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9
추적(1)
“나침반이 작동이 되지 않는다면서 갑작스럽게 공격을 하였습니다.”
“다친 덴 없습니까?”
“다행히 보호 아이템을 많이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절 얕보고 약한 공격을 시도한 게 다행인 것 같습니다. 시간을 벌 수 있었거든요.”
그 다음은 전투가 이어졌다. 카너는 라코이 가문의 후계자나 다름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무수히 많은 호위대가 실시간으로 대기 중이었다. 라코이 카너의 보호 아이템들이 박살난 것을 알아차린 호위대는 곧바로 카너가 있는 쪽으로 이동했고 프리스티 아메이와 전투를 벌였다.
라코이 가문의 호위대들이 아무리 강하다고는 하지만 프리스티 아메이를 넘볼 정도는 아니었다. 그들 중 뛰어난 자가 겨우 필멸자를 막 벗어난 영웅. 초월의 길에 들어선 자였으니까.
그러나 그들은 막강한 아이템과 팀웍으로 무장한 단체였다.
혼자서 프리스티 아메이를 상대할 정도의 힘이 있는 자라면 애초에 라코이 가문의 호위대를 맡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그 정도면 충분히 고위 존재에 속했으니까.
“괜찮으신 겁니까? 나침반은요? 나침반은 함정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제가··· 주인을 죽일 뻔 했습니다.”
라코이 카너의 얼굴은 아까부터 말이 아니었다. 원래 창백한 그의 얼굴은 냉동 창고에라도 들어가 있었던 것처럼 질려버린 상태였다. 눈은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았다.
“다행히 나침반을 사용하지 않고 그를 죽일 수 있었습니다. 블러드 포그의 효과가 상당하더군요. 밀폐된 공간에서는 아주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제가 멍청해서 속았던 것 같습니다. 그 나침반은 아마도 오이디푸스의 힘을 더 강력하게 해주는 거던가, 아니면 시전자를 오히려 공격하는 함정이었을 겁니다.”
라코이 카너는 상당히 흥분한 상태였다. 카시마르도 꽤 충격을 받은 상태였지만 라코이 카너만큼은 아니었다. 침착하게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 어딨습니까?”
“도망쳤습니다. 호위대가 나름 그녀를 압박했지만 잡을 순 없었습니다.”
“상처를 입었습니까?”
“예. 호위대가 여섯 이나 당했습니다만 그리 큰 상처는 입히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라코이 카너를 호위하는 호위대는 상당한 고급 인력이었다. 비록 낮은 격의 존재들이었지만, 전투의 프로들이었기에 라코이 카너 입장에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죄송할 건 없습니다. 오이디푸스와 관련된 자들이 생각보다 치밀했다는 뜻이니까요. 프리스티 아메이. 그녀는 이스메네라는 여인입니다. 오이디푸스의 딸이죠.”
카시마르가 라코이 카너에게 수배서를 보여주면서 말했다. 라코이 카너는 수배서를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뜨내기가 아니었습니다. 꽤 오랫동안 중립 활동을 했고 여행자를 공격했다거나······.”
“그것 자체가 가짜 신분이었을 겁니다. 직접 여행자를 죽이지 않고 오이디푸스를 도와주기만 했을 수도 있고요. 보니까 여행자를 직접 죽인 경우는 별로 없네요.”
“하긴 아메이 정도면 상당한 고위 존재이니 굳이 리스크가 큰 여행자 사냥을 할 이유가 없었을 겁니다.”
카시마르는 안에서 벌어진 상황에 대해서 차분하게 설명했다. 라코이 카너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계속 죄송하다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는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자칫하면 카시마르는 그대로 소멸을 당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라코이 카너는 이번 일을 굉장히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들을 사냥할 때마다 최초의 업적을 얻을 수 있으면 상당한 일입니다. 우주적 존재의 힘과 아이템은 돈 주고도 구하지 못하는 귀한 것들이니까요.”
“생각보다 빠르게 지역 신을 벗어날 수 있겠지요. 카너 보좌관.”
“예. 저를 내치셔도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고. 아메이의 힘은 어느 정도입니까? 라코이 가문의 병력으로도 잡기 힘듭니까?”
“그 정도는 아닙니다. 고위 존재답게 강하긴 했지만 상처를 입었을 정도니까요. 아마 지금쯤 어디 숨어서 상처를 회복하려고 할 겁니다.”
“그럼 당장 가문의 병력을 지원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거야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왜?”
“파탄의 눈을 써먹어야죠.”
“파탄의 눈은 주변에 있는 고위 존재를 다 드러내게 합니다. 그러나 그 존재들 중에서 누가 누구인지 선별하는 건······.”
“나침반이 있지 않습니까.”
카시마르가 나침반을 들어보이며 말했다. 그러자 라코이 카너가 반색했다.
“그렇군요! 그녀가 준 나침반의 흔적을 분석해서 추적하면 되겠습니다.”
“더불어서 이게 어떤 물건인지도 알아보면 좋겠죠.”
라코이 카너는 나침반을 들고 바로 어딘가로 사라졌다. 카시마르는 일단 저택으로 복귀하기로 했다.
