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
날붙이의 덕목
“펑크 라이온 소속이면······.”
“문제 있는 건가요?”
테스는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표정이었다. 만약 알고 있는데 그런 반응이었다면 테스는 연기자를 해도 될 정도로 연기를 잘하는 것이리라.
유중악과 오정룡은 서로 눈빛으로 눈치를 보았다. 그러다가 카시마르가 먼저 사실을 털어놨다. 테스는 은둔자 같은 느낌으로 정말로 바깥에서 있는 이벤트에 대한 사실은 모르는 상황이었다.
테스는 카시마르의 설명을 차분히 들었다.
“걱정 마세요. 그 친구 성격 좋아요. 그리고 희귀한 물건에 관심이 많은 친구에요. 아마 흔쾌히 된다고 할 걸요?”
“정말입니까?”
“예.”
“그러면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제가 바로 귓속말을 해볼게요.”
테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지인에게 귓속말을 넣었다. 잠시 뒤, 쾌활한 표정이던 테스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테스의 얼굴은 순식간에 귀까지 벌게졌다.
카시마르와 오정룡은 단번에 일이 틀어졌다는 걸 알아차렸다. 테스는 난감한 표정으로 카시마르를 바라봤다.
“이야기를 안 하셔도 될 거 같네요.”
“예······ 죄송합니다. 그 친구가 그렇게 흥분하는 모습은 처음보네요. 어쩌죠? 그 재료 상당히 아까운데. 제가 처음으로 6등급 재료를 봐서 놀랐나봐요.”
“6등급이요?”
“재료에도 등급이 있어요.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복잡하지만 등급은 나뉘어져 있죠. 물론, 등급이 높다고 다 좋은 무기가 나오는 건 아니에요. 재료 간에도 상성이 있으니까요. 또 어떤 의도로 만드느냐에 따라 달라지긴 하죠.”
“어쨌든 이 뿔이 꽤 좋은 재료라는 거죠?”
“네. 재료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세요?”
“글쎄요.”
“제일 기본이 되야하는 건 내구도에요. 어느 정도 내구도가 있어야 무기를 만들 수 있거든요. 그런데 그 뿔은 일단 내구도 부분에서 최고 수준이에요. 거기다가 능력을 부여하기도 용이하게 되어 있고요. 보통 내구도와 호환 능력은 둘 다 높게 나오지 않기 마련인데, 그건 둘 다 높아요. 좋은 재료죠. 그런데다가 6등급이니 기본 공격력 이런 것도 현존하는 무기 중에 제일 높게 나오겠죠. 아무튼 아쉽네요. 도움을 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카시마르는 테스의 이야기를 차분히 듣고는 밖으로 나왔다.
“그걸로 무기 만드는 건 물 건너 간 거 아냐?
핏불킹이 나오자마자 말했다.
“좀 더 알아봐야지. 들었잖아. 엄청 좋은 재료라고 하잖아.”
“아무리 좋은 재료라도 쓸 수가 없으면 무용지물이야. 아끼다 똥 되는 거다.”
“그 똥도 내 똥이니까 내가 알아서 치울 거야.”
“그냥 저놈한테 팔지 그러냐? 저 친구 눈빛 보니까 아주 초롱초롱 하던데.”
“뭘 팔아. 방법을 찾아봐야지. 이런 물건은 돈 주고도 못 사는 물건이야.”
“돈 주고 못 사는 물건은 없다. 늘 그렇지만 가격이 문제일 뿐이지.”
“살 수 있으려나?”
“뭘? 펑크 라이온 대장장이? 그쪽에서는 널 갈아 마시려고 할텐데 쉽겠냐?”
“어렵겠지?”
“그렇지.”
“헉 소리가 나올만큼 세게 액수를 불러버려.”
“그만한 돈은 없어.”
“너 돈 많잖아.”
“현질을 하라고?”
“현질 말고 전에 해적단 턴 돈 그대로 있지 않냐?”
“그건 위험한 돈이야. 아직 풀어서는 안 돼. 형 설마 벌써 푼 건 아니지?”
