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
데몬 토이(5)
“K길드의 영향력이 상당하긴 한 모양이네.”
“그러니까. 생각보다 빠르게 합류를 시켰어. 그런데 워낙 딜이 좋았잖아.”
핏불킹이 쿤스 고기로 만든 꼬치를 씹어 먹으면서 말했다.
“검은 교단 쪽에서는 받지 않을 수 없는 제안이었지. 어쨌든 형 말대로 다들 프로페셔널한 거 같네.”
“그럼. 이게 돈이 얼마 걸려 있는 게임인데. 너나 나 같은 경제적 여유가 있는 아재들은 그냥 돈 생각 안 하고 하지만, 이걸로 먹고 사는 친구들도 많이 있다고. 거기다 여기다 투자한 시간을 생각해봐라. 검은 교단 쪽 애들은 아마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을 거다.”
“더 큰 그림?”
“우리 1차 목표가 뭐냐?”
“서쪽 지역을 지키는 거?”
“그래. 거기를 지키는 거지. 우리는 거기를 지키는 게 목표야. 그 이상은 아직 생각해보질 않았지.”
“그랬지.”
“근데 저쪽 친구들은 다를 걸?”
“어떻게 다르다는 건데? 여기 지역을 아예 관리하겠다는 뜻인가?”
“잘 아네. 넌 이 게임 말고 다른 온라인 게임은 많이 안 해봐서 모르겠지만, 원래 이런 류의 게임이 그래. 세력이 지역 하나를 컨트롤 하기 시작하면 많은 게 바뀐다고. 나라를 만들어서 운영하는 것도 가능하다니까.”
“그게 그렇게 쉽게 되나?”
“돼. 코즈믹 게이트보다 자유도가 낮은 게임도 그런 게 가능한데, 이 게임이 불가능하겠냐? 아마 그런 설정도 이미 다 세팅이 되어 있을 거다. 다만 운영진들이 원하는 방향은 아닐 거야.”
“그래?”
“당연하지. 세력이 나라를 만들고 관리하는 건 게임이 어느 정도 진행된 다음에 나와야 하는 거야. 지금 이 게임은 아직 초창기라고. 대형 업데이트가 마구 쏟아지는 상황이지.”
“하긴 아직 만렙도 나오지 않은 상황이니까.”
“이 게임은 너도 초기 기획 때부터 봐왔잖아. 게임 개발 기간은 7년 정도였지만 기획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 있었어. 그 친구가 언제부터 이 게임을 생각했었는데. 아주 오래전부터 데이터를 모아왔잖아.”
“그랬었지.”
“지금 나온 컨텐츠는 한 10분의 1정도 밖에 안 되었을 거야. 이 게임의 핵심은 우주적 존재. 즉 우주급 스케일의 신들과 관련된 거란 말이지.”
“코즈믹 게이트가 원래부터 그런 게임이잖아.”
“그래. 그럼 생각을 해보자. 원래 운영자들은 검은 교단을 밀어주려고 했어.”
“그건 확실한 거 아니잖아.”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 봐야 아냐? 너도 느끼고 있잖아.”
“뭐. 그런 분위기가 풍기긴 했지.”
“그쪽에서 그렇게 검은 교단을 밀어주려고 했던 건 그 후속 이벤트가 있다는 거야.”
“비슷한 방식의 컨텐츠가 있다는 거네? 다른 우주적 존재의 등장을 준비한 건가?”
“그렇지. 그렇게 생각해볼 수 있겠지.”
핏불킹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센 컨텐츠가 쭉 나오는 거 아냐? 원래 우주적 존재라는 게 마음만 먹으면 행성 한 두 개쯤은 그냥 없애버릴 수 있는 존재들이잖아.”
“정통 크툴루 세계관을 차용한 게 아니니까. 모티브를 끌어와서 혼합된 세계를 만들었지. 아직 그 세계관에 대해서는 다 밝혀진 게 없는 상황이고. 애초에 게이트가 어떤 의도로 만들어져서 이 루테스 대륙에 오게된 건지도 나오질 않았어.”
