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주캐로 멱살 캐리-103화 (103/205)

# 103

와해

핏불킹의 계략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그러나 핏불킹도 예상하지 못한 요소가 있었다. 그건 바로 플러스가 건물을 부수는 속도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다는 점이었다.

플러스의 몸에 닿는 구조물들은 스티로폼으로 만들어지기라도 한 듯 너무나 손쉽게 부서져 내렸다. 덕분에 꿀매너 길드는 기둥을 찾아서 파괴할 필요도 없었다.

흥분한 플러스는 꿀매너 길드를 따라서 아래층으로 내려왔고, 알아서 아래층의 주요 기둥들을 파괴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견고하고 높게 쌓인 건물이라도 기반이 무너지면 와르르 무너진다.

꿀매너 길드는 마구잡이로 플러스를 데리고 파괴하려고 했지만, 그런 생각도 몇 분 지나지 않아서 견고한 계획으로 바뀌었다. 카시마르의 수행기사 중 하나인 드아이가 예상치 못하게 능력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드아이는 처음 본 신전의 구조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가보지 못한 길은 당연히 알지 못했지만, 한 번 지나온 길은 완벽하게 기억을 하고 있었고 그 기억을 토대로 신전의 전체 구조까지 유추해내는 비상한 힘까지 보여주었다.

“그러니까 이쪽으로 가는 게 처음 들어왔던 곳으로 가는 길이라 이거죠?”

핏불킹이 수행기사인 드아이에게 물었다. 그러자 드아이가 건조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사인을 받은 핏불킹이 카시마르를 따로 불렀다.

“저거 믿어도 되는 거냐?”

“모르겠어. 근데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으니까.”

“대단한 능력인데.”

“직접 싸우는 것보다 지휘하는 것에 재능이 있다고 들었어. 어쩌면 그 능력의 기반이 공간지각 능력일 수 있지.”

“그럼 한 번 믿어보자.”

꿀매너 길드는 드아이의 능력을 이용하여 신전 자체를 무너트리리고 했다. 플러스는 생각보다 건물을 잘 철거했고, 드아이의 날카로움도 빛났다.

덕분에 꿀매너 길드는 아주 깔끔하게 신전을 부수고 들어왔던 곳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근데 저놈도 대단하다. 진짜 제대로 맞붙었으면 우리 다 누웠을 거야. 공격이 꽤 들어갔는데 꿈쩍도 안 해.”

“어쨌든 신의 아들이라는 설정이잖아. 똥개도 자기 집에서는 반은 먹고 들어가는 데 신전 안이니 더 세겠지.”

밖은 치열한 전투가 한창이었다. 불꽃 기사들은 선두에 서서 병사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다들 피합시다!”

핏불킹이 소리쳤고 꿀매너 길드들이 신전 입구에서 벗어나 루콘 성쪽으로 움직였다. 그 이후에 신전이 와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신전이 무너지면서 그 충격파로 전투가 일시 중단되었다.

위이잉!

무너진 신전에서 검은 안개가 피어오르더니 주변을 덮쳤다. 그 기이한 검은 안개는 30초 정도 지속 되었다. 30초 정도 후에 신전이 있던 자리는 폐허도 남아 있지 않았다.

검은 신전의 흔적은 완벽하게 사라졌다.

마치 모든 게 허상이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

“으아아아아아아아악!”

구소형은 발작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바로 위의 연줄이라고 할 수 있는 황이사가 졸도를 했다. 졸도 다음에 어떤 연쇄 반응이 나올지 훤히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사무실로 내려온 구소형은 책상위의 집기를 쓸어 무너트리면서 심기를 표출했다.

늘 시니컬한 모습을 보이던 유동섭도 지금만큼은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해결되었다고 한 일이 더 큰 파도가 되어 돌아왔다.

“저··· 저기 팀장님.”

“이 개··· 아니지.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유대리? 엉?”

구소형이 독기 가득한 눈빛으로 유동섭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

“무적이라며?”

