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
이상한 레이드
[형! 괜찮아요?]
카시마르는 아르케의 연락을 받고 있었다. 아르케는 커뮤니티의 글을 보고 상황이 꽤 심각할 거라고 생각했다. 카시마르를 찾은 유저들이 있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 괜찮아?]
[유저들이 공격 안 해요?]
[처음에는 조금 했었는데 자기들 끼리 싸우던데?]
[형 지금 어딘데요?]
[나. 지금 이루카니아 쪽에 있어.]
[아이템 만들려고요?]
[그러려고 했는데 다 진을 치고 있다고 해서 그냥 투기장으로 넘어가려고.]
[진짜 괜찮은 거에요? 커뮤니티의 글은 난리던데. 형이 들고 있는 그림자 늑대인간 가죽이 엄청난 거라고 그래서 그거 노리는 걸로 지금 상황이 바뀌었어요.]
[그래서 자기들끼리 싸우는 거구나?]
[그럴 지도요.]
[핏불 형이 묘수를 썼네. 하여튼 수가 많아.]
[그거 핏불 형이 올린 거 아니라던데요?]
[그래? 그러면 그림자 가죽에 대해서 어떻게 알았지?]
[모르죠. 시간 지날 수록 형에 대한 정보가 많이 풀린다면서요. 그래서 그런 걸수도 있죠.]
[그런 건가. 아무튼 난 괜찮아. 문제 있으면 연락 할게.]
[형 꼭 연락 주세요. 근데 투기장으로 넘어 가지긴 해요?]
[응?]
[투기장으로 넘어가려면 존이 있잖아요. 아무데서나 금화 던진다고 문 열리는 게 아니니까요. 아마도 그쪽 근처에도 유저들이 쫙 깔려 있을 거 같은데요?]
[뭐, 방법을 찾아봐야지.]
카시마르는 느긋했다. 그의 말대로 유저들이 서로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카시마르를 공격한 유저들도 있었다. 가장 처음에 카시마르를 발견한 유저들이었다. 초기에 카시마르를 발견한 유저들은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크게 위협이 되질 않았다.
다양한 조합으로 카시마르에게 선제 공격을 한 유저들이었지만 역부족이었다.
“큭. 이거 왜 치료가 안 돼!”
“힐러! 나부터 좀!”
카시마르에게 함부로 덤볐던 50명 가까이 되는 유저들은 금세 제압 당했다. 액티브 스킬 하나 없는 카시마르였지만 압도적인 신체 능력과 가면 그리고 두 개의 뿔의 힘이 합쳐지니 상상 이상의 힘을 발휘 중이었다.
특히 두 개의 뿔의 딜링 능력은 무시무시했다. 스치기만 해도 픽픽 쓰러지는 유저들이 있을 정도였다.
그 뒤로 카시마르가 움직이는 건 수월했다. 유저들이 카시마르에게 집중 공격을 퍼붓는 게 아니라 서로 견제를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상위 랭커들이 모여서 집중 공격을 해도 모자를 판에 서로 견제까지 하고 있으니 카시마르를 잡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카시마르는 주변 상황을 이용해서 교묘하게 투기장까지 이동하려고 했다. 그러나 유저들도 그리 물렁 하지만은 않았다. 그들은 서로를 견제하면서도 목표가 무엇인지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푸슉!
카시마르는 포위된 상태로 있었다. 이번에 그를 공격하는 파티는 나름 레벨이 높은 자들이었고 포메이션도 훌륭했다. 유저들이 무서운 건 조합만 제대로 하면 힘이 몇 배로 증폭된다는 점이었다.
카시마르가 아무리 컨트롤이 좋아도 사방에서 치고 들어오는 공격을 모두 파훼할 수는 없었다.
카시마르의 옆구리에 박히는 창!
“들어갔어! 움직임 느려졌다!”
창잡이가 소리치면서 스킬을 사용했다. 그러자 카시마르의 몸이 뒤로 쭉! 쭉! 밀리기 시작했다. 상대를 밀어버리는 스킬의 힘.
쿠웅! 우드득!
카시마르가 벽에 부딪혔고 그 타이밍에 원거리 딜러들의 공격이 집중되었다.
