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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캐로 멱살 캐리-127화 (127/205)

# 127

물놀이

“게이트 설립 목적에 관한 부분만 언급하지 않으면 된다는 거지?”

강철 원숭이는 보석을 씹어먹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게이트의 관계자들이 자세를 낮추고 있었다. 게이트를 운영하는 관계자들은 대부분 우주적 명성이 높은 자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고대 신화 속에 등장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신화 속의 신들도 강철 원숭이 앞에서는 꽤 긴장하고 있었다.

“그거 말고도 다른 게이트가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뭐가 그리 복잡해?”

“아베다님이 이곳을 떠나신지도 꽤 시일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에 정책이 꽤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러긴 한 거 같아. 근데 그렇게 막 바꿔도 되는 건가?”

“아베다님이 떠나실 때 설립자들에게 전권을 넘기고 떠나신 상황이라.”

“게이트 설립 목적에 대해서 숨기는 이유는 소수 정예를 선발하기 위함이었나?”

강철 원숭이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많이 바뀌긴 했네. 반쯤 장난으로 만든 게이트가 이 정도로 체계적으로 돌아갈 정도면.”

“그러니 아베다님께서 조금만 협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다면 고려해 볼게.”

강숭이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러자 게이트의 관리자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아베다님이 왜 게이트 소속 유저 옆에 계신 겁니까?”

강숭이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이들은 지금 강숭이가 힘을 완전히 잃고 노예 계약서까지 작성한 상태라는 걸 모르고 있었다. 누가 예상이나 하겠는가.

가장 오래된 옛것.

그 명칭이 의미하는 것은 아주 거대했다. 대부분이 칭송하는 신화 속 신보다 훨씬 오래된 존재라는 걸 의미하는 것이니까. 지금 자세를 낮추고 있는 신들이 인간들의 신이라면 가장 오래된 옛것은 그들에게 숭배 받는 신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힘이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강철 원숭이가 힘을 숨기고 유희를 즐기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걸 질문할 위치가 된다고 생각해? 설립자 그런 것까지 알려줘야 한다고 계약서를 썼던가?”

“아···아닙니다.”

“너 이름이 뭐라고 했지?”

거만한 자세로 있던 강철 원숭이가 사내를 노려보며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죄송한 거 알면 질 좋은 걸 좀 더 내놔봐. 이런 거 말고 영혼석 없나?”

“영혼석이요? 준비하겠습니다.”

“그래. 영혼석이랑 브이오 쪽 고철이랑 3대1 비율로 섞어서 얼음 조금 넣고 갈아서 와. 난 그 쉐이크가 그렇게 맛있더라.”

“알겠습니다.”

사내는 즉시 고개를 숙이면서 물러났다. 그들은 강철 원숭이가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었다. 얼마 전에도 어마어마한 힘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적어도 전 우주에서 강철 원숭이를 가볍게 다룰 수 있는 건 그를 탄생시킨 달로스 밖에 없었다.

같은 그레이트 올드 원 마저 혀를 내두르는 존재.

그게 바로 강철 원숭이였다.

그러니 이들이 이렇게 반응하는 것도 이해가 가는 대목이었다.

“근데. 지금 게이트 대주주는 누구지?”

강철 원숭이가 질문했다. 그러자 사내가 최대한 표정 관리를 하며 강숭이를 바라봤다. 속으로는 절대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질문이 나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

“그러니까 저 사람이 그 이야기를 해주면 하겠냐고. 그걸 해주겠어? 대가리에 총 맞은 것도 아니고. 같은 길드도 아닌데.”

핏불킹과 카시마르는 논쟁을 주고 받고 있었다.

“그래도 해야지. 그거 사기야. 사기.”

“게임에서는 좀 그렇게 스무스하게 넘어가고 그러는 거야. 그리고 솔직히 모르는 게 약일 수 있다니까?”

“어떻게 모르는 게 약이 되는데?”

“계획이 실패해도 그냥 와서 돈 받고 한 일이라고 잡아떼면 되잖아.”

