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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캐로 멱살 캐리-166화 (166/205)

# 166

전투

카시마르는 미친 듯이 날뛰는 녹색 천둥을 바라보고 있었다. 3미터 높이의 녹색 천둥은 멀찍이 떨어져 있는데도 그 기운이 느껴질 정도였다. 물론, 카시마르에게는 찌릿찌릿한 감정 뿐이었지만, 라코이 카너나 강숭이는 눈을 제대로 못뜰 정도였다.

“선생님. 저건 좀 위험해 보입니다요. 홀라당 다 타버릴 것 같습니다.”

위험한 건 사실이었다. 저 녹색 천둥은 라룬의 숨결을 특별한 재료들과 섞어서 태운 것이었다. 라룬은 고룡을 잡아먹을 정도로 강력한 상위 괴수인데 높은 고도의 하늘에서만 살기에 라룬의 숨결은 매우 희귀하게 거래되었다.

지금의 카시마르가 가진 재력으로는 구하기 힘든 물건.

그러나 리크토가 라룬의 숨결을 지니고 있었기에 카시마르는 그와 관련된 수련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널 먼저 보내는 거 아니냐.”

“네?”

“너 들어가봐.”

“선생님! 또 왜그러십니까요!”

강숭이가 엄청난 속도로 무릎을 꿇고 빌기 시작했다. 카시마르는 피식 웃으면서 라코이 카너가 들고 있는 물병을 받아서 머리 위로 뿌렸다.

라룬의 숨결을 버티기 위해서는 특수한 재료가 필요했다.

구름이 낀 산 높은 곳에서만 산다는 탁비의 피.

탁비의 피는 천둥을 견딜 수 있게 해줬다. 다만 라룬의 숨결은 보통 천둥이 아니기에 탁비의 피로도 완전히 막을 수가 없었다.

카시마르는 투명한 탁비의 피를 온몸에 뿌린 다음 녹색 천둥 안으로 들어섰다.

블러드 포그와 마찬가지로 최고의 고통을 느끼게 된다고 했지만 카시마르는 멀쩡했다.

원래 라룬의 숨결은 고위 존재들은 1회용 아이템이었다. 라룬의 숨결을 풀면 일시적으로 그 주변으로 들어오는 공격 마법을 방어할 수 있었으니까.

지금 하고 있는 수련법은 녹색 천둥으로 인해서 마법 저항력을 높여주는 것이었다.

수련을 하면 할수록 마법 저항력은 강해지지만 두 가지 큰 문제점이 있었다.

첫 번째 문제는 탁비의 피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두 번째 문제는 너무 고통스럽다는 것이었다.

특히 탁비의 피를 넉넉하게 몸에 뿌리지 않고 녹색 천둥 안에 들어가면 바로 폐인이 되거나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어떻게 보면 블러드 포그보다 훨씬 위험한 수련.

그러나 위험한만큼 효과는 확실했다.

충격에 견디는 힘을 높여주고 마법 저항력까지 강해지게 해주니까.

거기다 이 수련법은 블러드 포그처럼 단발성이 아니었다. 탁비의 피와 라룬의 숨결만 가지고 있으면 언제든지 수련을 계속할 수 있었다. 수련을 하면 할수록 방어력과 저항력이 높아지니 지금 카시마르에게는 적격인 기술이었다.

카시마르는 몇 시간 동안 라룬의 숨결로 수련을 했다. 마음 같아서는 계속 하고 싶었지만 라룬의 숨결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녹색 번개 속에 몸을 담그고 나온 카시마르는 달라진 부분이 있는 지 확인했다.

라코이 카너가 미리 준비한 방법으로 검증까지 마친 카시마르.

라룬의 숨결을 이용한 수련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효과가 확실한 걸 확인하자 흥분한 사람은 오히려 라코이 카너였다.

“이건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그래요?”

“네. 자료를 더 찾아보겠습니다.”

라코이 카너는 흥분한 모습으로 사라졌다. 카시마르는 블러드 포그를 운용하면서 염력을 연습했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였으니까.

***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카시마르는 사냥개의 들판을 돌아다니는 시간도 가졌다. 그러면서 영지도 살펴보곤 했다. 그러나 카시마르는 영지에는 큰 애정이 없었다. 그들에게 제대로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영지 관리 말입니다요.”

“그게 왜?”

“관리인에게 맡겨놓기만 해도 되겠습니까요?”

“안 될게 뭐 있어? 그쪽이 더 전문가일텐데.”

“선생님은 가끔 보면 카너 보좌관을 너무 믿는······ 컥.”

