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
불꽃의 시련
[뭐야! 벌써 쉴드가 왜 깨져? 야! 너 싸우는 중이냐?]
[그냥 살짝 때렸는데 쉴드가 깨졌네.]
[미친! 너 그 템에 다른 옵션 있는 거 아냐?]
[몬스터 상대로 추가 데미지 옵션이 있긴 해.]
[그것 때문에 그러는가 본데요?]
[그래도 너무 빠르잖아요.]
[칼이 두 개라서. 연타로 두들겼더니 그냥 쉴드가 깨지네.]
[야. 너 그거 혼자서 잡겠다.]
[그럴 수 있을 거 같아. 혼자 잡아?]
[야. 우리 한 대라도 때려보자.]
[그럼 피하고 있을 게.]
카시마르는 늑대인간에게서 조금 떨어져서 기다렸다. 그런데 늑대인간은 동작이 멈춘 기계처럼 멍하니 서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간헐적인 숨만 쉬고 있을 뿐이었다.
[야! 잡고 있는 거 아니지?]
[아냐. 안 움직이는데? 쉴드 깨진 뒤로 움직이질 않아.]
[어? 왜?]
[에러난 거 아니에요?]
[그러게 잘 모르겠어. 안 움직이네.]
[왜 안 움직이지?]
[근데 언제 와.]
[가고 있어. 여기 맵 넓다고.]
[열심히 뛰어가는 중입니다! 형님!]
용재가 싹싹한 말투로 말했다.
[안 움직이는데 한 대 때려볼까?]
[한 대만 때려. 여러 대 때리지 말고. 아무래도 네가 들고 있는 무기가 단단히 사기인 모양이다.]
[공헌도 15만을 때려 넣었는데 좋아야죠. 당분간 카시마르 형 칼보다 좋은 무기는 안 나올 걸요?]
[그렇겠지. A랭크 유저들이 왕창 나와서 전설급 아이템이 꽤 나오면 모를까.]
카시마르는 전설급 아이템이 나와도 지금의 아이템보다 좋기는 힘들거라고 생각했다. 카시마르가 지금 착용하고 있는 가면도 달로스의 힘을 받은 측정 불가의 아이템이었지만, 두 개의 뿔보다는 강력하지 않았다. 다만 둘 다 성장형 아이템이어서 어떤 방식으로 진화할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카시마르는 늑대인간에게 다가가서 칼을 휘두려고 했다. 그러나 카시마르가 접근하자 멍하니 있던 늑대인간이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났다.
다시 접근하니 또 뒤로 물러난다.
‘도망치는 건가?’
늑대인간의 반응은 도망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러나 카시마르는 퀘스트의 보스몹이 도망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다시 접근을 시도했다.
[이거 늑대인간이 도망치는데?]
[응? 도망을 친다고?]
[어. 가까이 다가가면 도망치네. 아무래도 그냥 잡아야겠는데?]
[야! 너 혼자 잡으려고 그러는 거 아냐? 나중에 영상 보면 다 나와!]
[그럼 나중에 확인하던가.]
늑대인간은 확실히 카시마르를 피해 도망치고 있었다.
[그림자 늑대인간이 우주적 공포에 잠식당하고 있습니다. 지금 공격하면 재빨리 처리할 수 있습니다.]
우주적 공포는 가늠할 수 없는 미지의 존재가 주는 공포로 우주적 공포에 내성이 없는 자들은 저항을 하려고 해도 저항할 수 없는 공포를 의미했다.
개체마다 저항력의 차이는 존재했다. 지성이 아예 없는 언데드 종류들은 우주적 공포에 미미한 영향을 받지만 늑대인간처럼 야성이 날카로운 부류들은 오히려 큰 영향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림자 늑대인간은 사냥꾼의 특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감각이 무척 날카로웠다. 유저들이 늑대인간을 잡는 것을 힘겨워하는 이유는 강력한 공격력과 더불어 재빠른 민첩성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맹수의 야성은 그대로 가지고 있지만 맹수보다 지능이높고 강력하기 때문에 유저들이 힘들어 했다. 쓸 수 있는 스킬도 다양했고 무엇보다 치고 빠지기를 아주 잘하는 몬스터가 늑대인간이었다.
이런 특성을 지녔다보니 보통 유저들이 늑대인간을 잡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카시마르는 달랐다. 일단 카시마르는 자신보다 빠른 적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에게 페인트 동작이 없는 공격은 아주 피하기 쉬운 공격일 뿐이었다.
세계 최고의 타격가들의 타격도 가볍게 피해버리는 카시마르였다. 빠르다고는 하지만 늑대인간의 단순한 공격을 피하는 건 그에게 쉬운 일이었다.
단순한 공격을 피하고 집어넣은 연속 공격.
두 개의 뿔에 엄청난 힘이 더해지니 무시무시할 정도의 공격력이 나왔다.
보통 늑대 인간의 쉴드는 30인 40인 파티가 5분 이상 공격해야 깨트릴 수 있는 것이었는데 카시마르는 30초 만에 깨트려버렸다. 카시마르는 두 개의 뿔의 강력함을 바로 실감하고 있었다.
