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주캐로 멱살 캐리-99화 (99/205)

# 99

조우

“한 가지 알아두셔야 할 부분은 이들이 이제는 불꽃 기사가 아니라는 겁니다.”

타티아민은 퍼즐을 맞추듯이 벽화를 진열하기 시작했다. 카시마르의 앞에서 벽화가 재배열되었다.

“야네크를 지니고 있지 않다는 말씀을 하는 거죠?”

“예. 아무래도 그게 제일 중요하겠죠. 불꽃 기사들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야네크니까요. 야네크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전투 능력은 큰 차이를 보입니다.”

“그러면 야네크를 들고 있을 때와 들고 있지 않을 때의 전투 능력 차이가 커도 큰 문제가 없겠군요. 어쨌든 제게 중요한 건 있는 그대로의 전투 능력이니까요.”

“그렇죠. 하지만 그 기준을 정리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전투 능력 면에서는 누구를 데려가도 만족은 하실 겁니다. 불꽃 기사였던 자들이거든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어렸을 때부터 혹독한 훈련을 소화하니까요. 일반 기사와는 다르죠.”

“특별한 경우라면 어떤 경우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불꽃 기사들의 훈련은 대부분 야네크와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날 때부터 야네크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천재라면 굳이 혹독한 훈련이 필요 없죠. 보다 야네크를 더 잘 다루도록  하면 되니까요. 다만 100명 중에 99명은 야네크를 쉽게 다루지 못합니다. 그래서 기초부터 다지게 되죠. 아주 힘든 훈련입니다.”

드르륵

타티아민은 제일 먼저 두 명의 불꽃 기사를 보여주었다. 카시마르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제가 생각했던 이미지랑 조금 다르군요.”

“의외죠?”

“예.”

타티아민이 보여준 두 명의 불꽃 기사들은 아무리 봐도 성인처럼 보이지 않았다.

“특이하네요.”

“게다가 그 드물다는 여성 불꽃 기사들이죠. 둘은 쌍둥이입니다. 아렉스 가문의 불꽃 기사니 카시마르님이 찾는 조건에 부합합니다.”

“제가 게이트 출신이어서 말이죠. 아렉스 가문이 유명합니까?”

“아. 그렇죠. 이쪽 세계에 대해서 잘 모르시겠군요. 간단히 설명 드리자면 아렉스 가문은 힘으로 유명합니다. 그들의 시초는 ‘불꽃을 손에 쥔 자’라고 불렸던 불꽃 기사 스테이트라고 합니다. 스테이트는 후손을 남기지 않고 죽은 것으로 되어 있었지만, 훗날 그의 후손들이 나타나서 아렉스 가문을 만들었죠. 스테이트 이후로 아렉스 가문에게 나타난 특징은 바로 무지막지한 힘입니다.”

“힘이요?”

“예. 주먹만한 돌을 손에 쥐고 힘을 주면 그대로 가루가 되어버린다고 할 정도로 강력한 힘이죠.”

“그러면 이 소녀들이······.”

“아렉스 가문의 소녀들입니다. 제가 제일 추천하는 후보들입니다. 일단 이곳에 들어온 지도 5년 정도밖에 되질 않았기 때문에 가문과의 유대가 끈끈하죠. 그리고 그녀들의 평소 성향도 나쁘지 않기 때문에 카시마르님이 수행 기사로 쓰기에는 좋습니다. 전투 능력은 말할 것도 없고요. 검술 실력은 A급. 특히 그녀들은 혼자일 때보다 둘일 때 몇 배 뛰어난 힘을 발휘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약간 과장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너무 어려보이는데요.”

“실제로도 어립니다. 이곳에 들어올 당시에 열일곱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전투 경험은 그리 많이 걱정하지 않으셔도됩니다. 그녀들은 아렉스 가문의 일원으로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전투를 해왔습니다. 결국, 아렉스 가문이 패배를 해서 여기 있지만 말입니다. 전투 능력 말고도 여러 이점이 많습니다. 일단 이곳에 들어온지 얼마 되질 않았기 때문에 제국의 정세에 대해 꽤 밝습니다. 무엇보다 아렉스 가문은 제국 사회에서 명성 있는 가문입니다.”

“꽤 강력했던 가문인가 보군요.”

