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주캐로 멱살 캐리-119화 (119/205)

# 119

재회

“이놈. 얼굴이 더 폈네. 어째 운동할 때보다 더 좋아 보이냐.”

조용일이 말했다. 조용일은 예전과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흰머리가 나기 시작한 조용일이었지만, 요즘은 염색 기술이 좋아서 아주 자연스럽게 보였다.

“삼촌도 좋아 보이는데요.”

“나는 요새 걱정이 없지. 먹고 사는 문제는 이제 다들 해결되었으니까. 환선이 기억하냐?”

“환선이형이 알죠. 환선이형 미국에 있지 않아요?”

“그놈 얼마 전에 스포츠 용품샵 크게 하나 올렸다. 트레이너 그만 두면서 받은 퇴직금으로 차린 모양인데 꽤 잘되는 모양이야.”

“에이. 대표님도. 그거 대표님이 많이 도와주셨잖아요.”

윤창선이 조용일의 말을 거들었다.

“나는 돈 조금 투자한 것 밖에 없지. 환선이가 열심히 일한 거야. 아무튼 환선이를 마지막으로 우리 팀에서 일했던 친구들 먹고 사는 걱정은 다 덜었다.”

“안젤라와 영태형은 어때요?”

“안젤라와 영태는 걱정 안 해도 돼. 잘 살고 있으니까. 너랑 자주 연락 안 하냐?”

“해요. 혹시나 뭐 힘든 일 있나 싶어서요. 안젤라나 영태형이나 무슨 일 있으면 이야기 잘 안 하잖아요.”

“힘들 게 뭐가 있냐. 다들 바르게 살고 있는데. 정말 네가 필요할 정도의 일이 있으면 알아서들 다 연락할테니까. 걱정하지 말아. 연락 없는 게 좋은 거야.”

오랜만에 선수 시절을 함께 했던 사람들이 모이니 안부를 묻는 것만으로도 이야기가 길어졌다. 물론, 스파링과 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유중악은 한국 격투계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인물이었다. 한국 격투기뿐만 아니라 격투기 시장 자체를 메이저로 끌어올린 인물이기에, 그가 은퇴한 뒤 격투기 시장이 위축되는 것을 우려한 목소리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유중악이 은퇴한 뒤로 격투기 시장은 위축되지 않았다. 슈퍼 스타의 부재에도 전체 시장이 꾸준히 성장을 했다.

유중악이 활동할 때 만해도 CFC가 전체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지만, 이제는 규모 있는 다른 단체도 많아진 상황이었다.

세계적으로 격투기 관련 시장은 계속 커지고 있는데 한국 격투기는 유독 침체를 면하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유중악 이후에 좋은 성적을 내는 선수가 없어서 팀 사일런스 수장인 조용일 입장에서는 아쉬운 마음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요새 유망주 찾고 키운다고 윤감독이 애 많이 쓴다. 그니까 이번 기회에 너도 잘 보고 한 번 피드백을 줘봐.”

“제가 뭐 본다고 알까요.”

“그래도 트레이너가 보는 눈과 전 챔프가 보는 눈이 다른 게 있겠지.”

“몇 명이나 스파링 붙이시게요.”

오정룡이 물었다.

“이런 기회가 또 오냐? 넌 이제 선수도 아니니까. 이번 기회에 제대로 해야지.”

조용일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자 유중악도 따라 웃었다.

“대표님. 중악이 이 녀석 현역 때보다 몸 좋아요. 괜히 자극 했다가 팀 얘들 멘탈 나갑니다.”

“그 정도로 몸 관리를 했어? 이제 나이도 있어서 좀 떨어질 때 아냐?”

“이놈이 은퇴했다고 운동을 그만두겠어요? 주먹 수술한 다음에 복귀 한다고 한 3년은 이전보다 더 빡세게 했고, 그 뒤로는 다른 무술 섭렵한다고 자료 모아서 연구하고. 아마 할 수 있는 중국 권법도 한 수십가지 될 걸요?”

“중국 권법은 겉핥기 수준이야. 어차피 형만 익히는 거니까.”

“그것도 보통 사람은 오래 수련해야 돼.”

“자. 그만 이야기하고 준비 다 되었을 거니까 시작하죠.”

“그래. 이야기는 조금 있다가 회식 때 하면 되니까. 오코치. 회식 장소는 알아 봤어?”

조용일이 물었다.

“이 대표가 내려온다고 했어요. 우 대표님은 급한 일로 중국에 가 있고요.”

유중악과 팀 사일런스 유망주들의 스파링이 시작되었다.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모인 터라 스파링은 5분 1라운드씩만 하고 기술이 제대로 들어가면 그대로 중지하기로 합의했다.

오정룡은 유중악의 세컨을 보기로했다. 세컨이라고 해봤자 기술 전략을 지시하는 게 아니라 스파링 하나가 끝나면 다음 스파링을 원활하게 할 수 있게 챙겨주는 정도였다.

