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
원정의 시작
“아이고! 선생님! 왜 또 그러십니까요!”
“왜 또 그러십니까요?”
요 근래 카시마르는 핏불킹과 함께 강숭이 교육을 실시하고 있었다. 강숭이는 이미 몇 번이나 카시마르의 뒤통수를 치려 한 전적이 있었기 때문에 더 확실한 교육이 필요했다.
“인마! 네가 예전에 달리 달로스인가 뭔가 하는 곳에서 한 짓을 생각해봐. 이 숭악한 놈아. 이 정도는 그냥 신체검사 수준이지.”
핏불킹이 말했다. 말투와는 다르게 핏불킹의 앞에는 무지막지한 도구들이 널려 있었다.
“아니! 도대체 왜 이러시는지 말씀을 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요. 며칠 동안 아무 말씀도 없이 이러시는 건 정말 너무하십니다요! 흑!흑!”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 강숭이. 그의 표정은 아주 리얼했다. 그러나 카시마르와 핏불킹의 표정은 미동하나 없었다. 강숭이가 펑펑 눈물을 쏟으면서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다. 그러자 카시마르가 시간을 확인하고는 인상을 썼다.
“아슬아슬 했네. 맞지?”
“그래.”
“어여 넘기셔.”
강숭이가 처절하게 우는 모습에 둘은 관심이 없어보였다. 그 모습이 마치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카시마르와 핏불킹은 전혀 상관 하지 않았다.
촤륵!
카시마르가 코인 스무 개를 꺼내서 핏불킹에게 넘겼다. 강숭이는 그 모습을 어리둥절하게 바라봤다.
“딱 보면 답이 나온다니까. 내가 그랬지? 그렇게 어마어마한 죄를 저지른 놈들이 하루아침에 달라져? 몇 대 두들겨 맞는다고? 세상에 그런 사기가 어딨냐. 고문 기술자가 신학교 다녀서 목사 되었다는 이야기가 더 현실성 있네. 안 변해. 이런 놈들은 안 변한다니까?”
“참나. 어떻게 시간까지 딱 맞추냐.”
“저기. 선생님들?”
강숭이가 고개를 들어서 핏불킹과 카시마르를 바라보며 말했다. 왠지 소외 받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카시마르는 자연스럽게 꼬리를 소환했다. 꼬리는 소환되자마자 강숭이에게 박치기를 먹이고 공격을 퍼부었다.
“네가 저놈을 파악하는 것처럼 저놈도 널 파악했겠지. 나쁜 짓이란 나쁜 짓은 다 했던 놈인데 그게 어디 가겠어?”
“그래도 시간까지 맞추는 건 너무 하는 거 아냐? 자리 깔아도 되겠네.”
“그 시간을 맞추는 디테일이야 말로 천재와 범인을 가르는 경계지.”
“아. 예에.”
“잘 생각을 해봐라. 저놈이 맞은지 몇시간 안 돼서 눈물 흘리고 바짓가랑이를 잡는다고 치자. 그러면 진정성이 있어 보이냐? 그렇다고 마냥 두들겨 맞을 수는 없지. 그니까 적당한 시기를 봤을 거야.”
“그니까 그게 3일이라는 소리잖아.”
“그러취. 난 딱 3일 끝나는 시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정확히 맞았네. 사실 그보다 일찍 백기를 들 줄 알았거든. 그 말은 저놈이 참······.”
“독한 거지.”
“아니. 음흉한 거지. 아무튼 넌 너무 정면 돌파야. 저런 숭악한 놈은 그냥 두들겨 팬다고 되는 게 아니라니까? 아주 잘 구워 삶아야 해.”
“형은 자신 있고?”
“네 방법이 통하질 않는다는 건 이미 증명이 된 거 아니냐?”
“그니까. 어떤 방법을 쓰려고?”
“있어 봐. 넌 그냥 지켜보기만 해.”
사실 카시마르도 계약서를 이용해서 강숭이를 압박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강숭이는 원숭이와 다름 없는 모양새였지만 그레이트 올드 원이었다. 웹상에 퍼진 정보에 의하면 아우터 갓과 싸우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흉폭하고 답이 없는 존재가 바로 강철 원숭이었다. 그런 강철 원숭이니 카시마르가 쉽게 제압할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카시마르 입장에서 강숭이를 소멸시켜 버릴 수도 없었다. 그의 플레이에 강숭이만큼 도움 되는 존재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강숭이는 불가사의한 맷집과 바퀴벌레가 최종 진화를 한 것과 비슷할 정도의 생명력을 지니고 있었다.
한 마디로 죽질 않는다는 의미.
그렇게 두들겨 맞고도 죽질 않았니 불사신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겠다고 카시마르는 생각했다. 그래서 카시마르는 위기의 순간이 오면 강숭이를 방패로 쓸 생각도 하고 있었다. 강숭이가 들으면 기겁할 일이지만.