“쏟아 부어!”
콰콰콰콰콰캉!
이번 파티는 카시마르를 보스몹처럼 상대하고 있었다. 최대한 리스크를 줄여서 한 대상을 말살하는 방식.
가장 잔인하지만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는 전투 스타일.
카시마르는 충분히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가 다크 영과 싸웠을 때의 기술을 사용하면 이 정도는 금방이었다. 그러나 카시마르는 야네크의 힘을 최대한 아끼고 있었다.
야네크는 정신력이라는 새로운 수치의 영향을 받는 기술.
달로스의 개입으로 인해 그 질이 달라졌더라고 해도 발현되는 매커니즘은 여전히 같았다. 그랬기에 카시마르는 야네크의 힘을 아꼈다. 전투가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정신력 수치는 시간이 지나면 다시 차긴 하지만 생명력이나 체력보다 회복되는 속도가 느렸다.
보통 유저라면 비슷할 수 있었다.
그러나 카시마르는 생명력, 체력 회복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빠르기 때문에 정신력을 아껴 쓰는 게 중요했다. 지금 그는 두 개의 뿔 덕분에 피흡수 기능까지 가지게 되어서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생명력이 회복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카시마르는 웬만한 공격은 다 받아주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생명력이 바탕으로 깔려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딜러들의 무지막지한 공격이 끝나자 근접 클래스 유저들이 대화를 나눴다. 아직 시야는 완벽하게 확보된 상태가 아니었다.
“끝났나?”
“끝났겠지. 끝나지 않았으면 그로기 상태일 거야.”
“지금 딜러들 상태 보이지? 쓰러지기 직전이야. 저 정도로 넣었으면 보스몬스터가 아닌 이상 누워.”
“몬스터보다 더한 놈이야.”
“끝난 거 같아. 움직임 없다.”
창잡이가 말했다. 이들은 카시마르에게 섣불리 거리를 주었다간 먹이감만 던져주는 꼴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반복되는 전투 속에서 그의 검이 피를 흡수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건 코즈믹 게이트를 어느 정도 한 유저라면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사항이었다. 대부분의 근접 딜러들은 생명력 흡수 옵션을 달고 있는 아이템을 많이 들고 있었으니까.
“비켜! 내가 목 딴다!”
도끼를 든 유저가 호기롭게 소리쳤다. 카시마르에게 마무리 일격을 가했다는 것만으로도 평생 안주거리 하나가 생겼다고 할 수 있었다.
창잡이는 온 힘을 다해서 카시마르를 벽으로 미는 중이었다.
“야! 야! 야! 물러! 뒤로 물러나라고!”
도끼를 든 사내가 앞으로 나서자 창잡이가 얼른 소리쳤다. 카시마르의 모습이 보인 건 아니었다.
창잡이는 창끝으로 전달되는 진동을 느꼈다. 그의 창은 상대를 묶어두는 데 특화된 창으로 살에 파고들면 갈고리 같은 장치가 튀어나와 상대를 묶어버리는 거였다. 그래서 그는 카시마르의 움직임을 계속 느낄 수 있었다.
“위쪽 가드해!”
도끼 유저도 나름 코즈믹 게이트의 고수였다. 그는 동료들의 조언을 바로 받아들여서 도끼를 위로 치켜올렸다. 그러나 카시마르는 그들보다 몇 수는 앞서 있었다.
위에서 아래로 뿔을 내려치던 카시마르는 다른 쪽에 들고 있는 뿔로 도끼 유저의 허벅지를 찔러넣었다.
“큭!”
도끼 유저가 잠깐 움찔하면서 물러나자 그대로 허벅지를 찌른 뿔을 위로 그어 올렸다.
뿔의 날카로움은 어마어마했다. 도끼 유저의 갑옷을 간단히 뚫고 올라가 몸의 절반을 베어버렸다.
도끼 유저가 슬래셔 무비에서 볼 법한 모습으로 쪼개져서 주춤거렸다.
산전수전 다 겪은 유저들도 인상을 찌푸릴만한 잔인한 모습.
미성년자인 유저들에게는 단순히 베어진 모습만 보일테지만 성인 유저들에게는 그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일 것이었다.
