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
첫 번째 전투
“요즘 길드원들 불만은 없어?”
카시마르가 물었다. 카시마르는 핏불킹과 함께 음식을 섭취하고 있었다. 임시로 탈퇴한 길드원들이 조달한 식량이었다. 이들이 이 식량으로 섭취하는 일은 오늘로 마지막이었다.
레이가 라브시안 사람들과 이야기를 잘해서 식량을 전달 받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라브시안 사람들이 요새 공사에 적극 도와주기는 것까지도 합의를 봤다. 이전에도 도움을 주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그리 많지 않았는데, 지금은 라브시안의 마을이라고 할만큼 라브시안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불만 있을 게 뭐 있어?”
“게임은 재밌으려고 하는 건데 이건 단순 노동이잖아. 불만이 나올 거 같은데.”
“이런 게 오히려 더 새로운 맛이 있어. 그리고 길드 친구들 틈틈이 이 근처 사냥 다니고 있다. 그래서 불만이 전혀 없어. 이전보다 렙업이 빠르거든.”
“그 정도야?”
“내가 보기에는 여기 사냥터 몬스터들은 무조건 A랭크 이상 풀렸을 때 대비한 몬스터들이야. 쉽게 말해서 여기 라브시안이 신대륙쯤 되는 거지.”
“커뮤니티에 떠도는 정보 없었어?”
“없어. 진짜 공개되지 않았던 지역이야. 머리를 살짝 굴려보니까. 제국이 라브시안을 공격하고 노예 사업을 벌이는 게 신대륙 공개의 포석이었던 것 같아. 그걸 우리가 제대로 훼방 놓고 있는 거고. 코즈믹 게이트의 무한에 가까운 자유도가 제대로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지.”
“욕 엄청 하고 있겠네.”
“욕을 하고 있어도 마음대로 못해. 예전처럼 아이템 확률 조작하는 시대가 아니란 말이지.”
“하긴 그렇지. 정보도 쉽게 못 흘릴테고.”
“그보다 쟤 괜찮겠냐?”
핏불킹이 턱 끝으로 정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핏불킹의 말에 카시마르가 인상을 썼다.
핏불킹이 가리킨 쪽에는 해맑게 웃고 있는 소녀가 있었다. 10살 정도 되어 보이는 예쁘장한 소녀는 과하게 해맑았다.
그녀의 이름은 크릿.
라브시안에서 보낸 주술사였다.
그것도 엄청나게 강력한 신을 모시는 주술사.
주술사라고 부르기는 하는데 주술사라기보다는 무당에 가까운 존재였다.
크릿은 특별한 마법이나 주술을 쓰는 대신에 자신이 데리고 있는 신을 소환한다.
소환사와 비슷한 개념이지만 전혀 다른 이유는 그녀가 소환하는 신이 그녀보다 훨씬 상위의 존재라는 점이었다.
간단히 표현하자면 크릿도 컨트롤이 안 되는 신이라서 소환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크릿은 정신이 온전하지가 못했다. 지금은 해맑게 웃고 있었지만 기분이 나빠지면 그녀가 모시는 신이 모습을 드러낸다.
“진짜 처음보고 엄청 놀랐잖아. 라브시안에서 보낸 원군이라고 해서 전사일 줄 알았거든.”
“근데 실력은 확실한 거 같지 않아?”
“그거야 그렇지. 근데 피아 구분을 해야지. 말도 안 통하고 정신도 오락가락 하는 거 같은데 그걸 어떻게 해.”
“라브시안의 주술사들은 보통 서넛 정도의 신을 모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 아이는 부를 수 있는 신이 스물이 넘어요. 거기다가 신을 받아들이는 순수함도 남다르다고 해요.”
핏불킹의 말을 받은 사람은 레이였다. 그는 라브시안 사람들과 요새 쪽을 번갈아 다니면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지내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특히 최근에 얻은 스킬인 검은 페가수스 소환은 그를 빠르게 이동까지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요새에서 라브시안의 거처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는데 검은 페가수스에 올라타면 몇 분 걸리지도 않고 오갈 수 있었다.
