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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캐로 멱살 캐리-157화 (157/205)

# 157

제안

“뭐야? 인간이잖아?”

카시마르를 구해준 자는 파리 모양의 괴물이었다. 1미터 조금 안 되는 크기의 파리는 여섯 쌍의 날개를 가지고 있었다. 특이한 점은 그의 날개는 박쥐의 날개라기 보다는 천사의 날개에 가까웠다.

“네가 어떻게 투창을 가지고 있는 거지?”

“받았소.”

“어떻게?”

“붉은 깃발의 문에서 받았소?”

“누가 주었지? 그건 필멸자가 가지고 있을 물건이 아닌데?”

“이름은 모르오.”

“종족을 말해 봐. 생김새가 어땠지? 용족? 나처럼 마족이었나?”

“나처럼 생겼었소. 인간인지는 모르겠지만.”

“뭐?”

카시마르의 말에 파리 괴물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

파리 괴물의 행동으로 유추해 보면 카시마르에게 투창을 선물한 인물은 파리 괴물보다 위의 신분인 것 같았다.

“이들이 숭배하는 신 뤼디디스가 엘더 갓에 속하니까 그렇게 반응을한 거겠지. 원한이 있거든.”

“틴달로스의 사냥개는 아우터 갓 쪽이로군요.”

“정말 이쪽 세계에 처음 들어왔나보군.”

“그렇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카시마르는 작은 수레에 올라타고 있었다. 파리 괴물의 이름은 벨로바로 바알 일족의 후손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지역 신의 영향력을 가진 존재.

정말 바알 일족의 후손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이 세계는 크게 두 가지 세력이 싸움을 하고 있지. 엘더 갓을 숭배하는 쪽, 아우터 갓을 숭배하는 쪽.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상위의 존재가 되고 싶어하는 자들도 있지만 그들은 그리 많지 않아. 이 세계의 패권에 그다지 관심도 없고.”

“어쨌든 필멸자로서 투창을 받은 자는 네가 처음일 거야. 그 투창은 우리 클랜에서도 상위 계급에게만 주어지는 거거든.”

“전 이 투창이 공격 무기인 줄 알았습니다.”

“공격 무기 맞아. 다만 그 창을 쓸 자격이 안 되는 자에게는 도움을 요청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거거든. 인근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클랜원에게 자동으로 날아가는 시스템이랄까? 그거 잘 간직하라고. 정말 뛰어난 물건이니까. 물론, 네가 그걸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야. 필멸자들은 쉽게 죽거든.”

벨로바가 수다스러운 성격인 것이 카시마르에게는 다행이었다. 질문을 하면 많은 걸 알려주었다. 정말 세세한 것까지 다 알려주는 벨로바였다. 카시마르가 타고 있는 수레는 날벌레들이 끌고 있었고, 벨로바는 날개를 펄럭이면서 바짝 붙어 따라오는 중이었다.

“필멸자들은 미물과 비슷한 존재야. 감각이 둔하지. 영웅 정도만 되어도 지역 신인 나를 알아봤을 거야. 코앞에서 보는데 못 알아볼 이유가 없지. 가끔 그런 감각에 둔감한 자들도 있지만 보통 필멸자보다 위로 가면 다 알아보게 되어 있어.”

미물이라는 표현이 그리 듣기 좋은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카시마르는 그냥 듣고 있었다. 벨로바는 카시마르를 사냥개의 들판으로 데려다주었다. 그는 원래 바람 사막 지역에 사냥을 나온 상태였는데 사냥을 접고 카시마르를 도와주었고, 거기다가 카시마르를 사냥꾼의 들판으로 데려다 주기까지 했다.

이쯤 되니 카시마르는 사내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당장이라도 접속을 해제하고 틴달로스의 사냥개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럴 수가 없었다.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되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

“여기가 사냥개의 들판이야. 여기서 잠깐 기다려. 안에 들어가서 확인을 하고 올 테니. 그럴 일은 없겠지만 네 말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카시마르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사냥개의 들판은 아무 것도 없는 공터였다.

벨로바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뒤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네 말이 맞았네.”

벨로바는 카시마르를 안내했다. 그를 따라서 아무것도 없는 허공 안으로 들어서자 새로운 장소가 나타났다. 도착한 곳은 커다란 도시였다. 바벨탑을 연상시키는 커다란 탑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두 번째로 보이는 것은 무수히 많은 행인들이었다. 마치 대도시의 출퇴근길 연상케 할 정도로 행인이 많았다. 문제는 그중에 인간의 형상을 한 자를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카시마르는 마치 외계인들이 기거하는 행성에 떨어진 느낌을 받았다.

“저 탑의 최상층으로 갈 거야.”

벨로바가 수레에 카시마르를 태우면서 말했다.

