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6
사냥 준비
유저들의 이탈은 전장의 분위기를 바꿔놓았다.
처음에는 눈치를 보면서 빠져나가던 유저들이 얼마 지나지 않자 대놓고 전장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유저들이 빠져나가자 제국군들은 급격하게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전투는 연합의 승리.
연합은 다시 요새를 장악했고 제국군은 엄청난 손실을 잃고 후퇴했다. 그들이 2시간 정도 되는 시간 동안 입은 손해는 지난 10일 동안 입은 피해보다 많았다.
물론, 카시마르의 활약 덕분이었다.
카시마르는 이전보다 활동량이 줄어든 상태였다. 블러드포그를 익히면 호흡이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걸 메꿔줄만한 서포터들이 연합에는 아직 많이 있었다.
그들은 핏불킹의 지시대로 카시마르에게 버프를 몰아주었고, 버프를 몰아받은 카시마르는 무시무시한 힘으로 제국인들을 도륙했다.
사기가 떨어진 병사들을 일으켜 세우려면 강력한 바람이 필요한 법이다.
그러나 그런 바람을 일으켜줄 인물이 제국에는 없었다.
불꽃 기사들이 대거 포진되어 있긴 하지만 그들에게 카시마르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전의 원정대들이 어떤 죽음을 맞이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넘어온 거에요?”
슭곰발이 물었다. 전투는 끝이난 상황이었다. 연합원들 중 대부분이 도망가는 적들을 추격해서 섬멸하고 있었다. 카시마르는 그들의 뒤를 더 쫓지 않았다.
시간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신체 강화술을 익히면 외부 게이트를 이용해 바깥 세계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외부 게이트는 출구와 입구가 같았다. 그 말은 외부 게이트로 나온 자는 반드시 들어왔던 게이트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
근데 한 번 열린 외부 게이트는 몇 시간이 지나면 다시 닫히는 게 문제였다.
오이디푸스가 바깥 세계에서 바로 계단의 세계로 넘어가지 못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였다.
그가 마지막으로 열었던 외부 게이트는 이미 함정이 깔려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넘어온 여행자들을 도륙한 곳이었으니까.
이러한 이유로 카시마르에게는 긴 시간이 없었다. 물론,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서 있어도 상관 없지만, 그건 카시마르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
이제 카시마르에게 평범한 유저들이 하는 레벨업은 의미가 없었다. 계단의 세계 들어간 순간 시스템의 영향이 최소한으로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제국에 있어봤자 큰 의미가 없는 상황.
목표를 이뤘으면 빠르게 돌아가는 게 중요했다. 카시마르는 짤막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이스메네에 대한 이야기는 연합원들이 이미 알고 있는 상황이어서 설명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냥 놓아줬다니 아쉽네요.”
“덕분에 나올 수 있는 방법을 알았으니 다행이지.”
“아무튼 적절한 타이밍에 넘어왔다. 너 아니었으면 여기 그냥 밀렸을 거다.”
요새를 방어하는 건 큰 문제가 없을 터였다. 카시마르가 있다는 게 알려졌으니 제국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테니까.
상황이 정리되자 카시마르는 재빨리 넘어왔던 게이트로 다시 돌아갔다.
더 있으면 게이트가 닫히고 게이트가 닫히면 다른 방법으로 계단의 세계에 들어가야 했다.
오이디푸스가 사람들을 모아놓고 새로운 게이트를 팔려고 했던 방식을 차용해야할 수 있었다.
정식으로 계단의 세계로 넘어가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페널티가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카시마르는 빠르게 되돌아갔다.
왔던 것처럼 되돌아가는 일도 순식간이었다.
연합 사람들은 신기루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이었다. 허탈한 마음까지 들 정도였지만 핏불킹의 지휘 아래 그들은 빠르게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결과적으로 제국의 공격은 연합의 덩치를 불려주는 모양새가 되었다. 유저들이 더 적극적으로 연합에 참가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연합은 무작정 유저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제 칼자루는 그들이 쥔 셈이었으니까.
