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2
이야기의 시작(3)
“크툴루에 관련된 이야기 중에 별이 제 자리를 잡을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 있죠?”
“들어본 적 있습니다.”
“그게 핵심이에요. 별이 제 자리를 잡는다는 이야기는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에요. 리셋 버튼이나 마찬가지죠. 우주에는 지정된 특수한 별들이 있고, 그 별들은 일정한 주기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도록 되어 있죠. 그 별들이 제 자리를 찾으면 잠들어 있던 우주적 존재들은 다시 활동을 시작하고, 소멸된 우주적 존재들 대신에 새로운 우주적 존재들이 탄생하게 되죠.”
“그러면 지금 봉인되어 있는 크툴루 같은 우주적 존재들도 다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는 겁니까?”
“맞아요. 그래서 소멸과 봉인은 뉘앙스가 다른 겁니다.”
“그러면 크툴루가 봉인되어 있다는 말은 아직 별이 제 자리를 찾지 못했다는 뜻이로군요.”
“맞아요.”
“그게 게이트, 꿈의 계단과 관련이 있겠고요?”
“네.”
“그러면 그 별이 제 자리를 찾아 움직이는 것 가지고도 분쟁이 일어났을 수도 있겠네요.”
“그랬죠. 크툴루 계는 드림랜드와 관련된 분쟁보다 별이 제 자리를 찾아 움직이도록 하는 일에 집중했어요. 봉인된 우주적 존재들이 많았지만 그들은 물질계에서만 제대로 형태를 유지할 수 없다 뿐이지, 여전히 다양한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으니까요. 문제는 그들이 찾는 마지막 별이 강철 원숭이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는 겁니다.”
“강철 원숭이도 따지고보면 그쪽 계열 아닙니까?”
“아니에요. 아우터 갓과 엘더 갓의 분류는 모든 우주적 존재에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에요. 그 예로 엘더 갓이면서 게이트 설립에 관여한 우주적 존재도 있어요.”
“허······.”
“복잡한 이야기죠. 어쨌든 아까의 이야기를 계속 하자면 간단한 부탁일 수 있었는데 강철 원숭이와 크툴루 계파의 우주적 존재들 간에 사이가 틀어져 버리게 되요. 당연히 분쟁이 일어났죠. 분쟁이 아니라 전쟁이라고 봐야죠.”
“협약이 있지 않나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이라고 이야기 했었죠. 그 특별한 경우란 양측이 합의했을 경우에요.”
“그 우주적 존재들의 협약이라는 건 일방적인 공격을 금지하기 위함이 큰 거였군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어떻게 되었죠?”
“간단히 설명하자면 강철 원숭이의 압승이었어요. 크툴루 계파의 우주적 존재들이 협공을 했지만 강철 원숭이 하나를 이기지 못했죠.”
“그게 말이 되는 이야기에요? 우주적 존재들의 힘은 크게 차이가 없는 게 아니에요?”
“우주적 존재들 사이에서도 힘의 높낮이는 존재해요. 다만 아우터 갓과 그레이트 올드 원이라는 분류가 힘의 높낮이를 의미한다는 게 아니라는 거죠. 무엇보다 강철 원숭이는 우주적 존재와 싸우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에요. 그는 계급으로 따지자면 그레이트 올드 원에서 하위층의 존재지만 우주적 존재들과 싸울 때는 최상위 아우터 갓도 건드리지 못할 정도죠.”
“밸런스가 조금 이상하네요.”
“이상하죠. 이상한 게 당연합니다. 그게 강철 원숭이의 능력이니까요. 강철 원숭이는 우주적 존재와 싸움에서 힘을 얻는 것 외에는 아무런 능력이 없어요. 그의 영향력은 지역의 신 보다도 낮을 정도니까요. 전투 능력도 그렇죠. 그는 우주적 존재와 싸울 때를 제외하고는 큰 쓸모가 없는 존재에요.”
“확실히 조금 경박하긴 했어. 우주적 존재라면 우주에서 제일 강한 존재라는 건데 뭐랄까······.”
핏불킹이 주변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인간적이었지.”
“맞아. 인간적이야. 속세에 찌든 인간이랄까.”
“그건 강철 원숭이의 성격이죠. 그렇다고 다른 우주적 존재들이 근엄하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네요. 어떤 면에서는 강철 원숭이보다 더 경박스러운 성격을 지닌 우주적 존재들도 있다고 해요.”
디마벨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디마벨 옆에 있는 노인을 바라봤다. 방금 디마벨의 말은 노인의 말을 전달한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카시마르는 그 모습을 보고는 먼저 말을 꺼냈다.
“그래서 하고자 하는 거래라는 게 무엇입니까? 그쪽이 이렇게까지 정보를 풀어놓으면서도 꿈의 세계에 관련된 구체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는 건 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겠지요?”