카시마르가 강숭이의 울대를 손날로 가볍게 쳤다.

“또 재미주머니가 되고 싶은가 보구나. 요새 덜 맞았지?”

“아···아닙니다요!”

“유능한 친구야.”

“유능한 건 저도 압니다요. 다만······ 중요한 순간에 배신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요.”

“너처럼?”

“아! 아! 선생님 저는 그냥 장난 한 번 한 거 아시지 않습니까?”

“그게 장난이었다고?”

카시마르가 강숭이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그러자 강숭이가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오늘은 일이 있어서 참는다.”

“하하. 감사합니다요.”

“조심하자.”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요.”

“열심히 말고 잘 하라고. 잘!”

강숭이와 카시마르는 사냥개의 들판의 지역에서 벗어난 상태였다. 원래는 라코이 카너가 따라나설 예정이었지만 희귀한 책을 구했다는 이야기에 그걸 거래하러 사라진 상태였다. 카시마르에게 필요한 자료는 대부분 태블릿 PC로 검색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 양이 워낙 방대해서 찾는데 시간이 걸렸다. 또, 찾는다고 해도 제대로 활용하려면 몇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 것이 많았다.

그래서 라코이 카너는 오래된 자료를 찾고 있었다. 사냥개의 사냥꾼의 자료실에 없는 자료.

그런 자료들은 대부분 책의 형태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아서 구하려면 직접 움직여야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카시마르와 강숭이는 라코이 카너 없이 밖에 나와 있었다.

그들이 나와 있는 이유는 바로 고위 존재의 영역 다툼을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나라 신과 지역 신의 싸움이라······ 이런 경우는 나라 신이 그냥 이길 거 같은데. 그게 아니란 말씀입니까요?”

“그래. 나라 신에게 도전한 지역 신도 아바타를 다룰 수 있는 자라고 했으니까.”

고위 존재들 중에는 영역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본격적으로 영지를 키워서 업적을 달성하려면 성가신 게 한 두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원래 무언가를 성장시킨다는 건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단순한 피조물을 성장시키는 것도 어려운데, 하나의 지역, 하나의 나라, 하나의 종족을 성장시키는 건 어떻겠는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고위 존재들이 모두 영역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들 중에서도 분명히 영역에 대한 애착이 강한 존재들은 존재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멀리 떨어져서 봐야 합니까요?”

“고위 존재들의 영역 다툼에 잘못 끼어들면 집요하게 공격을 받는다고 하더군. 이 정도가 적당해. 특별 아이템도 있으니 보는데 지장은 없을 거다.”

“그래봤자 꼬꼬마들 싸움인데.”

“우주적 존재들의 싸움은 뭐 다르냐?”

“헤헤. 다를 거 없습니다요. 가진 패 모두 까고 나서도 결말이 안 나면 별 수 있습니까요? 머리 끄댕이 잡고 바닥을 구르는 겁니다요. 전투라는 게 원래 그렇게 처절하고 드러운 맛이 있어야죠. 하하.”

처절하고 드러운 맛이라.

우주를 주무르는 우주적 존재의 이미지와는 잘 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곧 시작하려는 것 같은데? 야. 빨리 빨리 설치해라. 오늘 전투 결과로 영역의 주인이 바뀐다니까?”

“알겠습니다요!”

카시마르는 태블릿 PC로 전투 지역을 관찰하고 있었다. 라코이 카너가 미리 가서 서펙의 씨앗을 뿌려놓았기 때문에 한동안은 그 일대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지금 강숭이는 카시마르가 편하게 게임을 감상할 의자와 테이블을 옮기고 있었다.

강숭이가 의자를 다 옮기자 바로 전투가 시작되었다. 강숭이는 자연스럽게 카시마르의 어깨를 주물렀다.

고위 존재들의 싸움은 화려했다.

그들은 저마다의 전투 기술을 활용해서 전투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카시마르는 고위 존재들의 전투를 처음 보는 것이기 때문에 집중해서 감상했다.

“저쪽은 소환수를 부리는 친구 같습니다요.”

“누구? 날개 달린 쪽?”

“네.”

“아직 아무 것도 소환 안 했는데?”

“소환사에는 크게 두 종료가 있습니다. 아니, 세 종류라고 해야합니까요. 어쨌든 실제로 전투를 대신해줄 소환수를 소환해서 싸우는 소환사와 소환사에게 힘을 받아서 자신이 대신 싸우는 소환사.”

“후자라면 소환수가 굳이 모습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는 거지?”

