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8
여행자 사냥꾼
“얄팍한 수로!”
오이디푸스가 잘린 팔을 부여잡고 고함쳤다. 낮은 존재들은 고함을 정면으로 마주한 것만으로도 기절할 정도의 기운이었다. 그러나 카시마르는 멀쩡했다. 그리고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이미 아까 전부터 블러드 포그를 주변에다 뿌려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블러드 포그의 농도가 짙어지면 짙어질수록 오이디푸스는 발목을 잡히게 될 것이었다.
쾅! 쾅! 쾅!
한쪽 팔을 잃었지만 오이디푸스의 힘은 여전했다. 여전히 카시마르를 압도하면서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카시마르는 흥분한 오이디푸스의 패턴을 너무 쉽게 읽고 있었다.
카시마르의 공격 패턴은 다양해보이지만 실제는 매우 단조로웠다.
두 개의 뿔로 인한 공격.
두 개의 뿔이 가지고 있는 스킬은 직접적인 공격보다는 살상력이 떨어진다고 되어 있었다.
카시마르는 정말 급한 상황이 아니면 모험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공격 패턴의 마무리는 항상 두 개의 뿔로 인한 공격이었다.
지금 다양한 조합으로 나오는 것들은 실제로 두 개의 뿔로 공격을 성공시키기 위한 포석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러나 오이디푸스는 카시마르의 이런 의도를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카시마르의 공격을 최대한 막아내거나 피하려고 애썼다.
강화된 신체의 팔을 잘라버릴 정도면 가볍게 볼 수 없는 공격력이었으니까.
휘익!
오이디푸스가 몰아치는 공격을 뚫고 카시마르에게 접근했다. 그러나 카시마르는 바람의 힘을 이용하여 손쉽게 거리를 벌려버렸다.
잔기술.
고위 존재에게는 카시마르의 기술들이 잔기술로 비춰질 것이었다.
그러나 잔기술도 이렇게 다채롭게 있으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지금 카시마르가 그걸 보여주는 중이었다.
오이디푸스는 약하지 않았다.
지역 신 등급이라고는 하지만 나라 신들도 대결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오이디푸스의 신체 강화술은 극에 달한 상태였으니까.
다만 상성이 좋지 않았다.
카시마르는 힘으로 받지 않고 부드럽게 오이디푸스를 갉아먹는 중이었다.
선수 시절부터 즐겨 쓰던 나이트메어 스타일.
판정도 없고 시간도 넉넉했다.
그리고 비장의 수도 있었다. 그러니 마음대로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휭!
잔상이 오이디푸스 얼굴을 발로 걷어차려고 했지만 곧바로 사라졌다. 오이디푸스가 살짝 팔을 휘두르는 것을 버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런 타격을 줄 수 없는 기술.
블랙 알라딘의 검은 번개도 오이디푸스에게는 전혀 타격을 주지 못했다.
바람의 힘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직접 타격에도 큰 데미지를 받지 않았다. 무멘의 세례를 받은 카시마르의 힘은 대형 몬스터보다 강력한 수준.
맨손으로 바위를 간단하게 부술 수 있었다.
그런데 오이디푸스는 그런 것도 가뿐하게 버텼다. 그런데 다가 두 개의 뿔의 공격을 받고도 약해지는 모습이 없었다.
‘전용 무기를 다 들고 있을 때는 어떤 모습일까?’
오이디푸스가 신체 강화술을 익혔다고 해서 무기를 사용하지 말란 법은 없었다.
신체 강화술을 더 극대화 시켜줄 무기를 분명히 지니고 있을 터였다.
문제는 지금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이곳에서 살아나갈 수 없다는 것.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죽을 거라는 예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수없이 많은 여행자들을 죽였지만 단 한 번도 그들이 위협적이었던 적은 없었으니까. 오히려 다른 부분에서 문제가 생기곤 했다.
쿵! 쿵! 파악!
둘의 공방은 상당히 오랫동안 진행되었다. 과정으로만 보자면 오이디푸스가 일방적으로 공격하고, 카시마르가 그 공격을 방어하면서 틈을 노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 수록 오이디푸스의 호흡이 짧아지고 있었다.
카시마르의 호흡 속에서 흘러나온 블러드 포그가 주변을 점저 잠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카시마르는 호흡이 길지 않았다.