카시마르의 지적은 정확했다. 이들은 우주적 존재에 대한 이야기는 구체적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드림랜드로 가는 통로인 꿈의 세계에 관련된 이야기는 조금도 구체적으로 하지 않고 있었다. 방대한 세계로 변했다는 이야기만 할 뿐이었다.
카시마르의 질문에 디마벨이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은 디마벨의 손을 다시 한번 붙잡았다. 디마벨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노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강철 원숭이의 이야기를 다 하고 난 다음에 말씀 드리죠. 그 이야기가 마무리되지 않았어요.”
“알겠습니다.”
“혹시 강철 원숭이 주변에 기이한 능력을 지닌 수하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습니까?”
“들어 봤어요.”
카시마르를 그들 중에 둘을 본 적이 있었다. 하나는 좌팔계였고 다른 하는 오른우였다.
“우주적 존재 정도 되면 그렇게 수하들을 부리지 않아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니까요. 지배하고 숭배할 뿐이죠. 강철 원숭이가 병력을 모으는 것에 집중했던 그의 약점이 바로 거기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우주적 존재가 상대가 아니면 크게 힘을 쓸 수 없다는 것 말입니다.”
“저번에 성전에서 모습을 보니까 강하던데요.”
용재가 말했다. 그러자 핏불킹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사기캐 수준이던데.”
“그게 크게 강한 게 아닙니다. 다른 우주적 존재였더라면 강림하는 즉시 주변의 생명체가 죄다 죽었을 거예요. 범접할 수 없는 영향력을 지닌 존재. 그게 바로 우주적 존재니까요.”
“그렇게 보면은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네요. 강철 원숭이가 병력을 만들어서 달리 달로스 세계에서 왕 노릇을 하게 된 이유가 실상은 약하기 때문이라는 거죠?”
“네. 우주적 존재와의 전투는 예외고요.”
“그래. 생각해보면 그래. 보통 우주적 존재라는 자들은 따지고 보면 신이잖아. 근데 그 신이 보통 사람들이랑 같이 밥 먹고 똥 싸고 그러면 그게 좀 이상하긴 하네.”
“강철 원숭이는 크툴루 계의 우주적 존재들과의 싸움에서 말도 안되는 승리를 거뒀고, 덕분에 우주적 존재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퍼져서 기피 대상이 되어버렸죠. 엘더 갓들이나 아우터 갓들이 카시마르님 주변에 오지 않은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일 거에요. 괜히 와서 잘못 엮이게 된다면 문제가 심각해지니까요.”
“무언가 이야기가 맞아 들어가는 느낌이네요. 항상 의문이었거든요. 강철 원숭이가 설명처럼 그렇게 강력한 존재라면 왜 힘을 잃고 이 땅에 내려와 있을까 하는 의문 말이죠.”
“전쟁에서는 이겼지만 강철 원숭이는 보복을 당해요. 살아남은 크툴루 계 우주적 존재들이 강철 원숭이의 주변 인물들을 포섭해서 내전을 일으켰죠. 앞서도 말햇지만 강철 원숭이는 우주적 존재들에게는 사신 같은 존재지만, 그 외의 존재들에게는 크게 힘을 쓰지 못해요. 물론,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긴 하지만 대적 불가의 존재는 아니라는 거죠. 아주 큰 내전이 벌어졌고 결국 강철 원숭이는 패배해서 도망치게 됩니다.”
“그런데 말이죠. 강철 원숭이는 달로스라는 존재의 피조물이잖아요. 달로스의 명령은 거역할 수 없게 되어 있지 않나요? 달로스가 어느 정도 컨트롤 할 수 있었을 거 같은데?”
“아. 제가 그 이야기를 안 했나요? 강철 원숭이는 한 번 달로스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적 있어요. 벗어났다기 보다는 달로스를 봉인한 적 있었죠.”
“달로스를요?”
디마벨의 말에 사람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카시마르도 마찬가지였다. 카시마르의 머릿속 달로스의 이미지는 전지전능에 가까웠는데, 강철 원숭이가 그를 봉인한 적 있었다는 게 도무지 믿기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네. 크툴루처럼 완벽한 봉인은 아니었어요. 잠을 재운 것과 비슷하달까요? 어쨌든 강철 원숭이는 달로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달리 달로스 우주를 지배한 적 있었죠.”
“그때 크툴루 계파의 우주적 존재들과 전투를 치른 거군요.”
“네. 강철 원숭이는 힘을 과시하고 우주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바로 그의 발목을 붙잡은 거죠. 덕분에 달로스는 잠에서 깨어나게 되었고 강철 원숭이는 더욱 강력한 족쇄에 묶이게 되죠.”
