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주캐로 멱살 캐리-161화 (161/205)

# 161

거래(3)

유중악은 어김없이 새벽 운동을 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거의 거르지 않은 일과.

그는 꼼꼼하게 스트레칭을 한 뒤에 재빨리 강도 높은 운동을 시작했다. 원래 유중악은 지루할 만큼 예비 운동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스트레칭은 그리 많이 하지 않고 강도 높은 운동을 하는 시간의 비중을 더 늘리고 있었다. 한정된 시간 안에서 더 많은 운동을 하기 위해서였다.

“지겹지도 않냐?”

“형은 그거 물어보는 거 안 지겨워? 근데 왜 나와 있어? 새벽에 접속 한다고 하지 않았어?”

“네가 전해달라는 이야기 전했어. 그랬더니 어느 지역이냐고 되묻더라고.”

“그래?”

“아무래도 그 양반은 엘더 갓 쪽 소속인 것 같아.”

“나도 그 생각을 하긴 했었지. 이쪽은 극명하게 갈리는 것 같더라고. 엘더 갓 아니면 아우터 갓.”

“애초에 그놈들 게임판으로 만들어진 세계니까 더 그렇겠지.”

“그래서 뭐라고 대답 했어?”

“어느 지역인지는 아직 판단이 안 된다고. 다만 운 좋게 도시에 들어섰다고 했지. 오색 깃발의 문에서 좋은 아이템도 얻었고. 아마 그쪽도 네가 이리 쉽게 작은 신이 되었을 줄은 모르고 있을 거다.”

“그렇겠지. 아무튼 잘 했어. 근데 계약서에 그런 내용은 없었지 않았나?”

“계약할 때 그런 내용으로 계약하지 않았지. 뭔가 조금 이상하긴 해. 네가 사냥꾼의 들판에 있다고 해서 그를 부르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닐텐데 말이야.”

“그쪽에서 부른다고 그가 공격 받는 것도 아니니까. 외부 게이트는 독립된 공간이라서 말이야. 지역신 정도면 거기서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얼마든지 이동할 수 있으니.”

“그니까 이상하다는 거야. 어차피 그가 엘더 갓 쪽 인물이면 네가 사냥개의 일원임을 확인할테고 확인한 다음에는 서로 갈 길 가면 되는 거 아닌가? 어차피 외부 게이트 안쪽에서 있으니 방해 받을 일도 없을 거고. 처음 계약할 때의 내용도 그거였잖아. 네가 너무 빨리 도시에 도착했다고 하니 의심을 하는 건가?”

“그럴 수도 있지. 근데 좀 그렇긴 하네. 처음 이야기할 때만 해도 당장이라도 계단의 세계에 들어오고 싶어하는 눈치였잖아.”

“그렇지. 거기다 이름을 끝까지 안 알려주는 것도 수상하고. 뭔가 다른 속셈이 있는 거 아닐까?”

“다른 속셈? 있기야 하겠지. 이야기 들어보면 수상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닌데.”

“근데 그 속셈이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일 수 있다는 거지.”

“어떤?”

“뒤통수가 얼얼할 정도의 통수.”

“그럴만한 게 있나?”

“모르지.”

“카니발 길드 사람들 나쁘지 않아 보인다며.”

“다 좋아. 뭔가 이상한 게 있었으면 눈치챘지. 그런데도 뭔가 숨기고 있는 거라면 진짜 대단한 친구들이고. 근데 내가 말한 건 카니발 애들이랑은 상관이 없어.”

“그 노인이 다 속이고 있는 거다?”

“그럴 가능성도 있지.”

“노인의 정체에 대해서는 짐작 가는 바가 없어?”

“저번에 이야기한 게 다야. 확실한 건 하나도 없지.”

“이름이라도 알면 조사라도 해볼텐데 말이야.”

“난 그게 제일 수상해. 네 말대로라면 지역신이라는 게 꽤 중요한 위치인 거 아냐?”

“맞아. 작은 신에서 하나의 지역을 지배할 수 있는 지역 신이 된다는 건 꽤 어려운 일이라고 하거든. 그래서 꽤 중요한 계급이지. 거기다 이 세계에서는 지역 신 부터가 진짜 불멸 존재로 가는 길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달라지는 게 상당히 많아. 지역 신부터는 그리 조급하게 상위의 존재로 갈 필요도 없어지고. 상위의 존재의 영향력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이 생기거든. 물론, 영향력 차이가 극명하게 갈리면 그것도 큰 의미가 없지만.”

