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
거래(2)
카시마르의 결정은 현명했다. 라코이 카너는 이런 거래에 아주 익숙했다. 라코이 카너의 페이스에 휘말린 리크토는 라코이 가문으로 방향을 틀고 있었다. 라코이 카너가 그곳에서 정식으로 거래하자고 제안했기 때문이었다.
리크토는 울며 겨자 먹기로 제안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내뱉은 말이 있어서 거래를 하지 않겠다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리크토는 첫 만남에서부터 카시마르가 동족의 눈을 지니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동족에 대한 리크토의 후각은 무척이나 예리했기 때문이었다.
벨로바가 카시마르의 주변에서 사라진 순간, 리크토는 카시마르를 죽이고 그를 빼앗으려고 했다. 사냥개의 사냥꾼의 일원이라고는 했지만 이제 작은 신에 불과한 낙하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죽이고 도망치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존재가 붙어 있었다.
라코이 카너.
라코이 카너는 카시마르보다 더 죽이기 쉬운 존재였다. 문제는 카시마르와 다르게 라코이 카너를 몰래 죽이고 사라지는 건 어려운 일이라는 거였다.
일단 라코이 카너는 그의 영향력을 막아주는 아이템을 착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문과 연결되어 있어서 그가 라코이 카너를 죽이는 순간 그가 사냥개의 사냥꾼을 공격했다는 게 드러날 것이었다. 그건 안 될 말이었다. 동족의 눈이 탐이나긴 했지만 그것도 자신이 살아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사냥개의 사냥꾼을 아무런 이유 없이 공격했다는 게 알려지면 그의 목숨이 몇 개라도 남아나질 않을 것이었다. 몰텍 휘하의 존재들이 그가 완전히 소멸할 때까지 몇 번이고 추적해서 죽일 테니까.
라코이 성은 몰텍의 탑인 사냥꾼의 탑보다 높이는 낮지만 규모는 훨씬 컸다. 하나의 도시라고 해도 좋을만 한 규모였다. 그렇지만 라코이 성은 사냥꾼의 탑이 있는 쪽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몰텍의 영향력 안에 있는 건 사실이었지만, 탑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냥꾼의 탑에서 라코이 성으로 빠르게 가려면 북쪽에 있는 포탈을 이용해야 했다. 보통의 비행으로는 한 나절 이상 걸리지만 포탈을 타면 바로 라코이 성으로 통과할 수 있었다.
[스킨 도펠의 눈을 가지고 계십니까?]
라코이 카너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손목시계를 통해서 날아온 메시지였다.
둘은 리크토와 조금 떨어져서 이동하는 중이었다.
[가지고 있습니다.]
[몇 개나 가지고 계십니까?]
[두 개입니다.]
[이야기가 편해지겠군요.]
라코이 카너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했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스킨 도펠의 눈 딱 두 개가 리크토에게 필요한 물건이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도 아니고 둘이니 더 유리하게 협상할 수 있을 터였다.
보좌관의 임무는 자기가 모시는 주인을 더 높은 존재로 오르게 만드는 것.
그래야지만 그들의 신분도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생각해둔 방법이라도 있습니까?]
카시마르가 물었다.
[리크토는 나라 신 정도의 영향력을 지닌 존재입니다. 동족 사냥으로 빠르게 상위의 존재가 되었지만 기반 세력이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들키지 않았다면 모를까. 사냥개의 사냥꾼의 일원이신 카시마르님을 어찌할 수는 없을 겁니다. 성으로 가서는 더더욱 그럴테고요. 칼자루를 쥔 쪽은 이쪽이니 최대한 많은 걸 얻어낼 생각입니다.]
[저 자에게 스킨 도펠의 눈이 그리 중요한 것입니까?]
[위대한 업적, 아니 위대한 악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동족 사냥은 업적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짓이니까요.]
[위대한 업적이 그리 달성하기 어려운 것입니까?]
[위대한 업적이 종류가 있지만 저 자가 노리는 건 특별한 겁니다. 10년 가까이 스킨 도펠의 눈을 찾지 못해서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있거든요.]
라코이 카너의 설명에 의하면 리크토는 지금 20년 가까이 제 자리에서 멈춰 있는 상태였다.
보통 나라신 정도가 되면 뿌려둔 씨가 많이 있었다.
대부분의 위대한 업적은 기존에 있던 업적과 관련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하위의 존재일 때 다방면으로 업적을 많이 뿌려두고 상위의 존재로 올라가곤 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상위의 존재, 즉 나라신 이상의 존재가 되면 자잘한 업적을 획득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었다.
[동족 사냥꾼 리크토는 빠르게 상위의 존재가 된 케이스입니다. 동족 사냥이라는 건 그만큼 많은 영향력을 획득할 수 있는 길이라서 그렇습니다. 빠르게 하위의 존재에서 상위의 존재가 된 만큼 획득해놓은 업적이 그리 많지 않죠. 그래서 그가 상위의 존재가 되려면 한 가지 길 밖에 없습니다. 스킨 도펠의 눈을 수집하는 것.]