핏불킹의 말에 카시마르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그게 가능할 거 같아?”

“야. 몰랐다고 하면 또 모르지. 게이트와 제국은 서로 돕는 관계라고. 그 좋은 말 있잖냐. 뭐냐.”

“상생이요?”

골낳괴가 끼어들었다.

“그래 상생.”

“상생이라고 해도 게이트가 유저를 그렇게까지 커버 해줄지는 의문이죠.”

“그러니까 이야기를 해야 된다니까. 이건 저 사람 선택해야되는 일이야.”

“공짜로 부려먹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알려는 줘야지. 이러이러한 상황에 처해 있으니까 신중하게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라고.”

“그거 다 말해준 다음에 안 한다고 하면?”

“그럼 어쩔 수 없는 거지.”

“그러면 안 되다니까. 막말로 저 친구가 그 이야기 듣고 제국으로 가서 이야기 풀어버리면 어쩔래? 우리 계획의 가장 큰 핵심은 바로 보안이야. 여기 이야기가 새어나간다면 문제가 커진다니까?”

“저를 완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드시네요.”

카시마르는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는 늑대 얼굴의 탈을 쓴 사내가 서 있었다. 킨스키가 데려온 이 사내는 양치기 소련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유저였다.

“그게 아니고요.”

“킨스키씨에게 이야기 들었습니다. 저도 이번 일이 어떤 식인지는 알고 있어요. 개발자가 어떤 의도로 이런 컨텐츠를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상당히 기분 더러운 일입니다.”

양치기 소련이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킨스키는 핏불킹이 부활 장소 지정을 할 수 있도록 알아보라고 부탁한 유저였다. 킨스키는 부활 장소에 대해서 알아보다가 우연히 제국이 열어놓은 포탈을 닫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양치기 소련에게 듣고 그를 데려왔다.

“솔직히 무작정 도와달라고 하기에 어려운 일이어서요. 그래서 이야기를 한 겁니다. 양치기님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없었어요.”

카시마르가 침착하게 말했다.

“알고 있어요. 두 분이서 언쟁을 벌이는 게 저를 배려하기 위함이라는 걸요. 핏불킹님은 만약의 사태를 생각해서 제게 빠져나갈 단서를 주려고 한 거고, 카시마르님은 제가 이 일에 합류할지 말지에 대해서 선택권을 주려고 한 거겠죠.”

양치기 소련은 카시마르와 핏불킹의 입장을 단번에 정리했다.

“아무튼, 엿들은 건 미안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이야기이니 들어야 했어요. 다만 전 여기 오기 전에 이미 마음의 결정을 한 상황이어서 큰 의미는 없었을 겁니다.”

“위험에 대해서 생각하고 오신 거군요.”

“예. 몇 가지 이야기만 들어도 위험한 일이라는 건 충분히 알았어요.”

“생각보다 더 위험한 일이에요. 양치기님.”

“이거보다 더 위험한 일이었어도 했을 겁니다. 그 이야기는 더 하지 말죠. 하기로 결정한 거니까. 대신에 부탁이 하나 있어요.”

“부탁이 뭔가요?”

“저도 등에 싸인 해주세요.”

양치기 소련의 말에 카시마르와 핏불킹은 동시에 서로를 바라봤다.

양치기 소련.

그는 MMA 매니아였고 특히 나이트메어의 골수팬이었다.

***

카르 공작의 표정은 좋지가 않았다. 그는 황제파에서도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었고 몇 안 되는 실세였다. 제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세력의 실세다보니 그가 누구에게 질책을 받는 일은 극히 드물다고할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지금 질책을 듣고 있었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방을 빠져나온 카르 공작은 즉시 휘하의 주요 귀족들을 소집했다. 그들은 카르 공작이 베버킨을 만나고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대응하기로 했습니까?”

“지금부터 카시마르, 그자와 관련된 모든 자들을 잡아들이세요.”

“여행자까지 말입니까?”

“여행자고 제국 소속이고 상관 없습니다. 무조건 잡아들이세요. 여행자들은 생포하고 제국민은 죽여도 좋습니다.”

