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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캐로 멱살 캐리-149화 (149/205)

# 149

하지 말라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불꽃 기사 에르는 카르 공작을 만나고 있었다. 카르 공작의 옆에는 그림자처럼 티지스가 있었다. 귀족인 에르는 상당한 부를 누리며 살아왔지만 눈앞에 있는 다과는 귀족인 그도 처음보는 사치스러운 것들이었다.

에르는 그러한 사치스러움에 놀라고 있었지만 정작 그것을 내준 당사자인 카르와 티지스는 그러한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어떤 손님이 와도 응당 내오는 것들이었다.

같은 제국 고위층이어도 이렇게 빈부격차가 있었다. 특히 야네크가 가문에 세습된 이후로 이러한 양극화는 더 심해졌다고 할 수 있었다. 과거에는 가문에 불꽃 기사가 배출되면 쓰러진 가문도 단숨에 상류층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였지만, 지금의 불꽃 기사는 그저 야네크를 지닌 기사라는 타이틀에 가까웠다.

“불꽃 기사 에르. 그대를 왜 불렀는지 아십니까?”

카르가 차분한 표정으로 질문했다. 에르는 카르가 질문하기 전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침묵하고 있었다. 약간은 긴장된듯한 에르의 표정. 아버지인 그루한과 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무슨 일로 부르셨든지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겠습니다.”

에르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에르는 말끔한 예복을 입고 있었다. 예복 안에는 질린드 옷의 카라가 삐져나와 보였다. 질린드 옷감의 특징은 다양한 색으로 빛나는 것이기 때문에 티지스와 카르가 그걸 보지 못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카르와 티지스가 서로를 바라봤다. 에르의 태도가 생각보다 저자세였다. 마치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모습. 그 모습에 카르는 굳이 리버스 가문을 정리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티지스도 같은 생각이기에 카르를 바라봤다.

“공작님. 그보다 먼저 서명을 해주셔야할 일이 있습니다.”

협의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는 판단을 빠르게 한 티지스가 선수를쳤다. 에르를 만나기 위해서 시간을 빼놓은 상태기 때문에 카르의 일정은 넉넉했다.

티지스의 의도를 알아차린 카르는 에르를 보며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정중한 말투. 그러나 에르와 카르 사이에는 커다란 간격이 있었다. 에르는 그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카르와 티지스는 응접실 밖으로 나와서 카르의 집무실로 향했다.

“리버스 가문이 축적한 재산이 꽤 있습니까?”

카르가 물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질린드를 입었더군요. 저 물건은 웬만한 재력으로는 구하기 힘들텐데요.”

“리버스 가문에서 제대로 준비를 해왔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가지고 있던 영지를 다 처분해야 구할 수 있는 수준의 물건이니까요.”

“흠······.”

티지스의 말에 카르가 잠시 턱끝을 쓰다듬었다. 카르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그에게도 룰이라는 게 있었다. 그것은 파벌의 사람을 함부로 내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리버스 가문에서 저리 적극적으로 나온다면 생각을 다시 해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잠시 침묵했던 카르가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리버스 가문에 대해 조사가 조금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티지스. 귀족파의 힘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에요. 충성심 높은 가문을 굳이 쳐낼 필요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티지스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카르가 리버스 가문을 희생양으로 삼으려고 했던 건 티지스의 의견 때문이었다. 리버스 가문이 불꽃 기사 에르를 감싸고 돌 수도 있다는 판단이 있었고, 카르는 티지스의 의견을 수용했다. 그러나 리버스 가문에서는 보다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가문의 영지를 팔아서까지 파벌에 충성하려는 모습을 보인 것이었다. 카르는 그런 모습을 보고도 리버스 가문을 희생양으로 삼을 만큼 기준이 없는 사내가 아니었다.

“티지스. 리버스 가문을 벌써 친 건 아니겠지요?”

“아직 준비 단계입니다.”

“그러면 일단 대기하는 걸로 합시다. 그리고 에르와 이야기를 좀 나눠 보지요. 대화가 잘 통하면 굳이 피를 볼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발타르 쪽은 다른 가문을 알아볼까요?”

“적당한 가문이 있겠어요?”

카르가 물었다.

“찾아보겠습니다.”

“없으면 무리할 필요 없습니다. 발타르와의 관계가 꼭 필요한 건 아니니까. 어차피 이번 일만 잘 풀리면 발타르 정도는 가볍게 무시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에르에게 어느 정도까지 이야기하실 생각입니까?”

“콜렉터에 관한 이야기는 해야겠지요.”

“콜렉터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걸 알고도 그가 이전과 같은 반응을 보일까요?”

“그렇다고 저렇게까지 나왔는데 그냥 내칠 수는 없어요. 티지스. 저리 충성스러운 가문도 내친다면 누가 우리 파벌을 위해 움직이기겠습니까?”

카르는 단호했다. 그러자 티지스가 고개를 숙였다.

“콜렉터에 관련된 이야기는 내가 적당히 이야기를 만들어볼테니 티지스는 적당히 반응만 하도록 해요.”

“예.”

