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주캐로 멱살 캐리-153화 (153/205)

# 153

오색 깃발의 문(1)

“그게 무슨 뜻입니까?”

“말 그대로요. 꿈 계단의 세계로 들어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확실하고 정통적인 방법이 바로 당신의 케이스요. 바로 우주적 명성을 얻어서 초대권을 획득하는 것이지.”

“초대권을 획득하게 되면 무언가 다른 게 있습니까?”

“몇 가지 혜택이 있지. 첫째로 계단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면 가지고 있던 명성 포인트는 모두 초기화가 되오. 당신은 어차피 초대권을 받을만한 포인트를 쌓았으니 큰 의미가 없지. 초대권을 받는 순간 포인트가 초기화 되니까. 그런데 초대권을 받아서 세계에 입장하는 자는  명성 포인트 1을 받게 되오.”

“1포인트?”

“우주적 명성을 의미하지. 1포인트가 작아 보이지만 그 세계에서는 상당히 큰 가치가 있소. 시세에 따라 다르겠지만 1억 금화 이상의 가치가 있지.”

“그 포인트를 사용하면 외부의 존재를 데려올 수 있다는 겁니까?”

핏불킹이 말했다.

“그렇소.”

“외부의 존재를 데려오는데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포인트라면 말한대로 상당한 가치겠군요.”

“상당한 가치요. 꿈꾸는 자가 단숨에 영웅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포인트니까. 그 세계를 여행하다보면 우주적 명성이 그리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을 거요.”

“다른 여행자들은 그 포인트가 주어지지 않고 이 친구는 특혜로 주어진다는 건데 그걸 당신을 데려오는 걸로 써버린다면 큰 손해일 거 같은데요.”

“손해가 아니오. 이번 게이트의 여행자들은 꿈의 세계를 여행하기에 큰 약점이 있으니까 말이오.”

“약점?”

“당신은 꿈을 꾸지 않소이까. 그건 세계를 여행하는 데 치명적 약점이지. 당신이 꿈을 꾸는 동안 당신의 육체는 여전히 여행의 세계에 노출되어 있거든. 그곳은 위험한 곳이오. 그리고 이쪽 세계처럼 부활의 권능도 주어지지 않지. 그러니······.”

“잠을 자는 동안 호위를 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거군요.”

“그렇소.”

“꿈의 세계에서 꿈을 꾼다니 아이러니 한 일이로군. 우리는 저쪽 세계에서도 꿈을 꾸는데 말이지.”

핏불킹이 말했다. 그러자 노인이 반응했다.

“당신이 지금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하오?”

“그와 비슷하지 않습니까.”

“이쪽 세계가 꿈인지 저쪽 세계가 꿈인지 구분할 수 있겠소? 확신하는 거요? 저쪽 세계가 꿈이 아니라는 걸.”

말을 하면서 노인은 미소를 지었다. 이제까지 대화 도중 그가 보인 반응 중 가장 큰 액션이었다. 미소를 지은 노이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어느 쪽이 실재하는 세계인지 따지는 건 의미가 없소. 어쨌든 이쪽은 계단의 세계에서 살아남아야 하니까. 나는 계단에 세계에 대해 잘 알고 있소. 그 세계에서는 정보가 그 어떤 것보다 귀중하지.”

“정보는 이곳에서도 귀중합니다.”

“그곳은 더 귀중하오. 필멸자로 태어난 당신에게 두 번의 기회란 없으니까.”

“두 번의 기회가 없다는 것은?”

“말 그대로요. 그곳에서 죽으면 그대로 소멸되오. 바깥의 세계에서 질긴 생명력을 자랑했어도 큰 의미는 없소. 가보면 내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될 거요. 그곳에서는 당신들이 소위 말하는 시스템의 도움 따위는 받지 못하게 되니까.”

“영웅으로 태어난 당신은 그보다 많은 기회가 있나보군요.”

“그렇소. 영웅으로 태어난 존재들은 두 번의 기회가 있지. 그렇지만 따지고보면 다 우주적 존재 아래에 있는 필멸자들일 뿐이요. 몇 번의 기회가 더 주어진다고 해도 늘 소멸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는 셈이지.”

“한 번의 기회밖에 없다면 확실히 정보가 귀하긴 하겠군요.”

