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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캐로 멱살 캐리-175화 (175/205)

# 175

이탈

루테스 대륙에서 있을 때의 카시마르는 강하긴 했지만 공략이 불가능한 상대는 아니었다.

그러나 계단의 세계에서 염력을 비롯해 각종 전투 기술을 터득해온 카시마르는 공략이 불가능할 정도로 강력해져 있었다.

특히 세 개의 뿔은 그 자체로도 강력한 무기였는데, 그게 어검술 과 같이 빠른 속도로 주변을 헤집고 다녔다.

카시마르가 익힌 염동력은 보통의 것보다 위력이 강했고, 덕택에 세 개의 뿔은 눈에 잘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주변을 휘젓고 있었다. 별다른 기술은 없었다.

단지 세 개의 뿔이 교차되면서 적들을 도륙하고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돌아왔냐?]

핏불킹이 귓속말로 물었다.

[잘.]

[농담하지 말고.]

[지금 그런 거 설명할 때야? 일단 거기부터 막아야 할 거 같은데.]

[그래. 일단 상황부터 종료시키고 이야기하자.]

카시마르가 가볍게 주변에 있는 적들을 처리하고 나서야 제국의 주요 인물들이 움직였다.

“카시마르다!”

제국 쪽에 붙은 유저 중 하나가 소리쳤다. 그러자 제국 쪽 유저들이 카시마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조금 있으면 저놈 쪽으로 병력이 많이 빠질 겁니다. 우리는 그때 치고 나가야죠.”

“화력이 될까요? 지금 다 지쳤어요.. 한 30분이라도 쉬면서 회복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지금 서포터 포지션 친구들도 다 지쳐서 이 이상 오버페이스하면 무리가 생겨요. 어차피 카시마르 님이라면······.”

“그때와 지금은 달라. 예전에는 유저가 없었지만 지금은 유저가 있다고. 아무리 저놈이라고 해도 금방 공략 당할 수 있어요. 그러니 지원해줘야 합니다. 저놈이 살아야 우리도 살 수 있는 거고요. 저놈 잡혀버리면 시간 잠깐 끈 거 밖에 안 됩니다.”

“그렇다 해도 지금 당장 밀고 들어갈 여력이 없어요. 10분이라도 시간을 벌어야 해요.”

메디아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그래서 핏불킹은 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나섰다.

“제가 불씨 쓸게요.”

올리가 말했다. 그는 선두에서 전투를 치른 다음 잠시 뒤쪽으로 빠져서 쉬는 중이었다.

올리는 크투그하의 불씨라는 대단한 스킬을 가지고 있는 유저였다. 주변에 거대한 불을 내뱉어 어마어마한 데미지를 주는 스킬. 과거 자크르 챔피언쉽에서도 나온 적 있는 스킬이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불씨라면 충분히 카시마르를 지원할 수 있었다. 다만 크투그하의 불씨는 페널티가 너무 컸다. 큰 손해를 감수하고 써야 하는 기술이기 때문에 누구도 선뜻 나서서 그에게 불씨를 쓰라고 말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손해는 알아서들 메꿔주시겠죠.”

“물론이에요.”

“당연하지.”

올리는 주저하지 않고 선두에서서 크투그하의 불씨를 사용했다. 어마어마한 불길이 전방에 있던 적들을 덮쳤다. 크투그하의 불씨가 무시무시한 건 범위안에 적이 얼마만큼 있든지 같은 데미지를 준다는 것이었다.

올리의 불길이 전방의 적들을 덮쳤다. 적들은 요새 입구를 점령하고 밀고 들어오려고 필사적으로 전진하고 있었기 때문에 불길에 더 많이 휩쓸릴 수 있었다.

물론, 올리의 이런 공격은 일시적인 효과밖에 주지 못했다. 제국 쪽 병력은 지금 밀고 들어오는 적들이 주된 병력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급하다고 지금 눈앞에 있는 적들에게 이런 큰 기술을 쓰는 건 어떻게 보면 자충수를 둔 다는 느낌이 들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자충수가 아니었다.

좀 손해를 보더라도 카시마르를 지원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급선무였다.

카시마르가 없을 때는 요새 입구와 구조물들이 있는 곳 되찾는다고 하더라도 의미가 없었다. 금방 다시 빼앗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카시마르가 한 쪽에서 버텨준다면 구조물들을 지킬 여력이 생기는 것이었다.

거대한 불꽃이 전장을 한 번 휩쓸었고 연합 쪽 인사들이 앞으로 치고 나왔다.

그때 유저들은 카시마르 쪽을 우르르 몰려가고 있었다.

휘익!

제국 쪽 유저들의 행동은 재빨랐다. 그들은 카시마르에 대한 정보가 어느 정도 있었기 때문에 공략법도 알았다. 그렇지만 그걸 카시마르가 모를 리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대체 저건 무슨 기술이야? 염동력?”