“강력했다기 보다는 유명하죠. 그들의 선조라는 불꽃 기사 스테이트가 최초의 불꽃 기사거든요.”

“최초라면 어떤?”

“불꽃 수집가에게 자크르를  해서 패배한 최초의 불꽃 기사입니다.”

“그게 명성으로 분류됩니까?”

“호각으로 싸웠다는 이야기까지 덧붙여져 있으니 명성이지요. 불꽃 수집가에 대해서도 모르시는 겁니까? 불꽃을 꺼트리는 자라고도 불리는데요.”

“전혀요.”

“저런. 그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듣게 될 겁니다. 역사상 가장 많은 불꽃 기사를 죽인 사람이니까요. 간접적인 게 아닙니다. 직접 전투에서 가장 많은 불꽃 기사를 죽인 사람입니다.”

“북제국인입니까?”

“아뇨. 그도 불꽃 기사입니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제가 아니어도 굳이 얼마든지 들을 수 있을 겁니다. 제국 사회에 많은 영향력을 미친 인물이니까요.”

“그 사람의 이름을 알 수 있습니까?”

“물론이죠. 그자의 이름은 무슬란입니다. 무슬란 멜토우.”

***

카시마르는 신중하게 행동했다. 수행 기사를 얻는 일은 많은 돈을 지니고 있어도 기회를 잡기 어려웠다. 매우 귀한 기회였기 때문에 카시마르는 천천히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타티아민은 다양한 불꽃 기사들을 추천해주었다. 타티아민은 카시마르의 까다로운 요구에도 친절하게 응했다. 그 모습이 마치 고객에게 물건을 파는 상인 같은 모습처럼도 보였다.

“이번에 소개해드릴 불꽃 기사는 전투 능력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습니다. 아마 불꽃 기사들 중에서도 가장 낮은 수준일 겁니다. 대신에 야네크의 영향을 제일 받지 않는 불꽃 기사라고 할까요?”

“야네크를 잘 활용하지 못했습니까?”

“아뇨. 그는 야네크를 얻지 못했습니다.”

“야네크가 없으면 불꽃 기사가 되지 못하는 걸로 아는데요?”

“예전에는 야네크를 지닌 불꽃 기사보다 얻지 못한 불꽃 기사가 훨씬 많았습니다. 지금에는 야네크를 얻지 못하면 불꽃 기사가 되지 못하게 제도가 바뀌었지요.”

“꽤 오래전 불꽃 기사인가보군요.”

“예. 자크르 능력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지만 저는 어떤 의미에서 이 자가 최강의 불꽃 기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휘관으로서의 능력이 비상한 자거든요.”

타티아민의 설명에 카시마르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솔로 플레이를 할 때는 당연히 전투 능력이 뛰어난 수행 기사가 유리할 것이었다. 그러나 카시마르는 이제 길드 소속이었다. 길드 소속이니 앞으로 대규모 전투를 많이 해야할 수도 있었다.

“그러면 이 사람을 수행기사로 선택하겠습니다.”

“그러면 나머지 두 명은?”

“아렉스 가문의 쌍둥이를 선택하지요.”

“좋은 선택이군요. 밸런스가 딱 맞아요. 그러면 그들을 깨우도록 하겠습니다.”

타티아민이 손을 다시 움직였다. 그러자 카시마르가 선택한 불꽃 기사들이 차례대로 정렬이 되었다.

화르륵!

타티아민은 합장을 한 다음에 손을 펼쳤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새하얀 불꽃이 피어올랐다. 허공에 새하얀 불꽃이 피어오르자 갑자기 사방에서 엄청난 빛이 쏟아졌다.

카시마르는 몇 번 경험한 적 있는 빛이었었다. 그러나 지금 이러한 빛이 왜 쏟아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카시마르는 옆을 돌려서 타티아민을 바라봤다. 타티아민은 마치 석상처럼 굳은 상태로 있었다. 손을 펼친 그 상태 그대로였고 불꽃도 허공에서 멈춰 있었다.

“강숭아.”

강숭이를 불러보았지만 대답이 없었다. 강숭이의 모습도 보이질 않았다.

“잠깐 틈 사이로 들어온 것뿐입니다.”

등장한 사내는 바로 사제 롯다오였다. 롯다오는 빛속에서 서서히 걸어나오고 있었다. 그는 전에 카시마르와 만났을 때와 같은 모습으로 있었다.

