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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캐로 멱살 캐리-112화 (112/205)

# 112

포섭

카르 공작은 카시마르에게 지나치게 예의를 차리고 있었다. 카시마르는 처음에는 그게 좋은 모습으로 보였다가 시간이 지나니 약간 가식으로 보였다.

“제국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계시는군요.”

“크게 관심 있는 분야가 아니니까요.”

“하긴 게이트에서 오신 분들에게는 조금 어려울 수 있겠습니다.”

“어렵다기 보다는 관심이 없다는 게 맞겠죠. 게이트 출신이 제국에 스며드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카시마르님은 완벽하게 스며들고 계시지 않습니까.”

카르 공작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는 저택으로 들어가는 마차 안에서 카시마르와 마주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카르 공작의 마차는 호화스러울 정도로 넓었다. 그런데다가 신기하게도 흔들림도 거의 없었다. 마법의 힘인 게 분명했다.

카시마르는 카르 공작과 움직이고 수행기사들은 그보다 규모가 작은 마차를 타고 움직였다. 꼬리와 강숭이는 카시마르의 인벤토리 속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 많은 유저 중에 하나일 뿐이니 많은 건 아니지요.”

“점점 많아지겠지요. 이제는 여행자들의 시대가 오지 않겠습니까.”

“바람이 분다고 뿌리가 흔들리지는 않겠지요.”

“그 말에 공감합니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뿌리가 뽑혀나가지 않을까 걱정하는 자들이 있어서 문제지요.”

포말은 제국의 수도로 황족들과 고위 귀족들이 가장 많이 기거하는 곳이었다. 물론, 황족들 중에는 포말에 있지 않고 외곽에 있는 자들도 있었다.

“붉은 오크 토벌군이 있는 쪽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까?”

카시마르가 물었다. 카르 공작이 안내하는 곳은 토벌군이 있을만한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토벌군은 그리 규모가 크다고는 할 수 없지만 상당한 병력이 모여 있었다. 정예 기사단 1000명과 불꽃 기사가 10명 정도 합류하기 때문이었다.

카시마르까지 합해서 10명의 불꽃 기사.

불꽃 기사가 가지는 파급력을 생각하면 상당한 병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일단은 이번 토벌을 기획하신 분부터 만나야겠지요.”

“스윙 황녀를 보는 겁니까?”

“아닙니다. 그분은 더 위에 계시지요. 제국을 다스려야 하니까요.”

제국의 황제 자리는 오래전부터 공석이었다. 황족들 간에 암투가 너무 심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황제가 없을 때 모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대리권자인 필트(필트는 제국의 여러 가문마다 있는 중요한 직책이었다. 가주가 없을 때는 가주 대신해서 모든 권한을 행사하기에 가문의 직계가 그 직위를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를 뽑는 제도였다. 제국을 다스리는 필트는 좀 더 높여서 칼트라고 불렀다.

카르 공작이 소개해줄 사람은 스윙 황녀가 아니었다. 그는 카시마르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코즈믹 게이트를 플레이하면서 꽤 많이 들었고, 잘 알고 있는 사내였지만 실제로 본 적은 없는 사람.

카르 공작은 카시마르를 황족 베버킨 오셔널에게 안내한 것이었다. 대스 해적단의 숨겨진 주인이며 가까이 가면 죽는다라는 별명이 있는 베버킨.

그는 스윙 황녀 전대의 칼트였다. 지금은 칼트에서 내려온 상황이었지만 여전히 그의 권력은 막대했다.

“만나서 반갑다고 뭐···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베버킨은 늙은 노인이었다. 그는 쉴 새 없이 혀를 낼름 거리고 있었다. 카시마르는 그가 순간 뱀처럼 보였다. 뱀처럼 탐욕스럽게 보인 것이었다.

좀처럼 긴장을 하지 않는 카시마르도 지금 상황에서는 꽤 긴장을 하고 있었다. 그는 베버킨의 돈줄 중 하나인 대스 해적단을 침몰시킨 장본인이었다. 그러니 베버킨 일행이 그걸 알아차리고 데려온 건 아닌지궁금할 수 밖에 없었다.

“예. 카시마르라고 합니다.”

“이번 성전에서의 활약은 익히 들었습니다. 이번 사업··· 아니 이번 토벌전에서도 제국의 위상을 아주 높이 떨쳐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노력해보겠습니다.”

베버킨은 웃으면서 카시마르의 대답에 호응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어디론가 사라졌다. 베버킨이 사라지자 긴장한 모습으로 있던 카르 공작이 사라졌다.

“전 아직도 저분 옆에 있으면 긴장이 되는군요. 카시마르님은 여행자분이셔서 그런지 긴장하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긴장을 해야 하는 겁니까?”

“그래도 한 때 제국의 정점에 있었던 분 아닙니까.”