“아냐. 티 안나는 정도만 풀고 있어. 표시 되어 있는 금화는 풀지 않고. 야. 그거 생각보다 대단한 양이더라고. 금화에도 등급이 있는데, 그 금화는 등급이 높아서 작은 성 하나는 살 수 있는 양이었어.”
“그 정도인가?”
“많아. 그리고 시간이 지날 수록 더 가치가 오를 거라네. 그게 아주 예전에 찍은 기념 금화라 그런 거지. 그거 잃어버린 놈은 배 좀 엄청 아플 거다.”
“배 아픈 정도가 아니래. 돈에 대한 집착이 엄청나서 지금도 눈에 불을 켜고 찾으러 다닌다고 한다.”
“남부 쪽은 쳐다보면 안 돼. 그러고 보니 루콘도 남부랑 가깝지 않았냐?”
“엄청 가까운 건 아니고 근처이긴 하지.”
“이제 어쩔 거냐? 발품 팔 거야? 커뮤니티에 올리기엔 조금 그럴텐데.”
“왜? 그게 빠르지 않나?”
“검은 교단 놈들이 네가 올린 글을 보고 가만히 있겠냐? 방해하려고 난리 칠테지.”
“그놈들이 못 들어오는 곳에서 거래하면 되는 거 아닌가?”
카시마르와 핏불킹이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테스에게서 귓속말이 도착했다.
[카시마르님.]
[예. 테스님.]
[그 뿔을 혹시 제게 팔 수는 없을까요?]
[그러기는 힘들 것 같네요. 방법을 차분히 찾아봐야죠. 엄청 급한 게 아니니까요.]
[네. 그렇죠. 또 그런 재료는 가격 매기기도 보통 어려운 게 아닐 테니까요. 아무튼 좋은 장비 만드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건 혹시나 해서 여쭤보는 건데요. 그 뼈 1차 가공을 다른 곳에서 하게 되면 무기 만드는 건 저한테 맡겨주시겠어요? 제가 생각한 디자인이 있는데 잘 어울릴 것 같아서요. 옵션은 카시마르님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도록 하고요.]
[가공을 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어쨌든 찾아보기는 하겠습니다.]
[예. 연락주세요.]
“뭐래? 테스한테 연락 온 거지? 팔라고?”
“어.”
“야. 그거 생각해봤는데. 다크 영의 뿔이라는 게 어쨌든 슈브 니구라스와 연결된 매개체 같은 거 잖아.”
“그렇지.”
“그러면 그거 가지고 다크 영 부활 시킬 수도 있는 거 아냐? 슈브 니구라스의 힘이 몇 번 쓴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도 아닐테고. 안테나 같은 거라며. 주파수만 맞으면 힘 막 내려주겠지. 이번에 한 번 털렸으니까 왕창 내려주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흠······.”
핏불킹의 말에 카시마르가 잠깐 턱을 쓰다듬더니 강숭이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요? 선생님.”
카시마르가 부르자 강철 원숭이가 바로 모습을 드러냈다.
“반성 잘하고 있냐?”
“그렇습니다요. 반성하고 또 반성하고 있습니다요.”
“그럼 더 반성해.”
“알겠습니다요.”
“그건 그렇고. 한 가지 물어보자.”
“뭐든지 물어보십시오. 선생님.”
“다크 영의 뿔 같은 걸로도 부활이 가능하냐?”
“가능합니다요. 검은 교단의 성직자가 기도를 열심히 하면 힘을 내려 줄 겁니다요. 다크 영의 뿔은 힘의 상징과도 같으니까 말입니다요.”
“그것봐라 그거 넘겨줬으면 큰일날 뻔 했네.”
“큰일 날 게 뭐 있어. 그걸로 부활하려고 그러면 다시 가져오면 되는 거 아냐?”
“뭐?”
“생각을 해봐. 이미 약해질 때로 약해진 검은 교단이잖아.”
카시마르의 말에 핏불킹이 입을 크게 벌리고 놀란 눈빛으로 바라봤다. 뭐 이렇게 독한 놈이 다 있냐는 듯한 눈빛이었다.
“네 말은 그러니까 그걸 미끼로 놓고 검은 교단 잔당을 다시 한 번 쓸어 버리자는 그 말인 거냐?”
