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
본질을 꿰뚫어 보는 눈
미로 속에 숨어 있는 능력을 찾는 것은 카시마르의 재량이라고 할 수 있었다. 원래는 꼼꼼하게 숨어 있는 능력들을 찾기 위해서 꽤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맞는 것이었다.
푸론의 말에 의하면 미로 속의 능력들은 결코 주인에게 호의적이지 않다고 했으니까. 그러나 그런 문제는 이미 해결이 된 상태였다. 강숭이가 미로 속에서 왕 노릇을 하고 있으니, 능력들은 카시마르에게 대들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왕 노릇을 하던 강숭이가 박터지듯이 두들겨 맞는 것을 봤으니 누가 카시마르에게 대들겠는가. 그들은 알아서 카시마르 주변으로 모여 들었다.
강숭이가 미로 속에서 왕 노릇을 할 수 있었던 건 천적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달로스가 그로와 카이로의 꼬리를 합성시켜서 만든 꼬리.
그런데 무슨 연유인지 꼬리는 이전과 같은 형태로 분리가 되어 있었다.
“서···선생님 저 이제 일어나도 되겠습니까?”
시원하게 두들겨 맞은 강숭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강숭이는 지금 원산폭격 자세로 카시마르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카시마르는 강숭이를 신경 쓰지 않고 모인 능력과 아이템들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미로 속 친구들은 상당히 많았다.
그중에는 카시마르가 우주적 명성을 얻은 뒤부터 어느 순간 사라졌던 능력들도 있었다.
잔상을 만들어내는 능력.
잔상 스킬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매우 유용할 수 있었다. 바람을 다루는 능력도 존재했고 각종 아이템들도 많이 있었다.
카시마르는 강숭이를 단단히 재교육한 다음 미로 속에서 빠져나왔다.
원래는 굉장히 오래 걸려야할 시간이었지만, 강숭이의 왕 노릇 덕분에 찾아다닐 필요가 없었다.
작은 신이 되면서 그가 새로 얻은 능력은 염력과 관련된 것이었다.
그것도 보통 필멸자들이 쓰는 염력이 아닌 의지대로 주변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
카시마르의 영향력이 높아지면 높아질 수록 그 힘은 강력해질 것이었다.
***
“흔하긴 하지만 강력한 능력입니다.”
카시마르의 이야기를 들은 라코이 카너가 말했다.
“그래요?”
“네. 주인님께서 얻은 능력은 단순한 염력이 아닙니다. 하위 존재들을 의지만으로도 컨트롤 할 수 있는 겁니다.”
“고위 존재들이 영향력을 내뿜는 것과는 다른 겁니까?”
“그거와는 다른 개념입니다. 영향력을 내뿜어서 공포감을 주는 것과 말 그대로 조종하는 것이니까요. 카시마르님에게 우호적인 대상에게 그 효과는 더 커질 겁니다.”
카시마르는 카너와 이야기하면서 새로 얻은 아이템들을 조종하고 있었다. 얻은 능력으로 인해 염동력을 얻었지만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일단 카시마르의 주먹에는 블랙 알라딘이 다시 착용되었고, 두 개의 뿔은 그를 호위라도 하듯이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카이로의 꼬리도 마찬가지였다. 작은 막대기 모양의 카이로의 꼬리는 두 개의 뿔과 함께 흉흉한 기세로 카시마르 주변을 날아다니는 중이었다.
거기다 달리 달로스의 금속 그로 뭉치도 작은 공 모양으로 따라디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거는 언제까지 이렇게 달고 다녀야 합니까?”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을 때까지 하셔야 합니다. 주인님께서는 특별한 전투법을 익히신 게 아니니까요.”
“특별한 전투법이라······ 마법 같은 걸 말하는 겁니까?”
“마법도 전투법에 하나입니다. 다만 고위 존재들은 독자적인 전투법을 쓰죠. 예를 들자면 저번에 말씀드린 토씬 가문을 들 수 있습니다. 토씬 가문의 일원이 쓰는 전투법은 바로 혈마법이라는 겁니다. 피를 이용한 마법이지요. 생명체의 피를 이용해 무시무시한 기술을 사용합니다. 특히 혈마법에 능통하게되 면 하위 존재들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피를 말라버리게 할 수 있을 정도라니 대단한 기술이죠.”