“대부분 너보다 체급이 낮아. 그니까 살살해.”

윤창선이 말했다.

“미국에서 온 친구는 라헤급 정도는 되어 보이는데요?”

오정룡이 선수들 중에서 유난이 큰 체격의 선수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어. 윌 포트. 저 친구는 가라데를 오래 했다고 들었어.”

“가라데요? 특이하네.”

“특이하지?”

“하긴 뭐 요즘 무술이 전 세계적으로 잘 보급이 되어 있으니까 크게  놀랄 일도 아니겠네요.”

유중악이 말했다. 그러자 윤창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 활동할 때 만해도 가라데 출신은 드물었지. 요즘은 많아.”

“근데 가라데만 한 거에요?”

“가라데 하면서 MMA도 한 거 같아. 그렇지만 주는 타격.”

“일본 가라데 선수들이랑 비슷하다고 보면 되나?”

“좀 성향이 달라. 영상 보니까 가라데를 독특하게 풀어놨더라고.”

“스탠스 멀게 해서 반달차기 섞고 가드 바짝 올리고 그런 식인가요?”

“약간 그런 느낌이지. 그러면서 펀치 완성도도 떨어지지 않고. 양훅이 좋아.”

“그런 스타일을 확립했다면 롱런할 수도 있겠네요. 체격도 좋고.”

“잘 성장하면 그럴 수 있겠지.”

“흑인 특유의 탄력과 가라데의 조합이라. 신선하긴 하네.”

오정룡이 유중악을 툭 치면서 말했다.

“그러게. 스타일 잘 확립했으면 좋겠네.”

“그렇게 되면 간만에 재미난 선수 하나 나오는 거겠지. 이번 기회에 네가 잘 좀 알려줘.”

“본인이 깨달아야지.”

스파링이 시작되었다. 유중악과 스파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수준이 높은 선수들은 대부분 프로로 뛰고 있는 선수들이었다. 프로 생활을 하는 선수들이어서 그런지 스파링을 임하는 태도가 진중했다.

퍽!

유중악의 미들킥이 정확히 들어갔다. 왼손 잽을 살짝 주고 왼손을 한 번 더 살짝 흔들어 더블 잽 시늉을 한 다음에 왼발 미들킥을 날린 것이었다.

그 미들킥을 맞은 윌 포트는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났다가 갑자기 인상을 찌푸리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호흡을 들이마실 때 제대로 공격이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윌 포트의 기량은 나쁘지 않았다. 팀 사일런스의 미국 지부를 대표해서 전설과 스파링을 하러 날아온 사내. 당연히 제일 가능성이 높은 그쪽에서 보냈다.

197cm 큰 키에 길쭉한 체격.

평체가 110kg이 넘지만 체지방이 15% 이하로 유지될 정도로 타고난 피지컬을 가진 사내였다.

그뿐인가?

가라데를 베이스로 하여 독자적인 스타일을 구축하여 나름 언더에서는 잘 나가고 있는 선수였다.

아마추어 입식 전적 16승 무패

아마추어 MMA 전적 7승 무패

프로 MMA 전적 9승 무패.

레슬링 오펜스나 그라운드 오펜스는 아직 부족한 면이 있다고 평가 받았지만 스탠딩 하나만큼은 CFC 탑클래스와 견주어도 무리가 없다는 평가가 있었다. 실제로 CFC의 탑 랭커의 스탠딩 스파링 상대를 한 적도 있었으니까.

그런 윌 포트가 가벼운 킥 한 방 맞추질 못했다.

‘대체 뭐냐고 저 스텝은!’

유중악이 선수생활 끝자락에 완성한 특유의 스텝은 그가 그보다 훨씬 큰 선수들과 싸울 수 있도록 해주었다.

기본은 스위치 스탠스.

그러나 스위치를 잘 쓰는 유명 선수들의 스텝을 분석해서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스텝은 선수 생활이 끝났다고 해서 발전이 멈춘게 아니었다.

유중악의 스텝은 은퇴 뒤에도 계속 발전했다. 그 발전한 스텝이 여러 명과 스파링을 하면서 슬슬 튀어나오고 있었다.

윌 포트의 디펜스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유중악과 수싸움을 하기에는 아직 한참 모자랐다. 유중악 위협적인 더블 잽을 날리고, 더블 잽 로우킥, 잽, 더블 잽 페이크 후 스트레이트

같은 공격을 섞어서 윌 포트를 어지럽게 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유중악의 스탠스는 계속 변화하고 있었다.

단순히 자세를 바꿔서 거리감을 어지럽히는 게 아니었다. 진짜 전투 도중에 자세가 자연스럽게 바뀐다.

히로시의 스위치 게임이 타고난 것이라면 유중악은 그러한 부분은 타고나지 않았다. 히로시는 정말 보기 드문 양손잡이였으니까. 그러나 유중악은 노력으로 히로시보다 더 완성도 있는 독자적인 스텝을 만들어버렸다.

