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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캐로 멱살 캐리-98화 (98/205)

# 98

벽화

문을 열자 좁은 길이 쭉 이어져 있었다. 상당히 긴 길이었고 안내를 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포말하우트의 다른 길과 다르게 미로처럼 되어 있지 않은 일직선의 길이라는 점이었다.

카시마르는 그 길을 천천히 걸었다. 강숭이는 카시마르의 옆을 조용히 따라붙는 중이었다. 은신 상태였기 때문에 강숭이는 여전히 카시마르의 눈에만 보이는 상태였다. 그러나 이전과 조금 다른 부분이 있긴 했다. 지금 강숭이는 입에 재갈을 문 상태여서 말을 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카시마르는 천천히 걷다가 카이로의 꼬리를 꺼내 강숭이의 머리를 내려쳤다.

[선생님! 선생님!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선생님!]

딱!

“내가 귓속말 하지 말랬지.”

“으브브브븝!”

“너 진짜 용암에서 수중발레 하고 싶냐?”

카시마르의 협박에 강숭이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하고 싶다고?"

카시마르가 되묻자 강숭이가 얼른 고개를 가로저었다. 카시마르는 다시 천천히 길을 걷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이곳으로 오게 된 상황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

“히페르보레아란 곳이야.”

“불꽃 기사들이 죄수로 있는 곳이라고?”

“어.”

“죄수들이 엄청 세겠네.”

“세지.”

“형. 이건 기회에요. 이야기 듣기로는 히페로보레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원래 공헌도 10만은 되어야 한다는 설정이랬어요.”

골낳괴가 말했다.

“10만?”

“네.”

“그럼 그걸 지금 10분의 1로 줄여준 거야?”

“보니까 딱 각 나오네. 이번에 검은 교단 애들 아이템 복구 시켜주는 거 형평성 문제로 위원회에서 뭐라 하니까 그냥 성전 참여한 사람 다 올려준 거지.”

“그런 건가.”

“뭐 우리야 가만히 앉아서 혜택본 거지.”

“근데 그 수행기사가 말하자면 용병 같은 거 잖아.”

“그렇죠. 가디언 시스템이라 봐야죠. 힘으로 따지자면 최상급 용병들보다 셀 걸요? 야네크가 없다고는 하지만 불꽃 기사잖아요.”

카시마르는 자신이 상대했던 불꽃 기사를 떠올렸다. 야네크의 힘도 어마어마했지만, 그가 상대했던 불꽃 기사들은 신체 능력도 장난이 아니었다. 신체 능력만 A랭크 이상인 자들. 그들에게 적당한 무기를 쥐어준다면 랭커들과도 싸움이 가능할지도 몰랐다.

“세긴 하겠네.”

“그런 불꽃 기사들을 공짜로 영원히 부린다고 생각해보세요. 용병 며칠 구입 하는데 드는 비용을 생각하면 이게 무조건 남는 장사입니다.”

“더불어서 길드 전력에 도움도 되고?”

가만히 듣고 있던 카시마르가 정곡을 찔렀다. 그러자 사람들의 표정이 잠깐 굳었다.

“.......”

“아냐?”

“야! 그런 것도 있지! 네가 우리 길드니까. 그 수행 기사들이 도움을 주고 하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그냥 막 도움만 받겠어? 그런 정도 되는 실력자가 가디언으로 온다면 말이야.”

“수상한데.”

“야. 어차피 네가 결정하는 거야. 그리고 그 친구들은 네 말만 듣는 거라니까? 몇몇 유저들 중에는 이미 구해서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어. 가성비가 좋다고 난리야.”

“수행 기사를 데리고 다닌다고?”

“아니지. 수행 사제들이지.”

“뭔 차이야.”

“수행 사제들은 교단에 속한 사람들이고. 수행 기사들은 죄지은 불꽃 기사. 차이가 크지. 그리고 수행기사들은 돈을 아무리 많이 지불한다고 해도 유저들이 데려올 수 없다는 게 특징이고.”