“그렇긴 하지요. 아무튼 저를 토벌대가 있는 곳이 아닌 이곳으로 데려온 이유는 무엇입니까?”

카시마르의 말에 카르 공작이 미소지었다. 묘한 미소였는데 카시마르는 크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금 카시마르의 관심사는 베버킨이 자신을 부른 의도였다. 그는 대스 해적단의 일로 자신을 부른 것이 아닌가 계속 생각하는 중이었는데, 베버킨의 반응으로 봐서는 딱히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솔직히 이야기하지요.”

“하시죠.”

“제국은 지금 크게 3개의 파벌로 나뉘어 있습니다. 황제의 권력을 더 높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황권 강화파와 황제의 힘을 축소하고 황제와 귀족들의 힘으로 제국을 끌어나가야 한다는 가문 파가 있습니다.”

“다른 하나의 파벌은요?”

“그들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펼치는 이상론자들이니 신경 쓸 필요가 없죠. 여러 파벌이 합쳐져서 현재의 체제를 전복시키려는 자들이니까요. 가장 힘이 있는 쪽은 귀족파와 저희 황제파입니다.”

카르 공작의 이야기를 카시마르는 가만히 들었다. 그러면서도 의심을 풀지 않았다. 모든 걸 알면서 이렇게 나오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두 파벌이 가는 길이 다르다는 것은 충분히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를 부르신 이유는 아직 모르겠는데요.”

“저희는 여행자 최초의 불꽃 기사인 카시마르님을 저희 쪽으로 포섭하고 싶습니다.”

“그게 목적이었습니까?”

“그렇죠. 제국 내에서 카시마르 님의 위상은 점점 더 높아질테니까요.”

“전 제국과 관련된 일은 하지 않을 생각이었는데요.”

“제국에서 활동하는 이상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어차피 해야 한다면 최고의 대우를 받으면서 활동하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이번 토벌은 그걸 위한 포석이었던 셈이군요.”

“그렇습니다. 이번 토벌은 저희 파벌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사업입니다. 사업이라는 표현이 조금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실테지만 말이죠.”

“붉은 오크가 위협이 되어서 가는 게 아닙니까?”

“위협입니다. 다만 붉은 오크를 토벌하는 것 자체가 큰 돈이 되니까요.”

“이해가 가질 않는군요. 그들이 왜 돈이 된다는 이야기입니까?”

“그들이 만든 세공품은 아주 뛰어납니다. 뛰어나다기 보다는 섬세하죠. 제국의 공예품과는 다른 멋이 있어요. 그래서 찾는 귀족들이 많습니다.”

“사치품으로서 가치가 있다는 거군요.”

“예. 그런데다가 붉은 오크는 노예로도 비싼 값에 팔립니다. 어린 붉은 오크나 암컷 붉은 오크는 그중에서도 비싼 값에 팔리죠.”

“독특하군요. 제국이 노예를 취급하는 사회라는 것은 알지만 붉은 오크는 몬스터 아닙니까? 몬스터를 왜 노예로?”

“귀족들의 취미라는 게 그렇죠. 이번 원정은 단순히 영지와 관련된 것만 아닙니다. 이건 저희 파벌이 카시마르님을 모셔오기 위한 선물과도 같습니다.”

“선물이라는 의미를 잘 모르겠군요.”

“이번 붉은 오크와 관련된 사업에서 얻은 수익의 일부를 카시마르님에게 드릴 겁니다. 물론, 공식적인 건 아니지요. 정확한 금액은 나오지 않을테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카시마르님이 교단에서 받는 영지 의 10배는 땅은 가볍게 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일 겁니다. 이제 저희가 하는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걸 아시겠습니까?”

“어마어마하게 큰 돈이군요.”

“그렇죠. 큰 돈이죠. 하지만 정치를 하다보면 그리 큰 돈도 아니게 됩니다."

카르 공작이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

“제가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상징이라는 것. 명성이라는 게 그래서 중요한 겁니다. 카시마르님은 검은 교단의 손아귀에서 제국을 지켜낸 성전의 영웅입니다. 그러니 이 정도는 아깝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번 토벌 사업이 저희 파벌에게는 아주 중요한 일이기도 하고요.”

“제가 그곳으로 가면 크게 달라지는 게 있습니까?”

“있죠. 다음 토벌부터는 제국의 귀족들이 더 참여할 겁니다. 그리되면 규모가 더 커질테고 사업에는 더 활기가 돌겁니다.”

“마냥 좋은 제안을 하신 건 아니군요.”

“그렇습니다. 카시마르님은 여행자다보니 아는 정보가 거의 없거든요. 그러니 제안을 거절할 때에 대한 것도 생각을 해놔야 합니다.”

