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
변이
꿀매너 길드원들의 지원으로 전황은 금세 뒤집혔다. 골드 로얄의 인원이 많기는 했지만 그곳도 랭커 급 고수는 그리 많지 않은 상황. 대형 길드의 가장 큰 문제는 랭커급 고수들이 모이기가 쉽지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꿀매너 길드는 달랐다. 그들은 대부분이 A랭크인 고렙들이었고 이번 성전을 통해서 가장 많이 성장한 유저들이었다. 양으로는 골드 로얄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적지만 질로는 훨씬 우위에 있었다.
거기다 존재감이 미미했던 골낳괴의 각성 아닌 각성으로 손쉽게 골드 로얄을 상대하는 중이었다.
꿀매너 길드의 힘은 상당했다. 특히 그들은 핏불킹이 있냐 없냐에 따라 전투력의 차이가 많이 달라진다고 할 수 있었다. 핏불킹은 혼자서는 정말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캐릭터였지만, 길드원들과 함께 있을 때는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했다.
[핏불킹이 ‘손에 손잡고’ 스킬을 사용하였습니다. 길드원 전체가 받는 데미지가 줄어듭니다. 또 자신이 받는 데미지를 길드원 전체에게 분산시킵니다. ]
핏불킹의 스킬은 다양했다. 그 다양한 스킬을 적절한 상황에 쓸 줄 알았다. 그런데다가 그냥 가만히만 있어도 주위에 버프를 주는 캐릭터라서 집단전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특히 ‘손에 손잡고’ 스킬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집단 전투에서는 사기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단순히 데미지를 분산시키는 것뿐이었지만 선두에서 활약하는 탱커들이 버틸 수 있는 힘을 주는 스킬.
이런 종류의 스킬은 서포터들이 많이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흔하다고 할 수 있는 스킬.
그러나 이 흔한 스킬도 그 범위가 길드원 전체에게 주는 것으로 가버리면 흔한 스킬이 아니게 되어 버린다.
“이분들은 너랑 싸웠던 타이탄 쪽 분들 아냐?”
“맞아.”
“안녕하세요.”
“아. 예. 안녕하세요.”
핏불킹은 카시마르에게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받았다. 꿀매너 길드원들이 오자 타이탄의 파티원들은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너 꽤 위험했었냐?”
핏불킹이 물었다.
“그냥 조금?”
“룽크가 그리 많았어?”
“어. 많더라고.”
“너 그거 버릇 안 좋다. 룽크 이빨에 독이라도 묻어 있었으면 어쩌려고 그래?”
“아니. 저쪽이 룽크만 보내놓고 간을 보더라고. 그래서 나도 일부러 잡혀주는 척했지.”
“타이탄이랑 싸울 때도 너무 받아주던데. 그거 타이탄이 알았으면 얼마나 기분 나빴겠냐.”
“아냐. 그쪽이 방패를 정말 기가 막히게 쓰더라니까?”
“그러긴 하더라. 그래도 방법이 없었던 거 아니잖아. 너 다크 영이랑 싸울 때 불러낸 걸 내가 봤는데 어디서 구라치냐.”
“그거야 비장의 카드로 남겨둔 거고.”
“검은 번개는?”
“그것도 남겨 놨지.”
“잔상은?”
“그것도.”
“그니까. 거의 반쯤은 일부러 받아준 거잖아.”
“뭘 받아줘.”
“형이 다 봤다니까. 인마. 그거 안 좋은 거야. 붙어줄 때 제대로 붙어줘야지.”
“아니라고. 검은 번개는 특수한 상황에서만 발현되는 거고. 잔상은 발현 코스트를 저쪽에서 딱, 딱 잘 자른거고. 소용돌이 소환하는 거는 진자 비장의 카드로 남겨놓은 거고.”
“내가 너를 아는데 자꾸 오리발 내밀래? 네가 마음 먹었으면 바람 이용해서 얼마든지 파고들어 상대할 수 있었잖아. 상대가 아무리 방패 컨트롤이 좋고 상성상 유리하다고 해도 틈이 없는 건 아니었어. 딱 보니까. 타이탄이 가지고 있는 기술이 신기해서 더 보려고 한 거드만. 나중에 비슷한 상대 만났을 때 활용하려고.”
“그런 감은 있지만 그래도 강한 상대였어. 힘도 좋고.”
“야. 그런 거는 진짜 자크르 상황일 때나 하라고. 뭔 배짱으로 널 노리는 놈이 사방에 있는데 그러고 있냐.”
“어쨌든 잘 해결되었잖아.”
“잘 해결되긴 개뿔. 네가 아까 그 기술 안 썼으면 지금 저놈들 상대로 이러고 있지도 않겠다. 한 방에 다 날려버렸을 테니까. 거기다 타이탄이 네가 기술 받아주고 있었던 거 알면 얼마나 기분 나쁘겠냐. 되게 진지하게 싸우던데.”