“언제 왔어?”
“방금요?”
“간지 얼마 안 된 거 아냐?”
“볼일 다 봤어요.”
“엄청 빨리 다녀오네. 무슨 포탈이라도 탔냐.”
“이 녀석 능력이 자주 다니는 길을 더 빠르게 다닐 수 있게 해주는 거잖아요.”
레이가 검은 페가수스 소환을 해제하면서 말했다.
“저 친구를 컨트롤 할 수 있는 방법은 알아봤어?”
카시마르가 물었다.
“없어요. 그래도 한 번 좋아한 상대는 계속 좋아한다니까 그걸 이용해봐야죠.”
“얼마나 강력한 신을 모시길래 그러나.”
크릿은 요새로 넘어와서 한 번 사고를 친 적 있었다. 해맑게 웃던 크릿은 갑작스럽게 신을 소환했고 작업 중이던 요새의 구조물을 절반 이상 날려버렸다.
그 일이 있는 다음부터 크릿은 꿀매너 길드의 근심이 되었다.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어떻게 써 먹어야할 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였다.
“모시는 신이 강력한 게 아니에요. 저 아이가 신의 힘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거지. 독특한 게 라브시안 사람들은 주술사들이 모시는 신을 맹목적으로 믿지 않더라고요.”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는 거야?”
“네. 그저 수호신 정도로만 생각해요.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신에 대해서 크게 관심도 없고요.”
“현대의 무당 같은 느낌인가?”
“비슷한 위치라고 보면 되겠네요. 어쨌든 저 아이가 딱히 특별한 신을 모시는 건 아니에요. 라브시안의 다른 주술사와 같은 신을 모셔요. 다만 저 아이에게 신이 나타날 때는 다른 주술사와 다르게 더 강력하게 신이 등장하죠.”
“쉽게 말해서 라브시안의 수호신들이 제대로 힘을 발휘한다는 거 아냐. 쟤한테 빙의되면.”
“그렇죠. 같은 수호신을 불러내도 더 힘이 강력해요. 그래서 저번처럼 난리가 나는 거죠.”
“근데 수호신을 불러내도 제어가 안 되면 보통 주술사들이 훨씬 도움 되는 거 아닐까?”
“저번에 크릿이 불러낸 수호신은 ‘불타는 나무 속의 금소’라고 합니다.”
“불타는 나무 속의 금소?”
“네.”
“이름 진짜 특이하네.”
“그건 그때 크릿이 불러낸 수호신이 하나가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이쪽 주술사들은 되게 독특해요. 시스템이 마법을 조합하는 것과 비슷해요.”
“수호신들이 여러 명 나오면 합쳐진다는 뜻이야?”
“네. 그때 나온 수호신은 불, 나무, 금속, 소 속성을 지닌 수호신들이었어요.”
“그래서 그런 일이 벌어진 거라는 거지? 너무 많이 불러내서?”
“그건 또 아니래요. 그쪽 주술사와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저 아이는 한 번에 여섯까지도 불러낸 적이 있다고 해요.”
“그런데 왜 문제가 생긴 거야?”
“수호신들 중에도 상극이 있어요. 그날은 상극인 수호신들을 잘못 꺼낸거죠. 보통 주술사들은 상극인 수호신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부르지 않죠.”
“근데 저 친구는 그걸 모르니까 막 불러내는 거고?”
“근데 저번 같은 일은 아주 드문 일이래요. 원래는 수호신이 알아서 조율해서 나온다고 해요.”
“골치다. 골치야. 버리기는 아까운 카드 같은데 그냥 내버려두자니 집안 다 날려먹을 거 같고.”
“조금 더 지켜보죠. 그래도 강숭이를 좋아하잖아요.”
“그러니까 지켜보고 있는 거야. 강숭이를 붙여놓은 다음부터는 조용하니까.”
“다행이죠. 근데 강숭이가 좀 불쌍해 보이기도 해요. 이제 3일 정도 되었는데 상태가 많이······.”