“이번 게이트는 만들어질 때부터 이런 위험성에 대한 우려를 많은 존재들이 말해왔었소. 이번 게이트의 시스템은 이전 게이트와는 완전히 다른 획기적인 시스템이지만 계단의 세계로 들어갔을 때는 치명적인 약점을 보이거든. 다만 게이트 이용자들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이 인정되어 이 시스템이 운영되게 된 거요. 정말 빠르게 성장했지. 어느 누구도 이렇게까지 빠르게 계단의 세계를 열 줄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당신 덕분에 일이 크게 틀어졌소.”

“당신과 카니발 길드에서 준비했던 일 말이오?”

“그렇소. 눈치 챘겠지만 게이트는 계단의 세계로 보낼 자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시스템이요. 내기 초창기의 아우터 갓들은 전 우주에서 힘이 있는 자를 선별해서 그들에게 초대권을 주었지. 그러나 모두 실패했소. 문을 여는 자가 아직 나오지 않았지.”

“그래서 코즈믹 게이트가 만들어진 거군요.”

“그렇지. 우주적 존재들이 보낸 자들도 보통은 아니었지. 아주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 중에는 웬만한 신들은 가볍게 지워버릴 정도의 영향력을 지닌 자도 있었소. 많은 자가 계단의 세계로 들어갔지. 힘이 강한 자, 뛰어난 지략을 지닌 자, 누구라도 휘어잡을만한 매력을 지닌 자. 하지만 드림랜드의 문은 열리지 않았소. 그래서 아우터 갓들은 본인들이 선별해서 계단의 세계로 가는 것을 멈추고 시스템을 만들어서 살아남은 자에게 계단의 세계로 가는 자격을 주자고 결정한 거요. 게이트는 효과가 있었지. 하지만 아우터 갓의 의도대로 되지는 않았소. 게이트가 생겨났을 때는 이미 엘더 갓이 보낸 자들이 꿈의 세계에 자리를 잡은 뒤었거든.”

“그런데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핏불킹이 물었다.

“물어보시오.”

“이야기를 들어보면 굉장히 위험한 곳인 거 같은데. 아우터 갓들은 사람들을 그냥 막 그쪽으로 보낼 수 있는 겁니까?”

“아우터 갓 뿐만 아니라 엘더 갓들도 사람을 보내고 있소. 하지만 그 안에 들어간 뒤에 어떤 행동을 하는지는 솔직히 말하면 자유요. 우주적 존재들이 직접 개입할 수 없는 유일한 세계니까. 그리고 아무리 우주적 존재들이라고 해도 가기 싫다는 존재를 그쪽으로 보내지는 않소. 그랬다가는 오히려 역효과가 나올 수 있지. 그쪽 세계로 넘어가는 자들은 모두 원해서 가는 거요.”

“무엇 때문에 가는 겁니까? 드림랜드의 문을 열면 큰 보상이라도 있는 겁니까?”

“큰 보상이야 당연히 있겠지. 하지만 그보다는 상위의 존재가 될 수 있는 지름길이기 때문이요.”

“상위의 존재?”

“아까 내 소개를 하지 않았소? 영웅으로 태어나 지역 신에 머문 자라고. 그게 영향력의 범위요. 영웅을 벗어나 신 등급의 존재가 되면 한 지역을 컨트롤 할 수 있을 정도의 영향력이 생긴다는 뜻이요. 계단의 세계에서는 이게 포인트 시스템으로 체계화 되어 있소. 우주적 명성 포인트는 돈이 될 수도 있고 상위의 존재가 되는데 쓰일 수도 있지.”

“정리하자면 그곳에 들어간 존재들의 궁극적인 목표가······.”

“뭐겠소. 궁극적으로는  우주적 존재가 되기 위함이겠지. 아직 성공한 자는 없지만.”

“바깥에서는 될 수 없습니까?”

“가능은 한 일이나 기회가 그리 많이 없지. 우주적 존재가 되는 길은 하나요. 영향력을 높이는 것. 쉽게 말해 우주적 명성을 쌓는 거요. 하지만 바깥의 세계에서는 이게 수치화가 되어 있지 않소. 그러니 당신들이 신이라고 부르는 존재들도 어떻게 얼마나 행동을 해야 우주적 존재가 될 수 있는지 가늠할 수가 없지. 쉽지도 않고. 한 대륙을 관장하는 대륙 신이라고 해서 대륙을 계속 없애거나 우주적 명성이 쌓일만한 일을 계속 하는 건 어려운 일이요.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 그러니 바깥의 세계에서는 태어난 신분 이상 올라가는 경우는 거의 없소. 기회가 없으니까. 하지만 계단의 세계에서는 다르지. 최하위 존재인 필멸자로 태어난 존재라도 상위의 존재가 될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있소. 다만 그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고 할 수 있겠지.”