“그건 무리가 있습니다. 게이트와 맺은 협약이 있는지라······.”

이야기를 듣던 귀족 하나가 반대 의견을 냈다. 그러자 카르 공작이 그를 매섭게 쏘아보았다.

“뭐가 어렵다는 거죠?”

“이번 일은 귀족파에게도 흘러들어갔을 겁니다. 아니 흘러들어가겠죠. 보통 사안이 아니니까요. 최악의 경우에는 귀족파가 카시마르와 손을 잡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단순하게 대응을 하는 건 조금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황제파의 수뇌들이 의견에 동조했다. 카르 공작은 차분했다.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른 상태였지만 행동은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번 일을 제일 처음 기획한 게 누구였습니까?”

카르 공작이 말을 꺼냈다. 그러자 수뇌들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누구였죠?”

카르 공작은 몇 명에게 하나하나 시선을 주면서 차분히 말했다. 그러자 주변이 더 조용해졌다.

“······.”

“책임을 물으려는 게 아닙니다. 누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던지 간에 다들 동의한 사안이니까요. 다만 어르신이 화가 나셨습니다.”

“귀족파의 견제를 무시하다가는 더 크게 일이 어그러질 수 있습니다.”

“단호하게 메시지를 전달하세요. 이번 일은 제국에 대한 도발로 대응할 생각이라고.”

“카시마르와 관계된 자들은 이번 성전에서 크게 활약한 자들입니다. 그런 자들을 그런 쪽으로 몰아간다면 반발이 아주 심할 겁니다. 이번 일이 아주 크게 어그러졌으니 좀 더 신중하게 수습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카르 공작.”

“귀족파 쪽에서 개입을 할 수 없게 아주 크게 지르세요. 귀족파와 관련된 자료를 다 풀어버린다고 말이에요.”

카르 공작의 말에 사람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런 자료를 가지고 있는 건 저쪽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같이 죽자는 거지요.”

“솔직히 그런 식으로 가게 되면 저희가 더 손해를 봅니다. 자료는 저쪽이 더 많이 가지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다들 시간이 알아서 수습해주기를 바라면서 기다리고 있겠다는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다만···.”

“다만 뭐요? 여기 계신분들 잘 들으세요. 다들 어르신이 얼마나 관대한 분인지 알고 있을 겁니다. 여기 계신 분들중에서 깨끗한 분이 얼마나 있습니까? 황족, 귀족이어도 쉽게 넘어갈 수 없는 것들이 있음에도 다 안고 가는 분이 누굽니까? 바로 칼트님입니다. 그런 칼트님이 유일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뭡니까? 뭐에요? 다들 잘 알고 계시죠?”

“······.”

“흠!”

카르 공작의 말을 듣는 사람들이 헛기침을 하면서 반응을 했다. 그러나 대놓고 카르 공작의 말에 반박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 느린 계산으로 한 번 생각을 해보세요. 이번 일이 대충 얼마나 큰 손해인지. 특히 이번 일을 진행했던 불꽃 기사들도 잃었어요. 그들은 이번 원정에서 잃은 그 무엇보다도 아까운 손실입니다. 왜 인지 아시죠? 그들만큼 윗분들 입맛에 맞게 일을 잘하는 자들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번 일이 가볍겠어요? 가볍지 않겠어요?”

딱!

카르 공작은 탁자 위에 놓인 물을 벌컥 들이키고는 탁자 위에 세게 내려놓았다.

“다 알고 있습니다. 지금 결정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걸요. 하지만 어르신이 내린 결정입니다. 그냥 넘어가기에는 액수가 너무 커요. 그러니 빠르고 움직이고 강력하게 대응하세요. 어르신 입에서 물놀이란 단어가 튀어나왔습니다. 요즘 링거트 강이 물놀이 가기 좋다더군요. 어때요? 이 중에서 물놀이 가고 싶은 분 계십니까?”

카르 공작의 입에서 물놀이라는 이야기가 튀어나오자마자 사람들이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질린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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