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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캐로 멱살 캐리-162화 (162/205)

# 162

저주

“거래는 무사히 끝났습니다. 약속한 물건 서른 개를 모두 받았습니다. 대부분 방어와 관련된 소모성 아이템입니다. 카시마르님이 전투와 관련된 길을 걸으신다고 하여 일단 방어와 생존에 포커스를 맞춰봤습니다.”

“좋네요. 일단 죽지 않아야 다른 것도 할 수 있는 거니까요.”

카시마르의 칭찬에 카너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타밀라의 물감도 얻었습니다.”

“타밀라의 물감이라면 얻을 확률이 반반이라던 그 물건 말이죠?”

“예. 준비한 수가 잘 먹혔습니다. 솔직히 그가 그 물건을 가지고 있을지도 확신이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확신하고 일을 벌이신 거 아닙니까?”

카시마르가 미소를 지으면서 물었다. 그러자 라코이 카너가 미소로 답했다.

“90퍼센트 이상은 확신 했습니다.”

“받아도 문제 없는 물건인가요?”

“네. 괜찮습니다. 카시마르님은 토씬 사건 이후에 오셨으니까요.”

“그건 어떤 사건입니까?”

“시간의 광기의 주축은 토씬이라는 가문입니다. 3대에 걸쳐서 시간의 광기를 지배해온 가문이지요. 현 시간의 광기의 정점은 바로 그 토씬 가문의 라오라는 자인데, 그 자의 외아들이 온몸의 혈액이 말라버리는 저주에 걸려서 그걸 치료하려면 타밀라의 물감과 붓이 필요했었죠.”

“타밀라의 물감과 붓이 세트 아이템 같은 겁니까?”

“비슷합니다. 효능이 달라지죠. 타밀라의 물감은 흔적을 지우는데 쓰는데, 그걸 타밀라의 붓과 함께 사용하면 어떤 상처든지 치료할 수 있는 물건이 됩니다.”

“라오는 그걸로 아들을 치료하려고 했지만 구하지 못했던 거군요?”

“네. 근데 그걸 리크토가 가지고 있었죠. 라오가 틴달로스의 주축 들에게 여러 번 호소를 했지만 가지고 있는 자가 없다고 했었습니다.”

“리크토는 가지고 있으면서 그걸 내주지 않은 거고요?”

“네. 그걸 내줬더라면 어마어마한 보상을 받았겠지만······ 그러지 않았죠.”

“라오라는 자가 가지고 있었음에도 내주지 않은 걸 알게 되면 분노하겠군요.”

“네. 틴달로스의 사냥개의 주축들은 서로를 견제하는 입장이지만 그 단체의 정점에 있는 분들은 서로를 대우하고 있습니다. 라오가 공적으로 도움을 요청한 사항이니 이 사실이 드러나면 리크토는 공격을 감당하기 힘들 겁니다.”

“최근에 입수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최근에 입수한 게 아닙니다. 타밀라의 물감은 아무 기반도 없는 나라 신인 그가 가지고 있기에는 지나치게 귀한 물건이죠.”

“그렇다면 어떻게 입수했다는 겁니까?”

“아마 동족 사냥의 악업으로 입수한 물건일 겁니다. 희귀한 업적을 달성하면 희귀한 능력이나 아이템이 주어지죠. 타밀라의 물감은 아마 그때 입수한 물건일 겁니다. 아니면 그가 그걸 입수할만한 접점이 없습니다. 위대한 사냥감을 사냥하거나 했다면 모를까. 지금까지 리크토의 행적은 오로지 동족 사냥에만 치우쳐져 있었거든요.”

“그런데 저번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하위의 존재일 때 다양한 업적을 쌓아 놔야 좋다던데요. 그는 지나치게 위로 올라가는 것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네요.”

“스킨 도펠은 필멸자에서 시작해서 세 번의 생을 부여 받는 족속들입니다. 필멸자들은 위로 올라가기 힘들지만 상위의 존재로 태어난 자들과는 다른 부분이 있지요. 바로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 수록 희귀한 능력을 깨우친다는 겁니다. 오래 산 미물이 깨달음을 얻어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한다는 이야기 한 번 들어보신 적 있을 겁니다.”

“있죠.”

“그런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필멸자일수록 희귀한 종족일수록  하찮은 존재일수록 상위의 존재가 되면 훨씬 더 강해집니다.”

“그러면 벨로바 같은 존재가 위로 올라가는 것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 이유가······.”

