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
한 방
[카시마르님! 비 쏟아집니다. 뒤로 물러나세요!]
[예.]
카시마르는 전장에 합류하려다가 말고 뒤로 물러났다. 막 전투를 시작하려고 했는데 귓속말이 들렸기 때문이었다. 귓속말을 보낸 사람은 꿀매너 길드의 궁수인 비즈니였다. 그는 꿀매너 길드에서 가장 레벨이 높은 유저 중 하나였다.
그의 직업은 궁수의 희귀 직업인 ‘겨누지 않는 사냥꾼’.
겨누지 않는 사냥꾼은 멀티 샷에 특화된 직업이었다. 그가 화살을 날리면 화살이 늘어나서 쏟아진다. 시위를 당긴 상태에서 오래 있으면 오래 있을 수록 위력도 강해지고 화살의 개수도 늘어나는 상황.
비즈니는 다수와 싸울 때 특히 힘을 발휘하는 스타일이었다. 비즈니는 공헌도를 주력 무기인 활에 모두 투자했다. 활을 강화시킨 것이었다. 비즈니의 활은 전보다 위력이 훨씬 강해진 상태였다. 위력 뿐만이 아니었다. 전에는 아무리 오래 시위를 당기고 있어도 백 단위의 화살만 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천 단위의 화살을 날릴 수 있었다.
비즈니가 말한 비가 쏟아진 다는 말은 바로 화살 비가 내린다는 의미.
“뒤로 물러나요.”
카시마르가 짤막하게 말하자 수행기사들이 바로 뒤로 물러났다. 몇 초 뒤에 아슬아슬하게 적진 쪽부터 화살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치 비가 오는 것처럼.
비즈니의 화살은 보통 화살보다 훨씬 위력이 있었다. 대부분의 화살은 두꺼운 갑옷은 뚫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공헌도를 통해 업그레드된 비즈니의 화살은 철시였다. 무게감 있게 적들을 농락했다.
[피했냐?]
핏불킹에게 바로 귓속말이 도착했다.
[어. 근데 아군 쪽이 꽤 휩쓸릴 거 같았는데 안 휩쓸리네. 아슬아슬하게 적만 공격했어.]
[그게 이 형의 힘이지. 위치를 정확하게 알려주잖냐. 아무튼 그쪽 밀리면 큰일이니까. 잘 좀 막아봐.]
[알았어. 근데 계획이 있는 거야? 이쪽이 밀리면 중앙쪽이 다 끊어지는 거 아냐?]
[오. 그게 보이냐?]
[그 정도 눈은 있어 나도.]
[네 반대편 쪽이 가로겔 있는 곳인데 가로겔 쪽 애들이 쭉쭉 치고나가길 잘 하네. 그쪽으로 힘 좀 넣어서 네가 있는 쪽을 싸먹을 예정이다.]
[그러다가 진형 붕괴 되면? 상대는 계속 밀려들텐데?]
[그쯤 되면 지원병력 와.]
[그래? 그렇게 빨리 와? 가문들이 밀고 들어오는 건가?]
[아니지. 가문들은 반반이야. 대부분 교단에 적을 두고 있지만 교단의 일에는 관심이 없는 자들도 있다고. 거기다 검은 교단이 치고 올라올 때 박쥐처럼 검은 교단 쪽에 가입한 가문도 있어.]
[가문들이라고 다 믿음이 충만한 건 아니구나.]
[그렇지.]
[그러면 유저들이 넘어오는 건가?]
[귓속말도 되잖냐. 이 지역을 감싸던 기운이 사라졌으니 빨리 오지. 정비만 끝나면 다들 엄청나게 몰려들 거다. 그때까지만 지키면 돼. 이번에는 성전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도 불꽃 쪽으로 붙어서 올 거니까.]
[그래?]
[이야기를 좀 풀었지. 공헌도 올릴 수 있는 막바지 기회라고.]
[이동 마법 같은 걸로 밀려들겠군.]
[아무튼 빨리 싸우기나 해. 비 내린 거 효과 다 날아가겠다.]
카시마르는 수행 기사들에게 따로 자리를 잡고 싸우라고 명령했다.
“저희는 주인을 호위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위험해지면 알아서 빠질 테니 다른 곳에서 싸우세요. 가장 중요한 건 위험해지면 알아서 물러나라는 겁니다. 필사적으로 싸울 필요 없어요. 이 싸움은 버티는 싸움이지 전멸전이 아니니까.”
