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
거래(1)
카시마르가 선택한 이동 수단은 블링크 도그였다. 블링크 도그는 순간 이동 능력이 있는 생명체였다. 하루에 몇 번 정도 밖에 사용할 수 없지만 비상시에 아주 유용하게 쓰일 터였다.
카시마르가 블링크 도그를 선택한 또 다른 이유는 키우고 관리하기가 쉽다는 점이었다. 보통의 개와 마찬가지로 충성심이 높은 게 블링크 도그였다.
“소리매 정도로 빠르지는 않지만 잘 키우면 필히 쓰임이 많을 것입니다.”
시프네스가 넘겨준 블링크 도그는 삽살개와 비슷했다. 온몸이 북실북실한 털로 뒤덮인 삽살개. 다른 점이라면 귀가 축 처지지 않고 쫑긋 선 상태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꼬리도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인 상태였다. 크기는 시베리아 호랑이보다도 더 컸다.
“블링크 도그는 성장할 때마다 꼬리가 하나씩 늘어납니다. 꼬리가 늘어날 때마다 순간 이동을 할 수 있는 숫자가 늘어난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그럼 다른 능력이 생기는 겁니까?”
“맞습니다. 블링크 도그의 꼬리가 새로 생겨날 때마다 새로운 능력이 생기지요. 하지만 블링크 도그의 꼬리가 늘어나는 일은 좀처럼 쉬운 게 아닙니다. 그것도 업적으로 분류될 만큼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요.”
“잘 키워봐야겠군요.”
카시마르의 말에 시프네스가 웃었다. 여전히 그의 눈은 감긴 상태였다.
시프네스는 카시마르에게 여러 아이템을 전달했다. 그중에서는 카시마르의 문신으로 만든 깃발도 있었다.
밖으로 나온 카시마르는 벨로바를 만날 수 있었다. 벨로바는 원래 있던 그 자리에 있었다.
깃발은 카시마르의 머리 위를 펄럭이면서 있었는데, 벨로바가 그걸 보더니 손을 살짝 들었다. 그러자 깃발 테두리에 문양이 생겨났다.
“그게 몰텍님 휘하에 있다는 증표야.”
“이제는 정말 일이 다 끝난 겁니까?”
“그러면 내가 여기 있을 이유가 없지. 가자. 다음은 면접을 보러 가야 해.”
“면접이요? 제가 면접을 해야 한다는 겁니까?”
“네가 면접관으로 가는 거야.”
“누구를?”
“보좌관? 비서? 집사? 뭐 그런 거? 쉽게 말하자면 널 서포트해 줄 녀석을 뽑는 거지.”
벨로바의 말에 카시마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위의 존재가 되니 이것 저것 좋은 게 많이 생긴다고 생각했다.
“네가 작은 신으로 승격해서 붙여주는 게 아냐. 네가 사냥개의 사냥꾼의 일원이기 때문에 붙여주는 거지. 뛰어난 보좌관은 구하기가 힘들어. 그리고 아무하고 계약을 맺지 않지.”
“그런데 이렇게 빠르게 사람이 모이기도 합니까?”
카시마르가 물었다.
“사냥개의 사냥꾼에 속한 존재를 보좌하는 일이니까. 사냥개의 사냥꾼은 다른 틴달로스의 주축들보다 인원이 적어. 소수 정예란 이야기야. 거기다 시간의 광기, 불멸의 굶주림의 일원들보다 누릴 수 있는 것도 훨씬 많지. 이건 몰텍님의 성향이기 때문에 그래. 몰텍님은 소수 정예를 좋아하거든.”
벨로바는 카시마르를 면접장으로 안내했다.
“네가 고를 수 있는 인원은 모두 세 명이야. 그 이상의 인원을 거느리고 싶다면 네 수중에 있는 돈을 써야 할 거야.”
“그런데 이들이 꼭 필요합니까?”
카시마르가 물었다. 그러자 벨로바가 카시마르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왜 필요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 네 영지를 관리해줄 인원만 해도 모자를 지경일텐데.”
“당장 어디를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보좌부터 뽑는 건 아니다 싶어서요.”
“먼저 부딪혀보고 결정하겠다는 거야?”
“그렇죠.”
“그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이네. 그래도 하나는 뽑아야 돼. 그래야 내가 그쪽에다가 일을 넘길 테니까. 내가 계속 네 옆에 붙어서 가이드 역할을 해줄 수는 없거든.”
“그럼 이 친구로 하죠.”
카시마르가 화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누구? 카너? 이 친구는 필멸자인데 괜찮겠어?”
“뱀파이어가 필멸자였습니까?”
“필멸자야.”
“뱀파이어는 안 죽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요.”
“인간보다 생명력이 조금 질긴 거지. 죽어. 필멸의 길을 벗어난 존재라는 것은 완전 소멸이 된 후에도 얼마 뒤에 부활하는 존재를 의미해. 지금 내가 완전히 불타서 재가 된 상태여도 얼마 뒤에 다시 살아난다는 의미지. 그런데 이 친구는 아냐.”
“그렇군요. 그래도 이 친구로 뽑겠습니다.”
