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
투창
마을은 상당히 넓었다. 마을이라기 보다는 작은 도시 수준의 규모였다. 건물들도 매우 독특했다. 대부분의 건물들이 창이 훤하게 뚫려 있었다. 사막 언덕 위에 자리 잡은 마을의 건물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이상했다. 사막이니 당연히 모래 바람이 불 터라 지나치게 창을 터놓는 건 좋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건물 색깔도 흰색이 아니라 다양했다. 사막에서는 보통 흰색으로 건물을 짓는 편이었다. 태양열을 감당하기 위해서였다.
“안쪽은 걱정 마시오. 마을 안쪽은 뤼디디스(Hludis)님의 가호가 펼쳐져 있어서 말이오. 괴물들의 눈에는 마을이 보이지도 않고 모래 바람도 막아주지. 거기다 태양의 힘도 줄여준다오. 마을 안으로 들어가기만 한다면 편하게 쉴 수 있소.”
사막 개들은 상당한 빠르기였다. 그들이 사막을 그토록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건 머리에 달린 흐물거리는 뿔이 체온을 조절해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비상시에는 수분을 공급하기도 했다.
“그러면 저 안쪽에는 바람이 불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소. 뤼디디스님의 보호막이 막아주는 건 어디까지나 모래요. 바람은 통과할 수 있지. 그러니 시원한 바람이 부는 들판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소. 마을 중앙에는 마르지 않는 오아시스도 있으니 여러모로 편할 거요.”
마을은 상당히 넓었다. 밖에서 보는 것보다 더 촘촘하게 건물이 자리잡고 있었다. 내일은 이 마을의 책임자로 풀 네밈은 세리스 내일이라고 했다. 세리스 마을의 내일이라는 의미. 이 근방은 이름에 출신 지역의 이름을 붙이는 게 특징이었다.
“그래서 어쩌다 성간풍에 휩쓸리게 되었소?”
“사실 제가 성간풍에 휩쓸린건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카시마르가 대답했다. 그러자 세리스 내일이 호탕하게 웃었다.
“그게 성간풍이요. 이 세계에서 갑자기 솟아오르는 바람. 아무도 성간풍이 부는 이유를 모르지.”
“이타콰가 저주를 내린 거라던데요?”
세리스 바람이 말했다. 둘은 묘하게 닮아 있었는데 다른 점은 피부색이었다. 세리스 내일은 까무잡잡한 중동인 같은 피부였는데, 세리스 바람은 북유럽인처럼 창백한 얼굴이었다. 그런데도 둘의 생김새는 묘하게 닮아 있었다.
“이타콰는 무슨! 그쪽 존재들의 이름은 함부로 입에 담지 말라고 하지 않았더냐.”
"아! 알았어요."
카시마르는 세리스 내일이 내어준 물과 음식을 섭취하는 중이었다. 식량과 물은 그도 충분히 있었지만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아끼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뭐하는 사람이요? 행색을 보아하니 단순한 여행자 같지는 않고. 혹시 운명을 거스르려는 사람이오?”
“운명을 거스르는 사람?”
“이쪽에서는 불멸자를 목표로 하는 필멸자들을 운명을 거스르려는 사람이라고 부르오. 필멸자로 태어났으면서 그 운명을 바꾸려고 하는 사람이니 말이오.”
“뭐, 비슷합니다.”
카시마르는 자세히 답변하지 않았다. 세리스 내일은 친절한 사람이기는 했지만 그들이 정확히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앞으로 어쩔 계획이오? 이곳에서 머물러도 크게 상관은 없을 거요. 이 주변에도 종종 괴물들이 출몰하곤 하거든. 그리 위험한 괴물들은 아니지만 말이오. 계획이 없는 거요?”
“있습니다.”
“어떤 계획이오?”
“초대를 받아서 말입니다. 그쪽으로 한 번 가보려고 합니다.”
“초대를 받았단 말이오? 어느 지역이오? 마침 마을에 길잡이가 와 있으니 적당한 돈만 지불하면 원하는 지역까지 잘 데려다 줄 거요. 물론, 길잡이가 가본 지역이어야겠지만.”
카시마르는 사냥꾼의 들판으로 가볼 생각이었다. 계단의 세계는 너무 방대해서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몇 가지 기본적인 것들은 알고 있었다.
유저가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필멸자를 벗어나는 방법은 돈으로 우주적 명성을 사는 것이었다. 괴수들을 처리하면 여러 가지 부속물을 얻을 수 있고, 몇몇 괴수들은 희귀한 마정석을 떨어트리기도 했다. 무엇보다 괴수들을 처리하면 명성이 쌓이게 되니 필멸자를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였다. 물론, 괴수들을 처리하는 방법 말고도 방법은 많이 있었다.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신비한 장소에 찾아가거나, 뛰어난 상대를 죽이거나, 뛰어난 무기를 만들고 발명품을 만드는 것도 영향력을 높이는 방법 중 하나였다.