***
자칭 천재 지략가 핏불킹의 방법은 카시마르보다 더 심플했다. 카시마르는 원하는 걸 얻을 때까지 강숭이를 들들 볶았는데, 핏불킹은 그런 게 없었다.
이유가 없다.
이유가 없으니 질문도 없었다. 그러니 강숭이가 무슨 이야기를 하던지 무시 할 뿐이었다. 무시 하고 끝까지 강숭이를 괴롭힌다. 그런 상황에서도 음흉하게 끝까지 버티던 강숭이는 이제 모든 걸 내려놓고 털어놓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강숭이는 카시마르의 손을 벗어나려고 많은 계획을 세워둔 상태였다.
“이렇게 끝나는 건 아니지?”
“거의 우주의 역사만큼 오래 산 원숭이의 말을 믿냐? 저놈 저렇게 해도 다른 계획 세울 거야.”
“그러면 끝까지 밀당을 하면서 살아야하네?”
“아니지. 주기적으로 이렇게 한 번씩 푸닥거리를 해줘야지. 어쩔 수 없어. 저놈을 데리고 다니려면 이 정도 불편함은 감수해야 한다.”
“그래.”
그래도 수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카시마르는 거의 일주일 가까이 저택에서 못 나가고 있었는데, 그건 바로 그림자 가죽 때문이었다.
그림자 가죽은 어느 정도 변이가 지속되었다가 어느 순간 멈춘 상태였다. 당연히 카시마르는 왜 변이가 멈췄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문제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강숭이가 쥐고 있었다.
“그게 말입니다요.”
“빨리 말해.”
“진짜 이거 말씀드리면 이제까지 일은 용서해 주시는 겁니까요?”
“내가 너한테 거짓말 하는 거 봤냐?”
“네.”
“네라고?”
“아! 아닙니다요. 선생님은 거짓말 안 하십니다요!”
온몸에 벌이라도 쏘인 것처럼 퉁퉁 부은 강숭이를 보고 있으니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카시마르는 그 모습에 속질 않았다. 강숭이는 카시마르를 갈기갈기 찢어서 죽이려고 했다. 겉모습은 불쌍한 원숭이었지만 그 속은 누구보다도 악랄한 존재인 것이었다.
“그래. 그니까 털어놔봐. 그림자 가죽이 뭐라고?”
“그게 아마도 게이트에서 심어놓은 퍼즐 중 하나일 겁니다요.”
“퍼즐?”
“일단 그림자 가죽을 준 놈에게로 넘어가면 변이가 완성될 겁니다요.”
“퍼즐은 또 무슨 소리야?”
“그게 말입니다요. 원래 게이트를 만든 이유가······.”
위잉!
강숭이가 말을 하려는 순간 갑자기 굉음이 들렸다. 그리고 주변에 이상한 기운이 서리기 시작했다. 전에 경험한 적 있는 기운이었다.
갑자기 쏟아지는 강렬한 빛!
“뭐야!”
빛이 쏟아지고 머리에 월계관을 쓴 사내가 튀어나왔다. 카시마르와 핏불킹은 당연히 처음 보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강숭이는 처음 보는 게 아닌 것 같았다.
“그 정보는 누설할 수 없는 정보입니다. 아베다님.”
“뭐? 그럴 리가 있나.”
“아베다님이 게이트를 떠나신 뒤에 바뀐 일입니다.”
“그래서? 어쩌겠다는 거지?”
“같이 가주셔야 겠습니다.”
월계관을 쓴 자가 단호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강숭이는 퉁퉁 부은 얼굴은 그대로였지만 눈빛은 이전과 달랐다. 냉철한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실례하겠습니다.”
월계관을 쓴 자가 정중히 인사를 하고 손을 뻗자 강숭이의 모습이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월계관을 쓴 자는 카시마르와 핏불킹을 그제야 바라봤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코즈믹 게이트 소속인 아폴론이라고 합니다.”
“아폴론?”
아폴론이라는 말에 핏불킹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폴론의 표정은 차분했다.
“ 그 아폴론이 맞습니다. 현재는 게이트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방금 같은 규정에서 벗어나는 상황이 발생하면 개입 하는 일을 하고 있지요.”
“방금 강숭이가 하려던 말이 규정 위반이라는 소리입니까?”
“예.”
아폴론은 단호하게 말했다.
“강숭이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는 이제 게이트 소속이 아닙니다. 카시마르님. 당신에게 묶인 상태이지요. 그러니 저희가 크게 할 수 있는 부분은 없습니다.”
“계약서에 묶인 상태여도 게이트와 관련된 일을 말할 수 없다는 거로군요?”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핏불킹이 끼어들었다. 그러자 아폴론이 살짝 놀란 눈빛으로 핏불킹을 바라봤다. 핏불킹의 말은 상당히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곧 돌아올 겁니다.”
“얼마나 걸립니까?”
“······.”
카시마르의 질문에 아폴론은 대답을 하지 않고 사라졌다.
“뭔가 큰 비밀이 숨어 있는 모양인데?”