크릿은 강숭이를 무척 좋아했다. 크릿은 강숭이를 ‘뿌뿌’라고 부르면서 계속 따라다녔다. 잘 때도 강숭이를 꼭 껴안고 잤다. 덕분에 강숭이의 임무는 삽질 대신에 크릿과 놀아주는 것으로 바뀌었다.
“뿌뿌! 헤헤! 뿌뿌!”
크릿은 해맑게 웃으면서 강숭이를 쫓고 있었다. 강숭이는 크릿이 불러낸 나무 벌레들을 피해서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중이었다.
“야이! 미친년아! 눈은 쏘지 마!”
성인 남성 주먹만 한 나무 벌레들은 나무로 이루어진 벌이었다. 말벌의 모양을 하고 있었지만 나무로 이루어진 생명체.
나무로 이루어져 있지만 벌침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계속 생겨나는 벌침으로 그들은 강숭이를 공격하고 있었다. 이미 강숭이의 몸은 나무 벌레의 독이 올라서 퉁퉁 부어 있었다. 특히 머리에 탑처럼 솟은 혹은 기괴스럽게 보일 정도로 심각했다.
그럼에도 크릿은 웃으면서 강숭이를 쫓아다녔다.
“괜찮아. 저놈은 저렇게 당해도 싸.”
“그럴까요.”
“그보다 던전 탐색 이야기 나왔었잖아. 정보 좀 알아봤어?”
카시마르가 레이에게 물었다.
“그런 능력을 지닌 유저가 있긴 한가봐요.”
“그래?”
“네. 던전에 들어가지 않고도 맵 전체를 훑어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유저도 있고요. 던전 레이더에 걸리지 않는 소환수를 보내 구석구석 살펴볼 수 있는 스킬이 있는 유저도 있고요. 그런데 그런 능력을 지닌 유저가 워낙 희귀해서요.”
“부분 탐색 스킬을 지닌 유저야 꽤 있지만 전체를 다 훑어보는 유저는 희귀하긴 할 거야.”
“그렇죠. 찾는게 쉽지는 않을 거에요. 저희 상황도 있으니까.”
“일단 수소문해보고 안되면 부분 탐색 가능한 유저라도 데려와야지.저거 언제까지 내버려둘 수는 없잖아.”
“던전 클리어와 관련된 스킬을 보유한 유저는 많이 있어요.”
“맞다. 원래 탐험가 클래스가 그쪽 특화였지?”
“그렇죠. 그런데 저는 던전 보다는 필드, 언어 이쪽으로 육성을 했고요. 아마 던전 난이도를 낮춰주는 스킬을 가진 능력자도 있을 거에요.”
“던전 난이도를 낮춘다고?”
“던전도 난이도가 있어요. 난이도를 낮춘다는 건 안에 있는 함정이나 적의 숫자를 줄인다던가 아니면 던전 보스를 상대할 때 버프를 준다거나 하는 식이죠. 그쪽 관련 스킬도 되게 다양하게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 친구들 하나씩 껴서 던전 들어가면 쉽게 클리어할 순 있겠네.”
“그렇죠. 원래 새로운 던전 발견했다고 커뮤니티에 슬쩍 흘리기만 해도 컨택이 어마어마하게 오는데 지금 상황이 이래서요.”
“그건 안 돼. 여기 일도 아직 제대로 수습이 안 되는 상황인데 그렇게 일을 꼬아서 할 순 없지. 거기다 조만간 K길드 쪽이랑도 컨택을 해야한 단 말이야.”
“벌써요?”
“약발이 아주 잘 듣는 모양이야. 아예 눌러살고 싶어 하는 것 같아.”
“그럴 만도 하죠. 어차피 호위 계약 끝나면 그들은 다시 돌아가야하는 신세니까요.”