“지역 신인 그가 외부 세계로 넘어온 것도 이상하고. 네 말 듣고보니 수상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네.”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지만 그 반대도 쉽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어. 떠밀려 나가게 되었는지 아니면 소멸되어서 밖으로 내보내 진 건지. 그가 우리에게 말해준 정보가 방대한 것 같았지만 사실은 배경 설명에 불과했어.”

“네가 방대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으면 노인의 이야기가 큰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했겠지.”

“중요한 정보이긴 했는데 그가 말한 것처럼 대단한 건 아니라는 거지. 그리고 비어 있는 게 많아.”

“하긴 어떨 때는 말하지 않는 것도 거짓말이 되기도 하는 법이니까.”

“보좌관에게 좀 알아봐 달라고 해야겠어.”

“알아낼 수 있을까?”

“모르지. 근데 꽤 유능해. 정보력도 상당히 있는 모양이고.”

“믿을 수는 있는 사람이야?”

“꽤? 이번에 들어가보면 더 확실히 알 수 있겠지. 거래를 끝내 놓는다고 했거든.”

***

“목숨이라도 하나 내놓으라고 할 기세더니, 요구 조건은 생각보다······.”

“세지 않습니까?”

라코이 카너와 리크토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리크토는 당장이라도 스킨 도펠의 두 눈을 얻고 싶었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선수를 저쪽에 빼앗겼다면 굳이 자극하지 않고 기다리는 게 최선이었다. 상대가 거래를 하지 않겠다고 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스킨 도펠의 눈의 가치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세지. 하지만 그걸 내게 판다는 것의 의미를 모르지는 않을테니······ 솔직히 말하면 조금 의외야.”

“제 주인이신 카시마르님의 결정입니다. 적당한 선에서 거래를 마무리 지으라고 하시더군요. 물론, 전 반대했습니다. 이리 쉽게 넘길 물건이 아니지 않습니까.”

“······.”

“이유는 모르겠습니다만 이 물건이 리크토님에게 넘어가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아주 잘 알고 계십니다. 화신을 부릴 수 있는 경지에 들어서게 된 걸 축하드린다고 전해달라 하셨습니다.”

라코이 카너의 이야기를 들은 리크토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야기를 들은 리크토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의심이었다.

리크토는 자신의 평판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 어떤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

가끔 벨로바 같은 특별한 존재가 있긴 했다. 하지만 벨로바도 리크토를 좋아한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저 남들처럼 대놓고 불쾌감을 드러내지 않을 뿐이었다.

리크토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무수히 많은 적들에게 둘러싸인 그가 이런 상황에서 의심부터 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무언가 장난을 친 건가?”

“거래는 제대로입니다.”

라코이 카너는 스킨 도펠의 눈을 꺼내서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렇다면 왜 그는 보이지 않는 거지?”

“주인님께서는 명상을 하고 계십니다.”

“필멸자는 불편한 게 한 두가지가 아니지. 그런데 여기에 어떤 장치도 하지 않았다는 걸 어찌 믿지?”

“믿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전 라코이 가문의 사람입니다. 하찮은 필멸자의 가문이지만 거래로 장난은 치지 않습니다.”

“지금은 그놈의 보좌관이지.”

“호의를 악의로 받으시는 분이군요.”

“호의라······ 멍청하다면 모를까. 내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이런 조건으로 눈을 넘겨준단 말인가?”

“그러니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유를 모르겠다고. 어쨌든 제 주인의 결정은 이렇습니다. 다만 한 가지 추가할 사항이 있긴 합니다.”

카너의 말에 리크토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뭐지?”

“카시마르님을 공격하고 쓰시려던 물건. 테밀라의 물감 아닙니까?”

“······.”