휘잉! 탁!
서걱!
카시마르가 다음으로 수행한 동작은 바로 두 개의 뿔 하나를 던져서 딜러 하나를 맞추고, 창잡이의 창을 붙잡아 당기는 것. 창잡이의 스킬 때문에 밀려난 카시마르였지만 힘으로 따지면 창잡이는 그에게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창잡이를 끌어당긴 카시마르는 그대로 앞으로 몇 발자국 걸어가서 목을 베어버렸다.
창잡이의 목이 가볍게 몸에서 분리되어 떨어졌다.
“대체 저 칼 뭐야! 무슨 칼이길래 저래!”
“야! 저거 공헌도 15만인가 때려 부어서 만든 거란다! 조심해!”
“공헌도?”
“이번 성전 있잖아!”
“저거 도트뎀 옵션도 있어! 잘 치료되지도 않는다!”
카시마르와 유저들 덕분에 이루카니아는 난장판이었다. 카타루온과 더불어서 2대 상업 도시로 불리는 이루카니아.
이곳은 제국 전역에서 상인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유동 인구 숫자만해도 어마어마했다.
그런 도시 한복판에서 유저들이 큰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보통 같았으면 제국의 병력이 투입되었을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잠잠했다. 게이트와 제국이 맺은 협약 때문이었다.
게이트의 여행자가 피해를 입히면 보상을 해준다. 대신에 게이트의 협조 공문이 내려오면 제국은 그것에 최대한 응할 의무가 있었다. 얼핏 보면 굉장히 불공정한 협약 같았지만 게이트를 통해 제국이 얻는 이익은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러니 제국에서 이 정도 헤프닝은 그냥 눈감고 넘어가주는 것이었다.
“후!”
카시마르는 피를 잔뜩 뒤집어 쓴 채 주변을 한 번 돌아봤다. 골목 하나에 시체가 가득한 상황이었다. 카시마르는 허리춤에 두 개의 뿔을 매달고 다시 터덜터덜 움직였다. 빠르게 움직여봤자 큰 의미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전투에 들어오지 않고 관전만 하고 있는 유저들.
카시마르는 그들이 진짜라는 걸 진즉에 알아차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상대한 유저들은 맛보기에 불과한 정도.
카시마르가 움직이자 건물 옥상에서 전투를 관람하던 유저들이 따라 움직였다. 그들은 카시마르를 지켜보면서도 서로에 대한 견제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젠장. 그냥 접는 게 낫겠는데?”
유저 하나가 말했다.
“저 무기 너무 딜이 강력한 거 같아. 탱커들도 순삭이네.”
“대체 무슨 옵션이 들어가 있는 거야?”
“공헌도를 다 때려 부어서 만든 거라서 어마어마한 딜링 옵션이 붙었다고 들었어요. 거기다 저 무기 재질도 아주 특수한 거고요.”
“그림자 가죽으로 방어구 만들면 역대급 아이템 나올 수도 있을 거 같다던데. 전설급 이 뜰 수도 있어요.”
“그걸 알지만 저쪽을 봐라.”
처음 말을 꺼냈던 유저가 건물 한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쪽에는 망토로 온몸을 칭칭 두르고 있는 숏커트 여성이 서 있었다. 새하얀 얼굴에 보라색 머리를 한 상태라 눈에 확 띄었다.
“저 여자가 왜요?”
“저 여자가 와서 지켜본다는 건 조금 있으면 저쪽 파티도 온다는 거거든.”
“저 여자가 누군데요?”
“파티라는 표현은 좀 그렇지. 너 저 여자 몰라? 도적 랭킹 3위잖아. 셀로니아.”
“아! 카니발!”
“그래 카니발 길드. 상위 랭커 12명으로 이루어진 길드. 다른 길드와 접촉이 없어서 그러지 파급력은 장난 아니지.”
“근데 카니발 길드는 사냥 길드 아니에요? 이런 이벤트에 관심 없는 곳으로 알고 있는데.”
“맞아. 근데 왜 셀로니아가 나와 있는 거지? 남의 것을 탐하는 길드가 아닐텐데?”
