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
자꾸 자꾸 터는 스케일이 커져!
병력은 끊임없이 모여들고 있었다. 오피아, 칼덴, 다기스, 소키란, 타르켄 가문의 가주들은 공통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연배가 다들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그중에서 가로겔 오피아가 서른 살 정도로 가장 젊었고 소키란 가주가 마흔 다섯으로 가장 나이가 많았다.
가주들은 파티에라도 온 사람들처럼 서서 포도주를 마셨다. 그러다가 누군가 테이블을 가져왔고 포말하우트 한 가운데 테이블을 펼쳐놓고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고급 레스토랑에 온 것처럼 식기까지 갖춰놓은 채로 다양한 음식을 먹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장관이라면 장관이었다.
“대단하네. 대단해.”
“제국 귀족들의 힘이지. 어디서든 여유를 잃지 않잖아. 식사에 초대했는데 갈 거야?”
“딱히······.”
코즈믹 게이트 내에서의 음식은 다양한 효과를 주기 때문에 많은 유저 들이 좋아했다.
현실에서는 맛볼 수 없는 특별한 요리가 가득한 곳.
카시마르는 음식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유저였다. 그러나 유저들 중에는 진귀한 음식을 맛보고 싶어서 코즈믹 게이트를 시작한 케이스도 꽤 있었다.
“붉은 포도주라도 맛봐라. 이거 엄청 비싼 거다. 아니, 비싼 게 문제가 아니라 일반 유저들은 구할 수 없다는 게 맞는 표현이지.”
핏불킹이 테이블에서 붉은 포도주 한 병을 가져와서 잔에다 따라서 돌렸다.
“붉은 포도주면 복분자 아닌가?”
“복분자 같은 소리 하네. 그런 거면 뭐하러 붉은 포도주 붉은 포도주 하겠냐.”
“붉은 포도주가 지금 현재 제국에서 가장 비싼 술 아니에요?”
“맞을 거야.”
“붉은 포도주고 뭐고 다 좋은데. 언제 준비 끝나는 거야? 벌써 한 시간 다 되어가. 이러다 정보 새어나가면 큰일 나는 거 알잖아.”
“새어나갈 이유가 뭐 있냐. 지금 유저라고는 우리 길드밖에 없는데. 사제들은 지금 포말하우트 복구하느라 바쁘고.”
“이제 다 온 거 아냐?”
“다 왔어도 준비를 해야지. 군대라고 군대. 저쪽 봐 인원 체크하고 제대로 진형 챙기고 있잖아. 이 정도로 많은 사람이 움직이면 정비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고.”
“저것만 끝나면 가도 되겠네?”
“아마 그럴걸?”
“물어봐. 언제 가는지. 저쪽 지금 술 많이 먹었어.”
“내가 가서 물어볼게. 야! 그리고 준비 다 되었어도 아직 못 가.”
“왜?”
“수행기사들.”
“수행기사들이 왜.”
“장비도 없어 저렇게 보낼 거야?”
“아. 장비 구했어?”
“구했지. 지금 가져오고 있을 거다.”
“어느 정도야?”
“A랭크가 써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초고가 풀셋으로 맞췄다.”
“유저는 NPC와 달라. 템을 다르게 봐야 돼.”
“그래. 그래서 심플한 옵션 달린 물건들로 준비했어. 스탯이 어마어마해서 무게 같은 거 크게 구애 받지 않는다며?”
“그렇긴 하지.”
“일단 물어보고 올 게.”
핏불킹은 가로겔 오피아에게 다가가서 상황을 설명했다.
“저 형 가서 술 먹고 오는 건 아닌가 모르겠네.”
“그래도 좋지 않아요? 덕분에 병력 왕창 끌고 갈 수 있게 되었으니.”
“너무 긴장감이 없어보여서 그래.”
“근데 이번 공격도 성공하면 공헌도 오르는 거 맞죠?”
용재가 물었다.
“교단의 신자로 세팅되어 있잖아. 교단 탈퇴 했어?”
“아뇨.”
“그러면 공헌도 시스템은 계속 간다는 거 같던데. 지금 이런 이벤트를 만든 것도 PVP 활성화 하려는 목적도 있을테니까.”
“하긴 그동안 유저들이 굳이 PVP를 할 이유가 없었어요. 투기장에 들어가서 노는 게 더 이득이었으니.”
“지금은 달라졌지. 공헌도 시스템이 있으니까.”
카시마르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사이에 술 몇잔 얻어 먹은 핏불킹이 다가왔다.
“언제 간데?”
“좀만 더 기다려달래.”
“아직 올 병력이 더 남은 거야?”
“어. 아직 주력 기사단이 덜 도착했데. 마법사 부대랑. 그리고 공성병기 조립할 시간을 좀 달라는데?”