“그가 저 탑의 주인입니까?”

“탑? 그분은 이곳의 주인이야.”

카시마르는 적잖이 놀랐다. 벨로바의 수레를 타고 하늘을 날아보니 이 도시가 카시마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방대했기 때문이었다. 제국의 수도인 포말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규모였다. 제국에서 가장 큰 도시 몇 개를 꽉꽉 채워서 합쳐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가 향하는 탑은 몇 층인지 셀 수가 없을 정도였고 곳곳에 큰 규모의 건물들이 높게 솟아 있었다.

“함부로 돌아다닐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 이곳에서 인간은 너 밖에 없으니까. 대부분 룰을 알고 있으니 널 공격하지는 않을테지만, 그렇다고 미친 놈이 없다는 건 아니거든.”

“그럼 저 아래에 있는 자들은 모두 인간이 아니라는 겁니까?”

“응. 한 번 봐봐. 인간처럼 보이는 자가 있어?”

“없어 보입니다.”

“맞아. 그들은 필멸자로 태어나지 않았으니까. 필멸자들의 생은 너무 짧아. 그리고 쉽게 죽지. 필멸자인 네가 몰텍님의 초대를 받은 건 정말 희귀한 일이야.”

몰텍은 카시마르를 기다리고 있었다. 벨로바는 길 안내만 하고 바로 사라졌다.

“초대에 응해줘서 고맙군.”

몰텍은 붉은 깃발의 문에서 봤을 때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펑퍼짐한 흰색 옷을 입고 있었다. 옷 하나만 바꿔 입었을 뿐인데 이전과 인상이 확연히 달라보였다. 옷도 옷이지만 그의 눈빛 때문에 더 그랬을 터였다. 붉은 천으로 가렸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인상.

그의 왼쪽 눈은 붉은 빛과 푸른 빛으로 번갈아가면서 계속 변하고 있었다. 오른쪽 눈은 검은색 눈으로 평범했지만 왼쪽 눈은 무언가 다른게 느껴졌다.

“덕분에 목숨을 건졌거든요.”

“이야기는 들었지. 덕분에 빠르게 만나게 되었으니 다행스러운 일 아닌가?”

“제게 무얼 원합니까?”

카시마르가 물었다.

“지금은 딱히 원하는 게 없어. 하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 그대가 좀 더 성장한다면 필요한 게 생길지 몰라.”

“정확한 이야기를 원합니다.”

“그대가 들고 있는 무기. 바깥 세계에서 가져온 무기겠지?”

“그렇습니다.”

“바깥 세계의 무기가 그토록 강력한 모습을 보인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야. 나는 그 무기를 가져가려고 했다. 물론, 그에 따른 충분한 보상도 하려고 했지.”

“거절한다면?”

카시마르가 말했다.

“오해하지 마. 가져간다는 이야기가 아니야. 가져가려고 했다는 거지. 근데 그 무기는 그대 아니면 사용할 수 없는 무기더군. 그래서 흥미가 생겼다. 신의 육체를 베어버릴 수 있는 무기를 지닌 필멸자라······ 난 그런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거든. 그래서 그대를 초대한 거야. 마땅히 받아야 할 보상을 주지 않은 건 그대가 이쪽으로 바로 오기를 원해서였기 때문이고.”

“보상? 보상은 그게 아니었습니까? 투창.”

“그건 그대를 부르기 위한 물건이었을 뿐이야. 보상은 아니지. 필멸자가 내기에서 이겼는데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마땅한 보상을 주어야지.”

“어떤 보상을 줄 겁니까?”

“두 가지 길이 있어. 하나는 내가 주는 보상을 받고 그대가 가고 싶은 길을 가는 거야. 나머지 하나는 내 휘하에 들어오는 거지. 내가 가장 빠르게 강해지는 법을 알려준다고 하지 않았나?”

“휘하에 들어가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카시마르에게는 그게 제일 중요했다. 몰텍이 그가 들어줄 수 없는 조건을 요구한다면 그로서는 거절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당장은 할 일이 없지. 빠르게 상위의 존재가 되는 것. 그게 중요할테니까. 그래야 사냥개로서 활동을 할 수 있어.”

“사냥개로서의 활동을 그만두고 싶어진다면?”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쉽게 그만둘 수는 없지. 그만두고 싶다면 간단해. 사냥개들 중에서 가장 강해지면 돼. 그러면 누구도 건드리지 않을 테니까.”

“······.”

“고민이 되나 보군. 내가 그대에게 줄 보상은 10개의 영향력이야. 우주적 명성이라고 부르는 것들이지. 하지만 그대가 휘하로 들어온다면 나는 그대를 바로 작은 신으로 만들어줄 거야. 필멸자로 태어나 상위의 존재가 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잘 알고 있겠지.”