“남의 것을 탐하는 길드는 아니지만 명성에는 신경을 쓰지. 카니발이 갑자기 유명해진 이유 알잖아.”
“팀원 대부분이 클래스 별 랭킹 10위 안에 들어 있는 거?”
“전원 아니에요?”
“왔다갔다 해. 10위권 랭킹은 계속 바뀌니까. 그래봤자 거기서 거기인 유저들이 순위 다툼하는 거지만.”
“아무튼 예전에 길드전 때문에 유명해진 거지? 12명 인원으로 300명 넘는 길드랑 붙어 가지고 이겼잖아. 카니발이.”
“그거 길드전 영상 아직도 조회수 상위권이다.”
“그거랑 여기 나타난 거랑 무슨 상관 이에요?”
“그 카타루온의 늑대인간 원래 기록 보유자가 저쪽이었을 걸? 12명인가 11명으로 깬 거.”
“그걸 저 카시마르가 혼자서 깼다는 거지. 그니까 궁금해서 와본 거 아니겠어?”
“그럼 참전은 안 하겠네?”
“모르지. 이전까지 행보라면 참전 안 하겠다만.”
“저기. 카시마르가 골목 빠져나갔는데요? 따라가야하지 않겠어요?”
“저기 다른 유저들이 아직 안 움직이잖아. 카시마르 말고 저쪽을 따라서 움직이면 돼.”
“그나저나 일이 점점 커지는 느낌인데?”
“카니발이 참전해서요?”
“카니발이 와 있는 걸 알면 또 등장하는 길드가 있거든.”
“누구요?”
“누구겠냐? 길드전 해서 300명으로 덤볐다가 박살난 길드지.”
유저들이 떠들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카시마르는 천천히 걷고 있었다.
그때 유저들이 시선이 확 쏠릴만한 파티가 등장했다.
“타이탄 파티다!”
“와. 난리네. 난리야. 이거 우리는 그냥 구경만 해야겠다. 타이탄까지 떴네.”
타이탄이 현장에 나타나자 다른 유저들이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카니발 길드의 셀로니아가 등장했을 때보다 훨씬 큰 반응이었다. 그러나 그 반응은 다른 세력의 등장으로 묻힐 수 밖에 없었다.
“키아아앙!”
사람의 인상을 찌푸리게 만드는 기괴한 고양이 울음소리.
룽크의 등장이었다.
룽크를 대동하고 온 사내는 바로 월드 자크르 챔피언쉽에서 카시마르에게 졌던 사내 루지였다.
오늘 루지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는 대형 길드인 골드 로얄 소속의 대표 유저.
루지 뿐만이 아니었다.
월드 자크르 챔피언쉽에서 모습을 드러냈던 유저들이 어찌 알고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하나 같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카시마르를 지켜보고 있었다.
혼자 등장한 유저도 있었고 루지처럼 길드원들을 잔뜩 데리고 온 유저도 있었다.
어쨌든 그들이 가지는 무게감은 장난이 아니었다. 누가 더 강하고 누가 더 약하냐는 붙어봐야 아는 정도의 실력자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었다.
그들 중 그 누구도 자크르로 카시마르를 이기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무게감 있는 유저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하자 자잘한 전투가 아예 멈춰버렸다.
이제 카시마르를 공격하는 유저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침묵을 깨는 사람은 늘 존재하는 법이었다. 정적을 깬 사내는 바로 타이타노스였다. 타이타노스의 파티는 카시마르를 공격하지 않고 정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카시마르님이시죠?”
“맞습니다.”
“저는 타이타노스라고 합니다.”
“예.”
“저랑 자크르 한 번 하시죠.”
타이타노스의 말에 카시마르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타이타노스의 뒤쪽을 바라봤다.
“그 뒤에 분들은요?”
“저희는 날파리가 꼬이지 않도록만 할 거예요.”
“자크르 신청을 받아주시겠어요”
타이타노스가 말했다. 그러자 카시마르가 허리춤에 있는 두 개의 뿔을 꺼내들며 대답했다.
“그러죠. 그럼.”
늘 그렇지만 전투 신청을 마다할 리가 없는 카시마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