“교단에 큰 공을 세워야지만 쓸 수 있다는 거네?”

“그렇지.”

“알았어. 내가 수행기사 데려온다. 대신에 그 사람들이 쓸 템은 알아서 구해놔. 알잖아. 난 잡템 같은 거 잘 안 두는 거. 난 꼭 쓰는 템만 두자는 주의라서.”

“그거야 우리 길드에서 제대로 준비한다. 야네크 급까지는 아니어도 랭커들 수준 비슷하게는 아이템 세팅 맞춰줄 수 있어. 어쨌든 이번 성전 덕분에 우리 길드 원들도 대박 났으니까. 그리고 네 템도 몇 개 우리가 준비할 게.”

"난 지금 있는 템 만족하는데?"

"야네크 말고 갑옷이 좀 낡았잖아."

"건틀릿은 그대로 쓸 거야."

"그럼 나머지 부분을 좀 좋은 옵션 붙은 템으로 구해볼게."

“그럼 좋고. 근데 공헌도로 다들 템 좋은 걸로 맞췄어?”

카시마르가 물었다.

“좋은 거 맞췄지. 특히 우리 길드 사람들은 신전 털어서 공헌도 엄청 올렸으니까.”

“그래봤자 대부분 붙잡혀서 많이 다운되지 않았나?”

“그래도 불꽃 교단 쪽에서는 최고로 높아. 이놈들 아이템 번쩍이는 거 봐라.”

핏불킹은 여전히 넝마를 입고 있었지만 골낳괴와 친구들은 외관이 상당히 달라져 있었다. 특히 기계 종족인 골낳괴의 외관은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이전에는 깡통 로봇과 같은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외관이 상당히 말끔해서 굉장히 강력해 보였다.

"아무튼 가서 이야기 해보고 된다고 하면 내가 수행기사 데려온다. 근데 안 된다고 하면 난 그냥 공헌도 킵해둘 거야. 지금 딱히 필요한 템이 없거든. 난 공헌도로 야네크라도 주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형은 야네크 보유 중이라서 그 옵션이 안 뜰걸요? 우리는 있던데요? 제일 상단에."

"그래? 공헌도 얼마가 야네크인데?"

"10만이요."

"10만?"

"네."

"그럼 10분의 1로 줄이기 전으로 생각해보면 100만이라는 소리잖아."

"그만큼 야네크가 귀하다는 이야기겠죠."

***

길을 쭉 따라가자 간수들이 나와 있었다. 간수들은 사제와 같은 옷을 입고 있어서 얼핏 보면 구분이 되질 않았다. 딱 하나 다른 점이라면 허리춤에 검을 차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곳을 안내할 간수인 타티아민입니다.”

“이름이 있으시군요.”

“사제의 길을 벗어난 자니까요.”

“포말하우트의 사제와는 다르다는 거군요.”

“분리된 곳이죠. 포말하우트 쪽에서 연락은 받았습니다. 불꽃 기사 카시마르.”

“예.”

“그들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을 안 드려도 되겠지요?”

“그렇습니다. 다만 이곳으로 안내해준 사제분이 좀 걱정을 하더군요.”

“어떤 걱정 말입니까?”

“과거에 몇 번 사고가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세 명이나 데리고 나가는 것이 조금 걱정이 되었나 봅니다.”

“그렇죠. 사고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예전에 들어온 자들과 지금 이곳에 들어온 자들은 경우가 다르거든요.”

“어떻게 다릅니까?”

“몇십 년 전까지만 하여도 이곳에 들어온 불꽃 기사들은 극악무도한 죄를 진 자들이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미치광이에 가까운 자들도 있었죠. 백 번 죽어도 마땅할 그들을 불꽃 기사라는 이유로 갱생의 기회를 주었으니 문제가 안 생기겠습니까? 문제 많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제도적인 보완을 여러 번 했죠. 그래서 지금은 정말 극악한 범죄자들은 이곳에 오질 못합니다. 바로 사형을 당하죠.”