“제가 그쪽 파벌에 들어가는 걸 거절해도 이번 토벌에는 참여하게 될테니 그쪽으로서는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겠군요. 제가 참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규모는 커지게 될 테니까요.”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이 사업은 어쨌든 커질 수밖에 없는 사업입니다. 지금 제국 귀족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사업이니까요. 카시마르님의 합류 유무는 그 시기를 좀 더 앞당기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물론, 시기가 빨라진다는 게 중요하죠. 사업에서는.”

카시마르는 기분이 좋질 않았다. 제국 내 세력 싸움의 도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행이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카르 공작이나 베버킨이 대스 해적단의 일로 부른 게 아니라는 게 점점 드러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카르 공작은 생각 외로 말이 많은 사내였다. 그는 카시마르가 마음에 들었는지 와인까지 권유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베버킨 폐하요? 그분은 이제 오시지 않습니다. 얼마나 바쁜 분이신데요. 카시마르님이 저희 파벌에 들어오면 독대할 기회가 더 있긴 하겠지만 지금은 어렵습니다. 바쁘시죠. 최근에 저희 파벌에서 오래 진행되온 사업 하나가 날아가서 더 바쁜 상황입니다. 이번 토벌도 그 때문에 진행된 거고요.”

술이 몇 잔 들어가자 카르 공작은 더 말이 많아졌다. 카시마르는 적당히 일어날 시기를 찾는 중이었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그럼요. 남부 쪽에서 진행하던 사업인데. 꽤 좋은 자금줄이었죠.”

남부라는 말에 카시마르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그랬군요.”

“워낙 갑작스럽게 당한 일이라 회생시킬 수도 없었습니다. 귀족파 놈들의 짓이죠. 그 정도 규모의 사업을 쥐도 새도 모르게 날려버릴 수 있는 건 제국에서 귀족파 밖에 없습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귀족파나 지금 귀하의 파벌이나 제가 보기에는 큰 차이가 없어보이는데 무엇이 차이가 있습니까? 둘 다 제국의 시스템을 유지하는 걸 원하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오! 아주 좋은 질문이군요. 맞습니다. 비슷하지요. 하지만 다릅니다. 저희 황제파는 칼트 체제에서 벗어나 황제를 옹립하기를 원합니다. 황제가 없는 제국이라니 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세상입니까.”

“귀족파는요?”

“귀족파는 현 체제를 좋아합니다. 그들은 투표로 칼트를 뽑고 칼트가 황족과 고위 귀족들과 조율해서 제국을 다스리는 게 합리적이라고 생각을 하죠.”

“그런 차이가 있었군요.”

“예. 그러니 여행자인 카시마르님께서는 저희 파벌과 잘 맞습니다. 저희 파벌이 힘을 잡으면 카시마르님을 끝없이 밀어드릴 수 있으니까요.”

카시마르는 황제파에서 대스 해적단을 침몰 시킨 게 누구인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달았다.

“그러면 토벌은 언제 가게 되는 겁니까?”

“토벌군은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마무리 작업만 하면 되죠. 작업이 끝나면 포말하우트로 오시지요. 그곳의 사제가 토벌군의 준비 장소로 모실 겁니다.”

카시마르는 고개를 끄덕이고 움직였다. 당장 토벌군에 합류하는 게 아니라면 해야될 일이 있었다.

바로 그림자 늑대인간의 가죽으로 장비를 만드는 일이었다.

그림자 늑대 인간의 가죽은 다크 영의 뿔만큼은 아니라도 상당히 고급 재료였다.

카타루온의 늑대인간 1인 클리어 보상 템이 설마 늑대인간의 가죽일 줄이야.

보통 가죽이 아니었다.

방어구의 재료일 뿐인데도 영웅급으로 설정이 되어 있었다. 재료 아이템에 영웅급이라는 설정이 붙어 있는 건 카시마르도 처음 보는 일이었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카시마르가 카르 공작과의 대화를 마치고 나오자 핏불킹에게서 연락이 왔다.

[야! 너 퀘스트 하러 갔냐?]

[아니. 아직. 왜?]

[야. 커뮤니티에 지금 글 올라오고 난리다.]

[왜?]

[너 카타루온의 늑대인간 1인 퀘스트 깼잖아.]

[어.]

[그거 1인 클리어 하게 되면 퀘스트가 바뀌는 건가봐.]

[뭐로 바뀌는데?]

[다른 유저들이 늑대인간 퀘스트 들어갔더니 늑대인간이 공격은 안 하고 다른 퀘스트를 준다네.]

[무슨 퀘스트?]

[잃어버린 자기 가죽을 찾아달라는 퀘스트래.]

[어?]

[너 늑대인간 가죽 보상템으로 받은 거 아냐?]

[맞아.]

[그니까. 그거 찾아오라는 퀘스트가 떴다고. 인마!]

핏불킹의 말에 카시마르는 인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퀘스트가 떴다는 건 꽤 이야기가 심각해질 수 있었다. 그건 유저들에게 카시마르를 공격할 수 있는 명분을 주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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