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
최종 라운드(1)
휙! 푸슉!
카시마르는 백스핀 공격을 날리는 것처럼 몸을 빙글 돌리면서 나이프를 휘둘렀다. 카시마르의 나이프는 갑옷을 입은 상대의 목줄기를 섬세하게 긋고 지나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이프의 끝은 목줄기 하나를 베고 지나간 것에 지나지 않고, 그 옆에 있던 유저의 겨드랑이 쪽에 깊숙이 박혔다.
한 번의 동작으로 두 명의 적에게 데미지를 입힌 것이었다. 겨드랑이에 공격을 당한 유저는 제대로 저항한 번 하지 못하고 카시마르의 엘보우 공격을 후속타로 맞고 그대로 죽었다.
그러나 그 타이밍을 노리는 다른 유저가 있었다. 카시마르가 나이프를 들지 못하게 뒤에서 공격을 한 것이었다. 카시마르는 그 공격을 감지하고 옆으로 굴러서 공격을 피해버렸다.
아직 게임 초반이어서 장비가 완전히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뒤에서 공격한 유저도 방어구만 갖춰진 상태였고 무기가 없었다.
카시마르보다 더 큰 체격을 가진 유저.
카시마르는 나이프를 들고 있었지만 그건 쓰러진 유저에게 박힌 상태여서 지금 수중에 없는 상태였다.
바로 두 사람의 격투가 시작되었다.
카시마르는 상당히 빠르게 레벨업을 한 상태였고 뒤에서 공격한 유저도 비슷한 레벨로 보였다.
팍!
잠시 힘 겨루기를 했는데 상대가 오히려 힘이 더 센 느낌이었다. 카시마르와 다르게 힘 위주로 포인트를 사용했을 터였다. 카시마르의 앞에 있는 사내는 꽤 유명한 유저였다. 정작 카시마르는 잘 모르고 있었지만 그는 데몬 토이 토너먼트에서 9위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었다. 9위인 사내와의 일전.
둘 다 무기는 들고 있지 않았다.
[이렇게 만나게 되네요. 생각보다 일찍 만나게 되었습니다. 카시마르 선수와 프로토 선수가 전투를 시작하겠습니다.]
[일단 두 선수 모두 굉장한 실력을 갖추고 있고요. 특히 프로토 선수는 본선에 올라온 선수들 중에 가장 좋은 피지컬을 지니고 있습니다. 일단 본선 무대에서 크고 리치가 길다는 건 엄청난 장점인데요. 카시마르 선수도 190 정도 되는 장신이지만, 프로토 선수는 210cm가 넘습니다.이걸 무시 못하거든요.]
[엄청난 장점 맞습니다. 아무래도 현실에서는 덩치나 키가 크면 스피드가 줄어드는 부분이 있는데, 지금 이 게임 속에서는 그런 게 없습니다. 무게를 제외한 체형 부분만 적용이 되기 때문에 동작이 느려진다거나 하는 건 없습니다. 두 선수가 무기를 든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지금은 무기를 들지 않은 상황이라서요. 일단 피지컬 적인 부분은 프로토 선수가 앞선다고 봐야죠.]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이 상황에서 카시마르 선수가 질 일은 없을 거라고 봅니다. 맨손 격투의 측면에서 본다면 카시마르 선수를 1대1로 이길 선수가 몇이나 있겠습니까. 물론 프로토 선수가 지금까지 경기에서 보여준 실력이라면 대결이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 장담은 할 수 없습니다. 일단 프로토 선수가 카시마르 선수보다 4레벨이나 앞서는 상황이니까요.]
[지금 카시마르 선수가 12레벨이고 프로토 선수가 16레벨입니다. 신기하게도 두 선수 모두 비슷하게 포인트를 올렸어요. 다만 프로토 선수가 힘 스탯에 좀 더 비중을 두었습니다.]
[카시마르 선수가 나이프를 빨리 회수해야 좀 더 수월하게 전투가 벌어질 텐데요. 프로토 선수가 그 틈을 주지 않으려고 하겠죠?]
[그렇습니다.]
전투는 의외로 싱겁게 끝이 났다. 프로토의 선전을 기대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지만 해설위원의 말처럼 피지컬 좋은 프로토라도 카시마르를 단독으로 상대하는 건 무리가 있었다. 힘에서 우위가 있었는데도 그러했다.
투툭! 툭!
둘은 빠르게 주먹을 교환했다. 카시마르는 방어와 약한 공격을 섞으면서 프로토와 거리를 좁혔고, 프로토가 니킥을 사용해서 카시마르를 흔드려고 했다. 그러자 카시마르가 몸을 살짝 옆으로 틀어서 중심을 이동한 뒤에 팔꿈치로 반격했다. 프로토가 팔꿈치를 막고 그걸 잡아서 끌어당기려고 하자 카시마르는 부드럽게 프로토가 힘을 주는 쪽으로 끌려갔다.