블러드 포그의 치명적인 페널티.
그렇지만 그 짧은 호흡이 치명적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원래부터 체력이 막강한 수준이었기에 페널티가 있어도 감내할 수 있었다.
오이디푸스는 블러드 포그에 어느 정도 노출된 뒤에야 무언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이상함을 깨달았을 때 그는 극심한 어지러움을 느꼈다. 그것뿐인가. 오한이라도 난 사람처럼 몸이 부들부들 떨렸고, 코에서는 피가 줄줄 새어나오고 있었다.
눈은 붉게 충혈되었고 호흡은 전력 질주를 몇 번이라도 한 사람처럼 가파르게 변했다.
푸흡!
오이디푸스가 입에서 피를 토했다. 자료에 따르면 블러드 포그는 중독된 것 같은 현상을 일으키지만 엄밀히 따지면 독이 아니기에 해독제는 없다고 했다.
유일한 해독이라면 블러드 포그가 포진된 곳에서 빨리 벗어나는 것.
마법을 익힌 고위 존재라면 여러 방법으로 블러드 포그를 몰아내려고 할 것이었다.
그러나 아이템도 하나 없고 신체 강화술만 익힌 오이디푸스에게 블러드 포그를 몰아낼 힘은 없었다.
쾅! 쾅! 쾅!
발악이라도 하듯이 오이디푸스가 힘을 마구 쏟아내기 시작했다. 카시마르는 잔상과, 바람의 힘, 그리고 그로를 적절히 변형시켜서 공격을 막아냈다.
그러나 오이디푸스의 저력은 단순히 기를 방출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기를 마구잡이로 방출하면서도 카시마르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퍽!
어렵게 카시마르에게 접근한 오이디푸스였지만 카이로의 꼬리에 막혔다.
오이디푸스는 아까보다 더 나빠진 모습으로 숨을 헐떡였다.
“독? 독을 믿고 있었던 건가? 도무지 그런 냄새는 없었는데······.”
“블러드 포그란 기술이요.”
“블러드 포그? 그런 기술도 있었나?”
“혈마법으로 분류된 것이지.”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이렇게 빠르게······.”
오이디푸스는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휘익!
카시마르가 깔끔하게 목을 베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카이로의 꼬리를 채찍으로 변형시킨 카시마르는 뿔의 손잡이를 휘감아서 휘둘렀다. 그러자 오이디푸스의 목이 부드럽고 빠르게 베어졌다.
오이디푸스의 공격 패턴을 모두 경험한 이상 더 시간을 끌 필요가 없었다.
강력한 존재였지만 카시마르의 다채롭고 탄탄한 방어를 뚫을 수가 없었던 오이디푸스.
그는 허무하게 소멸 되었다.
카시마르는 오이디푸스의 머리를 서류 가방에다 넣었다. 그리고는 뿔의 움직임을 바라보았다.
뿔은 카시마르가 움직이지 않았는데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다.
허공을 한 바퀴 선회한 두 개의 뿔은 하나의 뿔로 합쳐지더니 오이디푸스의 쓰러진 시신으로 향했다.
심장을 찌른 뿔.
오이디푸스의 시신이 끈적한 액체로 흐르기 시작했다.
마치 인간의 육신으로 만든 꿀과 같은 형태였다.
액체는 기괴한 색으로 뒤섞이다 마지막에는 텅 빈 우주 같은 모양새로 변했다.
점성이 있는 건 여전했다.
바닥에 흐르던 기괴한 액체는 점점 뿔에게 흡수되었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흡수를 마친 뿔은 이전보다 약간 슬림해진 형태로 변했다. 단순히 크기만 줄어든 건 아니었다.
뿔이 하나가 더 생겼기 때문이었다.
두 개의 뿔에서 세 개의 뿔로 변한 뿔.
카시마르는 뿔이 다시 한 번 진화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능력이 이전보다 크게 나아진 건 아니었지만 그 개수가 하나 늘어났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큰 전력 상승이었다.
카시마르의 염동력은 점점 강력해지고 있었으니까.
[우주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여행자 사냥꾼을 홀로 사냥하는 것에 성공하였습니다. 최초의 업적이 추가됩니다.]