“대체 뭘 보고?”
“나이가 많잖아요. 경험도 많을테니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뱀파이어가 사냥개의 들판에 있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야.”
“그리 안 좋습니까?”
“그리 안 좋다기보다는 그 친구가 경험이 많을 거라는 추측은 틀릴 거라는 거지. 이 도시에서 뱀파이어라고 하면 라코이 가문 하나인데 라코이 가문은 장사로 큰돈을 만진 가문이거든.”
“그게 문제가 됩니까?”
“자네가 생각하는 것과 다를 수 있다는 거지. 뭐, 알아서 선택하도록 해. 해고가 불가능한 일도 아니니까. 어쨌든 몰텍님이 정한 금액 안에서 네가 필요한 인원을 고용하기만 하면 돼.”
면접은 시작도 하지 않고 끝이났다. 카시마르는 면접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건 면접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그는 게이트와 관련된 퀘스트를 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거기다 노인과의 약속도 지켜야 했다.
무엇보다 카시마르는 최초로 얻은 업적에 대한 보상을 빨리 확인하고 싶었다.
계단의 세계에는 업적이 있었고 업적을 달성하면 상위의 존재로 승격할 수 있었다.
작은 신 이후부터는 업적을 통해서만 승격할 수 있기 때문에 카시마르가 지역 신이 되려면 업적을 쌓는 게 필수였다.
“그럼 난 이 친구에게 자료를 넘겨줄게.”
“예.”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그 친구가 올 거야. 이야기를 잘 해보라고.”
“그러죠.”
“근데 진짜로 면접 안 보고 뽑아도 되겠어?”
벨로바가 물었다. 그러자 카시마르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해야할 일이 있었다. 면접을 보고 꼼꼼하게 뽑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카시마르에게는 그보다 중요한 게 시간이었다.
그는 이 세계에서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었다. 접속이 해제되면 무방이 상태가 되기 때문에 꽤 급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벨로바가 사라진 후 카시마르는 바로 최초로 달성한 업적을 확인했다. 업적은 이미 확인한 상태였지만 업적에 대한 보상은 확인하지 않은 상태였다.
업적에 대한 보상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였다. 대부분의 업적은 업적 그 자체로의 가치만 있을 뿐 따로 보상이 없는 것이 많았다. 그러나 간혹 보상이 주어지는 업적이 몇 가지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계단의 세계에서 최초로 달성하면 주어지는 업적이었다.
최초의 업적.
최초의 업적은 자료에 기록되지 않은 것들이기 때문에 어떻게 획득할 수 있는지 알려진 바가 없었다.
방금 카시마르가 얻은 업적도 그러했다. 카시마르는 작은 신의 증표인 문신을 새겼을 때 이미 업적을 획득했다는 메시지를 얻은 상태였다.
계단의 세계는 무수히 많은 우주적 존재들의 힘이 뒤엉켜서 유지되고 있는 세계.
무질서한 세계 같았지만 안쪽 만의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업적도 그러한 것 들 중 하나였다.
업적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방금 카시마르가 획득한 업적은 최초의 업적이었고 덕택에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업적을 통해서 얻는 보상은 아주 희귀한 것들이었다.
[최초의 업적 필멸자에서 작은 신으로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당신은 최단 기간 안에 필멸자에서 작은 신으로 승격했습니다.
우주적 보상이 주어집니다.
우주적 보상은 우주적 존재의 힘이 담긴 능력이나 아이템입니다.
아래 보상 중 하나를 선택해 주십시오.
파탄의 눈 - 파탄의 힘이 담긴 눈입니다. 주변에 있는 고위 존재의 위치를 탐색할 수 있습니다. 파탄의 눈으로 인한 탐색은 발각되지 않습니다.
에이론의 숨결 - 에이론의 숨결을 마신 자는 어떠한 존재에게도 상처를 입힐 수 있습니다. 상대의 영향력을 일부 배제하며 공격합니다.
카시마르는 얼른 받은 태블릿으로 자료를 검색했다.
파탄과 에이론 모두 잘 알려지지 않은 우주적 존재였다. 파탄은 무수히 많은 눈을 지닌 우주적 존재였고, 에이론은 노덴스와 같은 종족의 거인이라고 했다.
자료를 분석해보니 에이론의 숨결이 파탄의 눈보다는 더 좋은 보상인 게 확실했다. 둘 다 이미 나온 적 있는 보상이기 때문에 자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초의 업적이라고 해서 보상까지 최초로 나오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지금 카시마르에게 더 필요한 건 파탄의 눈이었다.
에이론의 숨결도 탐이나긴 했지만 어차피 카시마르의 주 공격은 두 개의 뿔을 이용한 것이었다.
두 개의 뿔은 상위의 존재인 몰텍에게도 통한다는 것이 확인된 상태.
에이론의 숨결을 굳이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에이론의 숨결은 무적의 능력이 아니었다.
카시마르는 파탄의 눈을 보상으로 선택했다.
그가 파탄의 눈을 보상으로 선택하고 나자 바로 그의 보좌관 카너가 나타났다. 그는 벨로바에게 자료를 넘겨 받은 상태였고, 자신이 무엇부터 해야할지 정리까지 끝낸 상태였다.
