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
탐색 중지
“이거 다 얼마나 될까요?”
“어마어마하겠지.”
“이게 그렇게 돈이 돼?”
카시마르가 말하자 사람들이 그를 빤히 쳐다봤다.
“하긴 형님은 마수정이나 이런 걸 취급 안··· 아니죠. 형님도 사냥하면서 나온 적 있을 거 아니에요.”
“나온 적 있지.”
“그때 안 팔아봤어요?”
“그냥 상점에 팔 때는 그리 큰 돈 안 주던데?”
“세상에 마정석 종류를 상점에다 파는 미친 놈이 어딨냐. 상인한테 팔아달라고 수수료 줘도 몇 배는 이득인데.”
“농담이야. 예전에 마정석은 모아놨다가 모아서 파는 거라고 해서 금고에 잘 모셔뒀어.”
“그럼 꽤 많이 모았겠는데요?”
“꽤 돼.”
마정석은 유저들이 쓰는 장비 대부분에 들어가는 재료이기 때문에 가격이 상당했다. 마수정은 그런 마정석들이 벽에 붙어 있는 것을 말했다.
“이거 캐봐야 등급 알 수 있는 거죠?”
“그렇지.”
“이게 다 최상급이면······.”
“대박 나는 거지. 그 순간 코즈믹 게이트 내에서 최고 부자 되는 거야.”
“근데 그럴 리가 있겠어?”
“희박하지. 그럴 가능성은.”
“그렇지만 여기 있는 것들이 최하급이어도 대박인 상황 아니에요? 만 단위는 가볍게 넘어갈 거 같은데.”
슭곰발이 말했다. 그의 말처럼 마수정은 빈 공간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가득 차 있었다.
“던전일지도 모르니까 함정 조심하자.”
핏불킹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카시마르는 강숭이를 바라봤다.
“넌 뭐 아는 거 없냐? 넌 이런 거 경험 많을 거 아냐.”
“전 이런 데 다닐 필요가 없었습니다요.”
“그래서 아는 게 없다고?”
“헤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요.”
“말해 봐.”
“보통 이런 장소는 던전, 신전, 무덤 같은 경우가 많습니다. 벽에 마수정을 이 정도로 도배··· 잠깐 스탑! 스탑입니다요! 선생님!”
강숭이가 이야기를 하다가 소리를 질렀다.
“왜?”
“이제 알겠습니다요.”
“뭘 알아?”
“이 근처에 몬스터들이 오지 않는 이유 말입니다요. 이 근방으로는 신기하게 몬스터들이 들어오지를 않는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요.”
“그랬지.”
“뭐야. 그럼 여기 때문에 그 고렙 몬스터들이 오지를 못하고 있다는 거야?”
“예. 느낌이 팍 왔습니다요. 이런 종류의 던전에서 마수정은 그리 많이 쓰이질 않습니다요. 보통 불을 밝히는 정도로만 쓰지 이렇게까지 마구 달아놓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요.”
“여기 주인 취향이 그런 거 아냐? 마수정을 엄청 좋아하는 거지.”
핏불킹의 말에 강숭이가 인상을 팍 썼다가 풀었다.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럴 수도 있지만 보통은 안 그렇습니다요.”
말을 한 강숭이는 마정석 가까이 갔다. 그리고는 카시마르를 바라봤다.
“선생님. 제가 한 입 먹어봐도 되겠습니까요?”
“그래.”
카시마르의 동의를 얻은 강숭이는 마수정 끝을 살짝 깨물어 먹었다. 그리고는 마치 대단한 음식을 먹는 것처럼 음미했다.
“최상급입니다요.”
“확실해? 그걸로 알 수 있어?”
핏불킹이 추궁했다.
“저를 뭘로 보십니까요. 최상급 마정석은 향부터 다릅니다요.”
“그럼 이게 다······.”
골낳괴가 넋이 나간 사람처럼 말끝을 흐렸다. 그럴 만도 했다. 최상급 마정석은 하나를 온전히 파는 것도 드문 물건이었다.
작게 조각 내서 파는 것만으로도 꽤 큰 목돈을 만질 수 있을 정도의 물건.
그게 세기도 힘들 정도로 많이 깔려있으니 놀랄 만도 했다.
“대박 났네.”
“대박이 아닙니다요. 이거 생각보다 무척 위험할 수 있습니다요.”
“뭐가 위험한데?”
“아까도 이런 던전은 만들어놓은 목적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요.”
“그랬지.”
“무덤이거나 다른 세계로 통하는 통로이거나 아니면 집이거나. 보통 이렇게 보석을 좋아하는 취향은 오래 산 용들이 많이 그럽니다요.”
“용?”