“그러자는 게 아니라. 그쪽에서 다크 영의 뿔로 그런 장난질을 치는 거면 그런 방법을 쓰는 것도 가능하다는 거지.”
“늘 느끼는 거지만. 너 진짜 집요해.”
“많이 약해졌어. 컨신이랑 여러 번 붙어봤는데 예전 같지 않더라고.”
“K길드 놈들이 딱히 약해졌다는 생각은 안 들었는데. 네가 컨신의 패턴을 아예 파악한 거 아니냐?”
“그런 부분도 있고.”
“그 전에 네가 너무 강해진 거야.”
“그런가······.”
“아무튼 이제 발품 팔러 다닐 거지? 그럼 난 길드원들이랑 사냥이나 가련다.”
“발품 팔기 전에 어디 좀 들리려고.”
“어디?”
핏불킹이 물었다.
“형은 모를 걸.”
“어디 가는데?”
“플렉스 공방.”
“플렉스 공방?”
“어. 알어?”
“알지. 인마. 게이트 고렙 중에 플렉스 공방 모르는 곳이 어딨냐. 너 거기 회원이었어? 어디 플렉스인데?”
“일렉트로닉.”
“우와. 일렉트로닉 플렉스면 장난 아닌데.”
“이 건틀릿 거기 꺼잖아.”
“야. 거기 다크 영 뿔 때문에 가려는 거냐?”
“어.”
“그럼 진즉에 거기부터 가지.”
“거기는 돈이 많이 들잖아.”
“여기서 만드는 건 돈 안 드냐?”
“저번에 한 번 갔었는데 거기 물건이 좀······.”
카시마르는 인상을 쓰면서 우리가토가 소개한 물건들을 떠올렸다. 그가 소개한 물건 중에 ‘쉽 세커’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할 정도로 강렬한 기억이었다.
“야. 거기 동행권 좀 쓰자.”
“동행권? 그건 뭐야?”
“회원 자격 있는 사람이 쓸 수 있는 건데. 금화 100개인가 주면 비회원도 거기 들어갈 수 있는 시스템이야. 한 번 한정이지만.”
“거기 회원 되는 게 그리 어려워?”
“어렵지. 플렉스 공방 회원 되는 건 쉬운 게 아냐. 일렉트로닉은 특히 더 어렵고. 플렉스 공방 상당히 많은데도 회원인 사람 몇 명 없어.”
“내 취향은 아니던데.”
“단순히 기계 팔 이런 것만 파는 곳이 아냐. 플렉스 공방과 연계된 무기 공방들까지 방문이 가능하니까 진짜 좋은 거라고. 왜 거기 회원이라고 이제 이야기 하냐.”
“별로. 거기 들어가려면 포인트 소모해야 되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손해 같더라고.”
카시마르가 플렉스 공방의 회원이 될 수 있었던 스킬은 사라졌지만, 그에게 발급된 회원권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카시마르는 딱히 그 회원권을 쓸 생각을 안 했다.
“그거 아까운 거 아냐. 그거 이상으로 좋은 물건이 얼마나 많은데.”
“어차피 난 팔 부위 정도만 살 수 있게 되어 있을 걸?”
“완전한 회원권이 아냐?”
“아마도. 그것도 금화나 포인트 소모해서 업그레이드 가능하다고 했는데 잘 모르겠네. 근데 플렉스 공방 물건 너무 비싸지 않아?”
“금화로 계산하는 시스템이지?”
“어.”
“비싸긴 하지. 근데 그 가치를 생각해보면 비싸다는 생각 안 들 걸?”
“그런가.”
“그럼. 업그레이드도 따로 가능하고. 그 뭐냐. 그 하이랜더 있잖아. 피자던가.”
“파이자?”
“그래. 파이자다. 그녀가 들고 있는 검이 플렉스 공방 무기잖아. 손이랑 연결된 거. 연계 스킬 쓸 때 추가로 폭발 데미지 주는 거.”
“영상 본 거 같긴 해.”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대검 데미지보다 폭발 데미지가 더 크다는 이야기가 있어.”
“아무튼 난 거기 가 볼거야.”