“선생님은 그를 믿으십니까요?”
“그 질문 저번에도 들은 것 같다. 왜? 의심스럽냐?”
“제일 먼저 의심해야될 인물 같습니다요. 그가 선생님을 함정에 빠트리려고 했다면 모든 게 잘 맞아 떨어지지 않습니까요.”
“정황만 따지면 그가 제일 의심스럽지. 그런데 그가 날 함정에 빠트려서 이득 볼 게 뭐가 있지?”
“그건 뭐······.”
“나를 통해서 가문의 염원을 이루려는 자야. 그런 자가 나를 함정에 빠트려서 뭘 얻으려고?”
“엄청난 빅딜이 있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요. 프리스티 아메인가 하는 계집에게······.”
딱!
카시마르가 강숭이의 머리를 카이로의 꼬리로 가격했다. 목탁 두들기는 것 같은 경쾌한 소리가 나면서 강숭이가 몸부림쳤다.
“이···씨···.”
“응? 지금 내가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아···아닙니다요. 이거 숨소리입니다요. 숨소리.”
“숨소리가 거친데? 진단 좀 받아야겠는데?”
“아닙니다요. 선생님. 아니 근데 진짜로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요.”
“네 친구 좌팔계 말대로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근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그게 말이 안 돼. 작정하고 날 물 먹일 생각이었으면 굳이 저런 복잡한 방법을 썼을까? 내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있는 자인데?”
“그···그럴 수도 있겠습니다요. 하지만 완전 범죄를 위한 것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요. 방금 같은 트랩이면 선생님이 어찌 된다고 해도 그가 받을 의심은 줄어듭니다요.”
“그건 잘 모르겠다. 사냥개의 사냥꾼에에 대한 자료를 보니까 그리 논리적인 단체가 아니더라고. 힘의 논리가 우선하는 곳이야. 사냥개의 사냥꾼은 그런 변명을 받아주지 않을 거야.”
“선생님은 다른 자들을 너무 믿으시는 것 같습니다요.”
“내 주변에서 제일 음숭한 놈이 너다. 너부터 쳐내야지.”
“저는 언제까지나 선생님의 숭이숭이입니다요.”
“대답은 언제나 그러지. 근데 좌팔계랑 오른우는 요새 어떻게 지내나?”
“좌팔계는 뭐 거기서 계속 그러고 있겠지요. 그놈은 사기 치는 거 말고는 특별한 게 없으니까요.”
“좌팔계도 우주적 존재라고 하지 않았냐?”
“개나 소나 우주적 존재 아닙니까요. 솔직히 같은 그레이트 올드 원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좌팔계와 비교하면 섭섭합니다요. 그놈은 그냥 명예직이라고 하면 좋겠습니다요. 일단은 주변에서 지켜주는 놈이 많으니까 말입니다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건가?”
“어찌보면 그렇게 보시는 게 낫겠습니다요.”
“그럼 오른우는?”
“그 소새끼는 좌팔계랑은 좀 다릅니다요. 인정하긴 싫지만 실력이 있습니다요. 저한테서 도망치려고 게이트에 틀어박혀 있었지만 사실 거기에서 숨어 있기에는 지나치게 실력이 좋습니다요.”
“실력이 좋다는 건 세다는 거지?”
“그렇습니다요. 따르는 동생들도 많고 웬만한 엘더 갓, 아우터 갓들도 쉽게 못 들이대는 녀석이니 말입니다요.”
강숭이의 말을 들은 카시마르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면접장에서 강숭이에게 두들겨 맞는 모습이 아직도 선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강했다고?”
“그렇습니다요.”
“계약서의 힘이 대단하긴 하구나. 면접장에서 두들겨 맞는 모습만 봐서 약한 줄 알았더니.”
“선생님. 실망입니다. 설마 계약서 때문에 오른우가 저한테 두들겨 맞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야?”
“계약의 힘도 있지만 원래 오른우는 저한테 안 됩니다요. 그리고 오른우는 달로스님의 직계도 아니어서 말입니다요. 계약의 엄청나게 받는 건 아닙니다요.”
“그럼 그건가? 저번에 이야기 들으니까. 네가 우주적 존재 앞에서는 힘이 강해진다며. 그거 때문에 그런 건가?”
“그 이야기 어디서 들으셨습니까요?”
“왜?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냐?”
“그게 아닙니다요. 그거 헛소문이어서 그렇습니다요.”
“헛소문?”
“네. 그렇습니다요.”
“그럼 네가 우주적 존재들한테 특별하게 강하다는 게 사실이 아니라고?”
“아니 그건 맞습니다요.”
“그럼 뭐야. 나랑 말 장난하냐?”
카시마르가 몸을 일으키면서 말했다. 카시마르는 넓적한 블링크 도그의 등위에 누워 있었고, 강숭이는 그 옆에 딸린 부유석에 앉아 있었다.
“아이. 선생님. 말 장난이 아닙니다요.”
“그럼 뭔데.”