“당신······.”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죠.”

“그러면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하세요.”

롯다오는 차분했다.

“왜 도와준 겁니까?”

“제일 난감한 질문을 하는군요. 그 질문은 그냥 넘어가면 안 될까요?”

“강철 원숭이가 이리 온 것도 다 당신이 의도한 겁니까?”

“그 녀석이 하는 일을 제가 다 컨트롤 할 순 없어요. 저는 그냥 지켜보다가 선을 넘지 않게 손을 쓸 뿐이죠.”

“여기는 다시 왜 온 겁니까? 강숭이를 데려가려고요?”

“강숭이는 당신을 주인으로 모시기로 맹세했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일은 없어요. 그건 아무리 저라고 해도 건드릴 수 없는 신성한 약속이죠.”

“그러면 왜 다시 나타난 겁니까?”

“제안이랄까요. 아니 부탁이라고 해두죠. 제가 당신에게 부탁할 게 있어요.”

“······.”

카시마르는 어리둥절한 기분이었다. 롯다오가 달로스라는 걸 알기 전에는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지만, 이제는 정체를 아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마냥 편하게 대하기가 그랬다. 어쨌든 달로스는 우주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 중 하나였으니까.

“거절하면요?”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죠. 그렇지만 난 당신이 이 일을 하는데 적격이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위험한 일 아닙니까?”

“그만큼 큰 보상을 줄테니까요. 일단 당신에게 걸린 족쇄부터 풀어주도록 하죠.”

“족쇄?”

“당신이 야네크라고 부르는 그 물건. 그게 아무런 대가 없이 쓸 수 있는 물건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대가를 치러야하는 겁니까?”

“죽음 이후에 치르는 대가니 더 치명적이죠. 아품 자는 음흉한 친구에요. 그러니 봉인 당한 거겠지만.”

딱!

롯다오가 손가락을 튕겼다.

“이건 서비스에요. 족쇄는 풀렸으니 이제 괜찮을 거에요.”

“제가 당신의 의뢰를 받아들인다면 더 많은 걸 주겠다는 이야깁니까?”

“물론이죠. 당신은 제 일을 두 번이나 도와주었으니까요. 아무리 강력한 힘이 있어도 직접 행동할 수는 없어요. 보는 눈이 많으니까. 그래서 당신 같은 유능한 일손이 필요해요.”

“어떤 일인지 들어나보죠.”

“일은 저번과 비슷해요. 슈브의 신전에 다시 한 번 가주어야겠어요.”

“신전에요?”

“네. 대신에 이번에는 신전을 아예 무너트려줘야겠어요.”

“그 신전을 무너트리는 일은 쉽지 않을 텐데요.”

“하겠다고 하면 할 수 있도록 도와주죠. 불가능한 일을 시키지 않아요.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롯다오의 말투는 일정한 톤을 유지하고 있었다. 카시마르는 10초 정도 생각한 다음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면 몇 가지 수정해야 될 게 있군요.”

딱!

롯다오가 손가락을 다시 튕겼다. 이번에는 반응이 있었다. 카시마르의 품속에 있던 카이로의 꼬리와 그로 뭉치가 허공으로 떠오른 것이었다.

“그로를 다루는 능력은 당신과 어울리지 않아요. 이런 능력은 약한 아이들이나 쓰는 거죠. 당신은 이런 능력이 없어도 충분히 강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걱정 말아요.”

짝!

이번에는 박수를 치는 롯다오. 그러자 그로 뭉치가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50cm 정도의 작은 공룡 모양으로 변하는 그로. 카이로의 꼬리가 그 공룡에 뒷부분에가서 찰싹 달라붙었다.

“이름도 지어주죠. 카이로만큼은 아니지만 유용할 때가 많을 거에요. 이름은 귀엽게 꼬리가 좋겠군요.”

롯다오가 만든 꼬리는 강철로 만든 작은 랩터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크기가 작았기에 귀엽게도 보였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강철로된 공룡이었다. 단순히 귀엽게만 볼 물건은 아닌 것 같았다.

“금속을 먹고 자랄 거에요. 이 아이는 무척 강해질 겁니다. 당신의 권능을 빼앗아서 만든 아이니까요. 당신의 명령만 듣는 건 당연한 일이고요.”

