제 생기면 위원회랑 꼭 이야기를 해서 문제 없게 처리하도록 하고.”

“예.”

“그보다 다른 게 골치야.”

“이사님. 골치 아프게 생각하지 말고 이번에도 단순하게 가면 어떨까요?”

이야기를 지켜보던 구소형 팀장이 넌지시 말을 꺼냈다.

“어떻게?”

“어차피 불꽃 교단과 혼돈 교단에 참여한 유저들은 검은 교단에 참여한 유저들보다 100분의 1 숫자입니다. 그만큼 소수라는 거죠. 형평성 이야기 안 나오게 그냥 성전에 참여한 유저들에 대한 보상을 죄다 올려주는 겁니다.”

“그리되면.......”

“결과적으로 보자면 불꽃 교단과 혼돈 교단 쪽에 참여한 유저들이 이득을 보게 되겠죠. 그렇지만 전체로 보자면 그리 크지는 않을 겁니다.”

“용팀장. 구팀장 말 대로 해도 되는 거야?”

“일단은 그렇게라도 진행을 하는 게 좋겠습니다. 어느 정도 격차가 나긴 하겠지만 유저들이 대거 이탈하는 것은 막아야 할테니까요.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두면 이제 검은 교단 쪽의 지역이 유지는 될 겁니다. 북제국 쪽이 완벽하게 밀린 건 아니니까요.”

“삼자 구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스토리상 다음 컨텐츠를 풀 수 있고 말이야. 특히 AOS 모드는 위에서 거는 기대가 아주 크단 말이에요.”

황이사는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는지 다시 존대말을 하기 시작했다.

“공헌도 계산을 꼼꼼히 해서 최대한 밸런스가 무너지는 걸 막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강철 원숭이에게 소멸된 아이템 말입니다.”

“그래. 공헌도를 올려주면 그 아이템은 어떻게 보상해줄 생각인가요?”

“다행이 백업된 게 있어서 아이템을 복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고 합니다. 다만 그냥 복구를 해주게 되면 이상하죠. 어디까지나 공헌도에 따른 보상을 해주는 거니까요. 그래서 복구된 아이템들은 이전과 능력의 차이가 거의 없지만 이름과 외관을 다르게 해서 내보낼 생각입니다.”

“검은 교단과 관련된 이름으로?”

“예.”

“그거 좋네. 그럼 그렇게 진행해. 벌써 시간이 꽤 지났어요. 다른 교단 쪽도 공헌도로 가져갈 수 있는 선택의 폭을 넓혀주고.”

“그렇게 할 생각입니다.”

***

성전에 참여한 유저들은 공헌도에 따른 보상을 받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보상이 좋았기 때문에 성전에 참여하지 않은 유저들의 부러움을 샀다. 그레이트 올드 원 강철 원숭이에게 소멸당했던 아이템들은 공헌도로 대부분 복구 되었고, 그중에서는 새로운 아이템을 얻게 된 검은 교단 유저들도 있었다.

새로운 아이템을 얻었다고 해봤자 다른 교단의 유저들이 워낙 강해졌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다고 할 수 있었다.

카시마르는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보상을 받은 자라고 할 수 있었다.

카시마르는 보상 관련 문제로 포말 하우트의 늙은 사제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정말 영지를 포기하겠다는 말인가?”

“전 딱히 영지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영지만 있으면 평생 먹고 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터인데.”

“지금도 그런 상태라서요.”

“그럼 원래 불꽃 기사에게 주어지는 영지까지 포기하고 무얼 가져갈 생각인가?”

“수행기사라는 아주 좋은 시스템이 있던데요?”

“공헌도와 영지를 다 포기하고 대신에 그만큼의 사람을 데려가겠다는 건가?”

“그럴 생각입니다.”

불꽃 기사에게는 수행원이라고 할 수 있는 수행기사와 수행사제가 따라붙는다. 이들은 원래 영지가 주어지면서 불꽃 기사에게 주어지는 자들이었는데, 재미난 점은 이들의 소속이 변한다는 점이었다. 이들은 원래 교단 소속이지만 주인에게 배정된 다음부터는 주인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도록 되어 있었다.

카시마르는 이들의 능력이 생각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깨닫고 영지 대신에 그들을 데려갈 생각을 했다. 카시마르에게 영지는 크게 매력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완전한 자기 세력을 데려다가 키우는 게 장기적으로는 더 이득일 거라고 생각했다.

