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주캐로 멱살 캐리-173화 (173/205)

# 173

또 다른 제안

수스의 유리병으로 몇 번의 수련을 마친 유중악은 접속을 해제했다. 계단 세계에서의 생활은 당분간은 순조로울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라브시안 쪽은 결코 순조로운 상황이 아니었다.

보통 카시마르보다 먼저 접속을 해제하고 나오는 오정룡이 오늘 따라 두 시간이나 늦게 나왔다.

“공격 시작된 거야?”

유중악이 물었다.

“그래. 이번에는 유저들이 먼저 들어왔다.”

“제국 쪽이 아니고?”

“어. 계획을 바꾼 건지 무슨 생각이 있는 건지 모르겠는데 대형 길드들이 먼저 들어왔어. 아무리 부활한다고 해도 죽으면 페널티가 있는데 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모르겠다.”

“무슨 딜이 있었겠지. 그래서 많이 당했어?”

“아냐. 우리도 놀고만 있었던 건 아니니까. 꽤 잘 막고 있다. 근데 이제 시작이니까.”

“맥주 마시고 좀 쉬어.”

“넌 어떠냐? 아직도 그대로야? 그 강숭이 그놈 실력 없는 거 아냐?”

“그건 아닐 걸?”

“그럼 딴 생각 품고 있는 건가?”

“감시하는 눈이 많아서 그런 것도 아냐. 다만 이스메네가 생각보다 질긴 거겠지. 계단 세계에서 그 정도 위치까지 오를 정도면 보통 독해서는 안 되는 거니까. 아무튼 이쪽은 일주일 째 제자리야. 나는 계속 수련을 하고 있는 중이고.”

“수련은 잘 돼?”

“오늘 새로운 수련법 들어갔어. 효과는 상당히 좋은 것 같아. 더 해봐야 확실하게 알 수 있겠지만.”

“그래. 너라도 좀 잘 풀려라. 여기는 앞이 깜깜하다.”

유중악과 오정룡은 늘 그렇듯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하루를 마무리 했다.

***

최근 카시마르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평소보다 일찍 접속을 해제했다. 다양한 수련법을 검토하고 있는 그였지만 매일 수련이 있는 건 아니었다. 수련법에 나와 있는 재료를 구하는 것에는 그만큼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었다.

긍정적인 부분은 라코이 가문에서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하여 카시마르는 빠르게 강해지고 있었다.

비록, 고위 존재들이 보면 비웃을 정도의 잔기술이라고 해도 그게 카시마르에게 장착되면 무시하지 못할 힘이 될 것이었다.

하루의 대부분을 저택에서 수련을 하며 보냈다. 가끔 저택 밖을 돌아다니기도 했고, 강숭이에게 진행 사항을 보고 받기도 했다.

시간은 넉넉했지만 딱히 할 일은 없는 카시마르였다.

그래서 카시마르는 수련이 없는 날이거나, 일찍 끝나는 날이면 접속을 빠르게 해제하고 다른 일을 했다.

못했던 운동을 하거나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물론, 접속을 해제하고나서 가장 많이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바로 실시간 스트리밍 방송을 보는 것이었다.

핏불킹과 연결된 방송.

공개 방송이 아니기 때문에 카시마르만 볼 수 있는 방송이었다. 그는 그 방송으로 라브시안 지역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상황은 많이 좋지 않았다.

눈치 볼 게 없어진 제국의 침략은 이전보다 훨씬 강력했다. 유저들로 라브시안 연합의 힘을 빼놓은 다음 본격적으로 전투 마법사들과 불꽃 기사들이 투입되었다.

그 뒤부터는 라브시안 연합이 점점 밀리는 모습이었다.

“고생했어.”

유중악이 접속을 해제하고 나온 오정룡에게 맥주를 건네면서 말했다. 오정룡은 상당히 피곤한 기색이었다.

꿀꺽!