“오래 산 용들은 좀 설치고 다니고 그럽니다요.”
“용이면 상당히 세겠네?”
“세도 지가 용이지요. 용은 크게 문제가 안됩니다요.”
강숭이 입장에서 용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레이트 올드 원인 그에게 용은 애완견 수준의 몹이었으니까. 그러나 카시마르 일행에게 용은 쉬운 상대가 아닐 수 있었다. 일단 코즈믹 게이트 내에서 용과 관련된 몬스터들이 나온 적은 상당히 많았지만 용 자체가 뜬 적은 없었다.
“셀 거 같은데. 네 기준으로 생각하지 마.”
“아무튼 용이면 그나마 괜찮습니다요.”
“그러면 용보다 더 센 종류일 수도 있다는 거야?”
“네. 지금 이 마정석 속성이 물입니다. 그것도 심해의 냄새가 납니다요.”
“심해?”
“네. 제 예상으로는 아마 이 던전의 중심부는 심해로 연결되는 통로가 있을지도 모릅니다요. 보통 던전이라는 건 입구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경고 메시지가 뜨거나 아니면 기운이 감지되기 마련입니다요. 그런데 지금 보시면 저희가 들어왔는데도 어떠한 변화도 없지 않습니까요?”
“그렇지.”
“거기다 제가 마정석을 뜯어먹었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는 건 둘 중 하나 입니다요. 하나는 이미 털린 던전이거나 아니면 이곳이 입구 수준도 안 된다는 것이지요.”
“여기가 입구 수준도 안 된다면 더 들어가면 더 대단한 게 있다는 거야?”
“그렇습니다요. 그런데 신중하게 생각하셔야 합니다요. 입구 수준도 안 되는 곳에 최상급 마정석이 이리 깔려 있습니다요. 그러면 안에는 어떻겠습니까요.”
“장난 아니게 강한 존재가 있겠네.”
“그렇습니다요.”
강숭이가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미 여기가 털려서 반응이 없는 걸 수도 있지 않아요?”
용재가 말했다. 그러자 강숭이가 용재를 보며 인상을 썼다.
“그랬으면 여기 마정석이 이렇게 그대로 있겠니?”
“그러면 결론만 말해 봐. 넌 여기가 뭐하는 곳일 거 같은데? 멈추라고 한 이유는 뭔가 느낌이 온 게 있어서 그런 거 아냐?”
“지금까지 나온 정보를 종합해보면 말입니다요. 아마 크툴루와 연관이 있는 곳이 아닐까 싶습니다요. 여기 주변에 있는 몬스터들이 상당히 강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요?”
“강하지. A랭크 유저가 혼자서 못 잡는 몬스터들이 수두룩하니까.”
“그러니까 드리는 말씀입니다요. 그런 몬스터들이 이 주변에 얼씬도 안 할 정도면 여기에 있는 놈들이 상당히 강하다는 건데. 그렇다면 적어도 올드 드래곤급 이상이라는 소리입니다요. 그런데 제가 알기로 올드 드래곤은 보석 욕심이 많아서 들어오자마자 뭔가 피드백이 왔을 겁니다요. 그런데 지금 아무런 느낌이 없잖습니까요. 그렇다는 건 여기가 별장 정도 되는 겁니다요.”
“크툴루라······.”
“크툴루면 그레이트 올드 원이네. 그레이트 올드 원과 관련된 곳이면 섣부르게 들어가기는 그렇지?”
“그렇죠.”
일행은 그레이트 올드 원의 힘을 제대로 경험한 상태였다. 그레이트 올드 원인 강철 원숭이가 직접 어떤 존재인지 알려주었기 때문이었다.
상식을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난 존재.
그게 바로 그레이트 올드원이었다.
“최상급 마정석에 심해의 냄새. 거기다 지금 이렇게 들어왔는데도 반응이 없는 정도다······ 네 생각은 어때?”
핏불킹이 카시마르를 보며 물었다.
“확실한 건 까봐야 아는 거지.”
“그렇긴 한데 리스크가 좀 그렇지?”
“응. 지금 우리 목적은 여기를 탐방하는 게 아니니까. 일단 최상급 마정석이 있다는 걸 안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잖아.”
“그렇지. 그럼 일단 덮어두자고?”
“그게 좋을 거 같아.”
“강숭아. 여기가 크툴루와 연관이 있는 곳이라면 아무래도 들어가는 건 그렇겠지?”
“제가 힘만 있었다면 크툴루가 물장구 치고 있었어도 상관 없습니다요. 그냥 가서 촉수를 썰어 숙회를······.”
딱!
“아픕니다요!”
“오바하지 말고.”