[그림자 늑대인간을 처리했습니다.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최소 인원으로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늑대인간을 뒤쫓아간 카시마르가 몇 번의 공격을 더 집어넣자 늑대인간은 그대로 누워버렸다. 우주적 공포를 느끼고 도망치는 상태에서는 무방비 판정을 받아서 추가 데미지가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그림자 늑대인간은 기본적으로 방어력이 아주 높게 설정된 몬스터였다. 특히 물리 방어력은 두꺼운 가죽이라는 패시브 스킬 때문에 웬만한 공격력으로는 제대로 데미지를 입히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나 카시마르는 상성 무시의 뿔에 가면까지 쓰고 있었다. 가면의 옵션 중에 하나는 방어력 이용.
방어력 이용은 아무리 낮은 수치가 들어 있어도 아주 높은 가치로 평가 받는 옵션이었다. 상대의 방어력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방어력을 이용해서 추가 공격력을 넣는 옵션이기 때문이었다.
두 개의 뿔과 방어력 이용의 힘이 합쳐지니 너무도 간단하게 늑대인간을 잡아버렸다.
지금 카시마르가 들고 있는 아이템은 전설을 넘어선 우주급 아이템인 것에는 틀림 없었다.
***
“늑인 퀘스트가 이리 쉬운 건줄 처음 알았습니다. 형 아이템 진짜 장난 아닌데요.”
“아무래도 그 아이템은 PVP보다 사냥에 더 특화된 무기 같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네가 원하는 방향은 아니잖아?”
“그렇지.”
카시마르는 사냥을 많이 하는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코즈믹 게이트는 방대한 세계관의 게임이었다. 유저들은 기존의 오픈 월드 게임처럼 사냥과 전투를 하면서 캐릭터를 강하게 육성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다른 재미에 푹 빠진 유저들도 많았다.
카시마르는 전자에 속하는 유저였지만 육성 방식이 독특했다. 남들이 가는 길은 거의 가지 않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독자적인 플레이어였다.
버그에 가까울 정도의 컨트롤 능력과 돌발 행동이 만나 어마어마한 시너지를 효과를 주고 있었다. 보통은 돌발성 플레이만 좋아하는 유저들은 어떤 벽에 가로막히기 마련인데, 카시마르는 그걸 무지막지한 실력으로 뚫고 나가고 있었다.
“그럼 나중에 넣는 버프는 PVP 용으로 잘 선별해서 넣어야겠네.”
“근데 지금도 공격 옵션은 넘사벽 수준이에요. 핏불형.”
“그렇긴 하지. 하지만 그게 얼마나 가겠냐. 어제 커뮤니티 보니까 A랭크 유저도 또 두명 나왔더라.”
“그래요?”
“어. 이놈만 크고 있는 거 아냐. 그니까 우리도 빨리빨리 커야 돼. 우리 같이 작은 규모 길드가 평균 레벨까지 떨어지면 큰일 난다. 분발하자고.”
“예.”
“아무튼 빨리 끝나긴 했지만 같이 사냥한 번 했으니 다들 흩어집시다. 나는 오늘 이걸로 로그아웃 해야 돼.”
“형 벌써 가시게요?”
“어. 일 있어.”
“나도 가야 돼.”
카시마르도 거들었다. 둘은 며칠 뒤에 스케줄이 있었기 때문에 훈련을 소화해야했다. 평소에도 체력 훈련은 거르지 않는 카시마르였지만, 이번에는 스파링을 해야 하는 터라 며칠 동안은 코즈믹 게이트의 플레이 시간도 줄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인사를 나누자 골낳괴 친구들은 재빨리 각자 플레이를 하러 사라졌다.
“로그아웃 안 하냐?”
카시마르는 로그아웃을 하지 않고 퀘스트 표지판에 새겨진 이름을 보고 있었다.
최소 클리어 인원 6명.
그 밑에는 카시마르를 비롯해서 파티원들의 닉네임이 적혀 있었다.
“왜?”
“이거 바로 도전해도 상관 없지?”
“근데 같은 파티원으로는 클리어 못해. 그리고 한 번 클리어하면 이전만큼 보상도 안 주고. 최소 인원 클리어 갱신하면 모를까.”
“그래?”
“어. 아. 너 혼자서 해보려고?”
“어.”
“그래도 되겠네. 근데 빨리 끝내고 나와라. 훈련 시간 늦는다. 형은 로그아웃해서 먼저 준비하고 있을게.”
“알았어.”
카시마르가 혼자서 늑대인간을 퀘스트를 클리어하는데는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인원이 적은 만큼 시작 포인트도 적어져서 그만큼 늑대인간을 빨리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
현실 세계에서 훈련은 차질 없이 진행되었다. 현실은 아닐지라도 가상 현실에서 꾸준히 전투를 해온 카시마르였다. 그런데다가 몸 관리도 꾸준히 해왔으니 며칠 체육관을 다니면서 강도 높게 훈련을 한다고 해도 크게 문제가 생기거나 하지는 않았다.
