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주캐로 멱살 캐리-155화 (155/205)

# 155

초대

“첫 번째 관문도 넘지 못했어?”

유중악은 오정룡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오정룡은 한국에 있다가 바로 호주로 넘어왔다.

드림랜드로 들어간 다음부터 카시마르는 바깥의 유저들과 소통이 단절되었다. 아예 다른 세계로 들어간 셈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노인의 말로는 바깥 세계의 사람이 계단 세계의 사람과 소통하려면 특별한 장치나 능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노인의 경우는 그게 디마벨이었다. 그는 디마벨을 통해서 말을 할 수 있고, 계단의 세계에 들어가서도 소통이 가능하다고 했다.

“첫 번째 관문은 아니고 들어가니까 금색 깃발 문 나오더라고. 그 뒤에 문 몇 개 나왔는데 마지막 문에서 문제가 생겼어.”

“어떤 거? 검은색? 붉은색?”

“붉은색.”

“그러면 끝난 거야? 소멸?”

“소멸은 아니고 기절한 상태야. 다시 접속해봐야 알지. 기절 상태가 되니까 자동으로 접속이 해제되더라고.”

“거기는 시스템이 완전히 달라진 느낌이네. 하드해.”

“좀 그런 면이 있어. 형 쪽은 뭐 달라진 거 있어? 거기 난리도 아닐텐데.”

“원래는 롤백을 한다고 했는데 알다시피 요즘은 게임사에서 이런 걸 마음대로 결정할 수가 없잖아. 게임사에서는 롤백을 주장하고 다른데서는 롤백은 불가하다고 하고. 그러다가 협의점을 찾은 거 같아.”

“그래서 복구 되기는 해?”

“어. 그건 결정 났어. 조금씩 복구는 되고 있는 상태야.”

“다행이네.”

“근데 달라진 점이 있어.”

“뭔데?”

“황제파가 완전히 나가리 되었다는 거지.”

“그게 가능해?”

“어. 콜렉터라는 게 그만큼 위험한 물건이었던 모양이야. 그 어떤 변명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그런 물건. 그걸 사용했다는 것만으로도 황제파는 끝이 난 거지.”

“황제파가 데리고 있는 세력이 상당한데 그렇게 쉽게 정리가 되나?”

“이미 나라를 한 번 들어먹은 상태잖냐. 근데 일단 완전히 복구가 끝나봐야 아는 거라서. 여기는 좀 복잡해. 아직은 많이 복잡하지. 그래서 복구 끝나고 나면 이야기가 더 커질 거 같은데 어떻게 될 지는 확신할 수 없어. 그리고 달라진 점은 유저들이 드림랜드에 관련된 정보를 긁어모으면서 준비를 하고 있다는 점이야.”

“어떤 준비? 계단의 세계로 넘어올 준비?”

“어. 노인이 가지고 있는 정보 말고도 꽤 많더라고. 물론, 세계관의 관련된 건 노인이 가장 많이 알고 있지만, 그 외의 것들은 제국이나 북제국에 꽤 많은 상태야. 길드 자금 끌어다가 정보 모으고 있고 유저들한테 사는 정보도 있고. 근데 이게 다 맞는다는 보장이 없으니 필터링을 할 필요는 있지.”

“쓸만한 정보는 있어?”

유중악이 물었다. 오정룡은 흑맥주를 한 잔 다 마시고 한 잔 더 따라서 마시는 중이었다.

“있지. 일단 제일 중요한 정보가 있다.”

“뭔데?”

“노인이 한 말과 다른 부분이야. 먼저 유저가 계단의 세계로 넘어가면 소멸된다는 부분 있잖아.”

“어.”

“그건 잘못된 정보일 수도 있다는 거야.”

“그게?”

유중악이 놀란 표정으로 반문했다. 이 부분은 꽤 중요한 이야기이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이전에는 소멸 되었다면서.”