“그렇다면 제가 지금 연습하고 있는 이런 기술은요?”
“솔직히 말하자면 이 기술은 염력을 익힌 필멸자들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특별할 것도 없는 기본이지요. 다만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는 있습니다.”
“어떻게 달라진다는 겁니까?”
“그저 물건을 움직이는 것뿐이지만 능숙해지면 한 번에 여러 동작을 수행할 수 있지 않습니까. 다양한 아이템을 연구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일회성 아이템도 과감하게 사용하여 전투에 임한다면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고위 존재들도 이 정도는 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간단한 염력 정도는 사용할 수 있겠지만 그들은 각자의 전투 기술이 있으니까요.”
“그들은 그들의 기술을 연마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제가 익힐만한 전투 기술은 없겠습니까?”
“쉽지 않습니다. 독학도 어려운 것이고요.”
“자료도 찾기 힘듭니까?”
“예. 제일 빠르게 얻는 방법은 고위 존재에게 기술을 전수 받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건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뛰어난 전투 기술은 직계에게만 전수되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자료를 찾는다고 해도 주인님께서 만족할만큼의 위력이 나올지도 의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어려운 제약이 걸려 있는 게 많지요. 이게 제일 큽니다."
“투자한만큼 회수를 못할 수도 있다는 거로군요.”
“네. 고위 존재들이 익힌 기술들이 일종의 검증된 기술이라면 자료로 찾을 수 있는 기술들은 검증이 안 된 것들입니다. 기술된 대로 위력이 나올지도 의문이니까요. 시간 낭비만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보좌관이 생각해둔 수가 따로 있나보군요?”
카시마르가 라코이 카너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그가 알고 있는 라코이 카너라면 아무런 대책 없이 시간 낭비 운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물론입니다. 저는 카시마르님이 팀을 운영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팀?”
“네. 사냥을 업으로 삼는 자들은 팀을 만들어서 움직입니다. 혼자서 다니는 것보다는 그게 훨씬 안정적이니까요. 다양한 능력의 팀원들을 모아서 활동하는 게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군요. 하지만 단점도 명확하게 있겠고요.”
“물론입니다. 그러나 손발이 잘 맞는 팀만 있으면 영향력 차이가 나는 고위 존재들도 사냥이 가능할 테니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라코이 카너의 설명은 명료했다. 카시마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카너의 설명을 들었다.
“그래도 말씀하신 자료는 찾아보겠습니다. 그쪽도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니까요.”
“그래주세요. 그리고 제가 찾아봐달라고 했던 것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노인에 대한 것 말입니까?”
“예.”
“진전이 있습니다만 아직 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좀 더 좁혀지면 보고드리겠습니다.”
“그래주세요.”
***
이틀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카시마르는 저택에서 능력들을 점검하며 시간을 보냈다.
“선생님! 그거 진짜 아픕니다요!”
“그니까 잘 피해봐.”
“저 진짜 제가 왜 가면 속에 들어가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흑! 진짜 너무 하십니다요!”
“넌 나쁜 짓을 너무 많이 해서 이것도 싸.”
카시마르는 강숭이를 상대로 채찍질을 하고 있었다. 바로 카이로의 꼬리를 변형 시킨 채찍이었다. 이전에는 막대기 수준에서 조금 긴 봉 정도로 밖에 변형 시킬 수 없었지만 이제는 긴 채찍으로까지 변형 시킬 수 있게 된 그였다.
카이로의 꼬리의 사용법이 극에 달하면 달할수록 채찍의 길이가 길어지는 시스템이어서 카시마르는 염력과 함께 카이로의 꼬리를 다루는 연습에 시간 투자를 많이 했다. 그러면서 강숭이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다.
어쨌든 강숭이는 우주적 존재였다.