카시마르와 핏불킹은 체육관에서 운동할 때는 코즈믹 게이트에 대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운동할 때는 운동에 집중하는 게 둘의 스타일이기 때문이었다.
체육관에서 돌아와서 식사를 마치면 다시 둘은 코즈믹 게이트의 세계에 접속했다.
카시마르는 불꽃 기사 퀘스트를 하기 위해서 움직였다.
수행 기사들은 카시마르가 접속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카시마르가 접속을 해제하면 자동으로 투기장의 저택으로 이동되어서 잠을 자도록 설정이 되어 있었다.
NPC지만 유저의 소유물로 설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행동이 가능한 것이었다.
투기장에서 포말하우트로 포탈을 타고 넘어간 카시마르는 바로 퀘스트와 관련된 사제를 찾았다. 사제는 카시마르를 기다렸다는 듯이 반겼다.
“늦었군.”
“일이 많았으니까요.”
“하긴 일이 많았지. 성전도 있었고 말이야. 아무튼 이번 성전에서 보여준 자네의 활약 대단했네. 교단의 사제로서 감사함을 느끼고 있네.”
“저도 일단은 불꽃 기사니 할 일은 해야지요.”
카시마르가 가볍게 대답했다.
“솔직히 게이트의 사람인 자네를 불꽃 기사로 선정한다고 했을 때 반대가 없었던 게 아니네. 교단 내부에서 많은 회의가 있었어.”
“그 이야기는 저번에도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 정도가 아냐. 교단의 추기경들과 장로. 명예 장로까지 모두 소집되어서 회의를 벌였을 정도였으니까. 의견은 안 된다가 더 많았지. 하지만 불꽃 교단은 게이트와 협정을 맺은 게 있으니 어쩔 수가 없었지.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반대의 목소리를 내지 않네. 그만큼 이번 성전에서 보여준 자네의 힘이 컸으니까 말이야.”
카시마르는 사제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었다. 사제는 몇 분동안이나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아무튼 자네에게 영지를 하사하는 일을 미룰 수가 없어서 말이야. 이건 미루는 게 별로 좋지 않거든. 교단의 명예가 달린 일이니까.”
“예.”
“위에서 성전에서 세운 공으로 그냥 영지를 하사하라는 말도 있었는데 그건 안 좋은 예를 남긴다면서 아주 쉬운 임무로 대신하라는 명이 있었네.”
“어려운 임무도 괜찮은데요.”
“그래도 그리할 수는 없지. 마침 황실에서 요청이 들어온 것도 있어서 자네를 서쪽 붉은 오크 토벌에 보내기로 했네.”
“붉은 오크요?”
“그래. 서쪽은 아주 위험한 곳이지. 붉은 오크 토벌은 아주 오랫 동안 진행된 프로젝트였는데, 최근에 다시 진행된 사업이야. 제국의 1황녀가 주관하는 일이니 이번 일을 잘 처리하면 자네 앞길에 많은 도움이 될 걸세. 1황녀는 누가 뭐라고 해도 현재 제국의 실세니까 말이야.”
“그렇군요.”
“시큰둥한 반응이지만 나중에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는 걸 알게 될 걸세.”
“붉은 오크 토벌은 그리 어렵지는 않은가보죠?”
“아직은 초기 단계니 그리 어렵지는 않을 거야. 원정대가 2번 갔었는데 피해가 거의 없었다고 하니까. 붉은 오크 토벌도 예전과는 달라. 예전에는 붉은 오크가 있는 지역까지 가는 게 힘들었지만 지금은 포탈이 있어서 간단하게 넘어갈 수 있다니 아주 좋지.”
“제가 해야될 일은 그 토벌에 참여하는 일입니까?”
“아니. 여기서부터는 직접 설명을 해주시죠.”
사제가 뒤를 돌아보며 말하자 석상처럼 서 있던 금발의 사내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불꽃의 기수를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스윙 황녀를 모시고 있는 카르 공작이라고 합니다.”
“카시마르입니다.”
“이번 원정에 불꽃의 기수가 참여하게 된다니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이번 원정은 결과가 아주 좋을 것 같군요.”
“제가 해야될 일은 무엇입니까?”
카시마르는 사제에게 쓸데없는 말을 많이 들은 상태였다. 그래서 빨리 퀘스트의 내용이나 듣고 싶었다.
“간단합니다. 토벌대에 참여해서 붉은 오크의 귀나 코를 1000개 가져다주시면 됩니다. 그러면 불꽃의 시련은 해결된 것으로 치겠습니다.”
“간단한 퀘스트니 얼른 마치고 돌아오도록 하게. 교단에서 좋은 영지를 준비하고 있으니까.”
[불꽃의 시련 퀘스트가 시작되었습니다. 붉은 오크의 귀나 코를 1000개를 모으세요. 퀘스트 성공 시 - 교단의 영지 하사 / 실패 시 - 교단의 영지 획득 불가]
카시마르는 고개를 끄덕이고 카르 공작을 따라서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