맥주를 시원하게 원샷한 오정룡은 맥주를 한 잔 더 잔에다 따랐다.

“힘들어 보이던데.”

“보고 있었냐?”

“나야 요새 크게 할 일 없으니까.”

“말도 마. 조금 쉬었다가 다시 들어가 봐야 돼. 내가 버프 줄 때랑 주지 않을 때랑 전투력에서 차이가 나니까.”

핏불킹은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클래스의 유저였다. 그러나 대규모 전투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유용했다. 그의 광역 버프는 보통 서포터들 보다 많게는 수십 배까지 범위가 넓었으니까.

오정룡은 저녁을 먹고 다시 게임에 접속했다. 유중악은 오정룡의 게임 화면을 진지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

10일.

연합과 제국의 전투가 10일째를 맞이했다. 두 진영은 10일 동안 서로에게 꽤 많은 피해를 입혔다. 초반 3일은 연합이 큰 성과를 올렸지만 그 뒤부터는 계속 제국이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라브시안 연합과 제국의 싸움은 치열했다. 라브시안 연합은 요새를 필사적으로 지켰고, 제국은 요새를 공략하기 위해 총공세를 펼쳤다. 둘 다 전략은 하나였다.

요새.

이 싸움의 성패는 라브시안 연합이 구축한 요새를 지키느냐, 빼앗느냐에 달려 있었다.

[야! 컨신 너무 앞서가지 말라고!]

핏불킹이 귓속말로 소리쳤다. 그러나 컨신은 앞서 나온 불꽃 기사 둘과 싸우는 중이었다. 세 명과 붙은 상황이었는데 컨신은 이미 불꽃 기사 한 명을 죽였다.

그동안 꾸준히 성장해온 컨신은 불꽃 기사 몇 명쯤은 가볍게 상대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컨신이 이런 전투력을 뽐내면서 성과를 올리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치고 빠지는 게 적절해야 했다. 컨신은 클래스로 따지자면 암살자였고, 암살자는 빠르고 정확하게 상대를 암살하고 빠져나와야 되는 클래스였다.

전사처럼 앞선에서 꾸준히 전투를 지속하는 클래스가 아니라는 소리였다.

처음 합은 괜찮았다. 컨신은 전투 시작하자마자 스킬을 쏟아부어서 불꽃 기사 하나의 목을 쳐냈으니까.

그리고 거기서 무사히 빠져나왔으면 큰 성과였다.

근데 문제는 거기서 빠져나오지 않고 다른 불꽃 기사들까지 노렸다는 것이었다.

이제부터는 그의 행동이 성과가 아니라 실수로 바뀌고 있었다.

컨신은 주요 인물이었고, 그가 한 번 죽을 때마다 연합 쪽에는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연합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앞으로 치고 나간 컨신을 보조할 수밖에 없었다.

흔히들 게이머들이 많이 쓰는 표현이 있다.

빨려 들어간다는 말.

지금 상황이 딱 그랬다. 컨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같이 들어간 연합원들은 금세 제국 쪽 병력에게 포위 당해버렸다.

“오른쪽이 완전히 뚫렸어요.”

“컨신 이 새끼 이탈하지 말라니까.”

“애초에 컨신은 버티기가 어려운 클래스잖아요.”

골낳괴가 흥분한 핏불킹을 달랬다. 컨신 무리가 싸잡혀서 죽은 뒤로 전황은 더 라브시안 연합 쪽에 안 좋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전에는 요새 앞에 있는 숲에서 제국을 막아내던 연합이 이제는 요새 바로 코 앞에서 방어를 하고 있었다.

그 말은 그만큼 밀리고 있다는 뜻.

라브시안 연합은 상당히 잘 싸우고 있었다. 그렇지만 잘 싸우는 것도 병력차이가 있는 상황에서는 한계가 있는 법.

전투가 시작된 지 10일이 넘어가자 연합은 슬슬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연합의 요새는 크게 세 가지 길로 통했다.