“나도 꽤 힘들었다니까.”
“근데 너 타이탄이랑 예전에 만난 적 있냐?”
핏불킹이 물었다. 카시마르는 생명력을 회복하는 중이었고 주변은 꿀매너 길드와 골드 로얄 길드의 싸움이 지속되고 있었다. 숫자는 골드 로얄이 훨씬 많았지만 꿀매너 길드가 훨씬 유리한 상황이었다.
“아니? 왜?”
“너랑 뭔가 사연이 있는 거 같던데. 확실해?”
“뭔 사연.”
“타이탄이 그냥 와서 대뜸 자크르를 하자고 할 사람이 아니거든.”
“타이탄에 대해 좀 알아?”
“타이탄 플레이를 자주 봐. 그래서 좀 알지.”
“아. 형이 맨날 똥쌀 때마다 보는 게 타이탄 관련 영상이었어?”
“너는 말을 해도 꼭 그렇게 인마. 형이 나이가 몇 개인데. 엉? 타이탄 쪽 애들이 사냥을 좀 신박하게 해. 재네들이 뿌린 공략법이 꽤 돼. 너 정말 몰라?”
“몰라. 난 기억에 없는데.”
“잘 더듬어 봐.”
“더듬긴 뭘 더듬어. 예전에 투기장에서 놀 때 상대했던 사람인가.”
“그럴 수도 있고.”
“근데 그때 상대한 게 한 두명이겠어?”
카시마르는 핏불킹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생명력을 회복했다. 생명력이 보통 유저들과는 단위 자체가 다른 카시마르였기 때문에 생명력을 회복하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지금 카시마르는 스탯이 제대로 확인되는 상태가 아니었다. 우주적 명성을 회복한 뒤로 점점 스탯들이 비공개로 바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생명력이 어느 정도 남았는지는 확인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유저들에게 공개되는 생명력 창은 그대로 남아 있었으니까.
카시마르는 전투를 지켜보면서 핏불킹과 이야기를 나눴다. 대부분 타이탄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형은 그 사람들을 우리 길드로 데려오자는 거야?”
“어. 아까 봤잖냐. 웬만한 인성 아니고서는 자기 팀 졌는데 그렇게 도와주고 쉽지 않다. 그 정도면 합격이야.”
“형. 우리가 합격하고 말고 할 게 뭐 있어. 그쪽이 우리쪽으로 합류하고 싶어해야지.”
“그니까 잘 기억을 해봐. 타이탄이 너한테 이럴 이유가 없어요. 그쪽은 원래 사냥만 열심히 하고 그런 유저들인데.”
“어휴 어떻게든 엮어서 해보려고.”
타이탄과 카시마르는 코즈믹 게이트로 엮여 있지 않았다. 그러나 둘은 서로 아는 사이라고 할 수 있었다. 카시마르만 타이탄에 대해서 모를 뿐이었지, 타이탄은 카시마르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타이탄은 카시마르가 아닌 유중악과 관련이 있는 사내였다.
“야! 언제까지 자빠져 있을 거야.”
“왜?”
“너는 안 싸울 거냐?”
“알아서 잘 싸우는 데 뭐.”
“야! 저쪽 밀리잖아. 빨리 출동해.”
“아이씨. 알았어.”
“아. 맞다. 너 강숭이 좀 소환해 놓고 가.”
“왜?”
“그놈이 아까 나보고 복화술로 쌍욕 하더라? 대머리 새끼 말 드럽게 못 알아 먹는다고 하던가.”
“크크크 그랬어?”
핏불킹의 말에 카시마르가 웃었다.
“너 못 들었지?”
“응. 나는 그냥 둘이 이야기하게 내버려 뒀지. 별로 이상한 낌새는 못 느꼈어.”
“그놈 그거 따로 교신하는 능력 있는 것 같던데.”
“어떻게?”
“그니까. 대화 도중에 네가 안 들리게 말을 전달할 수 있다니까. 거 있잖냐. 예전에 상담원들이 뮤트 버튼 누르고 다른 사람이랑 이야기하는 거 같이 말이야.”
“아? 그래?”
“응.”
“알았어.”
“뭐가 알았어야. 인마. 그거 꽤 심각해.”
“뭐가 심각한데.”
“그놈 성전 때 봤지?”
“봤지.”
“설정대로라면 그놈이 그레이트 올드원이라는 거 아냐. 우주에서 가장 센 놈.”
“그렇지.”
“그러면 그놈 친구들은 어떨 거 같냐?”
“세겠지.”
“너 그놈이 자주 오른우랑 교신한다고 했지?”
“어. 아.”
핏불킹의 설명을 듣던 카시마르가 그제서야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랬어. 그놈은 사람이 아니긴 하다만. 아무튼 졸라 악랄하고 음흉한 놈 아냐.”
“음흉하지. 그리고 예전에도 비슷하게 걸린 적 있었어.”
“언제?”
“오른우 이야기 해줬잖아. 그 게이트 면접관.”