[한 마디로 한 가지 방법에 올인을 한 셈이라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그의 계획은 나름 신선했습니다. 굉장히 빠르게 위의 존재가 되었으니까요.그렇지만 단점도 명확했죠. 그가 스킨 도펠을 너무 학살하고 다닌 탓에 스킨 도펠을 찾기가 너무 어려워졌습니다.]
[멸족을 한 건 아닙니까?]
[멸족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다면 빠르게 정보가 퍼졌을 겁니다. 그리고 스킨 도펠인 리크토가 제일 먼저 알았겠지요.]
[반드시 필요한 아이템이라······.]
카시마르가 말끝을 흐렸다.
[카시마르님은 한 가지만 생각하시면 됩니다. 제게 일을 맡기셨으니 제가 일을 잘하는지 잘하지 못하는지만 봐주시면 됩니다.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최대한 많은 걸 얻어내겠습니다.]
라코이 카너가 카시마르를 바라보면서 메시지를 보냈다. 카시마르는 말없이 라코이 카너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
리크토는 빠르게 거래를 마무리 지으려고 했고 라코이 카너는 거래를 계속 끌었다.
카시마르는 게이트를 열어 노인을 소환하는 일을 하루 정도 미루기로 결정했다.
리크토와 라코이 카너의 협상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기 때문이었다. 이는 전적으로 라코이 카너 때문이었다. 라코이 카너는 계속 시간을 끌면서 리크토에 대한 정보를 긁어모으는 중이었다.
“여기가 카시마르님이 담당하실 지역입니다. 이 섬에는 세 종족의 필멸자들이 있는데 신과 직접 소통하는 종족은 아직 없습니다. 카시마르님이 종족 중 하나를 선택하시면······,:
카시마르가 손을 들어 라코이 카너를 제지했다. 그러자 라코이 카너가 말을 멈췄다.
“무언가 하실 말씀이 있으신 겁니까?”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하십시오.”
“당신은 몰텍님의 명령을 우선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저를 뽑아주신 분은 카시마르님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하위 존재를 키우는 일 보다는 다른 일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어떤?”
“저는 제가 흥미로운 일을 해야 결과도 좋게 나온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이런 방식보다는 전투를 통해 얻는 방식을 더 선호합니다.”
“확실히 성과만 좋으면 그런 쪽 방식이 훨씬 빠릅니다. 그렇지만 쉽지 않습니다. 거기다 카시마르님은······.”
“압니다. 필멸자라서 한 번의 기회밖에 없다는 거. 그렇다고 해서 마냥 안전한 길만 택하는 건 제 취향이 아니라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거래에서 전투와 관련된 아이템을 얻어야겠군요.”
“네. 그리고 너무 몰아세우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방금 제가 없었다면 그는 카시마르님을 공격했을 겁니다. 공격이 아니라 소멸을 시켰겠지요.”
“그렇게까지 했겠습니까? 적당한 협박을 했겠지요.”
“몇몇 아이템 중에는 흔적을 완벽하게 지우는 것들이 있습니다. 암살에 특화된 아이템이지요. 상위의 존재들 중 몇몇은 그런 아이템을 적절하게 이용하여 필요한 아이템을 얻곤 합니다. 그는 분명히 그걸 사용해서 카시마르님을 처리할 생각이었을 겁니다.”
“흠······ 그러니 철저하게 하자는 말인가요?”
“네.”
“뭐, 조금 기분이 별로이긴 하지만 그래도 적당한 선에서 거래를 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이번 거래가 끝나면 그는 더 상위의 존재가 될 텐데 굳이 관계를 악화 시킬 필요가 있겠습니까?”
카시마르의 말을 들은 라코이 카너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카시마르님의 말씀이 맞겠군요. 그가 이번에 위대한 업적을 달성해서 화신을 가지게 되면 불멸의 굶주림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테니······.”
“화신?”
“상위의 존재는 그를 상징하는 화신을 다룰 수 있습니다. 그 모습은 아주 다양하죠. 화신을 다룬다는 건 그가 그만큼 강력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벨로바님께 구해졌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화신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혹시 그 날벌레 같은 게 화신이라는 겁니까?”
“아마 그럴 겁니다. 화신의 형태는 아주 다양하니까요. 보통 영지를 가진 존재들은 영지를 관리할 때 본신을 드러내지 않고 화신을 보내곤 합니다. 물론, 화신을 보내려면 상당한 힘을 지니고 있어야겠지요.”
“나라신인 리크토가 화신을 부릴 수 없는데, 지역신인 벨로바님은 어떻게 화신을 부릴 수 있는 겁니까?”
“제가 알기로 벨로바님은 일부러 지역 신에서 벗어나지 않는 거라고 들었습니다. 화신을 자유롭게 다룰 정도니 웬만한 나라 신보다 강력한 힘을 가졌다고 봐야겠죠.”