왼쪽, 오른쪽, 중앙.

입구는 중앙에 하나였지만 주요 전장은 세 곳이었다. 그중 하나만 무너져도 연합에게는 위험했다.

연합은 그 길목 세 군데에 구조물을 미로처럼 설치해서 제국의 적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다. 지상은 구조물을 이용해 방어하고 공중으로 오는 적들은 대응팀을 따로 두어서 방어했다.

“핏불 형. 이거 상의를 해봐야할 거 같은데요.”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다. 얼마나 버틸 거 같냐?”

“저쪽 밀렸으니··· 하루나 버틸까요.”

“라브시안 쪽에 준비 중인 건?”

“얼마나 걸리냐고요?”

“그래.”

“며칠은 더 걸리겠죠.”

연합은 요새에만 매달리지 않았다. 1차적으로 요새가 뚫리지 않게 필사적으로 지켜야하는 것은 맞았지만, 그것만 가지고 전쟁을 하기에는 제국의 위세가 너무 거셌다.

그래서 이들은 라브시안 도시 쪽에서 공성전을 할 것까지 예상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늘 그렇듯이 이런 상황에서 부족한 건 시간이었다.

라브시안은 요새처럼 방어에 적합한 지역이 아니었고 그렇기에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다.

“일단 저쪽에 라브시안 전사들 투입해서 버텨보자.”

“그들로 될까요?”

“해봐야지.”

상황은 점점 안 좋아지고 있었다.

***

카시마르는 강숭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스메네를 잡아와서심문한지 꽤 시간이 지났지만 이제까지 큰 성과는 없던 상태였다.

“그래서 정보 알아낸 거냐?”

“그건 아닙니다요.”

“그럼 왜 불렀어?”

“여행자 사냥꾼들 위치는 알아내지 못했지만 다른 이야기 있습니다요.”

“위치 알아내는 게 제일 중요한 건데?”

“그 정보는 금제가 걸려 있는 것 같습니다요. 그 정보와 관련된 것들을 물어보면 아예 꿀 먹은 벙어리가 됩니다요. 그게 그냥 입을 다무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보다 보니 반응이 좀 부자연스럽습니다요.”

“부자연스럽다고?”

“그렇습니다요.”

“그럼 그 정보는 못 얻는 건가?”

“그렇다고 봐야 합니다요. 하지만 시간을 더 주신다면 애써 보겠습니다요.”

“그래서 다른 이야기라는 게 뭔데?”

“그 노인이 쓰던 기술 있지 않습니까요?”

“신체 강화술 말입니까?”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라코이 카너가 말했다.

“그걸 익힐 수 있는 책을 주겠답니다요.”

강숭이의 말을 들은 카시마르는 라코이 카너를 바라봤다. 라코이 카너는 이미 흥분한 표정이었다.

“최고 등급의 전투 기술은 아니지만 굉장한 가치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전투 기술은 쉽게 구할 수도 없는 거고요.”

“그게 제게 가치가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오이디푸스가 신체 강화술만으로 그 정도 힘을 발휘하지 않았습니까.”

카시마르는 오이디푸스와의 전투를 잠시 떠올렸다. 강력한 전투 기술이긴 했지만 꼭 필요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물론, 그것도 익혀두면 나쁠 건 없었다. 신체를 강화한다는 건 그만큼 죽음에서 멀어진다는 걸 의미하니까.

“강숭이 네 생각은 어때?”

카시마르가 물었다.

“전 생각이 좀 다릅니다요.”

“그니까 뭐가 다른데.”

“전 좀 더 시간을 주셨으면 합니다요. 금제가 있으면 그 금제가 어떤 것인지 알아봤으면 합니다요. 어차피 선생님이 급할 건 없으시지 않습니까요.”

“그렇긴 하지.”

카시마르는 급할 게 없었다. 보통 외부에서 계단의 세계로 넘어온 자들은 끝없는 초조함에 시달렸다.