“이전에는 그랬지. 그런데 이번 게이트는 이전에 열렸던 게이트와는 다른 부분이 상당히 많다고 해. 솔직히 독특한 시스템이지. 랭크 업을 하고 가호를 받고 하는 시스템. 뭐, 게임에서 자주 나오는 설정이지만 배경 세계관과는 좀 맞지 않는 이질적인 것이랄까? 그런 생각 안 해봤어?”

“딱히? 그냥 이상한 게 한두 개여야지.”

“아무튼 게임 시스템을 차용한 게이트 시스템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다른 부분이 있다는 거야. 바로 소멸 부분이지. 어쨌든 계단의 세계도 캐릭터를 이용해서 넘어가는 거니까.”

“그래서 죽어도 부활한다는 거야?”

“그건 아니고. 페널티를 받고 다시 바깥의 세계로 넘어간다는 설정이라네.”

“확실한 거야?”

“거의. 야. 이런 정보에 확실한 게 어딨냐. 유저 중에 그쪽 세계로 넘어간 자가 너 하나뿐인데. 확실하게 확인하려면 네가 죽어봐야 알 수 있지.”

“말 그대로라면 나쁜 건 아니네. 소멸해도 재진입할 수 있으니까.”

“그렇지. 그리고 정보에 신빙성도 있어. 바깥 세계의 가호 시스템, 그리고 무기 체계, 능력 이런 게 계단의 세계의 것을 모방해서 차용한 게 많다는 거야.”

“그래?”

“어. 물론, 계단의 세계가 더 넓다고 해. 초반에는 그리 넓지 않았다고 했어. 근데 계단의 세계가 그리 확장된 건 바로 꿈을 먹고 확장하는 곳이기 때문이야. 바깥에서 진입한 자의 꿈을 먹고 넓어진다는 거지.”

“수 많은 여행자들이 거기로 넘어갔을테니 엄청 넓어졌겠네.”

“그렇지. 물론, 어떤 체계가 잡혀 있는지 확실하게 아는 사람도 없어. 그 노인도 지역 신 정도에 머무른 자라고 했으니까. 아무튼 이쪽 계획은 원래 유저들이 이보다 훨씬 강해진 타이밍에 얕은 잠의 계단이 열릴 거라고 예상했다는 거지. 그래야 한 명이 넘어가면 재빨리 다른 유저들도 넘어갈 수 있으니까. 그리고 넘어간 유저도 더 빨리 자리잡을 수 있고.”

“그걸 내가 황당하게 앞당긴 셈이네.”

“네가 그런 건 아니지. 뭐, 네가 그런 거긴 해도 어쨌든 콜렉터라는 금지된 물건까지 꺼내서 라브시안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려고 했던 황제파의 탐욕이 가져온 불상사지. 여튼 여기 있는 장비가 계단 세계에서 통하게 만드는 방법도 있는 모양이고.”

“그래?”

“어. 어떤 물건은 계단의 세계에 아예 존재하지 않는 모양이야. 그래서 그걸 가지고 계단의 세계에 넘어가면 크게 이득을 볼 수 있는 거지. 몇 가지 물건이 있다는 데 그 목록을 알 수가 없어.”

“그동안 정보 많이 모았네.”

“할 게 그거 밖에 없잖냐. 그리고 이번에 도는 계단 세계 정보는 특이하게 독점되지 않고 유저들이 잘 공유해줘. 서로 거래도 잘 하고 있고.”

“그래?”

“아무래도 계단의 세계부터가 본 게임 느낌이니까 그렇겠지. 너도 정보가 생긴 다음에 넘어갔으면 좀 더 좋았을텐데.”

“마냥 기다릴 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첫 번째로 넘어간 게 좋아. 첫 번째로 넘어간 유저랑 그 뒤에 유저는 스타트 아이템도 다르다고 하더라.”

“당연히 달라야지. 지금 보니까 첫 번째로 들어가서 좋은 게 별로 없는데.”

“네가 너무 일찍 들어가게 된 거야.”

“형은 언제 다시 한국 가려고?”

“특별한 일 없어서 여기 있으려고 하는데 신세 좀 져도 되겠냐?”

“뭐, 형 방이야 늘 비어 있지.”

