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주캐로 멱살 캐리-124화 (124/205)

# 124

선언

불꽃 기사들이 피할 틈도 없이 검은 불꽃은 번져버렸다. 불꽃 기사들은 강력한 존재였지만 그들은 약점이 있었다. 바로 고통을 느낀다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검은 불꽃에 휩싸이는 순간 그들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서겅!

카시마르는 반쯤 불꽃에 잠식된 불꽃 기사들의 목을 가볍게 베어버렸다.

하나의 뿔을 크게 휘두르자 정면에 있던 불꽃 기사 세 명의 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고통에 잠식당한 대상의 목을 베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들의 목을 취하고 흐른 피를 뿔은 흡수했다. 당연히 카시마르에게도 생명력이 들어왔다.

카시마르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보통 사람이었으면 이미 몇 번은 죽었어야할 상처를 입고 있었다. 관통상만 해도 다섯 군데가 넘은 상황. 그중에는 주요 장기가 위치한 부위를 관통한 것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유저였고 목이 잘리거나 하지 않는 이상 즉사 판정을 받지 않았다. 카시마르는 게임 시스템의 허점을 아주 잘 이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푸슉!

카시마르는 그에게 달려들었던 나머지 불꽃 기사들도 처리했다. 그냥 내버려둬도 죽을 정도의 불꽃에 휩싸여 있었지만 뿔이 목을 베는 것을 원했다. 그래서 카시마르는 그들의 목을 일일이 베어버렸다. 한 손으로는 목을 베고 한 손으로는 몸에 박힌 무기들을 빼냈다.

출혈은 계속 되고 있었지만 가면의 힘과 각종 아이템들의 능력으로 카시마르의 생명력은 계속 차오르고 있었다.

[머리 수집가  - 두 개의 뿔은 적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지는 모습을 좋아합니다. 적의 머리가 잘릴 때마다 추가로 생명력을 흡수합니다. - 적 하나당 생명력 흡수율 0.1% 증가. 한 번의 전투가 끝날 때까지 효과는 지속 됩니다.]

처음 뿔이 탄생했을 때의 예견대로 뿔은 계속 성장을 하고 있었다. 보통의 성장형 아이템과 다른 점이 있다면 레벨업을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 달랐다. 레벨 대신에 다른 옵션이 계속 붙고 있었고 이것은 카시마르 입장에서는 청신호였다.

레벨 성장형 아이템은 고착화된 옵션이 강화되는 것 위주로 성장하지만 뿔은 그런 제약이 없다는 뜻이었기 때문이었다.

불꽃 기사들의 합동 공격을 받은 카시마르는 체력이 1000까지 떨어져 있었다. 1000이면 보통 유저와 비교했을 때는 상당히 높은 수치이지만 카시마르 입장에서는 정말 간당간당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간당간당한 수준이었던 카시마르의 생명력은 여섯 명의 불꽃 기사를 베자 급격하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가면은 카시마르의 생명력이 일정 이하로 떨어지면 생명력 회복 속도를 몇 배로 빠르게 해주었고 그런데다가 뿔의 생명력 흡수 옵션이 합쳐지니 엄청난 속도로 생명력이 회복되고 있었다.

몸에 박힌 여러 무기들로 인한 데미지 보다 회복되는 생명력이 훨씬 빠른 상황.

그러나 상황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카시마르는 정말 죽기 직전 상황까지 데미지를 입은 상태였기 때문에 완전히 회복되기까지는 시간이 상당히 많이 걸렸다.

그래서 카시마르는 이제부터 방어에 집중하기로 했다. 다시 한번 불꽃 기사들의 강공을 받으면 이번에는 확실히 죽음을 맞이하게 될 테니까.

카시마르는 처음부터 승산이 없는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해야만 하는 싸움이라고 느꼈다. 비록 게임일 뿐이지만 이런 상황을 넘길만큼 비위가 좋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카시마르는 죽음을 각오하고 퀘스트를 뒤집었고 그래서 핏불킹에게 연락을 넣었다. 부활 장소에서 감옥으로 끌려가게 되는 것이 가장 최악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시작한 싸움이기에 최대한 많은 적을 죽여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뿔이 또 한 번 각성하면서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불꽃 기사들이 죽고 카시마르가 몸에 박힌 무기들을 제거하는 사이에 기사단들이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달루의 명령으로 기존의 불꽃 기사들이 뒤로 빠져 나왔다.