“어.”
“그놈한테도 몰래 지령을 내리더라고. 복화술로. 근데 오늘 형이 말한 건 처음 알았네.”
“그놈이 실수한 거지. 워낙 자연스럽게 넘어가서 나도 그냥 넘어가려고 했었거든. 근데 형이 누구냐. 인마! 엉? 형이 바로 그 MMA계의 전자 두뇌 천재 전략가 아니냐! 인마 딱 보면 슥! 자슥아!”
“아. 아주 조금 감동 받을 뻔 했는데. 내 감동 물어내.”
“야! 야! 인마 목! 졸려! 죽겄다!”
***
카시마르는 꿀 매너 길드의 지원을 받아서 무사히 이루카니아를 벗어날 수 있었다. 투기장으로 들어간 카시마르는 투기장 안에서도 유저들의 공격을 받았지만, 그의 저택 안으로는 유저들이 들어올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아니. 무슨 시스템이 이래. 투기장 안에서도 공격이 가능하냐고. 괜히 방심했다가 박 터질 뻔 했잖아.”
핏불킹이 투덜거렸다.
“형. 그래도 여기까지는 못 들어오니까 다행이죠.”
“당연히 그래야지. 여기는 대회 우승자 혜택인데. 여기까지 침범할 수 있으면 그건 진짜 아니지.”
카시마르의 저택은 어마어마하게 넓었다. 제국 귀족들의 저택만큼은 아니었지만 꿀매너 길드원 정도는 가볍게 수용할 수 있었다.
“형. 근데 그 아이템은 어떻게 변했어요?”
“계속 변화하는 중이야.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어.”
카시마르가 들고 있는 늑대인간의 그림자 가죽은 계속 변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그거 재료에서 아이템으로 바로 변하는 시스템 아닐까?”
“따로 방어구로 만들 필요 없이?”
“어.”
“그게 되는 건가.”
“느낌이 그래. 네가 계속 가지고 있으면 너한테 딱 맞는 방어구로 변하는 거지.”
“가죽 갑옷이 나올 수도 있겠네요.”
“이놈은 가죽 갑옷은 별로일 걸? 힘이 워낙 좋아서 탱커들이 입는 갑옷도 가볍게 다루는 놈인데. 가죽 갑옷은 기본 방어력이 탱커형 갑옷보다는 약하니까.”
핏불킹이 말했다.
“그래도 옵션이 어마어마하게 좋은 게 나올지도 모르죠.”
“그럴 수도 있지. 여튼 좋은 템이 나오는 건 확실해. 재료 때부터 영웅 등급이니까.”
“반대일 수도 있어.”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카시마르가 말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카시마르를 일제히 쳐다봤다.
“뭐가 반대라는 소리에요?”
“반대로 안 좋아질 수도 있다는 거야.”
“좋아진다고 나왔다면서요.”
“저놈. 예전에 역대급으로 똥을 받은 적이 있잖냐.”
핏불킹이 말했다.
“아.”
그러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시마르가 미러존의 괴물을 상대한 뒤 받은 아이템에 대해 꿀매너 길드 사람들은 대부분 알고 있었다.
“그 저주 아직도 안 풀렸죠?”
“푸는 방법도 몰라.”
카시마르와 길드원들은 그림자 가죽이 변화한 모습을 보고싶어서 계속 기다렸지만 쉽사리 변이가 끝나지가 않았다. 결국, 카시마르는 저택에서 기다리다가 접속을 해제할 준비를 했다. 스파링을 해야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저택을 떠나서 각자 할 일을 하는 중이었다.
“오늘 그냥 접속 해제해?”
“왜?”
“강숭이.”
“그놈은 나중에 시간 널널할 때 손을 봐줘야지.”
“나 있을 때 해라.”
핏불킹의 눈빛이 매섭게 반짝였다.
“그래. 이번 기회에 버릇을 싹 고쳐놔야지.”
“내가 지금 중세시대 고문 방법을 검색 중이야. 싹 정리해서 다 시행해보자.”
“형. 그건 너무 잔인해. 동물 학대야.”
“미친. 강숭이가 동물이냐? 괴물이지.”
“그러다 나중에 보복당한다.”
“어쩔 거야. 그때 되면 게임 접지 뭐. 저놈은 진짜 제대로 다뤄놔야 해. 꼬리가 천적이라는데도 저리 정신을 못 차리잖냐.”
“어마어마한 세월을 저리 살아왔는데 그게 쉽게 고쳐지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아무튼 먼저 접속해제 해라. 난 팔 아이템 있어서 상점 들려야 해. 좀 있다 보자.”
“알았어.”
핏불킹이 저택에서 빠져나가자 카시마르는 바로 접속을 해제했다. 카시마르가 접속을 해제한 사이에도 그림자 가죽은 계속 변이를 일으키며 변화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가죽 모양이던 것이 이제는 점점 모양새가 갖춰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