“그렇습니다. 이미 위대한 존재로 태어난 벨로바는 굳이 서둘러서 상위의 존재가 될 필요가 없죠. 다만 리크토는 다릅니다. 보통의 필멸자 보다는 약하겠지만 상위의 존재가 되면 될수록 강한 능력을 얻게되겠죠. 그래서 리크토는 빠르게 나라신으로 올라가는 길을 택한 겁니다. 화신을 다룰 수 있는 경지. 즉 아바타에 집착하는 것도 그 때문이고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란 표현이 딱 맞네요.”

“그렇죠. 필멸자들 중에서도 보상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필멸자들은 크게 성장합니다. 다만 성장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는 게 문제지요. 카시마르님이 전투와 관련된 업을 쌓고 싶다고 했을 때 제가 반대하지 않은 이유도 그겁니다. 지금 카시마르님은 단순한 필멸자가 아닙니다. 작은 신으로 승격하셨으니 그만한 능력을 얻으셨을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

라코이 카너의 급작스러운 질문에 카시마르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능력을 얻지 못하신 겁니까?”

카너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아쉽게도 그렇군요.”

“그럴 리가 없을 텐데요. 분명히 어떤 능력이 주어졌을 겁니다. 아니면 아이템이라도······. 혹시 능력이 주어진 걸 알지 못하시는 건 아닙니까?”

“그건 아니군요. 아이템을 받긴 했거든요. 다만 그건 최초의 업적과 관련된 거였습니다.”

카시마르는 최초의 업적이 어떤 것인지와 어떤 아이템을 받았는지는 이야기 하지 않았다. 라코이 카너도 그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무언가 이상합니다. 이런 경우는 한 번도 보질 못했습니다. 이 세계에서는 필멸자들도 노력을 통해서 마법이나 염력 정도는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전 그런 능력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혹시 상위 존재가 금제를 걸어두었다거나 한 건 아닙니까? 아니면 저주라도 그런 것 아니면 지금 상황이 설명이 되질 않습니다. 적어도 작은 신이 되면 영향력이 생김과 동시에 몇 가지 능력은 기본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마법, 제어 능력 같은 것들 말이죠. 미물들을 조종하는 능력도 갖추게 됩니다.”

“상위 존재의 금제는 모르겠지만······.”

카시마르는 라코이 카너에게 가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카시마르의 이야기는 꽤 길어졌다. 라코이 카너는 카시마르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었다.

“그렇다면 그건 그 가면의 저주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군요. 이 세계의 시스템마저도 무시할 수 있는 저주라니······. 하지만 희망이 없는 건 아닙니다. 그런 물건에 대한 지식이 해박한 자를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방법을 찾을 겁니다.”

라코이 카너의 의지는 대단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하찮은 필멸자라는 이유로 상위 존재들은 그를 보좌관으로 쓰질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그를 선택한 존재가 나타난 것이었다.

라코이 카너는 어렵게 얻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한 가지 더 부탁할 일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카시마르는 원래 하려고 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바로 계단 세계로 넘어오게 된 계기와 관련된 것이었다.

이 세계에서 외부 세계로 들어온 자들은 드물지만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라코이 카너는 카시마르와 이십대 중반 정도의 외모를 하고 있었지만 실상은 600년 넘게 산 필멸자.

외부에서 온 인사를 처음 보는 건 아니었기에 카시마르의 이야기에 크게 놀라거나 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라코이 카너는 카시마르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었다.

“확실히 이상한 부분이 있긴 하군요. 하지만 그 노인이 한 말에 틀린 부분은 없습니다. 대부분 맞는 말이에요.”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이상한 건 맞지요. 어쩌면 그가 생각보다 위험한 존재일 수도 있습니다. 그의 외모에서 별다른 특이점은 없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인간처럼 보였습니다.”

“인간으로 보였는데 영웅으로 태어났다고 했지요?”

“네.”

“그러면 인간 중에서도 선택받은 자라는 이야기인데······ 그런 존재는 필멸자들 중에서 아주 희귀하지요.”

“희귀합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니 못 찾을 것도 없습니다. 다만 정보가 조금이나마 더 있었으면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혹시 기억에 남는 행동이나 말이 있었습니까?”

“딱히 특징이 있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기억에 남는 말은 있습니다. 스스로 눈을 뽑았지만 뽑기 전 보다 더 많은 것을 본다라는 이야기였지요.”

“더 많은 것을 본다······ 어디서 들어본 이야기 같습니다. 아무튼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찾아보겠습니다.”

“네.”

“그리고 벨로바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신 것 같더군요.”

“그분이요?”

“네. 몰텍님의 이야기를 전하러 온 것일 수도 있으니 만나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죠.”

라코이 카너가 사라지자 벨로바가 카시마르의 집무실로 들어왔다.

“화려하군.”