“무적은 맞았습니다. 그 설정 그대로였고 다크 영은 전투 도중에 데미지를 거의 입지 않았습니다.”

“근데 신전이 왜 무너져? 어디 TNT라도 깔아놨다던? 아니면 뿌리라도 찾아서 무너트린 거야? 그 뿌리는 절대 찾을 수 없는 거라며. 최상층에 있어서 전에 습격 왔을 때도 걱정 말라던게 누구였지?”

“뿌리를 건드린 건 아니었습니다. 다만······.”

“다만 뭐? 다만 뭐어!”

“다크 영이 건물을 다 부셨습니다.”

“뭐?”

“다크 영이 꿀매너 길드와 싸우면서 주변 건물을 다 부셨어요. 꿀매너 길드가 한 건 다크 영과 싸우면서 이리저리 도망 다닌 거 밖에 없습니다. 다크 영이 아래층 기둥을 죄다 부셔서 신전이 무너져 내려버렸습니다.”

“······.”

“······.”

“대체 다크 영 지능을 얼마로 설정한 거야? 아니 무식해도 그리 무식할 수가 있나! 으아아아아아아! 진짜 못 해먹겠다! 못 해먹겠어!”

구소형의 목소리는 사무실 밖까지 새어나왔고 팀원들은 쥐 죽은 듯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신전이 무너져 내린 이상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

“갑자기 사라지네.”

신전은 사라졌지만 전투는 계속되고 있었다. 꿀매너 길드 사람들은 신전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전투에 휘말리지 않고 있었다. 불꽃 기사들의 포진은 신전을 감싼 형태였기 때문에, 꿀매너 길드원들에게 공격이 들어오려면 그들을 뚫고 나와야 했다.

아직 검은 교단의 병력들은 죄다 결집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의 공격은 가문들이 끌고 온 병력으로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다.

병력의 숫자에서도 불꽃 가문 쪽이 우위에 있었지만 그보다 지휘관의 유무가 컸다.

불꽃 가문 쪽은 정비도 제대로 했고 각자의 역할 대로 움직이면서 제대로 전쟁을 하고 있었다. 특히 불꽃 기사 출신의 젊은 가주들이 선두에 서서 전투를 지휘하니 적진이어도 사기는 충만했다. 그런데다가 일만에 가까운 병력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니 검은 교단의 마구잡이식 공격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했다.

소모전을 해도 유리한 쪽은 불꽃 가문인 상황.

그렇기에 검은 교단 쪽 피해는 점점 커져만 가는 상황이었다.

“이제 귀환하면 되는 거 아냐?”

카시마르가 말했다.

“그래야지. 근데 다크 영 직접 못 잡은 게 아쉽네. 그놈 직접 잡으면 공헌도 어마어마하다던데.”

“그리 많이 주려나?”

“많이 주겠지. 열두 제자들도 어마어마하게 주지 않았냐? 다크 영은 못해도 그거 몇 배는 줄 거야.”

“뭐. 신전 날렸으니 어쩔 수 없지.”

핏불킹과 카시마르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신전이 있던 자리에서 검은 안개가 피어올랐다. 아주 작은 안개였는데 그 안개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꿀매너 길드의 사람들은 이미 불꽃 기사들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섬광탄 뿌린다?”

“그래.”

카시마르가 섬광탄을 꺼내려고 할 때 메시지가 떠올랐다.

[검은 교단의 신전이 파괴되었습니다. 이제부터 검은 교단의 세력들은 성지 주변에 있어도 혜택을 받을 수 없습니다. 다른 교단의 세력들이 성지를 점거하게 되면 검은 교단의 세력은 완전히 와해 되게 됩니다.]

[검은 교단의 세력을 완전히 와해시키세요. 막대한 공헌도 보상이 있습니다.]

“퀘스트 떴어요.”

“그러네. 어쩌지?”

“지금 상황은 어때?”