유중악이 사는 집은 과하게 넓었다. 남는 방도 많이 있었고 특히 자주 놀러오는 오정룡이 쓰는 방은 따로 있을 정도였다. 같은 집이라고는 하지만 복도를 통해서 넘어가야 하기 때문에 생활에는 큰 불편함이 없었다.

“도마뱀. 아니 디마벨과도 연락은 자주 하고 있어. 카니발 길드 전체가 우리 길드로 들어오고 싶어하는 눈치야.”

“왜?”

“그쪽에서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일단 스탑된 상태니까. 다시 재개한다고는 하지만 일단 네가 들어간 다음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재개를 할 수 있나봐.”

“그럼 같이 가도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 그쪽 말 들어보니까 넘어가는 인원 늘릴 수 있다며.”

“근데 그쪽 세계에서 노인을 데려가게 되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지.”

“뭐, 방법이 있겠지.”

“면접은 어땠는데?”

“그냥 초반에 구할 수 없는 아이템을 얻은 거야. 그 대신에 아우터 갓의 목적인 드림랜드로 가는 문을 열어라 그런 의미야.”

“그게 끝?”

“간단히 말하자면 그렇지. 근데 안에 들어가서 변심하는 여행자들이 꽤 많았나봐. 아예 그게 룰로 정해져 있더라고.”

“어떤 룰?”

“계단의 세계에도 당연히 아우터 갓을 일하는 세력들이 있는데 그들 중에는 게이트와 다이렉트로 연락되는 자들도 있다는 거지. 그들이 주는 미션을 거부하거나 아우터 갓과 링크된 세력들에게 손해가 되는 일을 하게 되면 스타트 때 받은 물품들을 다시 가져간다는 거야. 이자까지 쳐서 말이지.”

“그 이자라는 게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한 이자 개념은 아니겠지?”

“아냐. 그 이자 개념이 맞아. 빌려간 물건 플러스 이자를 골드로 쳐서 계산해도 되고, 아니면 물건값까지 다 쳐서 줘도 되고. 이자율이 상당히 세. 고리대금 수준이야.”

“그렇지만 안 받을 수도 없는 거잖아. 필멸자 신분으로 그쪽 세계에서 살아남는 게 쉽지 않다며.”

“형 말대로 바깥 세계에서 더 많은 준비를 하고 들어갔다면 필요가 없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아는 게 있어야지. 일단 빌릴 수 있는 물품은 다 빌렸다. 그쪽 일에 방해만 안 하면 되는 거잖아.”

“제대로 족쇄를 채우는 느낌인데? 반골 기질 가득한 네가 그거 참을 수 있겠냐?”

“족쇄만 있는 거 아냐. 족쇄를 차고 있는 동안은 게이트와 관련된 단체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하니까. 좋은 거지. 그쪽에서 퀘스트도 받고 보상도 받고.”

“그렇게 술술 풀린다면 좋겠다만.”

“술술 풀리도록 바래 봐야지. 나 기절에서 풀려날 시간 다 된 거 같아. 겜 들어간다.”

“야. 맞다. 중요한 이야기 안 했네.”

“뭐?”

“길드 자금 많이 비었는데 대스 해적단 자금 써도 되겠냐?”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어쨌든 네 덕분에 번 거잖냐. 네가 지분을 상당히 가지고 있으니까. 그거 묵혀두자고 한 것도 너고.”

“황제파 아웃이라며?”

“그렇긴 하지.”

“그럼 분위기 봐서 진짜 그런 것 같으면 풀어버려. 그거 황제파 때문에 못 풀고 있었던 거잖아.”

“오키. 그럼 자금 문제는 해결되겠네. 그럼 너 나올 때까지 정보 팍팍 긁어모으고 있으마.”

“알았어.”

유중악은 바로 코즈믹 게이트로 다시 접속했다.