“그런 거였군요. 근데 리크토 그자가 틴달로스의 주축이 아니었습니까?”
“모호한 상태입니다. 불멸의 굶주림의 일원이라는 자도 있고, 아니라는 정보도 있습니다. 일단 불멸의 굶주림의 일원들이 받는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일원이라는 소문이 돈다는 건 무슨 이유가 있다는 뜻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상위의 존재들이 별로 좋아하지를 않습니다. 동족 사냥이라는 걸 그리 좋게 보지 않거든요.”
카시마르는 카너에게 거래를 일임했다. 계단의 세계는 방대했다. 짧은 시간 안에 상황을 파악하는 건 무리가 있었다. 카너 정도라면 카시마르에게 필요한 물건을 리크토에게서 끌어낼 수 있을 터였다.
카시마르는 카너에게 거래만 일임한 게 아니라 쉬는 시간까지도 알려주었다.
라코이 카너는 카시마르의 이상한 이야기에 크게 반응하지 않고 따르기로 했다.
카너에게 설명을 마친 그는 바로 접속을 해제했다.
***
“틴달로스의 사냥개는 일단 아우터갓 쪽 세력인 거 같아.”
오정룡이 말했다. 둘은 저녁 식사를 마친 다음 거실에서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거기 있는 자들 대부분이 괴물들이었거든.”
“근데 이 게임 세계관이 넓긴 넓다. 그 안에서의 게임이 진짜였네.”
“PC로 정보를 검색을 해봤는데 동양 쪽 세계관도 많이 섞인 것 같아.”
“그런 느낌인 건가? 다양한 세계관이 다 뒤섞여 있는?”
“게이트도 비슷했잖아.”
“그래도 루테스 대륙이라는 기반이 있었잖아. 근데 거기는 근본이 없는 세계 같은데.”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고. 상상력에 제한이 없다고 할 수도 있고.”
“어쨌든 대박이네. 노인 말로는 거기서 일주일도 버티지 못하는 자들이 수두룩하다던데.”
“뭐, 잘 풀린 거라고 봐야지. 지금 소멸 당해도 꽤 많은 정보를 얻게되는 셈이니까.”
“소멸 당할 생각을 왜 해? 잘 해봐야지.”
“아무튼 그래서 여유가 많이 생겼어. 이번 거래 잘 되면 더 생길지도 몰라. 형을 비롯해서 몇 명 데려올 수 있을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노인이랑 한 약속은?”
“그건 바로 지킬 거고.”
“우리는 일단 보류해. 카니발 쪽 애들이랑 합심해서 한 번에 넘어갈 생각이야.”
“근데 그거 한 번에 넘어간다고 해도 같은 곳에 떨어지는 거 맞아?”
“악스트인가 뭔가 하는 문지기 통해서 들어가는 게 아니라서 상관 없다고 해. 그리고 그 방법을 쓰면 바깥의 세계에서 가지고 있던 물건들도 그 안에서 어느 정도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거지. 물론, 말 들어보니까 바깥과는 비교도 안 될만큼 센 놈들이 수두룩해서 안심할 정도는 아니겠지만.”
“그래서 노인이 카니발 길드원을 모은 거고?”
“그래. 그리고 말 들어보니까. 네가 들어간 방법 있지? 그거는 원래 그렇게 들어가라고 만들어 놓은 게 아니라는 거야. 사실 바깥에서 우주적 명성을 그리 얻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한다고 해도 한참 뒤에나 나왔어야 하는 거라는 거지.”
“그 이야기는 지겹게 들었으니까 됐고. 어쨌든 형 안 불러도 된다는 거지? 골낳괴 애들도 같은 생각이야?‘
“응. 컨신도 그렇고 주축인원 해가지고 꽤 많은 인원 데리고 갈 거 같아. 몇 가지 핵심 아이템들을 구했거든.”
“거기도 잘 풀리나 보네?”
“아니 원래 최초의 계단 여행자가 나오면 관련된 아이템들과 정보들이 풀린다고 해. 이전에도 존재하긴 했지만 소량만 풀려 있던 셈이지.”
“아무튼 노인한테 오늘 한 이야기 전해줘. 다음 접속 때 바로 게이트로 부를 거라고.”
“나 새벽에 접속할 거니까. 그때 카니발 애들 있으면 연락 줄게. 근데 오늘 있었던 일은 이야기 하지 말고 전달하자.”
“왜?”
“정보는 돈이야. 그쪽도 정보를 거래했는데 우리도 정보를 공짜로 줄 수 없지.”
“한 배를 탄 사이잖아.”
“아직은 몰라. 내가 보기에 그 노인은 엘더 갓쪽 사람인 거 같아.”
“이유는?”
“그냥 느낌이 그래. 그러니 너무 믿지 마. 이야기 안 해준다고 큰 문제 있는 것도 아니잖아. 넌 약속만 지키면 되는 거 아냐?”
“그렇긴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