유중악읜 헤비급에서까지 활동했고 히로시는 밴텀, 페더, 라이트급에서 활동을 했으니 유중악의 기량이 얼마나 뛰어난 건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만.”

윌 포트도 2분을 넘기지 못하고 주저 앉았다. 이제 팀원들은 환호도 하지 않고 있었다. 처음에는 유중악의 기량에 큰 소리로 반응하던 그들이 이제는 기가 완전히 죽어버린 것이었다.

“오코치야.”

스파링을 지켜보던 조용일이 오정룡을 불렀다.

“예.”

“저놈 저거 예전보다······.”

“예. 맞아요. 데루데르 이야기 들으셨잖아요.”

“그놈이야 뭐······ 손에 들어간 게 있으니까. 맷집이 워낙 괴물 같아서 버틴 거지. 사실 따지자면 중악이한테 제일 좋은 상성이잖아. 1차전에 컨디션 최악 더하기 부상만 아니었으면 그리 끌 것도 아니었지.”

“아무래도 시야가 넓어진 게 도움이 된 것 같아요. MMA의 뿌리는 어쨌든 무술이니까요.”

“그것도 도움이 되었겠지만 고민할 시간이 많아졌으니까요.”

“하긴 그것도 도움이 되겠지. 그전에는 주위에서 다 도와줬지만 은퇴한 뒤로는 혼자서 생각하고 움직였을 테니까. 그게 또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줄 수 있는 거니까. 근데 저놈 이제 아저씨 소리 들을 나이인데도 저리 팔팔하니. 어째 우리만 나이 먹는 느낌이 들어.”

“에이 대표님. 저는 빼주십쇼. 저는 연식이 다르지 않습니까!”

오정룡이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자 윤창선이 오정룡의 뒷목을 잡았다.

“아! 감독님 왜 이러십니까!”

“대표님. 이놈 이거는 언제 좀 사람 될까요.”

“될 놈이었으면 진즉에 됐겠지. 나둬라. 그게 오코치 매력 아니겠냐.”

“아오! 윤형! 아프다니까요!”

“뭐? 윤형? 이게 뒤질라고 진짜.”

“그리고 대표님. 저 감독으로 은퇴했습니다. 언제까지 코치로 부르실 겁니까.”

“은퇴했으니까 코치라고 부르는 거야. 그나저나 시간은 얼마나 됐어?”

“실제 스파링 시간은 40분 정도네요.”

“프로 20명 상대하는데 2분 컷이 나왔다는 거네. 저 정도면 현역 아니야?”

“현역 때보다 더 하죠.”

“거참. 그렇다고 다시 복귀시킬 수도 없고.”

“이거 팀 애들 사기 좀 올리려고 생각한 이벤트인데 그 반대가 되어버렸네요. 다들 표정 보세요.”

윤창선의 말에 조용일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살아 있는 전설과 함께 운동을 한다는 건 어마어마한 영광이지만 이 정도로 수준 차이를 느껴버린 다면 회의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유중악은 은퇴한 선수였다. 그와 아주 가까운 사람들은 그가 현역 때보다 더 강해졌다는 걸 알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걸 알지 못하니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한 번씩 더 해보는 게 어떨까요?”

“오코치 중악이 몸 상태 괜찮겠어?”

“컨디션 체크했는데 괜찮았습니다. 저놈한테 저 정도는 운동도 아니고요. 보세요. 땀도 거의 안 흘렸습니다.”

“그럼 가서 이야기 좀 해봐.”

“이번에는 지원자들 다 들여보내서 해보라고 하는 게 어떨까요?”

오정룡이 말했다.

“그래도 되려나?”

“어차피 중악이한테는 크게 다를 게 없어요. 오히려 더 좋아할 걸요?”

“그러면 한 번 이야기해봐. 그리고 체력적으로 부담 되면 바로 이야기하라고 하고. 농담으로 굴린다고 이야기 했지만 그러면 안 돼. 아무리 우리랑 각별하다고 해도 지킬 건 지켜줘야지.”

“대표님도. 저놈이 스파링 마다하는 거 봤습니까? 전투 중독자 수준인데. 그거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자기 몸 잘 챙기는 놈이에요.”

“하긴 그렇죠. 선수 때부터 컨디션을 민감하게 챙기는 걸로 유명했으니.”

“아무튼 잘 이야기 해봐.”

유중악은 제의를 받아들였다. 원래 예정보다 훨씬 많은 스파링을 소화했지만 체력적으로 문제 되는 일은 없었다. 훈련이 끝나고 팀 사일런스 전체가 회식 장소로 넘어가 회식을 했다. 회식은 늦게까지 이어졌고 유중악은 현역 때와 다르게 술을 마시면서 즐겁게 회식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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