“불꽃 기사들이 엄청 잘 싸운다.”

“그럼 버텨볼까? 지금 여기서 버티기만 해도 되는 거 아냐?”

“이제 검은 교단 애들 엄청 넘어올 텐데. 감당 되겠냐?”

“불꽃 기사들이 잘 버티고 있다며.”

핏불킹은 꿀매너 길드에서 브레인과 다름 없었다. 그는 코치 시절에도 전략을 잘 세우기로 유명했고, 그런 능력은 코즈믹 게이트 내에서도 십분 발휘되고 있었다.

“어쩌지?”

“형. 어차피 검은 교단이 받는 버프도 없는 상황에다가 우리 병력도 많아요. 여차하면 튈 수도 있고요. 일단 해보는 게 어때요?”

아르케의 말에 핏불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가는 게 좋겠다. 그러면 길드원들한테 전달하자. 잠깐만······.”

“왜?”

“검은 교단의 힘이 사라졌다며.”

“그렇지.”

“그러면 이제 귓말 되는 거 아닌가?”

“응?”

“잠깐만.”

핏불킹은 얼른 길드원들에게 단체 귓속말을 넣었다. 핏불킹의 귓속말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전처럼 귓속말을 할 수 없는 지역이라는 메시지는 뜨지 않았다.

“그러네. 신전이 안테나 같은 거였네.”

“전에는 신전 없을 때도 귓속말 안 되었는데.”

“그때는 검은 교단의 힘이 강했을 때고 지금은 신전 무너지면서 나가리 되었잖냐. 아무튼 이제 끝났네. 편하게들 싸우자.”

“그래요? 왜 끝난 건데요?”

골낳괴가 물었다. 그러자 핏불킹 대신에 카시마르가 대답했다.

“귓속말 되면 불꽃 교단 유저에게 연락 넣어서 총공격 지시할 수 있으니까. 이미 와해되어가는 세력이니 조금만 힘 넣어도 바로 끝낼 수 있지.”

“아.”

“바로 그거지. 우리는 이제 정말로 버티기만 해도 이긴다는 말씀. 자. 뭐하고 있어? 다들 아는 사람들한테 귓말 넣어. 정보를 퍼트리라고. 그리고 용재야.”

“네. 형.”

“북제국 쪽에 아는 애들 있다고 했지? 혼돈 교단 쪽 애들.”

“그렇죠. 아. 그쪽에다도 넣으면 진짜 확실히 끝낼 수 있겠네요.”

“북제국 쪽 다크 영 여기와서 죽었다고 전해. 지금 들어가면 빈집 털이나 마찬가지라고.”

“네!”

핏불킹은 귓속말을 하나 더 넣었다.

[길드원들은 이제 앞으로 나서서 전방의 가주들과 교대 좀 해주세요. 꽤 오래 싸워서 쉴 쉬간이 필요할 겁니다. 서포터들은 부상자 케어에 힘 써주시고요. 클래스 별로 알아서 가봅시다. 이번 퀘스트 공헌도 대박이라고 하니까 로또 한 번 더 맞아봅시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공헌도 쓰지 않고 있는 건데 말이야. 공헌도 높아질 수록 템 어마어마한 거 많았는데.”

“그러게요. 그래도 뭐 좋죠. 신전 부순 것 만으로도 공헌도 어마어마하게 높이 나올 거 같아요.”

“자. 우리도 다들 갑시다.”

핏불킹의 지시에 꿀매너 길드 사람들이 앞으로 나섰다. 그들은 꿀매너 길드원들은 100명 정도 밖에 안 되었지만 하나하나하 B랭크 이상의 고렙들이었고, 희귀한 기술을 지닌자 들도 많이 있었다. 전투 능력으로만 따지면 불꽃 기사들보다 아래였지만, 대규모 전투에서는 그들보다 유용하게 쓰일 수가 있었다. 무엇보다 숫자가 많아서 그들이 앞으로 나가서 NPC들을 케어 해준다면 훨씬 오래 버틸 수 있었다.