***

카시마르가 계단의 세계로 돌아왔을 때 사내는 사라진 뒤였다. 카시마르는 여전히 붉은 깃발의 문 안에 있었다. 큰 상처는 없었다. 움직임이 크게 부자연스럽지 않았으니까. 카시마르는 소지품을 확인했다. 소지품에는 큰 이상이 없었다. 돼지 조각상도 이전보다 조금 슬림해진 모습으로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사내의 흔적은 도통 찾아볼 수가 없었다. 대신에 사내가 원래 있던 자리에 작은 종이가 두 개 떨어져 있었다. 해석 불가의 짧은 메시지였는데 계단의 세계에서 쓰이는 언어 같았다. 카시마르는 포스트잇을 꺼내 두 개의 종이에다 붙여보았다.

[틴달로스의 사냥개로 초대하고 싶다. 가장 확실하고 빠르게 강해지고 싶다면 쪽지를 가지고 사냥개의 들판으로 오도록. 기다리고 있도록 하지. 카시마르.]

나머지 하나의 종이는 빠르게 새겨지는 문신이었다. 마법 문신으로 시동어를 외우기만 하면 마법이 나가는 시스템이었다. 카시마르의 왼쪽 손등에 열 개의 작은 투창 문신이 새겨졌다.

시동어는 하운드였는데 소모성 무기였다. 카시마르는 범상치 않은 상대를 만난만큼 그가 주고 간 무기도 범상치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가 지니고 있는 감정 포스트잇은 물건의 진정한 가치나 시세에 대해서까지는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이 무기의 진정한 가치를 알려면 직접 사용하거나 감정사에게 찾아가야했다.

오색 깃발의 문을 다 돌아본 카시마르는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그가 보아왔던 세계와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카시마르는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노인이 준 정보와 일치하기 때문이었다.

[오색 깃발의 문을 나오게 되면 무작위의 지역에 떨어지게 되오. 비교적 안전한 지역에 떨어지게 되지만 완전히 안전한 곳은 아니니 조심해야 하오. 예전에는 여행자가 처음 떨어지는 지역이 12개 정도로 작았었소. 하지만 지금은 그 숫자가 얼마나 늘어났을지 알 수가 없소. 계단의 세계는 바깥 세계에서 넘어온 자의 꿈을 먹고 끝없이 확장하니 말이오.]

사막.

주변은 언덕 하나 보이지 않게 펼쳐진 사막이었다. 랜덤하게 시작 지역이 선택된다고 했지만 설마 사막에 떨어질 줄은 몰랐던 카시마르는 놀란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태양은 무서우리만치 강렬했고 주변은 고요했다. 바람 한점 불지 않았다. 카시마르는 일단 서서 생각을 정리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가 생각을 정리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카시마르의 정면에서 어떤 물체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카시마르는 그게 흰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그건 빠르게 이동하고 있는 짐수레였다. 짐수레를 끄는 생물은 놀랍게도 말만한 크기의 개였다. 높이도 말만큼 컸고 길이도 그만했다. 일반적인 개와 다른 점은 머리에 당근 같은 뿔이 솟아 있다는 점이었다. 뿔의 끝은 뾰족하지 않고 뭉특했고 물처럼 투명했다. 짐수레는 꽤 많았고 그걸 끄는 자들도 상당히 많았다. 흰옷을 입은 자들이 카시마르 앞에서 멈춰섰다.

“성간풍에 휩쓸렸소?”

한 사내가 물었다.

“성간풍?”

“갑작스럽게 솟아오르는 거대한 바람 말이오. 이 근처에서는 그걸 성간풍이라 부르지. 그걸 모르는 거 보니 이쪽 지역 사람은 아닌가 보오.”

“그렇습니다.”

“계획은 있소?”

“아직.”

“세리스 마을로 가는 중인데 같이 가겠소? 그 복장으로는 뼈만 남기 쉽지. 이름이 뭐요?”

“카시마르.”

“특이한 이름이군. 내 이름은 내일이요. 저쪽은 뒤에 있는 녀석은 바람. 이런 더 뜨거워지겠군. 다른 녀석들은 가면서 설명해주도록 하지. 일단 타시오.”

카시마르는 내일의 초대에 응했다. 그가 커다란 짐수레에 오르자 개들이 빠르게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