그러는 사이 A랭크 유저들이 늘어나고 A랭크 유저들 중에서 만렙을 찍은 유저들이 양산되기 시작했다.
A랭크 유저들이 나타나고 꽤 시일이 지났으니 상당히 시간이 오래 걸린 셈이었다.
“역시 루테스 대륙이 튜토리얼인 셈이었네.”
유중악과 오정룡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둘은 블루마운틴에 먼저 와 있는 상태였다. 며칠 있으면 연합 사람들이 블루마운틴으로 오기로 되어 있었다. 유중악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렇지.”
“그러면 A랭크 만렙을 찍고 그 뒤에 보이지 않는 경험치를 더 쌓으면 랭크 없음 상태로 넘어간다는 거지?”
“그런 것 같아. 너도 중간에 상태창 없어졌다면서.”
오정룡이 의자에 앉으면서 물었다.
“그랬지. 근데 나는 A랭크 만렙까지 올린 게 아니라서 말이야. A랭크 끝나고 가호를 받는 줄 알았으면 A랭크까지 올렸겠지.”
코즈믹 게이트 유저들은 A랭크 최고 레벨에 도달하고 특정한 조건을 달성하면 다시 한번 가호를 받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는 카시마르와 비슷한 상태가 되어서 스탯 창을 볼 수 없게 된다. 계단 세계 진입을 준비하게 되는 것이었다.
“거기서 나오는 가호에 대해서는 정보를 아무리 구하려고 해도 구할 수가 없더라.”
“특별한 거니까 숨기는 거 아니겠어?”
“문제는 그거 달성해도 계단 세계로 넘어가는 길을 열어주거나 하는 건 아니래.”
“가는 길은 알아서 찾으라 그건가?”
“그런 거지. 그걸 찾는 과정에서 무언가 얻는 게 있을 수도 있고.”
“그러고 보니 카니발 쪽에서 준비하던 거 실행 안 한 게 다행이네. 그냥 했으면 손해 볼 뻔했잖아.”
“어차피 바로 시행할 생각도 없었잖아.”
“그래도 재수 없었으면 가호 못 받고 들어갈 뻔 했다. 생각해보니까그래. 솔직히 계단 세계 난이도가 너무 높긴 했어. 너처럼 초반에 뭔가 받고 들어가는 거 아니라면 가호라도 하나 센 거 받아야지.”
“어차피 안에 들어간다고 해도 스킬 못 쓰는 거 아니니까 생각보다 난이도가 높지는 않다고 봐.”
“그래?”
“응. 나는 가면 때문에 스킬을 못 쓰는 상황이니 더 답답하지. 근데 유틸 적인 스킬 있는 유저들끼리 모여 들어가면 또 모를 걸. 계단 세계가 난이도가 높다는 건 죽으면 그걸로 끝이라는 거 때문에 그렇지. 다시 밖으로 나오게 되면 거기서 얻었던 것들을 다 잃을 수도 있으니까.”
“잃지 않을 수도 있지. 아직 게이트 유저 중에 죽어본 사람이 없으니까.”
“그야 그런데. 페널티가 꽤 클 것 같긴 해. 형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냐?”
“맞아. 근데 말이다. 넘어가는 정보 그거 팔아먹을 수 있지 않을까?”
“뭘 팔아 먹는다는 이야기야?”
“정보. 계단 세계로 넘어가는 정보. 그거 쉽게 구할 수 있는 거 아니라는 거 알잖냐.”
“꽤 위험한 곳이라는 게 퍼져서 급하게 넘어갈 사람도 없을 걸?”
“준비 철저하게 하고 가는 부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류도 있는 거야.”
“그걸 살 사람이나 있겠어?”
“있지. 일단 계단 쪽 정보는 우리가 독점하다시피 해서 말이야. 물론, 요새는 배경 설명 같은 게 꽤 많이 흘러나오긴 했지만.”
