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3
미로 속 친구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말 그대로요. 당신 필멸자인 거요? 아니면 위에서 유희를 즐기러 내려온 거요?”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군요.”
“이 가면은 금제라고 할 수도 있고, 저주라도 할 수도 있는 물건이오. 둘 다 아닐 수도 있고. 어쨌든 이쪽에서 볼 수 있는 물건은 아니지. 평균의 아이템. 이 물건은 위대한 존재가 하계로 유희를 떠날 때나 착용하는 아이템이요. 정확한 명칭은 없지만 굳이 붙이자면 평균의 저주랄까.”
“평균의 저주?”
“평균의 금제라고도 할 수 있는 물건이지.”
“자세히 설명을 해주시죠.”
“자세히 설명할 것도 없소. 그대가 필멸자가 아니라면 지금 내게 농을 걸고 있는 것일 테니.”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카시마르가 푸론에게 물었다. 그러자 푸론은 잠시 카시마르를 빤히 바라봤다.
“솔직히 잘 모르겠소. 그러나 정말 당신이 유희를 즐기러 내려온 상위의 존재라면 내 이런 질문이 무의미하고 어리석은 짓이겠지.”
“무의미하고 어리석은 짓이 아닐 겁니다. 전 필멸자가 맞거든요.”
“그렇다면 지독한 저주에 걸렸다고 해야겠소. 아니, 지독하다기 보다는 어려운 저주지. 이런 물건은 고대 때 잠깐 등장했던 것들이거든. 신화 속에서나 등장했던 물건이랄까.”
가면은 전설템으로 분류되어 있긴 했었다.
“이게 복잡한 물건인 이유는 저주의 용도로만 만들어진 게 아니기 때문이요. 유희의 용도로도 쓰였지만 고대의 존재들은 그런 방법보다 다른 방법으로 이런 물건을 사용했소.”
“어떤?”
“가벼운 트레이닝 용도.”
“저주로 트레이닝을 한단 말입니까?”
“후유증이 없고 푸는 방법만 알 수 있다면 저주가 아니지. 이런 물건은 고위 존재가 막 태어난 자식에게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소.”
“어떤 부모가 자식에게 이런 물건을 줍니까?”
“그러니까 트레이닝 아니겠소. 쉽게 생각해봅시다. 필멸자인 당신에게 이런 종류의 금제는 큰 타격이겠지. 하지만 불멸자에게 이런 금제가 큰 타격이겠소? 그들은 보통의 방법으로 죽을 수가 없는 존재요. 그리고 감히 누가 건드리지도 않지. 우주적 존재는 자식도 우주적 존재. 그러나 아무리 우주적 존재라고 해도 힘이 완성되지 않은 시기는 있는 법이요. 이 물건은 그러한 시기를 지나서 더 큰 힘을 갖게 하기 위해서 착용하는 아이템인 셈이지.”
“그렇다면 이 가면을 벗게 되면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겁니까?”
“당신이 얼마만큼 많은 경험을 했느냐에 따라 다를 거요. 다만 확실한 건 금제가 풀리면 이전보다 강해지는 건 확실하지. 금제 때문에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할 수 있게 될테니까.”
“대단한 물건이었군요.”
“사실 대단한 물건은 아니오. 어찌 보면 단순한 시스템이지. 그만큼 리스크가 크지 않소. 리스크가 큰 데 돌아오는 보상은 적으니 하위의 존재들은 쓸 엄두를 못 내지.”
“보상이 큰 거 아닙니까?”
“그거야 생각하기 나름인 거요. 우주적 존재들에게는 큰 리스크가 아니겟지만, 하위의 존재들에게는 상당한 리스크 아니겠소? 당신이 잃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가벼운 것은 아닐 것이오. 그 능력이 무엇을 잃게 만들게 될까. 이런 길을 걷는 자가 걸어야할 것은 결국 목숨 아니겠소? 이 물건은 잃는 게 큰 만큼 보상이 커지는 물건이요. 우주적 존재들이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고 해서 큰 문제가 생기겠소? 하지만 필멸자들은 다르지. 그리고 그 어떤 보상도 목숨보다는 중요하지 않은 법이요. 그래서 필멸자들은 이런 물건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이고.”
“그럼 똑같은 가면을 써도 고위의 존재들보다 하위의 존재가 나중에 얻는 보상이 크다는 말입니까?”
“그렇겠지.”
카시마르의 말에 푸론이 담담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리고 뒤에 말을 덧붙였다.
“풀 수만 있다면.”
“푸는 방법이 없습니까?”
“암호와 같은 거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비밀번호와는 다른 개념이지. 여기에 걸려 있는 암호는 특정한 행동과 관련되어 있을 거요. 무척 거창한 것일수도, 아니면 허탈할 정도로 간단할 수도 있지.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걸 푸는 방법을 당신이나 나나 모른다는 거요.”
“의미가 없는 질문이었군요.”