벨로바가 주변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확실히 그랬다. 카시마르의 취향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넉넉하고 화려한 공간이 보기 싫은 느낌은 아니었다.

“어때? 지낼 만은 해?”

“아직 적응도 못했습니다. 차차 적응해 봐야죠.”

“아니. 보좌관 말이야. 제대로 잘 하고 있냐고 물은 거야.”

“네. 아주 좋습니다.”

“몰텍님에게 한 소리 들어서 말이야. 왜 그런 보좌관을 붙여준 거냐고 하시더군.”

“전 마음에 듭니다. 일을 아주 열심히 하더군요.”

“당연히 그래야지. 그들에게는 큰 은인일테니까.”

“왜 그를 그렇게 낮게 보는 겁니까?”

“낮게 본다라······ 필멸자니까? 보통 작은 신의 보좌관은 호위의 역할도 같이 하는 거야. 근데 그가 호위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건 잘 모르겠군요.”

“지금이라도 보좌관을 바꾸고 싶다면 이야기하라고.”

“그러고 싶지는 않습니다.”

“고집이 세군.”

“주관이 있는 거라고 해두죠.”

“이대로 그를 부리면 넌 계속 손해를 보는 게 되는 거야.”

“대체 그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문제가 있다면 속시원하게 말씀을 해보시죠.”

카시마르가 벨로바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아. 그렇게 적개심을 가질 필요는 없어. 난 그냥 몰텍님의 지시로 온 거니까. 그리고 손해를 본다는 이야기는 맞는 거야. 사냥개의 들판에서 가장 많은 돈을 가진 라코이 가문이 왜 보좌관에 집착한다고 생각해? 작은 신 정도는 그들이 가진 돈으로 얼마든지 살 수 있어.”

벨로바의 이야기를 들은 카시마르가 잠시 침묵했다. 생각해보면 이상했다. 라코이 카너는 리크토 같은 존재의 영향력도 차단할 정도의 귀한 아이템을 두르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필멸자에 머무르고 있었다.

“이곳의 규칙이야. 장사치인 라코이 가문은 돈으로 승격할 수 없게 되어 있다고. 단 한 가지 방법은 가능하지. 보좌관이 되어서 주인과 함께 위로 올라가는 것. 그러나 필멸자인 그를 누가 보좌관으로 쓰겠어? 그 자체로 격이 떨어지는 일인데. 나는 상관 없는 일이라 그냥 나뒀지만 몰텍님의 생각은 좀 다른 것 같아.”

“그래서 직접 찾아오신 거군요.”

“이제 네가 손해 본다는 이야기가 무슨 의미인지 알겠지? 몰텍님은 보좌관에 대한 지원을 더 해주겠다고 약속했어.”

“그 이야기를 들으니 더 라코이 카너와 일을 해야겠군요.”

“······ 무슨 의미지?”

“그만큼 간절하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그러니 더 열심히 일할 거 아니에요.”

카시마르는 벨로바의 말을 단칼에 거절했다. 벨로바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바로 사라졌다.

벨로바가 나간 뒤에 라코이 카너가 바로 다시 들어왔다.

“말씀하신 부분에 대한 건 찾고 있으니 결과가 나올 겁니다. 그리고 저주에 관려된 건 처리할 수 있는 분을 섭외했습니다.”

“그래요? 그럼 언제 볼 수 있습니까?”

“지금 딱히 할 일이 있으십니까?”

“아뇨?”

“그럼 지금 보시면 됩니다. 이미 와 계십니다.”

카시마르는 집무실 의자에서 일어났다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일처리 하나는 어마어마하게 빠르게 깔끔한 라코이 카너였다.

***

“변형도 몇 번 있었소?”

“예. 몇 번 있었습니다.”

“대단한 존재의 개입도 있었던 것 같은데?”

“있었죠.”

카시마르는 달로스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이곳에서 우주적 존재는 실존하는 존재였다. 그레이트 올드원만 되어도 열렬히 숭배 받는데 최상위 아우터 갓인 달로스의 이야기를 꺼냈다가는 일이 복잡해질 수 있었다.

“변형이 있었지만 끝까지 완료된 건 없었군.”

“그게 문제가 됩니까?”

“문제가 되지는 않소. 다만 몇 번의 변형이 있었고 그로 인해서 물건의 기능에 이상이 온 것 같소이다.”

“고칠 수 없는 겁니까?”

“방법은 있소. 하지만 그 전에 물어볼 것이 있소.”

기술자 푸론이 물었다. 푸론은 뱀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물어보시지요.”

“당신. 필멸자가 맞는 거요?”

푸론의 예기치 못한 질문이 터져 나왔다. 카시마르는 대답을 준비했고, 푸론은 카시마르를 강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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