“그게 그렇게 쉽게 되는 일입니까?”

“쉽지는 않지.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니까. 그리고 마을을 하나 내어 줄 거야. 그 마을을 키우는 게 바로 그대가 할 일이다. 가장 빠르게 상위의 존재가 될 수 있는 방법이지.”

“마을을 키운다?”

“나무를 키워본 적 있나?”

“딱히.”

“그것과 비슷해. 파괴하는 건 쉽지만 무언가를 창조하거나 성장시키는 건 훨씬 어려운 일이지. 마을을 나무라고 생각하게. 더 크고 화려하게 자랄 수록 그대의 영향력이 빠르게 늘어날 거야.”

“그 외의 방법은 없소?”

“그보다 빠른 방법이 있기야 하지. 하지만 그대는 필멸자 아니던가? 너무 위험한 방법들이야.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강해지고 싶은 건가?”

카시마르는 고개를 저었다. 빠르게 강해진다고 해도 소멸할 위험이 있는 건 피해야 했다. 루테스 대륙에 있을 때처럼 무지막지한 방법은 이곳에서 통하지 않을 터였다.

“······.”

카시마르는 대답을 하지 않고 뜸을 들였다.

“좋아. 그러면 이렇게 하도록 하지. 앞서 말한 것들을 지원해주도록 하지. 다만 그대가 작은 신에서 벗어나 지역 신이 될 때까지 결정을 유보하도록 하지.”

“무얼 유보한다는 말입니까.”

“틴달로스의 사냥개에 속하는 것. 물론, 난 그대가 반드시 사냥개의 일원이 될 거라고 확신하지만. 그대가 결정을 못 내리는 것 같으니까.”

“만약 그때 가서 제가 사냥개가 되지 않겠다면?”

“그때는 내가 지원했던 것들을 되돌려 받아야겠지.”

“이자까지 쳐서?”

카시마르의 말에 몰텍이 피식 웃었다.

“그래. 이자까지 계산해서 말이야. 그대의 목숨을 취하겠다는 이야기는 아니니 걱정하지 말고. 나는 그런 쪽에는 흥미가 없어. 아까 이야기 했지? 나무와 같다고. 그대가 성장하게 되면 나한테도 나쁜 이야기는 아니거든.”

상위의 존재는 하위의 존재를 뛰어나게 키워내는 것으로 영향력을 넓힌다. 보통 몰텍 정도 되는 자는 필멸자들을 수하로 키워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필멸자들은 너무 쉽게 소멸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몰텍이 카시마르에게 한 제안은 파격적이면서도 아주 후한 제안이었다.

카시마르는 몰텍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몰텍은 벨로바를 불러서 카시마르에게 붙여주었다.

카시마르가 사라지자 몰텍의 측근이 렙이 등장했다. 렙은 독수리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너무 파격적인 거 아닌가요?”

렙이 말했다.

“그렇게 생각해?”

“네. 이건 약을 내주다 못해서 떠먹여 주는 수준인데. 그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습니까? 혹시 우주에 계신 분들의 사생아라도 되는 겁니까?”

“그럴 리가 있나. 그분들의 사생아가 필멸자의 형상을 하고 있을리가.”

“그러면요? 엘더 쪽의 인물입니까?”

“그러면 그쪽 놈들이 모를 리가 없지.”

몰텍은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렙은 답답한 마음이 들었지만 재촉하지는 않았다.

“붉은 깃발의 문에서 만났다는 건 알고 있지?”

“네. 거기서 그를 알아보고 데려오셨다는 거 아닙니까? 어떤 재능이 마음에 드셨습니까?”

“나 목이 잘릴 뻔 했어.”

“네?”

“뭘 그리 놀라. 목이 잘려나갈 뻔 했다고. 영향력을 죽이고 있었긴 했지만.”

“무슨 수로?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필멸자가?”

“그가 들고 있는 무기. 예사 무기가 아니야.”

“그래봤자 필멸자입니다. 상위의 존재 앞에서는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할 겁니다.”

“그러니까 키워야지. 지역 신 정도만 되어도 아주 쓸만한 카드가 될 수 있어. 렙. 나를 벨 수 있는 무기면 누구도 벨 수 있어. 별의 멍청이들도 벨 수 있다는 뜻이지.”

“설마 그가 별의 최상위 전사들을 벨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그들의 직속 수하 하나만 처리해도 큰 이득이 아닐까? 그 정도면 저 정도 투자를 해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 정도면 충분히 균형을 흔들 수도 있겠군요”

“그래. 물론, 그가 잘 성장할 때의 이야기지만.”

“그게 문제겠네요.”

“지켜봐야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으니.”

몰텍이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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