“왜 뒤로 물러나라고 한 겁니까?”

불꽃 기사 뮬티가 말했다.

“저 불꽃에 여섯이나 죽었습니다. 그러고도 살아 있지 않습니까.”

“살아 있기는 하지만 곧 죽을 거 같은데요.”

“불꽃 기사 쥘이 곧 올 겁니다. 그때 확실하게 처리하는 게 좋겠습니다. 지금은 불꽃 기사들의 희생이 너무 큽니다. 이미 여섯이 죽었어요.”

“그러면 후방 부대가 오는 동안 기사들을 계속 던져주자는 말입니까? 기사들도 가문의 일원입니다.”

“불꽃 기사보다 중요합니까? 기사단 전체를 던져서라도 불꽃 기사를살려야하는 겁니다. 제국은 이제까지 계속 그렇게 해왔습니다.”

“그러니 제가 가겠다는 거 아닙니까.”

“불꽃 기사 뮬티. 당신의 실력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위험부담이 큽니다.”

“앞서간 불꽃 기사들의 희생으로 만들어놓은 상처가 보이지 않습니까? 저 정도면 고위 사제 여럿이 달라붙어도 회복하기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그가 여행자라도······.”

“그는 아직 야네크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달루가 잘린 손목을 만지작 거리면서 말했다. 그의 손목에서 나는 출혈은 이미 멈춘 상태였다.

“저 검은 불꽃이 그가 가진 야네크의 힘이 아니란 말입니까?”

“제가 보고 받은 바로는 그의 야네크는 바람을 부리는 거라고 했습니다.”

“확실한 이야기입니까?”

“성전에 참여했던 기사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가 바람을 부려서 다크 영과 싸우는 것을 목격했다고 하는군요.”

“그럼 저 검은 불꽃은······.”

“여행자들의 권능이겠지요. 그들의 표현으로 하자면 스킬.”

“야네크의 힘이 더 강하겠지요?”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거대한 소용돌이를 부린다는 소문도 있으니. 이제 제가 왜 기사들을 들여보냈는지 이해하시겠습니까?”

뮬티는 달루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물러섰다.

그 사이 카시마르는 기사들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기사들은 말 위에 오른 채로 카시마르에게 돌진하고 있었고, 카시마르는 그걸 신경 쓰지 않고 몸에 박힌 무기들을 마저 뽑아냈다.

달루는 기사들이 시간을 끄는 사이에 준비를 제대로해서 전투를 끝낼 생각이었다.

이미 이번 원정은 반쯤 실패한 것이나 상관없었다. 그러나 완전히 실패하지는 않았다. 배신자인 카시마르를 죽이고 원래대로 노예들을 잡는다면 충분히 만회할 수 있다고 판단한 달루였다.

“여기서 기사들을 너무 잃으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저 멀리서 기사들이 카시마르에게 달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달루와 불꽃 기사들은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달루에게 질문을 던진 사내는 라밧이었다. 라밧은 이번에 참전한 불꽃 기사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다. 그리고 가장 오랫동안 현역으로 활동한 불꽃 기사이기도 했다.

“불꽃 기사 쥘이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버는 게 중요합니다. 그때 확실하게 처리를 해야지요. 여행자들은 저대로 내버려 둔다고 죽지 않습니다. 계속 힘을 빼놔야합니다.”

“어쨌든 지금 책임자는 당신이니 당신의 명을 따르겠습니다만 기사들을 잃는 걸 좋아하는 가문은 없다는 걸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불꽃 기사 뮬티의 반응이 이상한 게 아니에요. 기사가 있어야 원정도 제대로 마무리할 거 아닙니까.”

라밧은 뮬 보다는 차분했다. 그러나 더 조목조목 따지고 있었다.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저자는 여행자들 사이에서 정점에 올라 있는 자에요. 어쨌든 그는 야네크를 사용할 겁니다. 기사들이 그가 야네크를 제대로 사용하도록 유도한 다음 저희가 나서서 처리합니다. 이 계획에 변함은 없습니다.”