카시마르가 작은 신보다 높은 위치에 있었더라면 최초의 업적이 발동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계단의 세계에서는 위치, 즉 격이라는 게 그만큼 중요한 부분이었으니까.
[우주적 보상이 주어집니다. 우주적 존재의 기운이 담긴 능력이거나 아이템입니다. 아래 중 하나를 선택하여 주십시오.]
1. 아데르마델로티마의 술
2. 부운의 축복
카시마르는 이번에도 태블릿 PC로 검색을 했다. 아데르마델로티마는 계단의 세계에서도 알려진 바가 없는 존재였다. 아데르마델로티마의 술이 어떤 아이템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부운의 축복은 알 수 있었다.
부운은 중립적인 우주적 존재였다. 우주적 존재 중에서도 가장 가벼운 존재로 여겨졌는데 그 이유는 그가 아무 존재한테나 선물을 주기 때문이었다.
부운이 선물을 안기는 것에는 기준이 없었다. 기분 내키는 대로 축복이나 선물을 안겨 주지만 그리 좋은 것을 주지는 않는다고 되어 있었다.
그래서 카시마르는 아데르마델로티마의 술을 선택했다.
[아데르마델로티마의 술을 선택하였습니다.]
[아데르마델로티마는 그림자의 세계를 지배하는 우주적 존재입니다. 아데르마델로티마의 힘이 담긴 술을 허공에 뿌리면 잠시 동안 아데르마델로티마를 닮은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 당신의 명령을 따릅니다.]
아데르마델로티마의 술은 평범한 술병에 담겨 있었다. 카시마르는 염력으로 술을 허공에다 뿌려보았다.
그러자 술이 커다란 그림자로 변했다. 그림자는 아프리카 코끼리를 압도할만큼 컸지만 모양새는 쥐와 흡사했다. 다만 등에 고슴도치처럼 가시가 돋아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예사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위압감이 있었다.
카시마르는 다른 메시지도 확인했다.
[여행자 사냥꾼 연계 업적을 달성하십시오. 사냥꾼 하나를 사냥할 때마다 최초의 업적이 주어집니다. 모든 여행자 사냥꾼을 사냥하면 위대한 최초의 업적이 주어집니다.]
위대한 최초의 업적은 자료에도 나와 있지 않은 내용이었다. 위대한 업적이나 최초의 업적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보상이 있는 게 분명했다.
[여행자 사냥꾼의 수배서가 주어집니다.]
카시마르는 여행자 사냥꾼의 수배서를 허공에다 펼쳐서 확인했다.
인원은 모두 71명.
그들의 간단한 인상착의와 자료가 나와 있었다. 대부분이 지역 신 이상의 존재들이었고, 그들 중에는 대륙 신 즉 종족 하나를 지배하는 신으로 분류되는 자들도 있었다.
카시마르는 시스템에서 이런 호의를 베푸는 이유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들은 질서를 어지럽힌 자였다.
계단의 세계는 아우터 갓과 엘더 갓의 내기로 인해 만들어진 세계였고, 엄연히 룰이라는 게 있었다.
그 룰이라는 건 최소한의 것들이라 시스템에서 크게 개입할 순 없었다.
즉, 초보 여행자들을 여행자 사냥꾼들이 사냥을 하고 다닌다고 해서 시스템에서 그들을 처단하거나 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였다. 대신에 그들을 처단하는 자들에게 보상을 줄 수는 있었다.
직접적인 개입은 하지 못하지만 간접적인 지원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곳.
카시마르는 이 세계의 시스템을 점점 더 깊게 이해하고 있었다.
“쉽지는 않겠어.”
수배서를 제대로 읽어보니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71명 중 대부분이 카시마르가 미처 파악하지 못하는 지역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다가 최고로 낮은 격의 존재가 지역 신이었다. 카시마르는 사냥할 대상을 잘 선택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음?”
수배서를 살펴보던 카시마르가 반응을 보였다. 눈에 익은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의 눈길을 붙잡은 그림은 인간의 모습을 한 여인이었다.
이스메네라고 되어 있는 여인.
오이디푸스의 딸.
카시마르가 모르는 여인이었지만 이상한 기분이었다.
무언가 빠트린 것 같은 기분.
그러다 카시마르는 여인의 정체를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바로 밖에서 오이디푸스의 시신을 기다리고 있는 프리스티 아메이가 이스메네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