“수행 사제들은 교단 출신의 사제들이네. 그래서 그대가 데려가서 쓰는 데는 큰 문제가 없을 거야. 다만 수행 기사들은 말이 기사들이지 결국 말하자면 죄수들이야. 기사이면서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질러서 이곳에 감금된 자들. 그들을 데려가서 쓰려면 그만큼 위험부담이 있어. 교단에서도 그만큼 준비를 해야 하고.”

“어떤 준비 말입니까?”

“뛰어난 기사면서 죄를 지은 자들이네. 가둬둘 때야 문제가 없겠지만 이 밖으로 나가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말이지. 그때를 대비해서 교단에서 준비를 해야 돼서 말이야.”

“수행 사제들보다 훨씬 비싼 값을 치러야 한다는 건가요?”

카시마르가 물었다.

“비싼 값이라는 표현은 조금 그렇지만 틀린 말은 아니지.”

“어떤 대비를 한다는 겁니까?”

“그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골치덩이었네. 큰 죄를 지은 자들이지. 당장 목이 잘려도 상관 없는 자들이지만 그만큼의 뛰어난 재능이 아까워 다시 한 번 살 수 있는 기회를 부여 받은 자들. 그들이 바로 수행 기사들이네.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었어. 마법으로 제약을 걸어보기도 하고, 감시원을 붙이기도 했었지. 그러나 죄다 허점이 있더군. 마법을 풀고 수행해야할 대상을 죽이고 도망친 기사들도 꽤 많았지. 감시원을 아주 간단히 죽여버리는 자들도 있었고.”

“그만큼 뛰어난 자들이라는 뜻이군요.”

“그렇지.”

“그래서 그들을 묶어둘 대비책이라는 게 무엇입니까?”

“가장 확실한 건 한 가지 밖에 없더군. 가문.”

“가문 말입니까?”

“수행 기사가 선택을 받아서 나가게 된다면 그는 평생 주인을 모셔야 하네. 주인의 명령이라면 거부할 수 없지.”

“그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카시마르가 막대한 공헌도가 든다는 걸 알면서도 수행 기사를 데려가려고 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기사 출신이니 그들에게도 가문이 있고 가족이 있지.”

“그들을 잡아두는 겁니까?”

“잡아두는 건 아냐. 오히려 좋은 대우를 해주는 거지. 수행 기사로 발탁이 되면 발탁된 자의 가족을 제국의 수도인 포말로 데려가서 그곳에서 풍족한 삶을 살게 해주지. 수행 기사가 한 가지 룰만 어기지 않는다면.”

“어떤 룰입니까?”

“위에 말하지 않았나. 주인의 명령에 복종할 것.”

“그 외에는 없습니까?”

“없어. 더 만들어 두었다가는 복잡한 일이 생길 수 있거든. 그대도 알다시피 제국이 좀 복잡한가? 파벌도 많아서 어제의 동료가 내일은 적이 되기도 하지. 그러니 최대한 심플하게 정할 필요가 있었던 거지.”

카시마르는 노인을 따라서 미로 같은 포말하우트의 지하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몇 명이나 있습니까?”

“그건 나도 알지 못하네. 다만 잘 선택하는 게 좋을 거야. 그들의 능력은 천차만별이거든. 죄수라고는 해도 불꽃 기사였던 자들이니 보통은 넘지. 어쩌면 지금 만들어둔 시스템도 어떻게 해서든 틈을 만들어서 자유를 찾으려고 할지 몰라. 조심해야 돼.”

“명심하겠습니다.”

“근데 공헌도와 포기한 영지만큼 수행 기사를 데려가겠다는 건가?”

사제가 물었다.

“예.”

“그러면 모두 세 명을 데려갈 수 있겠군. 정말 조심해야 되네. 수행 기사를  세 명이나 데려간 자를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했어. 야네크를 빼앗겼다고는 해도 불꽃 기사. 조심할 수 있겠나?”

“조심히 다루도록 하죠.”

“그럼 여기서부터는 간수와 이야기를 하도록 하게. 이 너머가 바로 히페르보레아네.”

카시마르는 작은 문 앞에 섰다. 성인 남성이 한 명이 간신히 들어갈 수 있을만큼 작은 문이었다. 카시마르를 안내한 사제는 뒤로 살짝 물러섰고 카시마르는 그에게 인사를 한 다음에 히페르보레아의 문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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