“그렇다고 서쪽으로 무작정 진격할 수도 없지. 제국에서 육로로 이어진 서쪽은 이보다 더 강한 몬스터들이 있다고 하거든. 거기다 애초에 제국에 진입 자체가 안 되잖아. 그러니 그 친구들은 계약을 파기할 수가 없는 거야. 파기하면 다시 못 오게 될 테니까.”
“어쩌면 생각보다 쉽게 합류할 수도 있겠네.”
“그럴 수도 있어. 그쪽에 다 컨신 같은 애들만 있는 게 아니니까. 프로게이머라고. 프로라면 좀 더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할 수 있겠지.”
“냉정하게 판단하면 얼른 튀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제국의 최대 파벌과 붙는 건데.”
레이가 말했다.
“그러게 그게 그렇게 보면 또 그렇네.”
“맞다. 게이트 로얄 새로운 모드 나온다는 거 들었어요?”
“그거 예전부터 나돌던 썰 아냐? 근데 게이트 로얄은 이제 크게 메리트가 없어서.”
“들어보니까 꽤 재밌을 거 같던데요. 이번에 추가되는 모드는 베이직 모드래요.”
“베이직?”
“네. 기존 게이트 로얄이 좀 복잡한 감이 있었잖아요. 거기다가 캐릭터 고유 특성까지 더해지니 변수가 엄청 많았죠.”
“그랬지. 그래도 가끔 하면 재밌기는 해. 메리트가 없어서 그러지.”
“근데 이번에 나오는 모드는 아주 기본적인 모드래요. 예전에 유행하던 배틀 게임 있잖아요. 그거 대로 가는 거에요.”
“그러면 총 들고 싸우나?”
“아뇨. 총 들고 싸우지는 않고 도검류 무기를 들고 배틀 로얄하는 거죠.”
“캐릭터 특성은?”
“다 평준으로 맞춰놓고요.”
“그러면 그냥 피지컬 싸움이네.”
“그런데 그 안에서 레벨업을 하는가봐요. 레벨업 하면 스탯을 올리거나 할 수 있고요.”
“스킬도 찍어?”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그러면 힘, 체력, 민첩 이런 거 정해놓고 육성해서 싸우는 거네. 지형지물 이용하고 그러면서.”
“그렇죠.”
“심플하긴 하다. 안 그러냐? 중악아?”
핏불킹이 말했다.
“그러네. 근데 고렙 유저들이 그걸 많이 할까?”
“제가 보기에 이번 모드는 초보를 위한 모드인 것 같아요. 코즈믹 게이트가 다양하게 즐길 거리가 많다고는 하지만 라이트 유저를 위한 게임은 아니잖아요.”
“그렇지. 저 모드면 초보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지. 캐릭터 영향을 안 받으니까.”
“그렇죠.”
“근데 게이트 로얄이면 참가비를 골드로 내야 하잖아. 그럼 어차피 초보고 뭐고 의미 없는 거 아냐?”
“초보 유저를 위한 모드면 프리모드가 따로 있지 않을까?”
“우승 상품 같은 거 적게 주는?”
“그렇지. 안 주던가 하겠지.”
“레벨업 시스템이 어떻게 구현되어 있을지가 관건이겠네. 재밌겠는데?”
“네가 하면 잘하긴 하겠다. 기본 피지컬이 되니까. 특히 스킬도 안 쓰는 거면 딱이지. 뭐. 근데 딱히 큰 보상이 떨어지는 모드가 아니니.”
“나와도 할 시간 없어. 언제 제국에서 들어올지 모르는데. 안 그래?”
“생각보다 오래 걸릴 수도 있다면서요.”
“그거야 제국에서 이 녀석 하나한테 크게 당했으니까. 좀 더 준비를 제대로 하고 오지······.”
핏불킹이 말끝을 흐렸다. 포탈이 있는 쪽에서 붉은색 신호탄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야!”
“어.”
핏불킹과 카시마르는 약속한대로 빠르게 움직였다. 레이와 다른 길드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붉은 신호탄을 확인한 순간 그들은 하던 작업을 멈추고 전투 준비에 들어갔다.
첫 번째 요새 방어 전투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