카시마르가 수행기사를 물린 이유는 마음 껏 날뛰기 위해서였다. 플러스와의 싸움에서 정신력을 꽤 많이 소모했지만 아직 쓸만큼은 남은 정신력이었다. 그리고 정신력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채워지기 때문에 카시마르는 크게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달로스의 선물 덕분에 어마어마한 힘을 손에 넣은 카시마르였다. 다크 영 정도 되는 인물이면 모를까. 보통 유저들은 그를 상대하기 무척 어려울 거였다.
퍼엉!
카시마르의 발차기 한 번에 수십 명이 뒤로 밀려나갔다. 어마어마한 단순한 동작이지만 큰 힘이 동반된다면 그만큼 무서운 것도 없었다. 특히 지금처럼 다수와 싸울 때는 더더욱 그러했다.
카시마르는 대형 몬스터보다 강력한 힘을 지닌 데다가 빠르고 빈틈도 없었다.
군더더기 없는 동작.
유저들이 카시마르를 저지하기 위해서 집중 공격을 했지만, 그것도 크게 소용이 없었다. 카시마르를 잡기 위해서는 디버트 공격이 필요한 데, 웬만한 디버프는 후방에 있는 꿀매너 길드원들이 다 커버를 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순식간에 꽤 많이 치고 나온 K길드원들을 밀어버린 카시마르. 카시마르의 등장에 후방에 있던 정회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번쩍!
레이저 같은 빛이 한 바퀴 휩쓸고 지나갔다. 그 한 방에 백 명 가까이 되는 불꽃 교단 쪽 인물들이 죽었다. 카시마르는 동물적인 반응으로 그 빛을 피했다. 앞구르기로 빛을 피하고 자세를 잡으려는데 컨신이 등장했다.
컨신은 카시마르가 몸을 일으키는 타이밍에 맞춰서 검을 휘둘렀다. 카시마르는 반사적으로 위빙을 하려했는데, 컨신이 그 타이밍에 스킬을 썼다.
페이크.
카시마르를 잡으려면 이 정도 페이크는 써야 된다는 걸 학습한 것이었다.
컨신의 전매특허인 뒤를 잡는 기술은 매우 유용했다. 보통 유저 같으면 백이면 백 당하는 기술이었다. 그런 컨신의 기술이 카시마르에게는 통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런 수법이라면 카시마르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컨신은 카시마르의 질긴 생명력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즉사 판정이 뜰 수도 있는 곳을 공략했다.
뒷목.
심장은 갑옷에 걸려서 관통이 되지 않을 수 있었지만, 뒷목은 투구와 갑옷 사이에 틈이 있어서 즉사 판정이 날 수도 있었다. 카시마르의 뒤에 나타난 컨신이 재빨리 뒷목에다가 검을 찔러넣었다. 검은 교단의 공헌도로 복구한 이 검은 이전의 검보다 훨씬 성능이 좋았다.
컨신은 다른 아이템은 신경 쓰지 않고 오직 검의 성능에만 모든 걸 쏟아부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아이템들은 그동안 벌어둔 사비로 충당했다. 당연히 어마어마한 돈이 들었다. 그러나 상관 없었다. 덕분에 컨신의 검의 공격력은 전보다 두 배 이상 강해졌기 때문이었다.
급소에 공격이 들어가기만 한다면 아무리 상대가 생명력이 높다고 해도 끝낼 자신이 있는 컨신이었다.
“뭐야?”
호기롭게 검을 찔러넣었던 컨신의 표정이 굳었다. 카시마르의 뒷목을 관통해야 할 칼이 더 이상 들어가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벽이라도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주 잠깐의 시간.
컨신은 1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검을 찔러넣었다가 얼른 뒤로 물러났다.
“되네?”
카시마르는 천천히 뒤돌아서 컨신을 바라봤다. 컨신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카시마르를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카시마르는 바람의 힘을 일으켜서 컨신의 검을 밀어낸 것이었다. 야네크는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카시마르는 바람을 세차게 내보내서 컨신의 검을 밀어버리는 방법을 택했다. 이런 식이면 후방에서 들어오는 공격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막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
신전이 무너져 내렸다는 소식은 빠르게 유저들에게 퍼져나갔다. 그중에서 가장 먼저 대박의 냄새를 맡은 자들은 커뮤니티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를 담당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정찰 스킬에 특화된 자들이어서 아주 멀리서도 생생하게 현장을 볼 수 있었다.
- 2차 성전 시작된 듯.
- ㄷㄷㄷ 이번에도 그레이트 올드 원이 뜨는 것인가?
-- 그건 아닌가 본데?
--- 그레이트 올드 원은 쉽게 뜨는 인물이 아님.
- 불꽃 교단 쪽은 가문이 대거 들어갔네.