“강철 원숭이가 달로스를 봉인했었다니 신기하네요. 강철 원숭이가 아닌 다른 존재들을 이용했던 건가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별로 없어요. 강철 원숭이가 직접 움직이지는 못했을 거에요. 어쨌든 달로스와 아베다는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강철 원숭이가 이곳에 내려온 게 그 사건 때문이로군요?”
“맞아요.”
“그럼. 그녀석이 자충수를 둔 거나 다름 없군요.”
핏불킹이 말했다.
“자충수를 둔 건 맞지만 더 크게 되돌려주죠.”
“더 크게 되돌려주다니 그게 무슨 뜻입니까?”
“아까 별이 제 자리를 찾아 움직인다고 이야기 했었죠? 크툴루 계파가 그 별이 좀 더 빠르게 자리를 잡아 움직이도록 애를 썼다고도 했고요.”
“네.”
“그 마지막 별은 강철 원숭이의 지배하에 있었죠. 강철 원숭이는 전쟁에서 패배하기 직전에 그 별을 꿈의 세계로 보내버려요.”
“꿈의 세계?”
“네. 무한하게 확장 중인 그 세계로요.”
“그럼 어떻게 되는 거죠?”
“제가 앞서 설명했었죠. 그 꿈의 세계는 전 우주에서 유일하게 우주적 존재가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고요. 그래서 엘더 갓과 아우터 갓의 내기의 전장으로 쓰이고 있다고요.”
“그러면 어찌 되는 겁니까?”
“꿈의 세계. 그러니까 과거에는 계단의 세계로의 출입이 자유로웠지만 지금은 자유롭지가 못해요. 그 세계에 들어간 자는 반드시 드림랜드로 가는 길을 열어야 나올 수 있죠. 하지만 강철 원숭이가 보낸 것은 별이에요.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란 말이죠.”
“그러면 별이 제 자리로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인가요?”
용재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네.”
“그게 문제가 아니야. 지금 저 말은 누군가 계단을 타고 내려가 드림랜드로 가는 문을 열지 못하면 영원히 별이 제 자리를 찾아가지 못한다는 거고, 그 말은 영원히 크툴루가 봉인에서 풀려나지 못한다는 의미가 되지. 크툴루 뿐만 아니라 현재 봉인되거나 잠든 모든 우주적 존재들이 영원히 그 상태로 있게 된다는 거야.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거나 다름 없달까?”
“와. 그럼 그거 완전히 빅엿이잖아요.”
“제대로 한 방 먹인 거지. 강철 원숭이가.”
“정확해요. 그게 바로 간단했던 내기가 이렇게까지 스케일이 커지게된 이유입니다. 게이트가 바로 그래서 설립된 거고요. 제가 아까 엘더 갓도 게이트 설립에 참여했다고 했었죠? 바로 그겁니다. 엘더 갓들 중에서는 별이 제 자리를 찾아 움직이기 바라는 자들도 있거든요."
"그렇겠네요. 엘더 갓 중에서도 봉인된 자들이 있을테니까요."
"맞아요. 그래서 그들 사이에서도 내분이 있죠. 반대로 아우터 갓 쪽에서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하스터가 있죠. 하스터는 배다른 동생인 크툴루를 끔찍하게 싫어해요. 그래서 그는 이 상황이 유지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그 외에도 각자의 이해관계로 우주적 존재들이 이 게임에 참여해서 일이 꼬이고 있는 상황이고요.”
“난장판이네. 난장판이야.”
“그렇다면 이렇게까지 우주적 존재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그쪽 분은 우주적 존재이신 겁니까?”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카시마르가 집중했다. 카시마르는 디마벨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도 노인에 대한 경계를 풀지 않고 있었다. 카시마르의 질문에 무표정하게 있던 노인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디마벨의 손을 다시 한번 붙잡았다. 그러자 디마벨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노인을 향해 얼굴을 가져갔다. 디마벨은 노인과 입을 맞췄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사람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딱히 반응은 하지 않았다.
짧은 입맞춤을 하고 디마벨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아까와 다르게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그리고 노인의 입에서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나 같은 하찮은 이가 우주적 존재와 비교할 수 있겠소. 나는 영웅으로 태어나서 겨우 지역의 신에 머문 자요.”
노인의 목소리는 맑고 깨끗했다. 도무지 노인의 목소리라고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목소리만 들으면 20대 청년의 것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목소리였다.
“영웅으로 태어나서 지역의 신에 머물렀다는 게 어떤 의미입니까?”
“그 이야기는 앞으로 할 이야기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될 것이오. 목소리를 빌릴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소이다. 먼저 거래부터 했으면 좋겠소.”
“좋습니다. 제게 부탁할 내용이 무엇입니까?”
“바로 말하겠소. 꿈의 세계에 들어가게 되면 나를 제일 첫 번째로 불러주었으면 좋겠소. 그게 바로 내가 바라는 거요.”
노인은 말했다. 카시마르는 차분한 눈빛으로 노인을 바라보다가 핏불킹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