그들이 알기로 카시마르는 근접 유저였다. 정확히 따지자면 근접 딜러 포지션.

그러나 웬만한 전사보다도 생명력과 방어력이 높았다. 잔 스킬은 없지만 강력한 한 방 스킬을 보유하고 있어서 자크르로는 잡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게 카시마르에 대한 정설.

그러나 지금 카시마르는 근접캐가 아니라 원거리 딜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미사일 날아갑니다. 다들 비키세요.”

골낳괴와 같은 기계종족 딜러 유저의 말이었다. 그들은 유저들 사이에서 꽤 유명했다. 5명의 파티가 모두 다 기계종족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급한 상황에서는 다섯 명이 합체를 하여 강력한 기술을 날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지금 날아가는 작살 모양의 미사일도 그랬다. 평범한 작살처럼보이지만 적중되는 순간 폭발을 일으키면서 1차 피해를 주고, 상대를 묶어버릴 수 있었다. 그 묶는 힘은 대형 기계 수준으로 강력했기 때문에 저기에 걸리면 아무리 힘이 강한 카시마르라도 속수무책으로 묶일 수 있었다.

그래서 카시마르는 바람을 소환해서 주변을 감쌌다. 그리고 카이로의 꼬리로 요새 근처에 있는 구조물을 휘감았다. 카이로의 꼬리는 염동력으로 사용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반드시 카시마르가 직접 잡고 휘둘러야했다.

그 이유는 카이로의 꼬리를 채찍 형태로 변형시키려면 손으로 직접 동작을 취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주변에 피어오른 소용돌이 덕택에 작살 모양의 미사일은 타겟을 제대로 지정하지 못했다.

카시마르는 그 틈을 타서 얼른 원래 있던 자리에서 벗어나 지상으로 내려왔다.

화르륵!

세 개의 뿔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카시마르의 손에 들어왔다. 이전보다 더 흉흉한 생김새를 자랑하고 있는 뿔이었다.

휭! 휘잉! 휭!

주변에 있는 적들을 향해 재빠르게 공격이 들어갔다. 그러면서 불꽃이 피어올라 전염되듯이 주변으로 퍼졌다. 제국 쪽 서포터들이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불길이 붙은 자들에게 회복 마법을 걸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뿔이 소환하는 불길은 이전보다 더 강력해진 모습이었다.

“씨발! 카시마르 없다고 했잖아!”

이쯤 되자 유저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이 라브시안 지역 분쟁에 끼어든 이유는 하나였다. 쉽게 레벨업을 하고 쉽게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제국과 연합의 싸움.

누가봐도 제국이 유리한 상황이었으니까.

그런데 카시마르의 등장으로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만약, 카시마르가 계단의 세계로 넘어가지 않았다면 유저들이 이렇게 많이 모이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지금 코즈믹 게이트 내에서 카시마르의 위치는 그러했다. 전쟁을 억제할 정도로 힘이 있는 것이었다.

카시마르가 짧은 시간 동안 보여준 무위는 대단했다.

세 개의 뿔이 휘젓고 다니면서 다양한 스킬을 뿌려댔다. 카시마르는 멀찍이 떨어져서 그로와 카이로의 꼬리로 공격을 피했고, 가끔 그 틈을 파고드는 적들을 특유의 체술로 가볍게 농락했다.

파칵!

가까스로 접근한 도끼 전사였지만 카시마르는 스킬을 가볍게 피하고 울대를 손날로 가격했다. 그 다음 바짝 붙어서 도끼를 휘두르지 못하게 한 다음 후속타를 가격했다.

그러나 상대도 생명력이 상당한 사내였다. 거기다 데미지를 입으면 움직임이 더 좋아지는 스킬까지도 지니고 있었다. 아이돌 같은 곱상한 얼굴에 턱수염만 길게 늘어트린 도끼 전사는 중얼거리면서 필사적으로 카시마르를 공격했다.

카시마르는 그를 모르지만 그는 꽤 유명한 유저였다. 단순한 스킬 조합으로 랭킹에까지 들어선 유저 샤샤.

단순한 스킬 위주로 쓰는데도 랭킹에 까지 들었다는 이야기는 그가 여러모로 저력이 있는 유저라는 의미였다.

실제로 그랬다.

카시마르의 공격을 여러 번 맞고 뒤로 물러났어도 더 빠르고 강력한 모습으로 다시 달려들었다.

카시마르의 공격은 가볍지 않았다.

특히 한 번 승기를 잡으면 상대를 죽여놓는 게 카시마르의 스타일이었다.

그런데도 불사신처럼 다시 일어나서 카시마르에게 덤볐다.