“뭐?”
“신전 부수러 가는 거잖아. 그래서 칼덴에서 공성병기를 가져왔다네. 마법사들이 운영하는 병기인데 그리 크지 않은데 효과는 죽여준데.”
“아니 신전 안으로 들어가서 털고 나오는 각인데 공성병기가 왜 필요해?”
“안에 가서 못 털고 나올 때를 대비해서 공성병기를 준비하는 거지.”
“치고 빠지기 작전 아니었어?”
“저쪽 애들은 이참에 검은 교단의 씨를 말리려는 거 같던데? 참. 그리고 몇 개 가문이 더 참여한단다.”
스케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었다.
***
길드원들이 가져온 수행기사 전용 아이템은 훌륭했다. 랭커들이 들고 다니는 수준의 어마어마한 가치의 장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시중에 팔면 큰 돈을 만질 수 있을 만큼의 비싼 것들이었다.
“너무 많은데. 이거 진짜 괜찮은 건가?”
같이 갈 사람 많아진다고 좋아했던 핏불킹도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몇 천명 정도의 규모가 순식간에 만 명 단위로 넘어갔다. 공성 병기를 다루는 부대도 다섯 개나 모였을 정도로 대규모 병력이었다. 성전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어마어마한 병력이었다.
이 정도 규모의 병력이 적진 한가운데 갑자기 뚝 떨어진다면 그만큼 끔찍한 일이 또 있을까. 롯다오가 건넨 건 작은 눈덩이었다. 그런데 그 눈덩이가 지금은 커다란 눈사태로 유발하려고 하고 있었다.
“알아서 살던가 하겠지. 난 아무튼 기회봐서 위험해지면 바로 튈 거야. 그리들 알아.”
“걱정마라 우리 길드원들은 네 옆에 딱 붙어서 움직일테니까. 저 친구들은 알아서 잘 할 거야. 저리 준비를 했는데 뭐라도 해주겠지.”
[검은 교단 원정대의 총대장이 되셨습니다. 검은 교단 신전 파괴에 성공하면 추가 보상을 얻게 됩니다.]
“자아. 이제 다들 여기 보세요. 총대장님이 한 말씀 하신 답니다.”
핏불킹의 말에 사람들이 다들 카시마르를 바라봤다. 카시마르는 제단 위에 서서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롯다오에게 받은 섬광탄을 꺼냈다.
“야. 한 마디 해.”
“그래요! 한 마디 해주십시오. 영웅 기사 카시마르님!”
바로 앞에 서 있던 가로겔이 말했다.
“영웅 기사?”
“이번 성전에서 네가 어마어마한 공을 세웠잖냐. 그래서 사람들이 널 영웅 기사라 부른단다. 한 마디 해.”
“하아.”
“아무 말이라도 해.”
“알았어. 뭐. 다들 왜 모였는지는 알고 계시겠죠?”
카시마르가 크게 말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집중하기 시작했다. 음성을 확대하는 마법을 통해 카시마르의 말이 크게 퍼져나갔다. 포말하우트 1층 공터에는 어마어마한 사람이 모여서 카시마르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복잡한 이야기 할 거 없고. 루콘 성 인근 지역이 지금 검은 교단의 영역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곳으로 가서 싸울 겁니다. 적진이니까 싸움이 쉽진 않겠죠. 다들 무운을 빕니다.”
담담한 이야기였지만 사기에 불을 지피기에는 충분했다. 말이 끝나자마 큰 환호가 터져 나왔다.
휘잉!
카시마르가 섬광탄을 허공에 던졌다.
파앙!
시야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빛이 쏟아졌고. 빛을 받은 모든 사람들이 어디론가로 이동했다.
***
“뭐해? 소풍 왔어?”
사람들은 신전 근처에 도착했음에도 빛에 취해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카시마르의 목소리가 깨웠다.
휘잉!
카시마르는 바람을 이용해서 신전의 보초들과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혔다.
펑!
가볍게 잽을 휘둘렀을 뿐인데 보초가 대포에라도 맞은 듯이 날아가버렸다. 힘이 강해졌다. 그것도 어마어마할 정도로.
콰아아앙!
카시마르가 입구를 정리하고 안쪽으로 들어가려는 타이밍에 굉음이 들렸다.
합류한 기사들의 공성 무기가 포격을 시작한 것이었다.
“이거 들어가도 되는 거야?”
핏불킹이 물었다.
“이 정도로 큰 신전 부수려면 하루 종일 때려야 돼.”
“어그로 끄는 거라고 생각하면 되겠네.”
“이게 대체 뭐야!”
검은 교단의 소속의 유저들이 소리치면서 카시마르 일행을 둘러쌌다. 모두 서른 명 정도 되는 인원이었는데, 그들은 별다른 말을 하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얼른 가서 일 봐요! 총대장님!”