“그래서 유추해보자면 슈브 정도 되는 우주적 존재들이 또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거지?”
“그렇지. 크투가, 니알라토텝, 슈브 니구라스, 달로스, 아베다 나온 존재들만해도 장난 아니야. 이 게임에서 이들의 설정을 어디까지 끌어왔는지 모르지만 원작에 묘사된 정도라고 하면은 이 세계는 벌써 멸망했어도 이상할 게 없다니까?”
“그래서 서로 다른 존재들이 대립하면서 균형을 이루고 있는 거 아냐? 거기다 직접 개입을 하는 게 아니니까.”
“그렇지. 그게 핵심이야. 그러니 다음에 어떤 우주적 존재가 또 등장할지 모른다고. 솔직히 우주적 존재야 많지. 어떤 컨텐츠를 준비했는지 모르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
“뭔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신들. 그러니까 현실 세계의 신화에서 나오는 신들은 우주적 존재보다 하위의 신들이라는 거지.”
“아닐 수도 있잖아.”
“게이트 면접관 중에 우주적 존재 있었냐?”
“있지 않았나?”
“없어. 우주적 존재의 수하 정도 되는 급들은 있었지. 여기서 말하는 우주적 존재는 적어도 그레이트 올드원 이상의 것들이야. 그레이트 올드원, 아우터 갓, 엘더 갓을 나누는 게 무의미하긴 하지만 말이야. 어쨌든 그 정도 영향력이 있는 존재들이 내려올 예정이라는 거지. 쉽게 표현하자면 크투가의 아들인 아품 자 정도는 이 게임에서 세력의 한 축으로 등장하지는 않을 거야.”
“한 단계 아래의 존재로 구분이 되어 있는 거구나.”
“그렇지. 그런 의미에서 이해하면 이 게임은 여러 우주적 존재들이 이 땅. 그러니까 루테스 대륙을 놓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임이라고 보면 돼. 가볍게 구분하자면 그런 거지.”
“게이트는 그거와는 좀 다른 맥락이잖아.”
“거기까지 가면 스케일이 너무 커지니까. 그리고 게이트 쪽의 의도는 아직 나오지도 않은 상황이잖아. 그러니까 이 대륙만 놓고 보자면 그러는 거야. 저번에 봤지? 올림포스 신이 심부름하는 상황이잖아.”
“형 말대로 땅을 놓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라면 뭐가 달라지는데? 어차피 유저들은 새로운 컨텐츠가 나오니까 괜찮은 거 아냐?”
“아니지. 기존의 게임처럼 새로운 컨텐츠가 레벨 제한 풀어준다거나, 새로운 아이템, 사냥터, 보스 몬스터 같은 거 추가하는 정도에 그친다면 이 게임은 그냥 판을 엎어버릴 가능성이 높아. 내가 말했지? 아직 게임 초창기라고.”
“너무 일찍 정착을하면 얼마든지 아웃될 수 있다는 거네?”
“그치. 봐라. 우리가 라브시안 쪽에 정착해서 작은 나라를 만든다고 치자. 나라가 아니어도 작은 지역 하나를 먹었다고 치자고. 그런데 그 지역에 대뜸 우주적 존재가 나타난다고 생각해봐. 이거 천재지변보다 더 큰 재앙이거든.”
“이 게임에 준비된 컨텐츠가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지. 힘을 키워서 막아봐야지. 별 수 있어?”
“어차피 이 게임은 대놓고 한쪽 편을 들어주는 건 하지 못해. 그게 됐으면 우리가 성전 깽판 쳤을 때 바로 개입했겠지. 그러니 지금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돼.”
“뭘 적극적으로? 운영진 계획에 반기드는 거?”
카시마르가 묻자 핏불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다고 달라질 게 있을까?”
“달라지지. 솔직히 네가 그쪽이랑 척을 질 일이 뭐가 있냐? 어쩌다 보니까 악질적으로 진행을 훼방 놓는 것처럼 보인 거지. 안 그래?”
“상황이 꼬여서 그렇게 된 건 맞아.”