달루의 계획은 타당한 듯 보였지만 오히려 카시마르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라는 걸 모르고 있었다. 카시마르의 상처는 꽤 깊었고 그래서 엄청난 회복속도가 있음에도 생명력은 생각보다 차오르지 않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기사들을 내보냈으니 이건 카시마르에게 회복을 하라고 먹이감을 던져준 것과 다르지 않았다.

천 명이 넘는 기사들과 카시마르가 전투를 시작했다. 초반에는 카시마르가 기사들의 돌격에 살짝 밀리는 것 같았지만 이내 제대로 포지션을 잡고 전투에 임했다.

기사들이 시간을 잘 끌어줄 거라고 믿었던 불꽃 기사들은 전투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표정을 일그러트리기 시작했다.

기사들과 카시마르의 전투는 거대한 맹수와 작은 초식 동물 떼와 싸우는 수준이었다.

카시마르가 뿔을 휘두를 때마다 기사들이 몇 명씩 베여 쓰러졌다. 마법사와 사제들이 원거리에서 기사들을 최대한 지원했지만 별다른 소용이 없었다.

기사들의 공격은 카시마르에게 제대로된 데미지를 입히지 못했다. 그런데다가 그림자 망토의 힘이 제대로 발휘되고 있으니 기사들이 힘을 쓰지 못하고 쓰러지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래도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까?”

라밧이 말했다. 달루는 표정을 일그러트리고 있었다. 달루는 후퇴 수신호를 보낸 다음 라밧을 바라봤다.

“희생이 크긴 했지만 이제 괜찮습니다.”

달루가 턱 끝으로 언덕 위를 가리켰다. 언덕 위쪽에서 쥘이 부대를 이끌고 내려오고 있었다. 그가 끌고 내려오는 후방 부대는 에메, 달루가 이끌고 있던 부대들보다 병력은 적었다. 노예를 후송할 장비를 끌고 오는 부대였으니까. 그러나 병력의 질은 다른 부대보다 훨씬 높았다.

그런데다가 쥘은 이번 원정대에 참전한 불꽃 기사 중에서 에메와 더불어 가장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쥘은 언덕 위에서 상황을 살짝 파악하더니 매서운 속도로 수하들을 이끌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카시마르와 전투를 벌이던 기사들은 사방으로 흩어져서 전장을 이탈하고 있었다.

***

“우웩!”

카시마르는 검붉은 피를 왈칵 쏟아냈다. 이번에는 정말 위험했다. 그의 목에 장검이 반쯤 파고 든 상태였다. 이 상태에서 더 옆으로 베였다면 그대로 목이 몸과 분리되었을 터였다. 그러나 카시마르는 목이 베이기 직전에 손목이 날아간 팔로 장검의 날을 필사적으로 막아버렸다. 그리고 장검의 주인의 목을 베어버렸다.

카시마르의 목에 장검을 집어넣은 자는 바로 불꽃 기사 라밧이었다. 라밧은 목이 베어지는 순간에도 차분한 표정으로 있었다.

“왜! 대체 왜! 안 죽는 거냐고!”

카시마르의 몸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그건 원정대도 마찬가지였다. 원정대에 속한 대부분의 불꽃 기사들이 카시마르에게 덤벼들었지만 끝내 그를 죽이지 못했다.

각성한 뿔의 힘으로 카시마르는 끈질기게 버티면서 생명력을 회복했다. 그러면서 야네크와 잔상 그리고 분노 포인트로 뿔의 기술을 적절이 사용하면서 불꽃 기사들을 하나씩 없애나갔다.

특히 카시마르는 잔상 스킬을 가장 마지막까지 꺼내지 않았는데, 그게 방금 상황에서 빛을 발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라밧의 일격에 목이 달아났을 터였다. 불꽃 기사들은 카시마르를 죽이려면 목을 베어버리는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닫고는 데미지를 누적 시키는 것보다는 목을 베는 것에 집중했다.