그러면서 빠르게 머리를 들이밀었다.
파각!
프로토와 카시마르의 수준 차이는 여실했다. 프로토는 길거리 싸움을 오랫동안 해왔고 그래서 전투에는 나름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카시마르를 보고도 도망치질 않았다. 초반부터 보통 유저들을 학살하다 시피해서 렙업까지 빠르게 한 상황이었으니까.
적어도 레벨에서 밀리지 않는다면 충분히 카시마르와 싸울만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프로토였다. 게이트 로얄은 옥타곤 위에서 룰대로 싸우는 격투기가 아니었다. 프로토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프로토의 그런 생각은 몇 초 지나지 않아서 싹 사라져버렸다.
카시마르는 룰이 없을 때 더 강력했다.
허를 찌르는 박치기.
엘보우와 박치기 공격 사이에 1초 정도 밖에 간격이 없었다. 그만큼 빠르게 진행된 공격이었고, 거기에 프로토는 제대로 당해버렸다. 카시마르는 헬멧을 쓰고 있었기에 충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투두둑.
프로토의 입가에서 피가 쏟아졌다. 헬멧에 부딪혔을 때 입을 벌리고 있다가 입안이 부서진 것이었다.
휘잉!
프로토는 공격을 당하자마자 카시마르에게 태클을 걸었다. 힘은 자신이 우위라는 걸 확인한 상황.
그러나 태클은 좋은 수가 아니었다. 카시마르는 프로토가 머리부터 밀고 들어오자 다리를 쭉 빼면서 프로토의 이마를 밀었다. 이마를 손바닥으로 밀면서 프로토의 힘이 빠지는 것 같자 얼른 이마에 있던 손을 아래로 내려버렸다. 그러면서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푸슉!
카시마르의 손가락이 프로토의 눈에 들어가면서 시야를 어지럽혔다.
써밍.
격투기에서 나올 수 있는 최악의 반칙중 하나.
그러나 지금은 격투기에서 나오는 반칙보다 더 강도가 강했다. 격투기에서는 스탠딩 상황에서 나오는 써밍이 대부분이었다. 그라운드나 클린치 상황에서 써밍을 한다면 바로 고의 반칙으로 반칙패를 당할 수 있으니, 그라운드 상황이나 붙은 상황에서는 써밍이 나오지 않는 편이었다.
그러나 스탠딩 공방에서는 상대의 타격을 쳐내는 듯한 동작에 많은 선수들이 눈 찌르기를 당하는 편이었다. 눈은 신체 부위 중 가장 예민한 부분이기 때문에 살짝만 스쳐도 엄청난 고통이 수반된다.
이는 게이트 로얄 내에서 마찬가지였다. 엄청난 고통이 따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눈은 상당한 데미지를 줄 수 있는 급소로 분류되고 있었고, 거기다가 시야에 잠시 문제를 줄 수 있는 곳으로 설정까지 되어 있었다.
카시마르는 아예 눈에다 손가락을 집어넣다시피 했다 . 그러자 머리를 밀고 들어오던 프로토의 시야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게이트 로얄에서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시야가 회복되도록 설정되어 있었지만 당장 회복되는 게 아니었기에 프로토 입장에서는 난감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 카시마르 선수 프로토 선수의 힘을 이용한 박치기로 승기를 잡았습니다!]
[옥타곤에서 보다 더 움직임이 과감합니다. 여기는 반칙이 없거든요. 특히 이번 라운드에서는 카시마르 선수가 무기를 들지 않았을 때도 무시무시하다는 걸 제대로 보여줍고 있어요.]
[프로토 선수! 태클을 시도합니다. 힘에서 우위가 있다 이거죠. 그러나 카시마르 선수에게는 통하지 않습니다. 바로 머리를 밀면서 다리를 뒤로 쭉 빼버렸습니다. 어! 그러면서 이마를 밀던 손을 얼굴 쪽으로 내려서 눈을 찌릅니다. 저거 지금 손가락이 눈 안쪽으로 들어간 것 같은데요. 프로토 선수 멀쩡 해보이지만 시야에 문제 생기는 거 아닙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카시마르 선수 과감하게 손을 떼고 뒷구르기를 합니다.]
카시마르는 프로토의 시야를 차단한 다음 주저하지 않고 뒷구르기를 한 다음 쓰러진 유저에게 박혀 있는 군용 나이프를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허우적대는 프로토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뒤쪽에서 그어버렸다. 갑옷을 입고 있는 프로토였기에 목을 노리기 위해서 뒤쪽으로 돌아가는 동작을 취한 것이었다.