우주적 존재는 원칙적으로 계단의 세계에 들어올 수 없어야 했는데, 강숭이는 들어온 상황.
이상하다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었다.
“너 계단의 세계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
“네에! 알고 있었다고 몇 번을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요!”
“너 지금 성질 내는 거냐?”
촤악!
카시마르가 채찍 꼬리를 휘두르자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강숭이가 기겁을 하면서 몸을 웅크렸다.
“여기는 우주적 존재가 들어올 수 없는 공간이라는데 어떻게 들어왔냐?”
“저도 잘 모릅니다요! 진짜 입니다요!”
“무조건 모른다는 게 말이 돼?”
카시마르는 카이로의 꼬리를 다루는 방법을 연습한다는 핑계로 강숭이를 죽어라 괴롭히고 있었다. 강숭이에게 뒤통수를 맞을 뻔한 전적이 있기에 카시마르는 강숭이를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반복해서 강숭이를 괴롭히는 중이었다.
“안 되겠다. 이틀이나 시간을 줬는데. 그래도 모른다는 말만 나온다 이 말이지?”
“모르는 걸 어찌합니까요.”
“그럼 여기서 그만 정리하자.”
“정리? 무슨 정리말입니까요?”
“너와 나 사이에 정리할 게 뭐가 있겠냐. 이제 그만 보내주려고. 우주적 존재가 우주에 살아야지. 여기서 뭐하는 거냐.”
“선생님. 무슨 말씀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요.”
“루테스 대륙에서야 네가 쓸모가 있었지만 너도 여기는 처음이잖아. 이 세계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있어?”
“······.”
“없지? 쓸모가 없어. 그리고 네가 먹는 보석도 아깝고. 그러니까 여기서 정리 하자. 그동안 즐거웠다.”
카시마르는 염력을 이용해서 두 개의 뿔을 강숭이에게로 움직였다. 그러자 두 개의 뿔이 투창처럼 무시무시한 기세로 날아갔다.
“서···선생님! 자···잠시만요! 선생님!”
“왜?”
“말하겠습니다.”
“뭘?”
“선생님이 궁금하신 거요.”
“거짓말이지? 너 이 상황 모면하려고 그러는 거잖아.”
“아닙니다요! 설명할 수 있습니다요.”
“설명 해봐. 아니면 알지? 바로 정리 들어간다.”
“아시다시피 선생님. 제가 가지고 있던 전투 갑옷이 파괴되었지 않습니까요. 그래서 우주적 존재의 권위를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요.”
“그래서 계단의 세계에 들어올 수 있었다?”
“네. 그렇습니다요!”
“빈약해. 설득력이 너무 빈약해.”
“진짜 입니다요! 그것 밖에는 설명이 안 됩니다요!”
강숭이가 다급한 표정으로 외쳤다.
“그러면 쓸모가 없는 건 여전하네?”
“아니. 선생님. 선생님 이런 분 아니지 않습니까요.”
“나 이런 사람인데?”
“선생님. 제가 앞으로 더 잘 하겠습니다요.”
“쓸모가 없잖냐.”
“쓸모 있을 겁니다요. 진짜입니다요!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면 정말 잘 하겠습니다요.”
“아니야. 너 데리고 다니다간 귀찮은 일만 생길 거 같아. 또 뒤통수 맞으면 어쩌려고.”
“절대 그럴리 없습니다요!”
“그만 정리하자. 야. 우주적 존재 정도 되는 네가 구질구질하게 뭐하는 짓이냐 이게.”
“맞다! 맞다아아!”
“뭐가 맞어?”
“선생님! 저 쓸데가 있습니다요.”
“뭐? 허튼 수작이면······.”
“아닙니다요! 진짜 중요한 겁니다요!”
“뭔데?”
“제가 누굽니까요. 바로 달로스님의 아들 강철 원숭이 아닙니까요.”
“근데?”
“제가 전투 갑옷이 없으면 힘을 진짜 못 쓰지만 한 가지 능력만큼은 우주 제일입니다요.”
“그니까 뭐.”