“그럼 카이로의 꼬리는 다시 사용할 수 없는 겁니까?”

“대신에 당신이 잃어버렸던 폭풍의 힘을 되돌려주었어요. 그걸 야네크와 연결 시켰죠. 이제 야네크를 사용하듯이 당신은 폭풍을 다룰 수 있어요.”

“바람의 가면의 힘을 말하는 겁니까?”

“맞아요. 그 힘은 원래 폭풍으로 성장할 예정이었죠.”

“그러면 기존에 있던 야네크의 힘은······.”

“그건 없앴어요. 아품 자의 힘이 깃든 물건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으니까. 대신에 당신이 가지고 있는 건틀릿의 힘을 좀 안정화 시켰어요. 그 물건은 너무 위험해요. 오작동이라도 나게 된다면 큰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요.”

“블랙 알라딘이요?”

“예. 불완전한 물건이에요. 지금까지는 멀쩡했지만 언제 폭주할지 모르죠. 그 힘을 야네크에 넣었어요. 당신의 왼발에는 폭풍의 힘을 담았고 오른발에는 무멘의 힘과 검은 번개의 힘을 융합해서 넣었어요. 번개의 힘은 전투 도중에 자연스럽게 발현이 될 겁니다.”

“좋아진 건지 나빠진 건지 모르겠네요.”

“당신의 능력을 보다 효율적이고 직관적으로 바꾼 것뿐이에요. 이건 재조정일 뿐이고. 내가 부여한 힘은 그게 아니에요.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겁니다. 가볍지 않은 힘이에요. 지금까지 당신이 얻은 힘보다 강력하죠. 그보다 더 큰 가치가 있고요. ”

“그리 강력한 힘을 주어도 되는 겁니까?”

“당신은 앞으로 많이 싸워야 하니까요. 슈브는 지독해요. 자식과 관련된 일이라면 정말 집요하죠. 그들 말고도 이 땅을 노리는 자는 많으니 당신은  더 강해져야 합니다. 제가 개입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요. 이제 많이들 주시할 테니까요.”

롯다오는 말을 끝냄과 동시에 빛을 불러냈다. 그리고 빛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진짜 왜 도와주었는지 말 안 해줄 겁니까?”

카시마르가 눈을 꿈뻑이면서 물었다. 그러자 롯다오가 미소 지었다. 잠시 뒤 빛속에서 대답이 흘러나왔다.

“그냥 슈브가 잘되는 게 배 아파서요. 맞다. 꼬리를 만들어준 가장 큰 이유는 족쇄의 역할이에요.”

“족쇄요?”

“그 녀석이 강숭이의 폭주를 막아줄 겁니다. 꼼짝 못 할 거예요. 과거에는 반대였지만.”

롯다오가 활짝 웃었다. 그 말을 끝으로 롯다오는 사라졌고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간은 천천히 흐르지 않았다. 마치 빨리 감기를 하는 것처럼 몇 배 빠른 속도로 흘렀다.

그 시간 속에서 카시마르는 타티아민에게 세 명의 수행기사를 넘겨받았고, 히페르보레아의 밖으로 빠져나왔다.

순식간에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카시마르는 꿈이라도 꾼 사람처럼 히페르보레아에 들어갔던 입구에 서 있었다. 그곳에 사제는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쿠웅!

카시마르는 잽으로 살짝 벽을 쳐보았다. 우르르 무너지는 벽. 무멘의 힘이 활성화 되었을 때보다 더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서···선생님! 살···려주십시오. 으악!”

카시마르는 벽을 멍하니 바라보는 중이었다. 수행 기사들은 그 모습을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정적을 깨는 강숭이의 목소리. 카시마르가 고개를 돌려 강숭이를 바라봤다.

강숭이는 공룡 꼬리를 피해서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중이었다. 카시마르는 강숭이의 외침을 무시하고 스탯 창을 열었다.

[표기할 수 없는 힘이 담겨 있습니다.]

스탯 창은 열리지 않았다. 알 수 없는 글자들만 나열되어 있을 뿐이었다. 상형문자 같기도 했고, 수학 기호 같기도 했다.

딱 하나 카시마르가 읽을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우주적 명성 - 1 (우주적 명성이 높아지면 우주적 존재로 진화할 수 있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