“그러면 계단의 세계에서는 그게 쉽게 이루어진다는 말입니까?”

“충분히 가능하지. 이제 내가 말한 거래가 나쁘지 않다는 걸 알겠소? 거래를 받아들이겠다고 하면 그곳에서 살아남는 법을 알려주겠소.”

“그곳에 들어가서 당신을 부르기만 하면 되는 겁니까?”

“그렇소. 그 뒤에는 나와 함께 행동을 할 수도 있고 각자의 길을 가도 상관 없소. 앞서 말한대로 호위를 원한다면 한동안 호위를 위해 동행해줄 수도 있지.”

“보이지도 않고 말도 할 수 없는데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조용히 있던 슭곰발이 말했다. 그러자 노인이 다시 미소지었다.

“내 스스로 눈을 뽑았지만 뽑기 전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소. 거기다 계단의 세계로 돌아가면 내 목소리는 돌아올 것이오. 그곳에서 나올 때 두고 온 것이니까.”

카시마르는 노인의 말을 통해서 계단의 세계에서 바깥의 세계로 입장할 때는 무언가 페널티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래하도록 하지요.”

“좋소. 계약서를 쓰도록 하지.”

노인은 품속에서 특이하게 생긴 종이를 꺼내 카시마르에게 내밀었다. 그는 펜도 함께 내밀었다. 내용은 노인이 말한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정보를 넘기는 대신에 카시마르가 외부 게이트를 열어 불러올 때는 노인을 제일 먼저 부른다는 조건이었다.

“이제 한 배를 탄 사이가 되었으니 충고하겠소. 그곳에서는 절대 욕심을 내지 마시오. 당신은 게이트를 통해서 접속한 상태라 그곳에서 소멸 한다해도 큰 타격은 없을 것이오. 그러나 당신이 조종하고 있는 캐릭터는 확실하게 사라지게 되지. 그러니 욕심 내지 마시오. 당신의 목숨은 둘이 아니니까.”

“그곳에서 태어난 신분이 그리 중요합니까?”

“중요하오. 기회가 한 번인 것과 여러 번인 것은 확실히 차이가 있지. 계단의 세계에서는 목숨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주 많소. 특별한 기술을 익힐 수도 있고, 쉽게 잡을 수 없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지. 그러나 목숨이 하나뿐인 자는 그런 가능성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니 어찌 중요하지 않겠소?”

“필멸자가 상위의 존재로 승격하게 되면 목숨도 늘어나게 됩니까?”

“그렇지 않소. 필멸자가 상위의 존재가 되는 일도 극히 드문 일이거니와 그들이 상위의 존재로 승격한다고 해도 목숨이 늘어나거나 하지 않소.”

“그러면 상위의 존재가 된다고 해도 큰 의미가 없는 겁니까?”

핏불킹이 말했다.

“그러니 더욱 힘든 것 아니겠소. 필멸자들의 목숨은 하나 뿐이니 위험을 기피 하려고 하고 위험을 기피 하려고 하니 우주적 명성을 쌓는 건 더더욱 힘든 일이 되는 것이지. 그래서 계단의 세계에서 넘어온 귀환자들은 저마다 다른 방법으로 재진입을 시도하고 있었소. 나 역시도 그랬지. 카니발 길드원들과 함께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그대 덕분에 물거품이 되어 버렸소.”

“그 프로젝트가 어떤 것인지 말해줄 수 있습니까?”

“별다른 건 없소. 혼자서 계단의 세계로 넘어가는 게 아니라 팀을 조성해서 넘어가자는 거였소. 제각기 다른 능력을 지닌 자들을 선별해서 팀을 잘 꾸리기만 한다면 필멸자들의 조합이어도 꽤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으니까 말이오. 지금 와서 말하는 거지만 팀의 영입 대상에는 당신도 있었소. 당신은 눈치 못챘겠지만 우리는 당신을 지켜보고 있었지.”