“아직 공개할 부분이 아닌가보지. 아니면 직접 알아내야 할 수도 있고.”
“그니까 강숭이 저놈을 잘 컨트롤 해. 네가 얻은 것들 중에서 제일 사기인게 저놈이니까.”
“알고 있어.”
“그래도 그림자 가죽 클리어하는 방법은 알아냈네.”
“나가면 엄청 귀찮아질텐데.”
“위치 알잖아. 그러면 방법 있지. 길드원이 폼으로 있냐?”
길드의 도움으로 카시마르는 저택에서 바로 카타루온의 늑대인간이 있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카타루온의 늑대인간은 카시마르와 마주하자마자 소멸 되었다.
그리고 카시마르가 들고 있던 그림자 늑대인간의 가죽은 래비드의 망토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래비드의 망토 (전설 등급 아이템)
광견 소환 마법을 창시한 마법사 노던이 남긴 망토입니다. 적이라고 인식되는 자들이 주변에 있는 것만으로도 데미지를 입습니다.
착용자가 받은 데미지의 절반을 주변 적에게 전염시킵니다. 착용자보다 강인함 수치가 낮은 적들은 래비드의 망토로 인해 입은 데미지를 주변의 아군에게 전염시킵니다.]
두 개의 뿔에 비하면 초라하다고 할 수 있는 옵션이었다. 그러나 래비드의 망토가 가진 고유의 능력은 상당한 가치가 있었다. 카시마르는 아이템을 핏불킹에게 보여주었다.
“야. 이거 잡몹 처리하는 데는 끝장나는 거 아니냐?”
“그러려나?”
“거기다 너 강인함 수치도 상당히 높잖아.”
“높긴 하지. 근데 탱커 수준은 아냐.”
“그놈들은 그걸로 먹고 사는 놈들이니까. 비교하면 안 되는 거고. 어쨌든 강인함 수치 낮은 놈들 처리하는 데는 끝장이다. 특히 대규모 전투 때 꿀이겠네.”
“난 그냥 그런 거 같은데.”
“야. 이거 누가 쓰냐에 따라서 진짜 개사기 템이라니까. 이 정도면 전설템이지.”
“하위 옵션이 없잖아.”
“이 정도면 없어도 돼.”
“잘 써봐야지. 어차피 망토 안 쓰고 다녔으니까.”
“부러운 새끼. 이제 뭐할 거냐?”
“족쇄가 풀렸으니까. 이제 하려던 거 하러 가야지.”
카시마르는 바로 카르 공작에게로 움직였다. 강숭이가 약간은 걱정되긴 했지만 예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다시 돌아올거라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카시마르는 수행기사들을 불러서 카르 공작의 저택으로 향했다.
카르 공작은 카시마르를 기다렸다는 듯이 나와서 맞이했다.
“준비는 다 되었습니다. 어떻게 딱 맞춰 오셨군요.”
“규모가 많이 커졌습니까?”
“전보다 10배 이상입니다. 총 출정 인원 만 명. 불꽃 기사 백 명이 갑니다. 아시죠? 인원이 많아진다는 건 그만큼 많은 돈이 떨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돈 때문에 이번 일에 참여한 건 아닙니다.”
“그래도 많은 돈을 얻게 되실 겁니다. 기대하셔도 좋아요. 저희 파벌은 나름 공평한 시스템으로 굴러갑니다. 이번 원정이 이렇게 커진 이유가 누구의 공인지 모른 척 하지 않습니다.”
“제게 더 많은 돈을 주겠다는 이야기로 들리네요.”
“그렇죠. 이번 원정의 총대장은 당신입니다. 카시마르. 물론, 일의 진행은 이들이 하게 될겁니다.”
카르 공작은 불꽃 기사 셋을 설명해주었다. 그들의 이름은 카시마르도 들어본 적 있었다. 제국 내에서 최강의 불꽃 기사를 거론할 때 후보에 오르는 자들이었으니까.
에메, 쥘, 달루.
셋은 황제파가 자신 있게 내보내는 불꽃 기사들 중 하나였다. 카시마르는 저택에 있을 때 나름 황제파 소속의 중요 인물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았다. 그 정도는 숙지해야 일이 편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시간이 남았던 것도 이유이긴 했다. 평소의 카시마르였다면 그런 행동은 하지 않았을테니까.
에메, 쥘, 달루는 카시마르를 원정대가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거대한 포탈 앞에 카시마르는 섰다.
“먼저 들어가시면 저희가 따르겠습니다.”
불꽃 기사 쥘이 말했다. 쥘은 정중한 말투와는 어울리지 않는 강인한 외모를 지닌 사내였다. 얼굴에만 검상이 몇 개는 있었다. 그런데다가 머리에는 어떻게 살았나 싶을 정도로 커다란 상처가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도끼로 내려친 것 같은 상처.
카시마르는 주저하지 않고 포탈을 타고 붉은 오크의 지역으로 넘어갔다. 카시마르가 넘어가자 그의 수행기사들도 따랐다.
드디어 붉은 오크 원정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