“이전까지는 우연히 그렇게 된 거면 지금부터는 대놓고 꼬장을 놔야한다고. 그것도 상황을 봐서 해야겠지만.”
카시마르와 핏불킹은 앞으로 추가될 컨텐츠에 대해서 꽤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그만큼 우주적 존재의 영향력은 큰 것이기 때문이었다.
***
K길드는 검은 교단 쪽 인사들을 모두 서쪽으로 끌어오는 것에 성공했다. 이미 큰 실패를 한 번 맛본 인사들이었기에 철저하게 정보를 차단했고 그 덕분에 서쪽에서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일반 유저들은 잘 알지 못했다.
순식간에 서쪽에 자리를 잡은 유저들의 인원이 만 단위로 늘어났다.검은 교단 쪽 인사들이 합류하자 요새화 작업은 빠른 속도를 냈다. 원래 그보다 훨씬 빨리 완성되어야 했지만, 순식간에 많아진 유저들의 숫자를 감당하려면 요새를 더 크게 지어야만 했다. 그러다보니 속도가 늦어진 감이 있었다.
본선에 진출한 검은 교단 측 인사들과 회의가 진행되었다. 회의는 간결하게 끝이났다. 어차피 검은 교단 쪽과 꿀매너 길드는 이미 운명 공동체였다. 그러니 협의를 하는 것도 간단하게 끝이 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최종 라운드에서는 협력을 한 다음 저희 쪽 사람들만 남으면 그때부터는 알아서 서바이벌을 하자는 거죠?”
“그렇죠. 어차피 한정판 토이는 하나만 지급되니 그걸 나눠가지기도 어려우니까요.”
“그 상황에서는 무조건 개인전으로 가는 겁니까? 이건 협의가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최종 라운드 몇 명이 남을지도 모르고 어느 길드 사람이 남을지도 모르니까요. 그 상황에서 개인전으로 한다고 하면 아무래도 같은 길드원을 더 챙기지 않겠습니까?”
로드로드의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카시마르와 핏불킹이 서로를 한 번 바라봤다. 그리고 핏불킹이 입을 열었다.
“그 상황에서 같은 길드의 협력은 인정하는 걸로 알겠습니다. 로드로드씨의 말처럼 그 상황에서는 룰을 정한다고 해봤자 지켜질지도 의문이고요.”
회의가 끝나자마자 바로 본선이 시작되었다. 이번 데몬 토이 토너먼트는 최종 라운드까지 모두 온라인에서 진행되었다. 예선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었다.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은 있었다. 바로 본선 부터는 중계가 된다는 점이었다.
***
[순위를 매기는 게 의미가 없는 대회이긴 하지만 어쨌든 순위로 보자면 현재 1위는 카시마르 선수라고 할 수 있겠군요? 안 그렇습니까? 강치수 해설?]
[그렇습니다. 일단 예선부터 본선까지 한 번도 데스를 기록하지 않은 선수가 15명 정도밖에 없거든요? 그중에서 카시마르 선수가 킬 횟수가 가장 많아요. 그리고 현재까지 경기 시간도 가장 짧고요.]
[여전히 대단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무난하게 최종 본선에 진출할 것 같은데요.]
[그렇습니다. 이제 카시마르 선수는 이번 경기만 통과하게 되면 최종 라운드에 진출하게 됩니다. 이번 경기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이전 경기들과 비슷한 시간안에 끝난다면 1호 최종 라운드 진출자가 나오겠군요.]
[지금 카시마르 선수를 제외하고 가장 빠른 선수가 2개의 라운드를 남겨놓은 상황이니 2위와 격차가 아주 심하다고 할 수 있네요.]
[예. 그렇지만 안심할 수 없습니다. 이번 대회는 자크르 토너먼트가 아니니까요. 안심할 수 없죠. 그 예로 본선 3라운드까지 2위로 상승세를 보이던 중국의 루지 선수가 탈락이 되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시작하자마자 지크 길드의 5인 연합에게 습격을 당했죠. 아무리 루지 선수가 상승세였다고 하지만 초반에 그리 많은 인원에게 습격을 당하게 되면 쉽지 않죠. 흔하게 발생하는 상황은 아니지만 라운드가 지나면 지날 수록 많이 나올 수 있습니다. 라운드에 소속되는 선수들은 말 그대로 랜덤으로 정해지니까요.]