노인은 준비했던 프로젝트에 대해서 말한 뒤 카시마르에게 계단의 세계에 대한 정보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노인이 가지고 있는 정보는 꽤 많았고 그중에서도 진입 초기에 대한 부분은 아주 유용하다고 할 수 있었다.

***

카시마르는 계단의 세계에 진입한 상태였다. 노인이 일러준 대로 계단의 세계에 진입하기 전에 게이트 최고 관리자들과의 면접이 있었다. 그들은 카시마르와 모종의 계약을 맺었다.

면접에 관해서 노인이 일러준 것은 크게 없었다. 초대권을 받아서 들어간 위인이 아주 오래전 인물이라 면접이 어떻게 달라졌을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거였다. 그래도 그는 이전까지의 면접이 어땠는지에 대해서 상세하게 카시마르에게 일러주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와 실제 면접은 분위기가 달랐다. 그리고 면접을 통해서 주어지는 보상품도 많이 달랐다. 노인이 이야기 했던 것보다 훨씬 많았다

카시마르는 면접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다가 계단의 세계의 첫 문지기인 악스트가 있는 곳에 당도했다. 악스트는 노인이 묘사한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2미터 정도 되는 키에 말머리를 달고 있는 자가  원형 의자에 앉아서 다리를 꼬고 있었다. 그는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카시마르를 편의점에 물건 사러온 뜨내기 손님처럼 취급했다.

“다섯 색깔 깃발의 문을 통과하면 계단의 세계에 통과할 수 있습니다. 바깥 세계의 물건을 처분하시면 매대에서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습니다.”

악스트는 노인이 했던 것과 같은 말을 읊었다.

“명성 포인트를 환전하고 싶습니다.”

“명성 포인트는 1포인트 단위로 환전 가능하시고요. 현재 시세로는 1억 700골드에 환전 가능하십니다. 환전 해드릴까요?”

“1포인트를 골드로 환전해주시죠.”

카시마르는 악스트에게서 필요한 물건을 구매했다. 노인은 입구에는 외부 세계의 문을 여는 게이트가 없다고 했다. 게이트를 열려면 적어도 작은 도시 정도는 가야했는데 노인의 충고 없이는 그곳까지 살아서 가기가 희박하다고 했다. 노인의 정보가 있다고 해도 살아서 갈 확률은 반이 넘지 않는다고 했으니 정말 쉽지 않은 세계인 셈이었다.

“더 필요한 물건은 없으시죠?”

“그렇습니다.”

“그럼 들어가시죠. 오색 깃발의 문은 도중에 포기한다고 해도 페널티는 없습니다. 그러니 신중하게 생각하세요.”

“네.”

카시마르는 오색 깃발의 문으로 들어갔다. 이곳이 계단 여행자에게 주어지는 첫 번째 이벤트였다. 큰 기회를 잡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대로 소멸할 수도 있는 곳.

[반드시 붉은 별 해마의 물방울은 확보를 해야 되오. 매대에 있으면 있는 대로 사두도록 하시오. 혹시나 오색 깃발의 문에서 붉은 깃발의 문이나 검은 깃발의 문이 나오면 쓸 데가 있으니까 말이오. 쓸데가 없더라도 도시에 가면 비싼 값에 되팔 수 있으니 사두어서 나쁠 건 없소.]

붉은 별 해마의 물방울은 두 개 있어서 카시마르는 그것을 구매한 상태였다.

“아.”

안으로 들어서자 작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만큼 세계는 아름다웠다. 먼저 우주까지 이어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높게 펼쳐진 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까지 펼쳐진 푸른 들판이 보였고 그 중앙에 커다란 문이 있었다. 문이라고 표현은 했지만 거대한 철봉 같은 생김새의 구조물이었다.

카시마르는 그 구조물을 향해서 걸었다. 멀리서 볼 때는 구조물에 달려 있는 커텐 같은 천이 펄럭이는 것만 확인이 되었다. 그러나 구조물에 가까워지자 펄럭이는 천의 색깔이 확인되었다. 천은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카시마르는 흡족스러운 표정으로 금빛 깃발이 펄럭이는 문으로 들어섰다.

부드러운 금빛 깃발이 카시마르를 훑고 지나갔다.

느낌이 좋았다.

느낌이 좋다고 느끼는 순간 암전이 되고 다시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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