카시마르는 라코이 카너가 유능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
라코이 카너는 유능했다. 벨로바의 예상이 틀렸다는 것을 그는 삼십 분도 안 되어서 증명하고 있었다. 라코이 카너는 카시마르를 만나자마자 손목 시계를 건네주었다. 호출이나 연락을 할 때 쓸 수 있는 유용한 물건이라고 했다.
“저는 카시마르님의 최대한 빠르게 지역 신으로 승격하도록 도울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카시마르님이 관리하실 지역에 대해 알아두셔야 할 게 있습니다.”
“설명을 듣는 건 좋은데 이 길이 맞습니까?”
카시마르는 블링크 도그를 타고 게이트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외부 게이트는 그 빛과 소음이 강렬하기 때문에 도시 외곽에 따로 설치되어 있습니다.”
카시마르는 노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게이트로 향하는 중이었다. 라코이 카너는 검은 페가수스를 타고 카시마르의 옆을 따라붙고 있었다.
휭!
그때 맹렬한 바람이 카시마르와 라코이 카너 사이를 파고들었다.
“잠시 멈추십시오. 카시마르님!”
라코이 카너는 말을 하면서 위를 노려다보고 있었다. 그가 노려보는 곳에는 카시마르도 아는 얼굴이 있었다.
리크토였다.
사람 껍데기를 뒤집어 쓴 괴물.
스킨 도펠.
“무슨 일이십니까? 이분은 사냥개의 사냥꾼의 일원이십니다.”
“필멸자끼리의 조합이라..... 재밌네.”
“용무를 밝히시지 않으면 바로 경비대에 연락을 하겠습니다.”
라코이 카너가 말했다. 그러자 리크토가 웃었다.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나?”
리크토는 재빨리 영향력을 방출해서 카시마르와 라코이 카너를 압박했다.
나라 신의 존재가 영향력을 방출하면 필멸자들은 그 자리에서 미쳐버리거나 포박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거기다 리크토는 스킨 도펠 종족이었다.
그의 눈빛은 지역신들도 받아내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카시마르는 이미 오색 깃발의 문에서 스킨 도펠의 눈빛이 어떤 힘인지 경험한 바가 있었다.
그러나 카시마르와 라코이 카너는 담담했다. 카시마르와 라코이 카너만 담담한 게 아니라 그들이 데리고 있는 검은 페가수스와 블링크 도그까지도 멀쩡했다.
“영향력을 차단하는 물건을 지니고 있는 건가?”
“다시 소개 하겠습니다. 이분은 아흔 아홉 번째 사냥개의 사냥꾼의 일원이신 카시마르님이고. 저는 이분의 보좌관인 라코이 카너입니다. 미천한 제 이름은 들어보지 못하셨을지도 모르겠으나, 제 가문인 라코이 가문의 이름은 들어보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리크토님.”
“······.”
리크토는 라코이 카너를 탐색했다. 라코이 카너의 등급은 아무리 봐도 필멸자의 존재였다. 필멸자를 막 벗어난 영웅 등급, 즉 초월의 길에도 들어서지 못한 상황.
그런데 라코이 카너는 멀쩡했다. 리크토는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희 가문은 오랫동안 윗분들과 거래를 해왔습니다. 윗분들과 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영향력을 견디는 것은 필수지요. 거기다 정보력도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제야 리크토는 라코이 카너가 무언가 대단한 아이템을 두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참고로 지금 이 상황은 저희 가문의 호위대에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용무를 밝혀주시면 경비대에 연락을 넣지 않······.”
“거기까지 하지. 무슨 이야기인지 충분히 알았으니까.”
“무슨 용무십니까?”
“라코이 카너 자네가 아니라 이 친구에게 용무가 있어.”
리크토의 표정과 음성은 아까보다 한 결 부드러워진 상태였다.
“그러시겠죠.”
“무슨 일입니까?”
카시마르가 입을 열었다. 그는 꽤 당황할만한 상황임에도 차분하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야.”
“빨리 물어보시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서 말입니다.”
“혹시 스킨 도펠의 눈을 가지고 있나?”
리크토가 물었다.
“그게 왜 궁금하십니까?”
“그걸 빼앗으려는 게 아냐. 충분한 가치를 주고 구입 하려는 것이지.”
“그다지 신뢰는 가지 않는군요.”
“사냥꾼의 들판에서 사냥개의 사냥꾼을 건드릴만큼 멍청한 존재는 아니라서. 마침 그 유명한 라코이 가문의 사람도 있으니 제대로 거래를 해보는 게 어떤가?”
“그러십니까?”
“그래. 제대로 거래를 하지. 원한다면 계약서까지 작성하겠네. 옆에 라코이 가문의 친구가 있잖나.”
“그러면 이쪽과 거래를 해보시지요. 전 이 친구에게 거래를 일임하겠습니다.”
카시마르의 말에 라코이 카너가 살짝 놀란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러나 라코이 카너의 놀란 눈빛은 리크토만큼은 아니었다. 리크토는 아예 입술을 질끈 깨물고 인상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