“그렇습니다요. 다른 공간에서 힘만 보내면 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상성이 그다지 좋아보이지는 않습니다요.”

“어떤 쪽이? 소환사 쪽이 불리하다는 건가?”

“그렇습니다요. 소환사 쪽은 힘을 받아서 몰아치는 스타일로 보이는데, 상대는 마법으로 주변 공간을 장악하고 천천히 전투를 하는 스타일로 보입니다요.”

“공성과 수성의 개념인가?”

“비슷합니다요. 보통 저러면 천천히 전투를 하는 쪽이 유리합니다요. 아주 천천히 잡아먹히게 되는 것입죠.”

그러나 강숭이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버렸다. 소환사는 커다란 날개 달린 노인의 모습이었다. 백발이었던 그는 전투가 시작되자 점점 젊어졌다. 날개도 더욱 흉측하고 거대해졌다.

흉측해진 날개를 접고 상대에게 날아간 소환사는 그대로 마법을 쓰는 존재를 두동강 내버렸다.

한 번의 공격.

그 공격으로 전투는 끝이 났다.

“너 나랑 장난치냐?”

“선생님. 전투에서 절대란 말은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요.”

“그건 아는데 너무 절대적으로 예상이 빗나가는 것 같아서 말이지.”

“저게 시간을 더 끌었으면 몰랐는데, 저놈이 너무 허약했습니다요.”

“그래도 그렇지 저렇게 쉽게 전투가 끝이 나나?”

“그러게 말입니다요. 어휴. 허약한 놈! 그런데 말입니다요. 이건 확실합니다요. 저 날개 달린 놈이 조금만 시간 끌었으면 저쪽 벌레한테 말려들어서 졌을 겁니다요.”

“전혀 믿기지 않는데?”

“정말입니다요. 그런데 누가 나라 신입니까요?”

“죽은 쪽.”

“역시. 지역 신 쪽이 무언가 비장의 한 수가 있었나 봅니다요. 그러니까 나라 신에게 싸움을 건 거 아니겠습니까요?”

“싸움을 건 쪽은 나라 신 쪽인데?”

“······.”

“그렇습니까요?”

“어째 신뢰가 점점 없어지는 느낌이다.”

“느낌입니다요.”

“너 네가 말한 그런 능력 없는 거 아냐?”

“아닙니다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요?”

카시마르와 강숭이는 전투 감상을 마치고 돌아왔다. 딱히 큰 감흥이 있는 건 아니었다.

순식간에 전투가 끝났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전투가 끝이났군요.”

“원래 그런 식으로 진행 됩니까?”

“다 그런 건 아닙니다. 리미엄이라는 존재가 좀 특이한 경우라서 그렇습니다. 보통 고위 존재들은 공격보다는 방어에 치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목숨을 잃는 것보다는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생이 여럿인 존재라도 생은 소중한 것이니까요.”

“도망칠 여력은 항상 둔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도망이라도 쳐야 다음 기회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고위 존재들의 싸움은 그렇게까지 악착같지 않습니다. 전투가 아니라 학살이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그런 전투에서 상대를 소멸시키는 건 드문일이죠.”

“여지를 준다는 겁니까?”

“네. 항복할 여지를 주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도망칠 여지라도 줍니다. 나라 신 정도가 되면 특별한 케이스가 아니면 여기 저기 얽혀 있는 게 많습니다. 상대를 소멸시킨다는 건 그들과의 관계도 악화 된다는 뜻이니까요. 아시겠지만 적이 많은 존재는 살아남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리미엄은 그런 성향이 아닌가 보군요.”

“네. 전투만 봐도 그렇습니다. 방어적인 성향이 아니지요. 공격. 그것도 상대를 한 방에 없애 버릴만큼의 치명적인 공격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강한 존재지요. 하지만 그가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할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오늘 전투처럼 1대1 상황에서는 그자가 강한 모습을 보이겠지만 어디 전투가 그렇게만 찾아오겠습니까.”

“흠······.”

카너의 설명을 들은 카시마르가 턱 끝을 쓰다듬었다.

계단의 세계로 넘어와서 느낀 거지만 고위 존재들의 삶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고단했다.

필멸자에서 필멸자를 벗어난 존재가 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지만, 고위 존재에서 더 위의 존재가 되는 일은 더 어려운 일이었다.

대부분의 존재들이 고위 존재의 삶을 유지하지 못해서 소멸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현재의 위치를 유지하는 것도 벅찬 세계.

계단의 세계란 바로 그런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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