그들을 공격한 사람은 바로 가로겔이었다. 가로겔은 여전히 치렁치렁한 복장이었다. 그러나 그의 손에 들린 검은 그가 뛰어난 실력자라는 걸 증명이라도 해주듯이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
“세네.”
“불꽃 기사야 원래 세지.”
“가자.”
“근데 어디로 가야 돼?”
“몰라. 여기 길 거지 같잖아.”
“또 술래잡기 하겠구만. 모르겠다! 다들 가즈아!”
핏불킹이 소리쳤다. 그러자 길드원들이 카시마르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
플러스는 5미터 가까이 되는 거대한 몸집의 괴수였다. 그는 슈브 니구라스에게 직접 하사 받은 도끼를 사용해서 싸웠다. 염소의 얼굴이었지만 황소처럼 위협적인 뿔이 달려 있어서 염소라기 보다는 미노타우르스와 흡사한 생김새였다.
그는 지금 신전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의식을 진행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을 갈기갈기 찢어서 내장을 꺼내 바치고 그 나머지 음식을 본인이 먹는 것으로 끝나는 의식.
“이게 뭐시여?”
그는 인간의 피로 목욕을 한 상태에서 내장을 하나하나 제단에 올린 다음 불태우고 있었다.
플러스가 진행하는 의식은 램파드와는 달랐다. 램파드는 많은 인원을 모아놓고 의식을 진행했는데, 플러스는 중요한 인물 몇 명만 데려다놓고 경건하게 의식을 치르는 스타일이었다. 무고한 사람을 죽여서 제물로 바치는 게 경건하다는 표현에 맞을지는 의문이었지만.
“왜 그러세요?”
“이게 뭔 소리냐고.”
“훈련이라도 하는 거 아닐까요?”
“훈련 같은 소리하네. 네 귀에는 이게 훈련하는 소리로 들리냐. 귓구멍 내가 파줘? 확씨.”
“알아보고 올게요.”
플러스는 동생인 마이너스를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마이너스는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서 얼른 밖으로 움직였다.
쾅!
마이너스가 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 문이 박살나면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왔다. 제일 선두에는 카시마르가 있었다.
“여긴가?”
“공간을 보니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이게 뭐야. 무슨 의식 같은 거 치르는 거 같은데?”
[다크 영을 발견하였습니다. 다크 영을 처치하게 되면 막대한 공헌도를 얻게 됩니다.]
“제대로 찾은 거 같아.”
“그래. 다크 영이네.”
플러스는 램파드처럼 가벼운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불청객을 보자마자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차렸다.
“램파드라는 놈이 진짜 호구였나보군. 두 번이나 침입자가 오다니 말이야. 어떻게 들어온 거지?”
“그건 알 거 없고. 네가 다크 영이지?”
핏불킹이 앞으로 나서서 물었다. 골낳괴가 플러스의 작은 버전인 마이너스를 붙들고 따라 움직였다.
“그래. 내가 이곳의 새로운 다크 영이다. 너. 계시에서 본 녀석이군. 불꽃의 기수 카시마르라고 했던가.”
플러스가 일어서면서 도끼로 카시마르를 지목하면서 말했다. 그러자 카시마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불꽃의 기수.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 꼭 한번 붙어보고 싶었던 상대였다. 명예로운 자크르를 하자. 불꽃의 기수여.”
플러스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카시마르는 팔짱을 끼고 몇 초 동안 플러스를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싫은데?”
“뭐?”
“싫다고. 왜 내가 너랑 자크르를 하냐?”
“불꽃의 기수가 자크르를 거부하는 것인가? 겁을 먹은 거냐!”
플러스가 으르렁거렸다.
“그럼 네가 이긴 걸로 하세요.”
“······.”
“머리가 염소라서 그런지 지능도 비슷한가 봐. 되게 멍청하다. 그치?”
“그런 듯.”
추가로 공헌도를 주는 것도 아닌데 굳이 자크르를 할 필요가 없었다.
콰콰콰캉!
의식의 장소가 순식간에 전투의 장소로 바뀌었다. 다크 영인 플러스는 예상대로 무척 강했다. 무척 강해도 그는 단신이었다. 신전의 기운까지 흡수한 상태라면 모를까. 지금 그는 꿀매너 길드의 협동 공격을 막아낼 수가 없었다.
“크아아악!”
몇 분 지나지 않아서 플러스의 고통의 찬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원정대가 검은 신전 주변에 나타난 것은 바로 운영진에게 보고되었다.
“으아아아아아!”
보고를 받은 황이사가 뒷목을 잡고 소리를 질렀다. 운영진의 머릿속에 떠오른 공통된 생각은 하나였다.
‘잣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