카시마르는 그 중에서 가장 어느 방법이 가장 적절한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사냥꾼의 들판으로 가보기로 했다. 이 세계에서 어떤 세력에 속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내가 말한 틴달로스의 사냥꾼이 그리 큰 세력은 아닐지라도 카시마르는 충분히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었다.
“사냥개의 들판으로 가보려고 합니다.”
카시마르의 입에서 사냥개의 들판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세리스 내일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카시마르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따로 대응은 하지 않았다.
“그게 혹시 틴달로스의 사냥개들이 모여 있는 곳을 말하는 건가?”
“그렇습니다만 알고 계십니까?”
세리스 내일은 고개를 한 번 뒤로 젖히더니 인상을 썼다.
“예비 사냥개를 마을에 들이다니!”
세리스 바람과 내일은 들고 있던 검을 들었다. 그리고 사정 없이 카시마르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어서 도와주었더니 사냥개의 추종자였던 것인가!”
그들은 틴달로스의 사냥개에 상당한 원한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세리스 바람과 내일의 검술 실력을 상당했다, 그들은 샴서 계열의 휘어진 검을 휘둘렀는데 카시마르는 부드럽게 뒤로 물러나면서 그들의 공격을 막았다.
채챙!
세리스 내일은 카시마르를 계속 몰아붙였고, 세리스 바람은 다른 방으로 건너가서 사람들을 불렀다. 순식간에 마을 사람들이 카시마르의 주변으로 다가왔다.
카시마르는 해명을 하려고 했지만 세리스의 내일의 눈빛은 해명이 통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들의 공격을 마냥 받아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카시마르도 반격을 시작했다.
휘잉!
카시마르가 마음 먹고 왼손에 있는 뿔을 휘두르자 세리스 내일의 검이 베어졌다. 세리스 내일은 놀랍게도 위험을 감지하고 뒤로 물러서서 치명상을 피했다.
세리스 내일의 가슴팍에 사선으로 검상이 생겼다. 그리 깊지 않은 상처였지만 피가 줄줄 새어 나오고 있었다. 세리스 바람과 사람들이 마침 찾아와서 카시마르를 공격했다.
세리스 내일은 회복 마법을 사용해서 가슴팍을 치료했다.
펑! 펑!
사람들은 카시마르를 향해 마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평범한 마을 사람처럼 보이는 이들이 상당히 뛰어난 마법을 사용하니 카시마르는 적잖이 놀랐다. 거기다 이들의 힘은 보통의 사람보다 더 뛰어난 편이었다.
이들의 마법이 뛰어나다고는 해도 크게 위험한 수준은 아니었다. 카시마르는 불꽃 기사들 수백 명과 싸우고도 버틴 인물이었다. 문제는 마을 사람들의 대응이 작은 마을 수준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밖으로 빠져나온 카시마르는 창을 들고 그를 포위하고 있는 자들과 건물 옥상에서 활을 겨누고 있는 자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카시마르가 빠져나오자마자 화살이 날아왔다.
화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바닥에 박히는 무시무시한 위력의 화살이었다.
카시마르는 화살을 두 개의 뿔로 쳐내면서 몇 명을 베었다. 그의 강력한 힘은 여전했지만, 그를 포위하고 있는 자들도 그리 약하지 않았다.
그들 개개인의 힘도 강력했지만 이들의 숫자가 워낙 많았다. 카시마르와 이들의 전투는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카시마르는 꽤 많은 수를 베었지만 이들은 차분하게 카시마르를 압박했다. 무엇보다 개개인이 마법을 쓴다는 게 치명적이었다.
공격을 막아내는 보호막은 물론이고 벽이나 바닥의 지형을 움직이는 마법을 쓰기도 했고, 거기다 창이나 화살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염력까지도 사용했다. 전투 수준을 보면 마을 사람들이 아니라 마전사들만 모아놓은 것 같았다.
그것뿐만 아니라 카시마르에게 다양한 디버프 마법까지도 걸었다. 움직임이 느려지는 마법은 기본이었고 호흡을 가파르게도 만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두 개의 뿔의 공격력이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이들은 스치기만 해도 죽어나간다는 점이었다.
“저주가 걸린 무기다! 모두 조심 해!”
이들은 뿔의 저주를 감당할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뿔에게 당한 상처는 잘 낫지 않았고, 간혹 검은 불길이라도 피어오르면 그 주변의 적들이 뭉텅이로 불길에 휩싸여 쓰러졌기 때문에 카시마르는 꽤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었지만 한계는 분명했다. 차라리 불꽃 기사들처럼 근접해서 싸우는 거라면 카시마르는 이보다 훨씬 잘 싸울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카시마르의 무기의 위력을 단번에 알아보고 그에게 잘 접근하지 않았다.
대신 큰 데미지를 주지 못하더라도 마법으로 카시마르를 휘어잡기 시작했다.
“사냥꾼의 추종자라더니······ 괴물이군. 미안하게 되었소. 내가 재앙을 마을로 끌어들였어.”