리크토는 다시 침묵했다. 라코이 카너는 더 몰아붙이지 않았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들판 한 가운데서 일을 벌이실 생각이었으면 그 정도 물건은 가지고 계실거라 생각 했습니다. 최상위 존재들도 귀하게 여기는 아주 귀한 물건이지만 리크토님이라면 가지고 계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테밀라의 물감은 우주적 존재의 기운이 3분의 1이나 들어 있는 물건이지. 그렇게 귀한 물건을 고작 나라 신에 불과한 내가 지니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리크토의 말에 라코이 카너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계단의 세계에서 우주적 존재의 힘이 담긴 물건은 최상위의 물건이었다. 다만 같은 우주적 존재의 힘이 담긴 물건이어도 그 기운이 얼마만큼 담겼냐에 따라서 그 가치가 달라졌다. 계단의 세계에 있는 우주적 존재의 물건은 대부분은 우주적 존재의 힘이 계단의 세계의 어떤 물질과 결합해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두 우주적 존재의 힘을 담고 태어났으며 스스로 진화하고 있는 두 개의 뿔은 정말 특별한 무기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어려운 일이지요. 그런 물건은 거래로도 구할 수 없으테니까요. 하지만 리크토님은 가지고 계십니다. 들판에서 일을 벌이려면 그 물건이 없고서는 설명이 안됩니다. 리크토님이 어떤 분입니까? 사냥개란 테두리 안에서 공격 당하지 않기 위해 조금의 명분도 만들지 않고 계시는 분 아닙니까.”

카너의 분석은 명확했다. 모두가 리크토를 싫어하지만 그가 아직까지 살아 있는 건 어떠한 명분도 내주지 않기 때문인 게 강했다.

동족 사냥은 혐오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리크토를 공격할 명분을 주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상위의 존재 중에 스킨 도펠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스킨 도펠이 지역신을 넘어 나라신이 된 경우는 긴 계단 세계의 역사에 처음 있는 일이였다. 동족인 스킨 도펠이 없는 이상 그를 공격할 명분을 가진 존재는 없었다. 그가 소속도 없는 떠돌이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테지만.

“그 물건이 내게 있다고 한다고 해도 내가 넘겨줄 것 같나? 그 귀한 물건을. 고작 스킨 도펠의 눈과 바꾼다고?”

“물론입니다. 그 물건은 리크토님에게 있을 때는 크게 가치가 없으니까요.”

“스킨 도펠의 눈이 필요하긴 하지만 타밀라의 물감만큼은 아냐. 비교할 수 없는 가치야.”

“리크토님. 저희 가문은 사냥개에서 떠도는 소문은 다 꿰고 있습니다. 시간의 광기에서 타밀라의 물감을 오래전부터 찾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필요 없는 상태가 되었지요. 리크토님이 그때 그들을 도와주지······.”

“그만.”

라코이 카너의 말을 리크토가 끊었다. 리크토의 표정은 역겨운 것이라도 본 것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리크토는 라코이 카너와 더 이야기를 해봤자 손해만 볼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넘겨주지. 대신에 내게 한 가지 금제를 걸지.”

“어떤 금제 말입니까?”

“내게 그걸 쓰지 않는 다는 조건이야.”

“물론입니다. 타밀라의 물감은 흔적을 지우는 용도로만 쓸 수 있으니까요.”

“이해할 수가 없군. 그놈이 대체 누구길래? 이런 대접을 받는 거지?”

“한 가지는 알 수 있습니다.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는 분이라는 겁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눈에 어떠한 문제도 없었으면 해. 이상이 없다면 언젠가 빚을 갚도록 하지.”

라코이 카너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거래 계약서를 작성했다. 라코이 카너는 스킨 도펠의 눈을 넘겼고, 리크토는 목록에 있는 물건을 넘겼다.

리크토가 넘긴 물건의 품목은 서른 가지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중에는 천문학적인 돈을 지불해도 구할 수 없다는 타밀라의 물감도 들어 있었다.

“맞다. 그럴 일은 없겠지?”

“어떤 일 말입니까?”

“타밀라의 물감의 출처 말이야.”

“물론입니다.”

“그걸 어떻게 쓰려는지 모르겠지만 조심하도록 해. 토씬이 알게 된다면 그 친구는 물론이고 네 가문까지도 사라지게 될 테니까.”

말을 마친 리크토는 바로 사라졌다.

라코이 카너는 리크토가 사라지자 한숨을 내 쉰 다음 물건을 꼼꼼하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주인인 카시마르가 잠에서 깨길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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