[자!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카시마르 선수가 과연 최종 라운드에 무난하게 진출하게 될지. 아니면 의외의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지. 한 번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카시마르 선수의 시작은 학교네요. 학교입니다. 저곳은 상대적으로 아이템이 많이 나오는 곳이죠. 다만 운동장을 지나서 들어가야 본격적인 파밍이 시작되기 때문에 초반 전투가 많이 일어나는 곳입니다.]
[아무래도 학교를 노리는 유저들이 많으니까요. 운이 좋으면 시작부터 같은 계열의 무기를 여러 개 얻어서 업그레이드 할 수 있습니다. 그리되면 앞으로의 전투에서 아주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되는 것이죠.]
[카시마르 선수 운동장으로 들어섰습니다. 다른 유저들도 꽤 많은데요. 모두 열 명입니다. 그렇죠. 학교는 아이템이 가장 많이 나오는 곳이죠. 그런데 이거 상황이 좀 요상하네요. 지금 저기 있는 인원 대부분이 연합이 된 상태입니다. 넥스트, 오니, 스파이커 다 연합이 되어 있어요. 이거 카시마르 선수 위험할 수도 있는데요. 이거 루지 선수 때보다 더 안 좋은 상황입니다.]
[바로 전투가 시작됩니다. 2대 8의 상황입니다! 카시마르 선수 빠르게 도망칩니다. 그렇죠. 지금 이건 붙어봤자 의미가 없죠. 그걸 알고 넥스트 연합 쪽 인사들이 퇴로를 막습니다. 이거 쉽지 않겠는데요.]
카시마르는 빠져나가는 게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미 다른 명의 유저들은 전투를 시작한 상황. 카시마르에게 5명의 유저가 달라붙었다.넥스트 연합 쪽이 상황 판단을 적절하게 한 상황.
다른 한 명의 유저에게 3명이 붙어서 마크하고 카시마르에게 5명이 달려들어서 빨리 탈락시키겠다는 의도였다.
휙!
아직 학교 안으로 들어간 유저가 아무도 없었기에 맨손 격투가 벌어졌다.
[이거 루지 선수가 탈락한 방식과 흡사합니다. 다만 이전에는 루지 선수 쪽이 1차 파밍이 끝난 상태여서 기본적인 무기가 있었다는 겁니다.]
[맨손 싸움이면 카시마르 선수의 특기 아닙니까? 어쩌면 잘 헤쳐나갈 수도 있을 거라고 보지만 인원이 너무 많아요. 거기다 본선까지 진출할 정도면 나름 컨트롤에도 일가견이 있다는 거거든요. 예선 참가자와 다르다는 거죠.]
[카시마르 선수 포위 당했는데요. 이 상황을 어떻게··· 아! 태클입니다!]
카시마르가 택한 방법은 의외로 태클이었다. 그는 정면에 있는 상대에게 기습적으로 달려들어서 허리춤을 잡고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다른 유저가 있는 곳으로 끌고 들어갔다.
1대 5의 상황보다는 2대 8의 상황이 훨씬 낫다는 판단이었기 때문이었다.
카시마르가 이상한 방법으로 포위를 풀자 넥스트 연합의 유저들이 뒤쪽에서 달려들었다. 원래의 신체 능력을 회복한 상태의 카시마르였으면 방금 태클 공격으로 유저 하나를 가볍게 아웃시켰겠지만 지금은 잠깐 들어서 바닥에 눕히는 게 전부였다.
싸움은 아직 남아 있었다. 그러니 체력을 안배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퍽!
카시마르의 옆구리에 미들킥이 들어갔다. 카시마르는 미들킥을 캐치한 다음 파고 들어서 오른쪽 엘보우로 상대의 얼굴을 가격했다.
빠각!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치열한 전투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