“당장은 그렇지. 하지만 이런 저주와 관련된 것을 연구하는 자나,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자들은 이 세계에 많소. 적어도 그들을 만나보는 수고는 해봐야하지 않겠소? 이 가면의 겉면에서 세부적인 표식이 있소. 내가 알 수 없는 표식으로 되어 있지만 이걸 알아볼 수 있는 자가 있을 수 있겠지. 그러면 쉽게 풀 수 있을 거요.”
“우주적 존재가 거론될만큼 대단한 물건인데 쉽게 풀 수 있겠습니까?”
“말했잖소. 가벼운 트레이닝 용도라고.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게요.”
“그게 고위 존재의 기준인지, 필멸자의 기준인지가 중요한 거겠군요.”
카시마르는 심각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서도 여유로웠다. 그의 여유로운 모습을 본 푸론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그렇겠지.”
“그래도 가능성을 보았으니 다행입니다.”
“본론을 이야기하자면 그 가면에 걸려 있는 저주는 암호를 알아야 풀 수 있지만, 변형이 온 부분에 대해서는 조정을 해줄 수가 있소. 물론, 비용이야 꽤 들어갈 거요. 이제부터가 진짜 기술이 들어가는 부분이니까.”
“조정을 해준다는 게 어떤 의미입니까?”
“당신이 능력을 얻지 못한 건 그 가면 때문이오. 일종의 버그인 셈인데, 몇 번의 변형이 오면서 평균으로 셋팅된 것 이상으로 능력을 흡수해버렸소.”
“쉽게 말해서 가면이 제 능력을 잡아먹었다는 이야기입니까?”
“그렇소. 원래 그런 기능이 탑재된 물건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큰 존재가 개입을 한 번 했다고 하지 않았소?”
“그렇습니다.”
“그 때문인 것 같소. 원래는 셋팅 된 기준까지만 능력을 다운그레이드 시키는 것이었는데, 그 존재의 개입으로 일이 틀어지게 된 거지. 그래서 그대가 가지고 있어야할 기능도 빼앗아 간 것 같소. 어떤 능력을 얼마만큼 잡아먹은 지는 일단 기술이 들어가 봐야 알 수 있소.”
“해 주시죠. 힘을 얻을 수 있다는 데 뭐가 문제겠습니까.”
“비용이 상당히 들 거요.”
“괜찮습니다.”
“카너를 불러도 되겠소?”
푸룬이 말했다. 카너는 카시마르와 푸론이 상담하는 동안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푸론의 이야기는 구체적인 금액은 카너가 있는 곳에서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시죠.”
라코이 카너는 잽싸게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푸론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얼마를 달라고?”
“열 개.”
푸론의 말에 카너가 인상을 썼다. 작은 금액이 아니라는 걸 카시마르는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 이거······.”
“아냐. 내가 이런 걸로 장난 치는 거 봤어? 라코이 가의 가훈이 뭐야?”
“그걸 내게 묻는 거야?”
푸론과 카너는 상당히 친분이 있는 것 같았다.
“일과 물건은 제값이 있다.”
“그 정도로 큰 일이란 말이지? 그럼 일은 깔끔하게 해결되는 건가?”
“깔끔하기는. 저건 암호를 알지 못하면 못 푸는 저주야. 내가 할 수 저 안에 감춰진 능력을 끄집어 내주는 거고.”
“그럼 원래 있던 저주는 못 푸는 거란 소리잖아.”
“그렇지.”
푸론의 이야기를 들은 카너가 뒤돌아서 카시마르를 바라봤다.
“비용이 많이 드는 겁니까?”
“네. 현재 카시마르님이 가지고 계신 자금 대부분이 들어간다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거래로 얻은 물건이 있어서 그걸 처분하면 충분하겠지만······.”
카너가 말끝을 흐렸다.
“그렇다면 해야지. 당장 큰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잖습니까.”
“네.”
말을 마친 카너는 푸론을 향해 묘한 미소를 보냈다. 창백한 얼굴을 한 카너가 웃어보이자 푸론은 고개를 저었다.
“안 돼. 꽤 높은 만신도 불러야 하는 일이란 말이야.”
“그 정도 일이야? 네가 도움을 받아야 할만큼?”
“그래. 그러니까 그 정도 불렀지.”
“그렇게 큰일이면 좀 내려서 받아도 되겠네. 아홉 개 가자.”
“거참. 라코이 가의······.”
“이게 제 값인 거 같아.”
카너와 푸론은 10분 넘도록 실랑이를 벌였다. 결국, 두 손을 든 쪽은 푸론이었다.
***
카시마르의 거처는 커다란 저택이었다. 무수히 많은 방이 있었지만 압권인 것은 저택 밖에 있는 정원이었다. 대자연 한가운데에 지어졌다고 해도 좋을만큼 큰 들판이 있었다. 들판이었지만 확실한 건 이곳은 카시마르의 영역이라는 것.
들판 한쪽에 미로가 만들어졌다. 푸론이 미로를 만들고 푸론과 닮은 만신들이 푸론이 미로를 만들 동안 힘을 실어주었다.