“아이씨! 대체 왜 안 맞냐고!”

휘리릭! 쾅!

분을 못 이긴 것처럼 들고 있던 도끼를 던진 샤샤.

카시마르는 더킹을 하듯이 상체를 숙여서 도끼를 피해버렸다.

그러나 도끼는 카시마르를 지나치지 않고 그대로 아래로 떨어져서  등을 찍어버렸다.

“잡았다! 잡았다고!”

샤샤는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그의 도끼가 카시마르의 등에 들어가긴 했지만 잡았다고는 할 수 없는 상황.

데미지도 그리 크지 않았다. 이상한 생각이 든 카시마르였지만 곧바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샤샤의 도끼는 공격 용도가 아니었다.

바로 주변으로 동료들을 부르기 위한 용도였다. 샤샤와 카시마르 주변으로 거대한 얼음 기둥이 솟아올랐고, 그 안으로 샤샤의 동료들이 들어왔다.

스무 명이 넘는 인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샤샤의 측근들만 이 기둥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게 아니었으면 카시마르는 꼼짝없이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좁은 공간에서 집단 공격을 당한다면 아무리 카시마르라도 속수무책이었다.

[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당한 거냐?]

핏불킹이 얼른 물었다. 연합원들은 구조물들을 점거하면서 앞으로 치고나오는 중이었다.

그러던 도중에 카시마르가 커다란 얼음 기둥 안에 갇혀버린 상태가 되니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괜찮아. 빨리 나갈게.]

[너 안에 있는 놈 정리해야 나올 수 있는 거 아냐?]

[그런듯.]

[네 무기 지금 밖에서 계속 움직이는 중이야. 근데 적중률이 떨어진다.]

[어쩔 수 없지. 일단 나가볼게.]

[조심해라. 저거 건드려봤는데 쉽게 부서질만한 게 아냐.]

뿔과 카시마르는 한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사이에 기둥이 있다고 해도 움직이는데는 지장이 없었다. 다만 카시마르의 시야가 차단되니 뿔이 이전처럼 효율적으로 적들을 도륙하지는 못할 것이었다.

[그쪽이나 잘 버텨봐. 금방 나갈테니.]

얼음 기둥 안으로 들어온 유저들은 만만한 상대들이 아니었다. 거기다 카시마르는 주무기인 뿔도 없는 상태여서 상당히 위험하게 보였다. 그러나 카시마르는 계단의 세계에서 얻은 능력들이 있었다.

마법사 유저가 카시마르의 동작을 느리게 만들었고, 그 뒤에 근접 유저들이 달려들었다.

카시마르는 카이로의 꼬리를 봉의 형태로 만들어서 그들의 공격을 막으면서 그로를 적절하게 사용했다.

그러면서 블러드포그를 운용했다.

블러드포그는 계단 세계의 존재인 오이디푸스마저도 버티지 못한 치명적인 공격.

넓은 지역에서는 효과적이지 않았지만 지금처럼 막힌 상황에서는 그 어떤 것보다도 무서운 무기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카시마르는 크게 서두르지 않았다. 굳이 공격을 하려 하지 않고 방어에 치중했다.

카시마르가 방어에 치중하자 샤샤 쪽 유저들은 더 신이나서 공격을 퍼부었다. 카시마르가 지원을 기다리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의 맹렬한 공격은 몇 분도 지나지 않아서 진화되기 시작했다.

오이디푸스처럼 고통에 몸부림치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대신에 줄어드는 생명력을 발견한 것이었다.

블러드포그는 상대를 한 방에 암살하는 기술은 아니었지만 꾸준히 큰 데미지를 줄 수 있었다.

아무리 강인한 전사도 블러드포그의 영향력 아래에서는 금방 생명력이 바닥이 보일 정도.

얼음 기둥 안쪽에 붉은 안개가 피어올랐다.

파각!

카시마르는 비틀거리면서 도끼를 휘두르는 샤샤의 공격을 피해버리고 반격을 가했다.

카이로의 꼬리가 샤샤의 백회혈 부근을 정확히 가격했다. 투구가 부서지고 머리가 움푹들어갈 정도로 강력한 일격.

샤샤가 쓰러지자 얼음 기둥은 분수대의 물줄기가 꺼지듯이 녹아내렸다.

얼음 기둥이 완전히 사라졌다.

카시마르는 멀쩡히 서서 걸어나오고 있었고, 그의 주변에는 유저들의 시체가 널부러져 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제국 쪽 인사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뉘였다. 제국인들은 카시마르를 더 공격하려고 했다. 그러나 유저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제국에 대한 충성심으로 이 자리에 온 게 아니었다.

누구도 예상 못했던 상황.

제국 쪽 유저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더니 몰래 하나둘씩 전장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카시마르가 귀환하고 30분 만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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