“제가 알기로 이 행성에 크툴루는 없습니다요. 크툴루 부하 중 하나가 몰래 들어와서 알박기 했을 수는 있습니다요. 고대 용들 중에 크툴루를 따르는 놈들도 꽤 있으니까 말입니다요.”
“크툴루 부하급이라면 우리가 잡을 수는 있어요? 부하라도 꽤 셀 거 같은데요.”
아르케가 말했다. 그러자 강숭이가 턱끝을 쓰다듬으며 이야기했다.
“그거야 뭐······ 크툴루 부하 중에 그레이트 올드 원 정도로 분류되는 놈들도 있으니 쉽지는 않을 겁니다요.”
“각오를 하고 들어가야하는 거네.”
“그렇습니다요. 안에 뭐가 있을지 모르니까 말입니다요. 다만 지금 들어가시겠다면 한 가지 방법은 있습니다요.”
“뭔데?”
“크툴루와 관계된 걸 엄청 싫어하는 놈이 하나 있습니다요. 그놈한테 템 좀 내놓으라고 하는 방법 있습니다요. 교신을 하려면 몇 가지 준비가 필요하긴 한데 말입니다요.”
“하스터?”
슭곰발이 말했다.
“오. 아네. 하스터라고 크툴루의 배다른 형제인데 말입니다요. 이놈이 크툴루를 엄청 싫어해서 말입니다요.”
“그놈이 주는 아이템이 있으면 잡을만 하려나?”
“그럴 겁니다요. 부하 하나 처리한다고 하면 그에 맞는 급의 아이템을 줄 테니. 거기다 아이템을 꾸준히 업데이트 하고 있으니 지금쯤이면 더 좋은 템을 보유하고 있을 겁니다요.”
“왜? 크툴루 잡으려고?”
“집요한 구석이 있는 놈이라서 말입니다요.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요.”
“뭔데?”
“그놈이 저 싫어합니다요.”
“······.”
“얼마나?”
“조금 많이?”
“조금 많이면 조금이라는 거야 많다는 거야?”
“제가 그놈이 아닌데 어떻게 미움의 크기를 환산할 수 있겠습니까요.”
“그러면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별로 큰 일은 아니었습니다요. 그놈이 속이 좁아서 그러는 겁니다요.”
“그러니까 무슨 일인데? 간단하게 말해 봐.”
“제가 그 녀석이 관리하는 별 하나를 터트렸습니다요.”
강숭이의 말에 사람들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그럼 그렇지. 간만에 네가 도움이 되나 했다.”
“헤헤.”
“너 솔직히 말해 봐. 너 그레이트 올드 원 중에 친한 놈 없지?”
“있습니다요.”
“누구?”
“오른우?”
“오른우면 그 소? 그 양반이 그레이트 올드 원이었어?”
“그렇습니다요.”
“근데 오른우는 너 배신하고 튀었잖아.”
“그러니까 나쁜 놈이지 않습니까요! 어휴. 잡아서 틈날 때마다 족쳐야 하는데.”
“네가 얼마나 나쁜 짓을 했으면 그랬겠냐.”
“아닙니다요! 오른우 그놈도 엄청 악랄한 놈입니다요!”
“퍽이나 그랬겠다.”
***
“잘 덮어 인마. 문제 생기지 않게.”
카시마르는 일단 탐색을 중지하도록 했다. 생각보다 강력한 존재가 있을 수 있으니 만반의 준비를 하고 들어가자는 거였다.
제국의 공격에 대비하는 게 제일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내려야 하는 결정이었다.
“알겠습니다요.”
“너 여기 마정석 개수. 다 확인해뒀다. 몰래 먹으면 알지?”
“에이. 선생님 저를 뭘로 보고 그러십니까요. 저 새 사람 되었습니다요.”
“네가 사람이냐? 원숭이지?”
“새 원숭이닙니다요. 선생님. 헤헤.”
“어? 여기 하나가 비는데?”
밖으로 나가려던 핏불킹이 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본 강숭이가 인상을 썼다.
‘하. 저 개새끼가 진짜!’
강숭이는 욕을 속으로 삼키며 바로 비굴한 표정을 지었다. 카시마르가 싸늘한 눈빛으로 강숭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님. 제가 너무 배가 고파서 말입니다요. 정말 죄송합니다요! 제발 한 번만 용서를······.”
“······.”
강숭이가 카시마르의 바짓가랑이를 잡았다. 카시마르는 차분하게 강숭이를 내려다보고는 짧게 말했다.
“더 먹지마.”
“예. 알겠습니다요.”
카시마르는 꼬리를 소환해서 강숭이를 감시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빠르게 동굴 밖으로 빠져나갔다. 아직 할 일이 산더미처럼 남아 있었다. 산더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