카르는 다시 응접실로 향했다. 에르는 미동도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갑자기 일이 생겼군요.”

“아닙니다. 공작님.”

“그대를 부른 이유는 그대가 가진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정확히는 그대가 가진 야네크인 리버스가 필요합니다.”

카르 공작의 말에 에르의 눈이 커졌다.

“야네크를 파벌에 기증하라는 말씀입니까?”

“그런 건 아니에요.”

카르가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자 에르가 살짝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게 아니라면 어떠한 일이라도 하겠습니다.”

“기사 에르. 서쪽 붉은 오크에 대해 얼마나 아십니까?”

“몇 번 들은 적 있습니다만 자세히 알지는 못합니다.”

“최근에 비밀리에 그쪽 사업이 다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꽤 대규모 프로젝트였죠. 그 프로젝트를 이끈 건 그대도 들어봤을겁니다. 이번 성전 최고의 영웅인 카시마르입니다.”

“최초의 여행자 불꽃 기사 카시마르말입니까?”

“맞아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카시마르가 서쪽 붉은 오크 지역에서 아군 불꽃 기사들을 베어버린 것입니다. 불꽃 기사만 베어버린 게 아니에요. 마법사들도 많이 죽었습니다.”

“그가 어째서 그런 행동을 한 겁니까?”

“서쪽 붉은 오크의 사악한 주술에 걸렸다고 합니다.”

“주술이요?”

“네. 그는 이제 제국의 적입니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적이죠. 그는 서쪽의 붉은 오크들과 결탁해서 제국을 노리고 있습니다.”

“그의 처리를 위해서 저를 부르신 거로군요.”

“그렇습니다.”

“리버스가 필요하다는 말씀은 어떤 의미인지요.”

“에르. 콜렉터에 대해 아십니까?”

콜렉터라는 말이 나오자 에르는 아주 잠깐 눈을 깜빡였다. 그는 콜렉터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알고 있습니다.”

“우리 파벌은 비밀리에 콜렉터를 연구해왔습니다.”

“콜렉터를 말입니까?”

“네. 콜렉터는 아주 뛰어난 무기지요. 야네크보다도 뛰어납니다. 다만 그 위험성이 너무 강해서 봉인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연구진은 그 위험성을 어느 정도 컨트롤 할 수 있는 단계까지 와 있습니다.”

“정말 거기까지 연구가 되었단 말입니까?”

“아직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좀 더 연구가 필요하죠. 솔직히 말하면 아직 갈길은 멉니다.”

“그렇군요.”

갈길 이 멀다는 말에 에르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 사이에 카르와 티지스 눈빛을 교환했다.

“다만 가장 중요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콜렉터가 봉인된 이유를 알고 있겠지요?”

“예. 콜렉터가 폭주하는 현상 때문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콜렉터가 폭주하여 주변을 초토화 시키는 것 때문에 그렇지요. 하지만 그 부분을 해결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콜렉터가 폭발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면 문제가 없는 것 아닙니까?”

에르가 말했다. 그러자 카르가 고개를 저었다.

“문제가 없다면 완벽하다고 했겠지요. 문제가 있습니다. 콜렉터가 폭발하는 대신 멈추는 현상이 생겼습니다. 폭발하는 걸 아예 없애지는 못한 것이죠.”

“콜렉터가 멈추는 문제라······.”

“전투 중에 멈추는 것은 꽤 큰 문제일 수 있죠. 아니 꽤 큰 문제죠. 그래서 완벽하다고 하지 못한 겁니다.”

“그래도 어마어마한 성과 아닙니까? 콜렉터 연구가 확실해진다면 북제국을 정복하는 일도 꿈은 아니게 될겁니다. 아니 그전에 귀족파를 말끔하게 정리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으면 비난을 피할 수 없습니다. 콜렉터는 금기 중에 금기니까요.”

“그래서 지금까지 어떤 소문도 돌지 않은 거군요.”

에르가 말했다. 카르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카르가 늘어놓는 이야기는 모두 거짓이었다.

그럴 듯한 거짓말.

평소의 에르 같았으면 약간의 의심을 했을테지만 지금 그는 카르 공작의 신분에 억눌려서 제대로된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누구라도 그랬을 거였다. 그만큼 카르 공작의 거짓말을 교묘했으니까.

콜렉터의 불완전한 부분을 완벽하게 만들었다고 했다면 에르는 의심을 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카르는 완벽하지 않다고 했다. 그러한 디테일한 부분이 에르가 더욱 완벽하게 속아 넘어가게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제가 콜렉터를 사용했으면 한다는 말씀입니까?”

“그래요. 그대가 사용할 콜렉터는 언데드라는 물건입니다. 콜렉터가 저마다 특유의 능력을 가진 건 알고 있겠지요.”

“알고 있습니다.”

“언데드의 능력은 사용자를 죽지 않게 만들어주는 겁니다. 어떠한 충격에도 버티게 만들어주지요.”

카르의 말에 에르가 빠르게 계산을 마쳤다. 이제야 자신을 부른 이유가 완전히 명확해지는 느낌이었다.