“기다려. 인마. 골낳괴랑 같이 가야지. 지금 골낳괴 바로 튀어 온단다.”
“낳괴?”
“기계종족 한테는 플렉스 공방이 아이템의 시작이자 끝이야. 그 친구들은 어차피 기계니까 플렉스 공방에서 업그레이드 한 번 받으면 어마어마하게 강해진다고.”
기계 종족들은 생명체보다 강력하지만 내구도 개념이 따로 있어서 리스크가 컸다. 그렇지만 장점도 분명 존재했는데 그것은 플렉스 공방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개조가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개조한 신체에다가 장비까지 착용하게 되면 그야말로 막강한 유저가 탄생하는 것이었다.
카시마르는 골낳괴와 함께 플렉스 공방을 방문하기로 했다. 금화 100는 적은 금액이 아니었지만 골낳괴는 크게 상관 없다고 했다. 가지고 있는 장비를 모두 팔아서라도 플렉스 공방에서 좋은 아이템을 구하겠다는 집념이 보였다.
반면에 카시마르는 반응이 시큰둥했다. 그의 관심은 오직 다크 영의 뿔에만 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플렉스가 다양한 작업을 한다고는 하지만 그곳은 원래 기계 장치를 다루는 곳이기 때문에 다크 영의 뿔을 다룰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카시마르였다.
그러나 카시마르의 이런 고민은 의외로 방문하자마자 아주 쉽게 해결이 되었다.
***
“우리가 또 이런 거 잘 다루거든. 우리가 또 금속만 다루는 것 같지? 아니거든. 만들 수 있는 건 다 취급할 수 있거든.”
우리가토는 어제 만난 사람처럼 유쾌하게 설명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러면 이걸로 무기를 만들 수 있는 겁니까?”
“그렇지. 다크 영의 뿔. 오랜만에 보는 고급 재료야. 이걸 보니까 예전에 만들어 두었던 디자인들이 마구 떠오르는군. 혹시 이걸 날붙이로 쓸 생각이었나?”
우리가토가 물었다.
“그렇죠. 근데 팔에 막 붙이고 그러는 건 조금······.”
“우리가 또 플렉스 공방이지만 플렉스 아닌 것도 만들고 그래. 허접한 재료들은 취급 안 하지만 다크 영의 뿔 같은 재료는 우리가 또 취급을 한다는 이 말씀이야.”
골낳괴는 우리가토를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리고는 얼른 카시마르에게 귓속말을 넣었다.
[형. 저 사람 이름이 우리가토인 이유가······.]
[어. 아마 그럴 거야. 근데 그거 말해주지 마. 자기 이름에 굉장한 자부심이 있는 사람이니까.]
[예.]
“이봐. 친구. 날붙이는 어떤 능력이 가장 뛰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나?”
우리가토가 골낳괴에게 물었다.
“날카로움 아닐까요?”
“맞아. 정확해. 완벽한 대답이었어. 이 친구 외관도 그렇고 아주 마음에 쏙 드는구만.”
“감사합니다.”
“절삭력이라고 하지? 내가 예전에 만든 모델 중에 절삭력이 아주 뛰어난 물건이 있었지. 그야말로 못 자르는 게 없어. 자네에게 그 모델을 추천해주고 싶네. 재료를 바탕으로 만들기만 하면 되는거니까 그리 어렵지도 않지.”
“그런 게 있습니까?”
카시마르가 물었다.
“그럼. 화면을 봐.”
우리가토가 허공에 떠 있는 화면을 가리켰다. 그 화면을 본 카시마르의 얼굴은 일그러졌고, 골낳괴는 데굴데굴 구르면서 웃기 시작했다.
“어때? 멋지지 않는가? 쉽 세커의 프리미엄 모델이랄까. 가재를 보고 영향을 받았지. 일명 가재 선장 커터라는 물건이지.”
화면에는 커다란 벌초 가위가 가위질을 해대며 있었다. 일단 견고해보이긴 했다. 그리고 우리가토 말대로 절삭력이 죽여줄 것도 같았다. 카시마르는 왜 이곳에 오기 싫었는지 다시 한번 깨닫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