- 신전 무너졌으면 이미 게임 끝난 거 아닌가?
- 오피셜 뜸. 불꽃 교단 세력이 검은 교단 구역에서 버티면 검은 교단 세력 아예 와해 되는가 봄.
-- 어. 그러면 검은 교단 쪽에서 빨리 해결을 봐야 하네?
--- 근데 그게 쉽지 않지.
---- 맞음. 이번에도 그분께서 계심.
----- 갓트메어?
------ ㄷㄷㄷㄷ 검은 교단 메인 세력 중 하나가 K길드인데. 이번에도 K길드는······.
------- K길드 누군가가 그분의 심기를 건드린 게 틀림없어.
-------- 컨신이 그랬지.
--------- 루머 만든다.
---------- 루머 아닌데? 컨신이 토너먼트에서 긁는 인터뷰를 하지 않았나?
----------- 그게 루머임. 나이트메어는 평생 자기 긁는 선수들과 싸워온 사람임. 크게 신경도 안 쓸 걸?
------------ 크게 신경 쓰지는 않지만 겁나 두들겨 팸. 패턴이 그래. 상대 선수가 도발 -> 갓중악 묵묵히 들음 -> 경기 시작하면 탈탈 털어버림. 멘탈까지도.
-------------- ㅋㅋㅋㅋㅋㅋ 정확하닼!
- 오오. 갓중악이랑 K길드랑 붙는다!
-- 어머! 이건 봐야 돼!
--- 갓중악 한 표!
---- 나도. 악몽을 건드리면 그냥 X 되는 거에요. 아주 그냥 X 되는 겁니다.
- 근데 검은 교단이 완전히 와해 되면 검은 교단 신도였던 유저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
-- 잣 되는 거지.
--- 그거 보는 것도 꿀잼이닼
- 난 간다. 뒤늦게라도 꿀 빨아야징!
***
“크윽.”
컨신은 낮게 신음하고 있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가슴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카시마르는 컨신의 검날을 왼손으로 붙잡아 쥐고 오른손은 내밀고 있었다.
카시마르의 오른손은 컨신의 가슴팍을 관통한 상태였다.
컨신과 카시마르는 컨트롤 싸움의 대가들 답게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특히 자크르 상황이 아니어서 둘의 싸움은 더욱 변수가 많다고 할 수 있었다.
K길드의 유저들이 컨신을 지원했고, 카시마르는 꿀매너 길드원의 지원을 받았다.
지원을 많이 받는 쪽은 컨신이었다. 덕분에 컨신은 카시마르를 꽤 많이 괴롭힐 수 있었다. 컨신이 한 방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자잘한 데미지를 누적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 싸웠기 때문이었다. 그런 컨신의 방식에 카시마르가 꽤 고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싸움은 처음부터 결과가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너무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한 방.
컨신이 다양한 방법으로 검을 휘두르고 스킬을 사용할 때, 카시마르는 묵묵히 피해를 최소화하고 패턴을 분석하고 예측했다. 그리고 컨신이 잽처럼 날린 찌르기를 왼손으로 잡은 다음 미끄러지듯이 파고 들어 스트레이트를 날렸다.
체중을 잔뜩 싣지 않은 잽 같은 스트레이트. 그러나 속도는 매우 빨랐다.
컨신은 스트레이트가 날아오는 것을 알아차리고 머리를 틀어서 피하려고 했다. 컨트롤의 달인인 컨신에게 단순한 스트레이트를 피하는 일은 쉬운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카시마르는 그렇게 단순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컨신의 주력 무기가 검이라는 것을 파악했다. 그래서 그가 쉽게 검을 놓는 일이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카시마르는 왼손으로 컨신의 검날을 쥐고 그대로 위로 들어올렸다. 검의 끝부분을 쥐고 사람 하나를 들어올리는 일.
절대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코즈믹 게이트에서는 가능했다.
지금 카시마르의 힘은 몇 미터가 넘어가는 거대한 몬스터보다 강한 상태였으니까.
아주 가볍게 컨신을 들어올린 카시마르.
덕분에 컨신의 헤드 무빙은 필요가 없게 되어버렸다. 카시마르의 주먹은 컨신의 심장 부근을 때렸다. 주먹은 마치 커다란 두부를 관통하듯이 스무스하게 컨신의 가슴을 뚫고 등으로 빠져나왔다.
가장 까다로운 상대인 컨신을 한 방에 보내 버린 카시마르.
카시마르는 가볍게 야네크를 이용해서 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파파팡!
마치 장풍처럼 카시마르의 양손에서 충격파가 발생 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