그건 바로 끊임없이 생존을 시험 받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카시마르는 달랐다.

사냥개의 사냥꾼이라는 고위 존재들의 조직에 소속되어 있기에 생존이 위협받는 일은 없었다. 그러니 여유가 있었다.

“일단 그런 기술을 공짜로 알려주지는 않을 겁니다요. 아마 살려달라고 하지 않겠습니까요? 저쪽도 바보가 아니니 그걸 확신할 수 있는 무언가를 요구할겁니다요. 계약을 하자고 할 수도 있고 말입니다요.”

이번에는 카시마르가 카너를 바라보았다.

“맞는 의견입니다. 지금 그녀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생존이니 그와 관련된 것을 요구할 겁니다.”

“우주적 존재의 능력이나 아이템보다 그 전투 기술이 가치가 있겠습니까?”

“그건 아닙니다.”

“그러면 의미가 없군요. 강숭아.”

“네. 선생님.”

“필요 없다고 전해라. 그리고 좀 더 강하게 해. 어디 잘려나간다고 해도 살아만 있으면 괜찮으니까.”

“선생님. 이미 잘랐습니다요.”

“뭘?”

“발목 하나랑 팔 하나 썰었습니다요. 근데 그렇게 잔악한 일을 벌였던 여인인데 눈 하나 깜짝하겠습니까요? 그건 심리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예열 작업이었습니다요. 원래 심문이라는 게 그런 고도의 머리 싸움 아니겠습니까요.”

“죽은 건 아니냐?”

“제가 누굽니까요. 껍데기를 홀랑 벗겨도 심장은 팔딱팔딱 뛰게 만들어 놓는 기술자 아닙니까요. 고문 일이번 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런 걸 의심하십니까요.”

“자랑이다.”

“헉! 전 빨리가서 다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요.”

강숭이는 구타의 기운이 느껴졌는지 얼른 자리를 피했다.

“잘 지켜보고 있습니까?”

카시마르가 카너에게 물었다.

“예. 전문가들도 그의 솜씨를 인정하더군요.”

“그럼 다행입니다. 오늘은 일정이 어떻게 됩니까?”

“오늘은 딱히 없습니다.”

“그렇군요. 그러면 전 명상을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라코이 카너는 방에서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때 나갔던 강숭이가 다시 들어왔다.

“선생님.”

“왜?”

“잠깐 가보셔야겠습니다요.”

“뭔데?”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합니다요.”

카시마르는 이스메네가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상당 기간 고문을 당한 이스메네의 모습은 처참했다. 그러나 카시마르는 이스메네를 조금도 측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원하는 정보는 내주고 싶어도 내줄 수 없다.”

이스메네가 말했다.

“······.”

카시마르는 침묵했다. 다만 이스메네를 매서운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대신에 다른 걸 주겠다.”

“신체 강화기술은 딱히 필요 없어.”

“꽤 구하기 힘든 책이야. 수련을 거듭하면 거듭할 수록 강해질 수 있다. 하긴······ 그를 혼자서 처리할 정도면 필요가 없을 수도 있겠군. 퉤!”

이스메네가 입안 가득 고인 핏덩이를 뱉어냈다.

“그래서 원하는 건 살려달라는 건가?”

“그렇다.”

“아쉽게도 그럴 마음은 들지 않는군. 여행자 사냥꾼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면 널 살려줄 마음은 없다.”

카시마르는 주저하지 않고 뒤로 돌아섰다. 그때 이스메네가 돌아서는 카시마르를 향해 무언가 말했다. 그러자 카시마르가 다시 뒤돌아섰다.

얻을 게 없다고 생각했던 이스메네에게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제안이 제시되었기 때문이었다.

카시마르가 돌아서자 피투성이의 이스메네가 웃었다.

자신이 던진 화살이 제대로 적중했다는 생각에서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