수많은 불꽃 기사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으면서 완성시킨 한 수.

그 한 수가 끝내 불발로 처리되었다.

푹! 스윽!

카시마르가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불꽃 기사의 머리를 뿔로 찌른 다음 베어버렸다.

뿔은 수많은 피가 묻었는데도 여전히 무시무시한 날카로움을 유지하고 있었다.

카시마르는 차분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원정대의 수많은 병력들이 그의 싸움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공포와 놀라움이 뒤섞여서 나타나고 있었다.

그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이 많은 불꽃 기사들이 한 명의 사내에게 쓰러질 거라고.

그들에게 지금 상황은 악몽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악몽의 가장 가운데서 허우적대고 있는 사내가 바로 달루였다. 달루의 야네크는 꼬리에 의해서 봉인되었기에 그는 야네크를 들지 않은 평범한 불꽃 기사에 지나지 않았다.

카시마르를 향해 소리치던 달루가 검을 붙잡았다. 그때 에메가 달루의 손을 붙잡았다.

“너마저 잃을 순 없다. 이미 쥘을 잃은 걸로 충분해.”

선발대로 나갔던 에메는 뒤쪽의 상황이 이상하다는 걸 감지하고 병력을 돌려서 돌아온 상태였다. 그리고 카시마르를 공략하는 싸움에 합류했다.

그러나 에메가 합류했음에도 카시마르를 쉽사리 잡아내질 못했고 결국 원정대에서 가장 강한 불꽃 기사라고 평가받는 쥘이 죽는 상황까지 와버렸다.

“이······.”

달루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만 같은 표정이지만 검을 뽑지는 못했다.

“저건 괴물이야.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전투 마법사를 불러와야 해. 불꽃 기사와는 상성이 너무 나쁘다.”

“이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건가.”

달루의 말에 에메가 고개를 끄덕였다.

“병력을 다 밀어 넣어도 죽일 수 없어. 라밧이 목을 베지 못했다. 우린 실패했다.”

달루는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았다. 그런 달루의 어깨를 에메는 살짝 두들기고는 허리춤에

찬 검을 달루에게 넘겼다.

"뭘 하려고?"

"패배를 시인하러 간다. 더 이상 전투가 벌어지면 안 되니까."

에메의 말에 달루는 코로 길게 숨을 뱉었다. 복잡한 감정이 섞인 숨이었다. 에메는 천천히  카시마르에게 다가갔다. 그가 걷는 길에 불꽃 기사들의 시체가 붉은 카펫처럼 깔려 있었다.

에메는 카시마르와 5미터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 정도 거리라면 충분히 대화를 할 수 있다고 그는 판단했다.

“이번 전투는 그대가 승리하였습니다.”

에메가 말했다. 카시마르는 바닥에 뿔을 꼽아놓고 잘린 손목을 몸에다 이어붙이고 있었다. 에메는 차분하게 카시마르에게 패배를 선언하는 중이었다.

카시마르는 에메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조용히 있었다.

“그러니 이만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저희는 이대로 조용히 귀환하겠습니다. 오늘 많은 피가 흘렀으니······.”

타닥! 푸슉!

카시마르는 에메와 대화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에메가 조금 더 가까이 접근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에메가 대화를 위해서 몇 발자국 더 다가오자 카시마르는 기다렸다는 듯이 뿔을 뽑아들고 바람의 힘으로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에메의 목을 베어버렸다. 무방비 상태로 있던 에메의 목은 허망하게 잘려서 바닥을 뒹굴었다.

카시마르가 뿔을 뽑았을 때 에메도 반응을 하긴 했다. 그는 늘 하던 것처럼 허리춤의 검을 뽑아서 공격을 막아내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허리춤에는 검이 없었다. 그는 맨손으로 검을 뽑아 들었고, 카시마르의 뿔은 그런 에메의 손과 목을 함께 베어버렸다.

“······.”

으아아아악!

달루가 괴성을 질렀다.

다시 전투가 시작되었다. 달루가 제일 먼저 검을 빼어들고 달려들었고 제일 먼저  뿔에 베어졌다.

그가 들고 있던 장검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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