세리스 내일이 말했다. 그의 주변에는 두 명의 치료사가 붙어서 마법을 걸고 있었다. 두 개의 뿔에 베인 상처는 좀처럼 아물지 않고 있었지만 그는 열정적으로 나서서 지휘를 하고 있었다.
“무언가 큰 게 올 거 같군. 방패 마법을 시전하라!”
그가 큰 소리로 말하자 무기를 들지 않은 사람들이 앞으로 나서서 마법을 시전했다.
그러자 3미터 정도의 투명한 방패가 형성되었다.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카시마르를 몰아넣고 마법 방패진을 만들었다. 그리고 산개한 다른 적들이 마법이나 화살로 카시마르를 압박했다.
카시마르는 뿔의 분노를 방패진을 향해 사용했다. 어마어마한 위력의 분노가 분출되어 방패진을 형성한 적들을 휩쓸었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보통 같았으면 일직선 상에 있는 모든 적들을 쓸어버렸을 뿔의 분노였다. 그러나 뿔의 분노가 처리한 적은 마법 방패진을 펼친 백 여명의 적들 뿐이었다.
파파팍!
카시마르의 복부와 허벅지 어깨와 팔뚝에 화살이 박혔다. 화살 끝에는 끈이 달려 있었다. 카시마르는 힘을 줘서 역으로 끈을 잡은 자들을 끌어당기려고 했다. 그러나 다시 마법이 쏟아져서 카시마르를 압박했다.
“필멸자가 맞긴 한 겁니까? 필멸자가 저런 생명력을 지녔다는 건 금시초문입니다. 혹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신의 어린 자식이면 일이 커질 수 있습니다.”
전투를 지켜보던 사내가 물었다.
“그게 지금 와서 무슨 소용이라는 말인가. 틴달로스의 예비 사냥개야. 우리가 누구의 가호를 받고 살아가고 있는지 있었는가? 그들은 뤼디디스님의 어린 딸을 잔인하게 사냥했네. 그것뿐인가! 로모스님의 육신을 찢어서 무기를 만들었지. 이건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는 문제야.”
“사냥개가 아닐 수도 있지 않습니까.”
“초대를 받았다고 했네. 인간의 형상을 한 자가 틴달로스의 사냥개에 초대를 받았다는 게 무슨 의미겠나? 거기다 저 모습을 보게. 그리 많은 공격을 받고도 아직 숨이 붙어 있어. 그는 이미 인간의 길을 벗어난 자야.”
잘 싸웠지만 한계가 있었다. 카시마르와 이들의 상성은 너무 좋지 않았다. 거기다 카시마르는 준비도 부족했다. 만약, 카시마르가 제대로된 자리를 잡고 먼저 기습을 했다면 전투 양상은 달라졌을 수도 있었다. 포위를 당하지 않고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면 이들이 이리 쉽게 공격을 퍼부을 수 없었을 테니까.
카시마르는 호흡을 가다듬고 왼손을 바라봤다. 위기의 순간이 되자 사내가 준 투창이 생각났다.
어떤 위력을 가진 무기일까?
감정을 받을 때까지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지금은 예외였다.
“하운드!”
카시마르는 시동어를 외쳤고 그의 손에서 푸른색 투창이 발사되었다.
맹렬한 위세를 품은 투창은 어이없게도 적을 향해 날아가지 않고 하늘로 솟아서 사라져버렸다.
잠깐 긴장했던 세리스 마을의 사람들이 다시 카시마르에게 마법을 퍼부었다.
다시 전투가 시작되었다.
카시마르는 그 뒤로 20분을 더 버텼지만 큰 의미가 없었다. 적들은 카시마르가 완전히 바닥에 주저앉자 접근하기 시작했다. 카시마르는 바닥에 주저앉은 상태에서도 두 개의 뿔을 쥐고 있었다. 카시마르는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그러나 완전히 체력이 방전된 상태였다.
세리스 내일과 바람은 검을 들고 카시마르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그들의 접근은 예기치 못한 방해를 받게되었다.
쾅!
허공에서 갑자기 떨어진 투창.
카시마르가 방출했던 푸른색 투창이었다.
투창이 카시마르의 앞에 떨어진 다음 사라졌다. 세리스 마을 사람들은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자 다시 카시마르에게 접근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사라진 투창이 있던 자리에서 작은 차원문이 생기더니 주먹만 한 날벌레 열 마리가 삐져나온 것이었다. 파리와 비슷한 생김새를 한 날벌레들은 세 쌍의 커다란 박쥐 날개를 달고 있었고 기관총을 들고 있었다.
투두두두두둑!
그들은 마을 사람들을 향해서 사정없이 기관총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검지 손가락보다 조금 큰 기관총에서 발사된 공격이었지만 그 위력은 무시무시했다.
날벌레 열 마리가 마을 하나를 초토화 시키는데는 몇 분도 걸리지 않았다.
카시마르는 놀란 표정으로 있었다. 투창은 공격을 하는 용도가 아니라 도움을 요청하기 위한 용도였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