“넌 안 가냐?”

“저거 봐.”

카시마르가 신전이 있던 쪽을 가리켰다.

“뭐냐 저게.”

“다크 영.”

“저 새끼 살아 있었어?”

“그런 거 같아.”

“어쩐지 시바 퀘스트가 존나 쉽다고 생각했다. 어쩌지? 그냥 튀어야 하는 거 아냐?”

“신전 없어졌다고 엄청 강해지지는 않았을 거 아냐.”

“그래도 저놈 파괴력 못 봤냐? 저놈이 뒤쪽에서 돌진 한 번 쓴다고 생각해 봐. 여기 있는 NPC들 다 죽는 거야. 그냥 불도저가 한 번 싹쓸이 하는 거랑 뭐 다르냐.”

“형은 뒤쪽에서 버프나 제대로 넣어줘. 저쪽은 내가 시간 끌어볼 게. 죽이진 못해도 시간을 끌 수 있을 거 같아.”

“혼자서? 저놈이 아무리 무식해도 너 혼자서는 무리다. 아마 네가 제대로 안 싸우고 깔짝 대기만 하면 이쪽으로 넘어올 걸? 이쪽이 훨씬 맛있는 먹이감인데.”

“수행 기사들이 있으니까. 괜찮아. 그리고 어그로 끌어줄 사람이 하나 더 있거든.”

“누구?”

카시마르는 웃으면서 강숭이를 불렀다.

“강숭아.”

“네. 선생님.”

“네가 미끼가 좀 되어줘야겠다.”

“네?”

“저기 보이지? 저놈 덩치만 컸지 동작도 느리고 별 거 아니더라.”

“서···선생님.”

“왜? 싫어?”

“선생님. 저 저놈한테 한 번 걸리면 그대로 죽습니다요. 한 번 밣히기만 해도 뼈가 아작 날겁니다요.”

“안 죽어 인마.”

“선생님. 살려주십시오.”

“안 간다 이거지?”

“선생니임!”

강숭이가 카시마르의 다리를 붙잡고 늘어졌다. 그러자 카시마르가 꼬리를 불렀다. 꼬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카시마르를 향해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냈다.

“물어.”

물어라는 이야기가 들리자마자 쏜 살처럼 강숭이에게 달려드는 꼬리. 그러자 강숭이가 재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이씨!”

“뭐? 아이씨?”

“선생님 너무하십니다요!”

“꼬리야. 저놈 꼬리가 너무 길다. 꼬리 씹어 먹어버려라!”

“카앙!”

꼬리가 카시마르의 명령에 금속음이 섞인 귀여운 목소리로 답했다.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냐?”

“버티다 안 되면 도망칠 게.”

“조심해라.”

“형은 빨리 지휘관 모드나 발동하도록 해.”

“알았어.”

핏불킹은 지략가 클래스였다. 다른 직업에 비해 페널티가 무척 많은 직업이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웬만한 서포터들이 뭉텅이로 있는 것보다 많은 힘을 발휘하는 직업이었다.

특히 지휘관 모드를 발동하면 핏불킹은 3인칭 관점에서 전장을 바라볼 수 있었고, 그 상태에서 다양한 지시와 버프를 내려서 전장을 컨트롤 할 수 있었다.

유저들에게는 강력한 귓속말로 지시를 내릴 수 있었다. 다만 유저들에게 내리는 지시는 강제성은 없었다. 그러나 협력 상태의 NPC들에게는 강제성이 있는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핏불킹이 주는 버프가 사기스러울 정도로 강력한 건 아니었지만, 수많은 NPC들을 3인칭 관점에서 컨트롤 할 수 있다는 건 아주 큰 부분이었다.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어택 땅으로 싸우는 것과 마이크로 컨트롤을 하는 것이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것처럼, 핏불킹은 지휘관 모드를 발동해서 NPC들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