“아. 그러면 큰 문제는 없다는 말입니까?”

“이러한 이야기는 포말하우트의 사제들도 모르니 소문이 아직 그렇게 나 있을 수도 있겠군요. 문제가 생기지 않기 위해 포말하우트와 여기 히페르보레아는 분리되어서 운영되거든요. 여기서 왼쪽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포말하우트와 비슷하게 생긴 길이 계속되었다. 대신에 포말하우트보다는 길이 좁다는 느낌이었다. 간수인 타티아민은 카시마르가 길 안내를 하면서 이야기를 더 꺼냈다.

“지금은 다릅니다. 여기 들어오는 자들은 대부분 몰락한 가문 출신의 불꽃 기사들이 많습니다.”

“불꽃 기사면 어느 정도 지위가 보장될텐데요.”

“불꽃 기사도 다치고, 병들고, 파산하고 하죠. 세상에 영원히 화려한 삶을 사는 자들은 없습니다. 황족도 몰락하는 시대인데요. 이들 중에는 정치 파벌 싸움에 휘말려 밀려온 자들도 있고, 자크르에 패배해서 이곳에 온 자들도 있죠. 스스로 이곳을 찾아온 자들도 있고요.”

“스스로 말입니까?”

“예. 그들이 이곳에 온 이유는 가문이 몰락하는 걸 막기 위함인 거죠. 그들이 야네크를 반납하고 이곳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그들 가문에 재정적인 지원이 시작되거든요. 물론, 다른 가문들의 공격도 중지되고요.”

“정확히는 그런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곳이었군요.”

“예전에는 결함이 많았는데 이제는 꽤 안정이 되었죠.”

“그러면 충성심 이런 부분도 문제가 없겠군요.”

“그들은 선택을 기다리는 자들입니다. 수행기사로 선택을 받아서 이곳에서 나가면 그들 가문에 지원을 훨씬 많이 하게 되거든요. 그러니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다만 이런 제도적 보완이 있기 전부터 있었던 자들을 선택한다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극악한 죄를 지어서 온 자들 말입니까?”

“예. 그들은 따로 격리되어 있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지만 간혹가다가 그런 쪽의 인물을 원하는 방문객도 있어서 말입니다.”

“이곳에 오는 자들이 꽤 많습니까?”

“대부분 귀족들이나 황족들이지요. 교단에 많은 기부를 하고 그들을 데려가는 거지요. 야네크가 없다고 해도 그들의 힘은 무시 못하니까요.”

“범죄를 저질러서 들어온 불꽃 기사들을 원하는 자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어떤 자들이라고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들을 데려가서 무얼 할지는 예상해볼 순 있겠죠. 좋은 목적은 아닐 겁니다.”

타티아민의 말에 카시마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타티아민과 카시마르는 이야기를 계속 나눴다.

“최근 성전에서 아주 큰 공을 세웠다고 들었습니다. 포말하우트에서 사제가 부탁을 할 정도로 추천서를 잘 써주는 경우는 드문데요. 대단하시군요."

"과찬입니다."

"이번 성전은 상당히 다급했다고 하던데요.”

“예. 그렇지만 잘 넘겼습니다.”

“히페르보레아에 있는 죄수들을 깨워야 할지 윗분들이 긴급회의를 하기도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군요.”

“결과적으로는 깨우기 직전에 일이 잘 수습되었으니 잘된 일이지요. 여기가 그들이 있는 곳입니다.”

카시마르가 도착한 곳은 거대 신전의 중앙처럼 넓은 곳이었다. 끝과 끝이 보이지도 않을 곳에 아무런 구조물도 보이지 않았다. 기둥도 없었다. 창문도 없는 곳에 사방이 벽으로 막혀 있을 뿐이었다. 안은 그리 밝지 않았지만 가까이 있는 사람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둡지는 않았다.