프로토가 죽은 뒤부터는 카시마르의 일방적인 사냥이 시작되었다. 프로토나 카시마르나 둘 다 초반에 빠르게 레벨업을 한 상황이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는 프로토가 쉽게 잡혔으니 카시마르의 세상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카시마르는 다른 라운드와 마찬가지로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카시마르 선수가 경기를 쉽게 마무리합니다. 프로토 선수와의 조우가 제일 기대되는 순간이었는데요. 카시마르 선수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예.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두 선수 모두 제대로된 무기를 들고 있을 때 전투가 벌어졌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중반 정도만 되어도 제대로된 무기가 나오는 시점이거든요.]
[저도 그 부분이 아쉽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가장 아쉬운 사람은 프로토 선수가 아닐까 싶어요. 프로토 선수 지금까지 굉장히 좋은 성적으로 올라왔거든요.]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이게 또 데몬 토이 토너먼트가 가진 다른 대회와 차별되는 점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어쨌든 카시마르 선수는 예상대로 제일 첫 번째로 최종 라운드에 합류한 유저가 되었습니다. 이 선수 진짜 경기력이 어마어마합니다. 경기력이 좋으면 경기 시간마저 단축 시킨다는 걸 그대로 증명하는 케이스에요. 지금 2위로 책정된 선수가 4라운드 경기를 막 들어간 상황이니 정말 빠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최종 라운드는 1000명의 유저가 게임을 하기 때문에 특별 제작된 맵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 커뮤니티에서는 카시마르의 최종 라운드 진출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가 나왔지만 정작 당사자는 늘 그랬듯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부분을 신경 쓰고 있었다.
그 다른 부분은 바로 최종 라운드에서의 협력 플레이에 관한 것.
이미 본선 시작하기 전에 협의한 바가 있었지만 다시 한번 협의를 해야 했다. 그 이유는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최종 라운드에 진출을 했기 때문이었다.
“이거는 이거대로 골치네. 뭐 이렇게 골고루 본선에 진출한 거야?”
“명단 말고 길드 마크만 외우면 되는 거 아냐?”
“그 숫자가 40개가 넘는다.”
“그렇게 많아?”
“이게 다 펑크 라이온 때문이야. 그쪽은 길드 연합 개념이라서 하부 길드마다 다 마크가 다르거든.”
“어쩌겠어. 외워야지.”
“그니까. 골치가 아프다고. 이거 제대로 안 외우면 난전인 상황에서 헷갈릴 수가 있어.”
"난 잘 외워지는구만."
“핏불형. 이거 그냥 마크만 외우지 마시고 진출자랑 같이 보시면 좀 더 쉽게 외울 수 있어요.”
골낳괴가 말했다. 골낳괴 친구들은 용재만 제외하고 다 최종 라운드까지 진출한 상태였다. 핏불킹도 마찬가지였다. 더 놀라운 사실은 핏불킹은 17위의 아주 준수한 성적으로 최종 라운드까지 통과했다는 점이었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데도 어렵네.”
“그래도 행복한 고민이잖아요. 저희 쪽이 아마 인원수가 제일 많을 걸요?”
“아직 게임 이긴 것도 아냐. 맵이 넓어서 초반에 어떤 위치에서 시작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그거야 이제 우리 손을 떠난 문제니까. 잘 외워둬. 이것만 잘 외우면 우리가 준비할 건 다 끝난거나 마찬가지야.”
“그래요. 형. 지금 펑크 라이온 쪽도 난리래요.”
“왜?”
“그쪽도 그네들 소속 길드 마크를 다 알지 못한데요. 생각해보면 그래요. 길드 마크야 아이디 옆에 항상 뜨니까 늘 보는 거지만 그걸 누가 외우고 다녀요. 그냥 보다 보면 알게 되고 그러는 거지.”
“그쪽이야말로 지금 급하지. 잘못하면 팀킬이 되는데. 아마 더 필사적으로 외울 거야.”
“지금 아이디와 마크를 잘 외워야 하는 게 다른 이유가 아냐. 다른 길드에서 분명히 이걸 이용하려고 드는 유저가 있을 거라고. 솔직히 한 두 명도 아니고 1000명이서 게임 하는데 헷갈리지. 안 헷갈려?”
최종 라운드에 진출한 카시마르 쪽 유저는 모두 113명.
그들 중에 펑크 라이온 소속의 유저가 가장 많았다. 최종 본선에 드는 건 카시마르처럼 압도적인 실력이 아닌 이상 운적인 요소가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었다.
카시마르 일행은 열심히 진출자의 아이디와 길드 마크를 외웠다. 그리고 이틀 뒤에 데몬 토이 토너먼트 최종 라운드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