카시마르는 마을 잔치와 흡사한 푸론의 작업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접속 해제 시간까지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 있어서 여유가 있었다.
“지루하십니까?”
라코이 카너가 다가와서 말했다. 그의 옆에는 시녀가 차와 다과를 들고 서 있었다. 라코이 카너가 고개 짓을 하자 시녀가 카시마르에게 차와 다과를 건넸다.
“생각보다 볼만 합니다.”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들어서 죄송합니다.”
“그건 보좌관이 죄송할 일이 아니죠. 어쨌든 해야할 일이니까요. 괜찮습니다.”
“앞으로 활동하시는데 돈이 상당히 많이 들어갈 겁니다. 그런데 시작부터 대부분의 자금을 소진한 터라 걱정이 되는군요.”
“처분할 수 있는 아이템은 처분해야지요. 이번에 들어가서 좋은 능력을 가지고 나오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는 거 아닙니까?”
카시마르는 여유가 있었다. 라코이 카너는 그 여유가 어디서 나오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여유가 마음에 들었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몰텍도 그의 이런 여유 때문에 반한 것은 아닐까? 카너는 잠시 그렇게 생각했다.
푸론이 가면에서 힘을 추출해 만든 미로는 사각 문이 전부였다. 손잡이도 없는 문에 불과했지만 그 안은 복잡한 미로로 되어 있었고 안에서 무엇을 얻어서 나올 수 있는지는 미지수였다.
“이제부터는 당신의 능력에 따라 달렸소. 안에서 죽는다고 해도 소멸하지는 않지만 대신에 문이 일정 시간 동안 닫히게 되오. 문이 닫히는 시간은 죽을 때마다 늘어나지. 그러니 조심하지 않으면 미로 때문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될 거요.”
푸론의 설명을 들은 카시마르는 주저하지 않고 문 안쪽으로 들어섰다.
곧바로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
미로는 평범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사람들이 대개 생각하는 미로가 위에서 내려다본 것이었다면, 카시마르는 그 안에서 헤매고 있다는 사실이 달랐다. 다행스러운 일은 카시마르가 미로에 들어서자마자 길 안내를 해줄 상대를 만났다. 상대는 말이 유난히 많은 단검이었다. 보통의 단검이었지만 날아다니면서 카시마르에게 미로의 세계에서 있었던 일을 늘어놓고 있었다.
“아주 나쁜 놈이에요! 안에 있는 친구들을 마구마구 괴롭히고 있어요. 그놈이 나타난 뒤로 상황이 아주 안 좋아졌어요. 악의 축이라니까요!”
단검의 이름은 자동투척.
카시마르는 미로 안에 생각보다 많은 능력이 잠자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동 투척은 나 혼자 자동 투척이라는 의미.
카시마르에게 큰 의미가 있는 능력은 아니지만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확실히 좋다고 할 수 있었다.
자동 투척을 따라서 악의 축이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카시마르는 움직이다가 기억도 가물가물한 능력을 하나 더 만났다. 바로 카시마르가 초창기에 얻었던 패시브 능력인 펀치와 관련된 기술이었다.
“그런데 난 예전에 일렉트로닉으로 펀치 기술을 진화시켰던 것 같은데?”
“맞습니다. 주인님. 그렇지만 저는 이곳에서 수행을 거듭해서 새로운 능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저를 데리고 미로 밖으로 나가주시면 분명히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다이너마이트라는 이름을 가진 글러브와도 동행하게 되었다. 카시마르는 움직이면서 다른 존재들과도 만났다. 그중에는 카시마르가 얻었던 능력도 있었지만 아이템들도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다. 그중에는 달리 달로스의 특별한 금속인 그로도 있었다.
카시마르가 기억하기로 그로는 이미 사라진 아이템이었다. 달로스가 카이로의 꼬리와 융합시켜서 꼬리라는 생명체로 만들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그로는 독립된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단순히 능력을 흡수하는 게 아니란 말인가?’
카시마르는 가면에 대한 의문점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목적지로 이동했다.
“저쪽이에요!”
목적지에 도착한 카시마르는 실소가 터져나왔다. 그곳에는 다양한 존재들이 모여 있었고, 중앙의 제단 위에 한 존재가 누워서 눈을 감고 있었다. 몇몇 존재들은 그에게 부채질을 했고, 몇몇 존재들은 마사지를 하면서 있었다.
중앙에서 왕 노릇을 하고 있는 존재는 바로 강숭이었다.
강철 원숭이 아베다.
카시마르는 강숭이가 왜 이곳에 들어와서 왕 노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딱!
카시마르는 눈을 감고 신선 놀음을 하고 있는 강숭이에게 다가가 꿀밤을 먹였다.
“아! 어떤 십······.”
“오랜만이다.”
“서···선생님!”
카시마르는 더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익숙한 행동으로 강숭이에게 인사를 시작했다.
카시마르의 인사는 꽤 오랫동안 진행되었다. 일방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