“아무도 보이질 않는데요?”

“벽을 보시죠.”

타티아민이 벽을 가리켰다. 카시마르는 가까이 다가가서 벽을 바라봤다. 그리고 타티아민이 왜 아까 깨운다는 의미를 썼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여기가 히페르보레아입니다.”

벽은 꽤 떨어진 곳에서도 느껴질 정도로 냉기가 흐르고 있었다. 곳곳에 성에가 낀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그 안에 그림처럼 사람이 들어 있었다.

“이들이.......”

“예. 그들이 바로 히페르보리아의 죄수들입니다.”

타티아민의 설명을 들은 카시마르는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까마득한 높이에 벽화처럼 새겨진 사람들. 카시마르는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아름답지요?”

“기이하군요.”

“대부분 그런 반응입니다. 몇몇 인사들은 이 모습을 보고 기절을 한 사람도 있었지요. 조금 시간을 드릴까요?”

“아니오. 바로 선택하겠습니다. 그림 중에 아무나 고르면 되는 겁니까?”

“제가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타티아민은 품속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 들었다. 수첩에는 암호로 이루어진 글자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일단 몇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일단 위로 갈수록 위험도가 높은 인물들입니다.”

“위험도라면?”

“아까 말했던 돌발 행동 가능성이 높은 자들을 의미합니다. 너무 오래 이곳에 갇혀 있어서 가문이 아예 몰락했거나, 직계 가족이 모두 죽었거나 하는 자들이죠. 이들이 깨어나 그런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행동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으니까요.”

“네. 그런데 불꽃 기사들이 상당히 많군요.”

“야네크는 없어지지 않지만, 불꽃 기사들은 계속 교체되니까요. 그리고 몇몇 죄수들은 위험도가 낮지만 데려갈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입니까?”

“그들이 속한 가문에서 요청을 한 경우입니다. 가문에서 그를 깨우러 오겠다고 돈을 보내고 있는 가문들이지요. 가문 입장에서 보면 참 슬픈 일일 테니까요. 불꽃 기사는 어쨌든 가문의 자랑아닙니까.”

“그렇겠죠.”

“그러면 이제 쭉 둘러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카시마르님은 어떤 자를 원하고 계십니까?”

“어떤 자라면.”

“그들을 어떻게 사용하실 생각이신지요.”

“저와 함께 많은 일을 하게 될 겁니다. 몬스터를 잡아야할 수도 있고, 적과 싸움을 해야 할 수도 있죠. 제 호위를 맡아야 할 수도 있고요.”

“전투 능력이 가장 중요하겠군요.”

“보통 방문객들은 전투 능력을 중요시 하기 때문에 여기에 오는 거 아닙니까?”

“전혀요.”

타티아민의 반응은 단호했다.

“그러면 여길 왜?”

“카시마르님은 게이트 출신의 불꽃 기사이니 잘 모르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일단 불꽃 기사들은 엘리트 교육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고위 귀족 출신이 대부분이며 다방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죠. 황족, 귀족들은 그들을 교사로 쓰려고 많이 데려옵니다. 뛰어난 예절을 지니고 있고 충성심마저 갖췄으니 딱이죠.”

“덤으로 호위로 쓰기에도 좋고요.”

“예.”

“여기에 오는 자들이 대충 어떤 자들일지 감이 잡히는군요.”

카시마르의 말에 타티아민은 말 없이 미소를 지었다. 그는 수첩을 살피더니 카시마르를 앞서서 몇 발자국 걸었다.

“어쨌든 다행입니다. 전투 능력을 최우선으로 평가하자면 추천할 기사들이 상당히 많이 있거든요.”

드르르륵!

타티아민은 말을 하면서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림들이 마치 퍼즐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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