“제 눈이 바로 그거 아닙니까요. 엑스레이. 각 보면 딱 나옵니다요.”
“그니까 무슨 능력.”
“본질을 꿰뚫어 보는 눈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요.”
“그게 뭐. 그걸 뭘 할 수 있는데.”
“아! 선생님! 진짜 답답하십니다요. 이 눈만 있으면 상대 약점을 그냥 파악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요! 여기서 말하는 고위 존재라고 해봤자 다 쩌리지 않습니까요. 다 보입니다요. 다.”
카시마르는 강숭이의 설명을 떠올렸다.
[본질을 꿰뚫어 보는 눈을 가진 자. 입에 담기 힘들 정도의 수많은 색으로 빛나는 존재. 그는 이곳과 저곳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넘나드는 존재의 적자이며 달리 달로스의 진정한 지배자이니 그의 앞에서는 그 어떤 추악한 존재도 실체를 드러내고야 만다.]
확실히 본질을 꿰뚫어 보는 눈을 가졌다고 되어 있긴 했다.
“그 능력 진짜 있는 거냐?”
“그렇습니다요.”
“그러면 아무나 봐도 약점이 보인다는 거지? 그럼 아까 내 보좌관의 약점이 뭐냐?”
“그 양반은 햇빛을 별로 안 좋아합니다요.”
“뱀파이어니까 당연히 그렇겠지. 장난해?”
“그···그리고 돈을 밝힙니다요.”
“상인 가문이니까. 죽을래?”
“또···또··· 사실 자세히 안 봐서 말입니다요.”
“정리······.”
“아! 아! 저 친구는 고위 존재가 되고 싶어합니다요. 내면 깊숙이 내재된 꿈이라고 해야 되나, 욕망이라고 해야 되나.”
강숭이의 말을 들은 카시마르가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방금 한 이야기는 겉만 봐서는 알 수 없는 내용이었다.
“헤헤. 맞지 않습니까요?”
“그럼 어떤 존재를 봐도 약점이 파악된다는 거지? 능력이나 이런 것도.”
“구체적으로 파악이 됩니다요. 물론, 정보가 많이 드러나지 않는 놈들도 있지만 그래도 어떤 것에 약한지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 그 정도는 알 수 있습죠.”
강숭이의 능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어떤 대상이든지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다는 것.
정보가 힘인 계단의 세계에서는 그 무엇보다도 귀한 능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실제로 카시마르는 정보 하나만 가지고 고위 괴물인 스킨 도펠을 잡지 않았던가.
카시마르는 강숭이가 충분히 쓸모가 있다고 생각했다.
“헤헤. 제가 맞춘 거 맞습니까요? 맞지요?”
“그래. 잘 맞췄다.”
“역시 그럴 줄 알았습니다요. 제가 틀릴 리가 없습니다요. 이런 건 그냥 바로 맞는 겁니다요.”
“그래. 맞는 거야. 넌 오늘 죽도록 맞아야겠다.”
“그렇죠. 맞는 거······ 네? 왜 그럽니까요?”
“오랜만에 욕이 나오는구나. 이 십이지장생 새끼야. 그런 능력이 있는데, 이제까지 한 마디도 안 하고 있었다는 거지? 너 그럼 지금까지 나 제대로 엿 먹이고 있었다는 거 아냐? 재밌었겠다? 약점이 훤히 보이는데 쩔쩔매면서 싸우는 거 보고.”
“······.”
카시마르의 말을 들은 강숭이는 사신이라도 본 것처럼 헬쓱해졌다.
“넌 진짜 글러 먹었어. 오늘 진짜 정리하자. 내가 오늘 네가 진짜 소멸이 되는지 안 되는지 확인을 해봐야겠다.”
“서···선생님! 오해십니다요.”
“오해는 무슨. 아주 뒤에서 낄낄 거리면서 좋았겠네. 좋았겠어.”
“컥! 억 선생님! 잠시만요! 꽥!”
누가 그랬던가.
고통은 절대로 익숙해지지 않는 법이라고.
강숭이는 달로스의 계약을 했을 때보다 더 심하게 구타를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