“앞서도 말했지만 아직 콜렉터가 완벽한 상황이 아니에요. 그래서 그대에게 이렇게 제안을 하는 겁니다. 콜렉터가 전투 도중 멈출 수도 있습니다. 그리되면 그대는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할 겁니다.”

“그 반대로 제가 카시마르를 잡을 수도 있겠군요.”

“그래요. 콜렉터와 리버스의 힘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계산입니다. 안 그래요? 티지스?”

카르가 티지스를 보며 물었다.

“예. 카시마르에 대한 분석은 끝이 난 상황입니다. 그는 상대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 큰 힘을 받습니다. 그러니 소수의 인원으로 그를 상대해야 하는데, 현재의 불꽃 기사 마법사의 조합으로는 그를 상대하기 어렵다는 판단입니다. 상대한다고 하여도 희생이 클 거라고 예상되고요.”

에르는 티지스의 설명을 차분하게 들었다. 그의 마음은 이미 콜렉터를 입는 것으로 굳혔다. 카르의 설명을 들었을 때부터 그는 마음이 움직이고 있었지만 가장 크게 움직인 건 바로 언데드라는 콜렉터의 능력 때문이었다.

그의 가문의 야네크는 리버스.

리버스는 늘 잠재력만 가득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어느 누구도 리버스를 제대로 사용한 적 없었고 그건 에르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언데드라면 그걸 가능하게 할 수 있었다.

에르는 카르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에르가 돌아간 뒤 카르는 티지스는 준비를 서두르라고 명령했다.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카시마르는 제노키오의 레벨을 45까지 끌어올렸다. 데몬 토이를 이용해서 아이템까지 풀세팅으로 맞춘 제노키오의 힘은 어마어마했다. 장군급 데몬토이 전부가 달려들어도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제노키오가 45레벨을 달성하고 이틀 뒤에 제국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카시마르는 오프라인 상태였다. 제국의 공격이 시작된 시간이 호주 시간으로는 새벽이었으니까.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카시마르는 잠을 자고 있지 않았다. 그는 늘 새벽 운동을 거르지 않고 하고 있었다. 지금도 그랬다.

새벽 운동 도중에 연락을 받은 카시마르는 얼른 코즈믹 게이트에 접속했다.

“포탈 열렸어?”

“아니 아직. 지금 그 옆에 포탈이 두 개 더 생성되고 있다.”

“그럼 지금부터 쏴야겠네.”

“그러니까 얼른 앉아.”

카시마르는 대포를 포탈을 향해서 쏘았다. 버프를 머금은 대포는 호쾌하게 포탈을 향해 날아갔다. 에너지 형태가 아니라 포탄이 직접 날아가는 형태이기 때문에 포탈을 넘어서도 공격이 가능할 거라는 의견이 있었다.

“넘어가네.”

첫 번째 포탄이 열린 포탈을 타고 넘어갔다. 몇 초 뒤에 포탈 너머에서 폭발이 넘어와서 반짝 거렸다. 강화된 포탄의 위력은 그만큼 무시무시했다.

“이거 잘하면 저놈들 넘어오기 전에 싸그리 없앨 수 있겠는데요?”

골낳괴가 말했다.

“저쪽 애들이 그렇게까지 바보겠냐? 바로 마법사로 쉴드 겹겹이 쳤을 거다.”

핏불킹의 대답.

그러나 이번에는 골낳괴의 의견이 적중했다. 아니 골낳괴의 의견을 넘어서는 결과가 나왔다. 두 번째 공격은 필요도 없었다. 첫 번째 포탄이 포탈을 타고 넘어간 순간 제국 쪽 진영은 이미 초토화가 된 상태였다.

갑작스럽게 포탈을 타고 넘어온 포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으니까.

그래도 살아남은 병력은 꽤 있었다. 특히 불꽃 기사들과 마법사들은 아주 멀쩡했다.

문제는 불꽃 기사 에르였다.

콜렉터를 입은 불꽃 기사 에르는 콜렉터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가 이상을 느끼고 고개를 숙여 콜렉터를 바라보는 순간.

주변이 모두 하얗게 변해버렸다.

눈 몇 번 깜빡거릴 순간에 주변 세상이 모두 하얗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저게 뭐야? 흰빛?”

콜렉터의 폭주는 포탈을 통해서도 전달되었다. 포탈이 부풀어오른 풍선처럼 변했다가 터졌다.

어느 누구도 반응할 수 없을만큼 빠르고 거대한 기운이었다.

흰빛은 요새마저 집어삼켰다. 피하라고 소리칠 시간도 없었다. 포탈에서 터져나오는 흰빛을 목격한 순간 이미 요새는 집어삼켜지고 있었으니까.

카시마르도 그 흰빛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캐릭터가 사망하였습니다.]

[자살을 시도하여 우주적 명성이 늘어납니다.]

[대량 학살에 성공하여 우주적 명성이 늘어납니다.]

[아군을 학살하여 우주적 명성이 늘어납니다.]

[우주적 명성이 일정치에 도달했습니다. 드림랜드로 가는 길이 열립니다. 얕은 잠의 계단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죽은 카시마르의 상태 창에 기이한 시스템 메시지만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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