“제가 강해지는 게 아닙니다요. 상대가 약해지는 겁니다요. 그게 그거긴 합니다만 말입니다요. 헤헷.”
강숭이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웃었지만 간단히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
강숭이가 강해지는 게 아니라 상대가 약해지는 거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지는 거기 때문이었다.
“그거 상당히 다른 이야기 같은데?”
“뭐, 같은 이야기입니다요. 어쨌든 그놈들이 제 앞에서 힘을 못 쓰는 건 마찬가지니까 말입니다요. 그래서 그놈들이 제 앞에 안 나타나지 않습니까요. 하하핫!”
강숭이 말대로라면 공포스럽긴 할 거였다. 우주에서 가장 격이 높은 존재들이 강숭이 앞에만 서면 힘이 약해진다면, 그만큼 치욕스러운 것도 없을테니까.
본래의 힘을 다 사용해서 지는 것과 본래의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서 지는 건 느낌이 완전히 다르지 않는가.
카시마르는 왜 우주적 존재들이 강숭이를 기피 하는지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한다기 보다는 더러워서 피한다는 느낌이랄까.
“왜 이렇게 많아?”
저택에 도착하니 호위대들이 우글거렸다. 다양한 생김새의 존재들이었지만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이 근방에서는 인간이나 유사 인간들이 상당히 희귀한 축에 속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카시마르님. 저는 카시마르님을 호위를 맡은 피서입니다.”
카시마르에게 다가온 자는 용의 얼굴에 말의 몸을 지닌 사내였다. 수염을 길게 늘어트린 얼굴은 동양의 신화 속에서나 볼법한 용의 모습 그대로였다. 다리는 4개에 사람처럼 팔이 있었는데 팔에는 용의 비늘이 돋아 있었다.
“선생님. 마신용수신 일족인 것 같습니다요.”
강숭이가 카시마르의 옆으로 다가와 귓속말을 건넸다.
“그런 종족도 있냐?”
“네. 그냥 말 대가리에 아니지. 용 대가리에 말몸을 가지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요.”
“카너 보좌관은 어디 갔습니까?”
“카너님은 나침반을 때문에 잠시 자리를 비웠습니다. 곧 도착하실 겁니다. 그분이 돌아오시면 바로 프리스티 아메이를 추격할 겁니다.”
“이 인원이 가는 겁니까? 아까 카너 보좌관 옆에 있던 자들은 보이질 않는군요.”
카시마르는 눈썰미가 좋은 편이었다. 그에게는 여기 있는 존재들이 다 특이해보였지만, 그럼에도 분명히 구분은 할 수 있었다.
“예. 그들은 복귀해서 쉬고 있습니다. 사냥은 여기 있는 인원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예.”
카시마르는 아까보다 인원이 적어보였기에 의뭉스러운 점이 들었지만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라코이 카너가 그런 부분에서 허술하게 준비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 보좌관이 제대로 열이 받았나 봅니다요.”
집무실에 들어오자마자 강숭이가 말을 꺼냈다.
“왜?”
“마신용수신은 작은 신으로 태어나는 존재입니다요. 제대로 성장하면 신이 될 수도 있습죠. 어떤 지역에서는 용보다 훨씬 귀한 존재로 대접 받습니다요.”
“그런 자가 라코이 가문에 있다는 게 신기하네. 작은 신이라면 나와 같은 격이잖아.”
“그래봤자 말이라서 말입니다요. 우주의 법칙으로 보면 저런 종족의 친구들이 가장 어정쩡합니다요. 적당한 힘을 쥐고 태어났지만 그걸로 무엇을 해야할지 모른단 말입니다요. 무작정 위를 향하기에는 위가 얼마나 까마득한지 알아버렸으니 말이지요.”
“고위의 존재가 되는 게 어렵다는 말을 하는 거냐?”
“그렇습니다요.”
“근데 넌 이쪽 세계의 일을 어떻게 그리 잘 아냐?”
“이쪽 세계는 우주 전역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세계입니다요. 작은 우주였던 곳이 지금처럼 확장된 곳이지요. 그러니 제가 모를 리가 없잖습니까요.”
“아닌데. 네가 다른 종족에게 그리 많은 관심을 보인다고? 솔직히 말 안 할래?”
“진짜입니다요. 선생님은 가끔 저를 너무 띄엄띄엄 보십니다요. 너무 하십니다요.”
“살풀이 한 번 할래?”
카시마르는 강숭이의 천연덕스러운 연기에도 넘어가질 않았다. 그러자 능청스러운 연기를 하던 강숭이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카시마르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예전에 살짝 일이 있었습니다요.”
“무슨 일? 아. 알겠다. 너 저 종족 건드렸지. 그렇지?”
“건드리지 않았습니다요. 그냥 살짝 겁만 준다는 게 잘못돼서······.”
“잘못되어서?”
“작은 별 하나를······.”
“그렇지? 네가 기억하고 있을 정도면 꽤 큰 사건이라는 이야기라니까.”
카시마르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카이로의 꼬리를 집어들었다. 카이로의 꼬리만큼 강숭이를 두들겨 패기에 적합한 물건은 없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