“그거야 원래 코게에서 풀어놓은 정보들이니까. 언젠가는 다 알게 되겠지.”
“그러니까 정보를 풀자는 거야. 계단 세계로 넘어가는 정보도 좀 팔고, 생존 팁도 좀 곁들여서. 그걸 가지고 마지막 가호에 대한 정보를 빼내자는 거지. 어때? 괜찮을 거 같냐?”
“괜찮네. 지금으로서는 마지막 가호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으니까. 지금까지 몇 명 나왔다고?”
“셋. 곧 더 나오겠지. 근데 네가 가져다준 정보 넘겨도 괜찮은 거냐?”
“내가 넘겨준 건데 뭔 상관이야. 형이 적당히 알아서 조율할 거잖아.”
“그렇기야 하다만.”
오정룡은 정말 중요한 정보는 연합원들에게도 넘기지 않고 있었다. 계단 세계로 넘어간 뒤에 연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계단의 세계로 넘어간다는 건 그만큼 많은 변화를 의미했다.
가령, 고통을 이용한 전투 기술을 습득해서 빠르게 강해질 수 있다는 것 같은 정보는 상당한 고급 정보였다. 그렇기에 오정룡은 그런 정보는 알려주지 않았다.
대신에 계단의 세계 전반의 세계관이나 게이트 이용법, 사냥개의 사냥꾼에 관련된 정보는 연합원에게 공개했다. 그러한 부분들은 그리 큰 비밀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아침 식사 후 간단하게 티타임을 가진 유중악과 오정룡은 코즈믹 게이트에 접속하러 움직였다. 요새 유중악은 큰 일이 없으면 코즈믹 게이트에 오래 접속하고 있지 않았다.
루테스 대륙에 있을 때처럼 굳이 사냥 노가다를 하지 않아도 되는 세계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부분은 유중악에겐 좋은 일이었다. 유중악은 은퇴한 뒤에도 현역 시절과 다름 없을 정도로 많은 운동을 했다. 그러나 코즈믹 게이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뒤부터는 그 운동량이 현저히 줄었다.
새벽 운동과 자기전에 하는 운동을 거르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그로서는 그게 불만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유중악은 코즈믹 게이트 접속 시간을 줄이고 그 시간에 운동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가족들과도 더 시간을 보내면서.
최근 유중악은 티타임을 가지고 2시간 정도 운동을 더 한 뒤 점심을 먹고나서야 게임에 접속했다.
그러나 오늘은 예외로 티타임을 가지자마자 바로 접속했다.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
“내일 이스메네와 맺은 계약이 끝납니다. 사냥팀을 최대한 준비했지만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이스메네 혼자라면 카시마르와 사냥팀 만으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동료와 함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다행스럽게도 파탄의 눈은 이스메네와 이스메네의 주변에 있는 고위 존재까지 탐색을 해주니 어느 정도 대응은 할 수 있을 터였다.
“100퍼센트 확신할 수 있는 전투는 없죠. 괜찮습니다. 그동안 충분히 고생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근데 사냥팀은 피서 대장을 주축으로 한 팀이겠지요?”
“네. 이번에는 그보다 인원이 더 많습니다. 주인님과 소통하는 건 피서가 할 테지만 그가 리더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팀장급들 인사를 모아놓은 거라서요.”
카너는 라코이 가문에서 최고들만 섭외하여 사냥팀을 구성했다.
결자해지하는 마음이랄까.
카너는 이스메네와 관련된 일만큼은 자신이 확실하게 매듭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면 든든합니다. 여차하면 빠져나올 플랜도 만들어두었지 않습니까. 그러니 괜찮을 겁니다.”
“아닙니다. 이스메네는 완벽히 잡아야 합니다. 동료가 있다면 그들도 확실히 잡아야겠지요. 그래서 가문 내부에서 이야기를 계속 했습니다.”
“뭘 더 준비한 겁니까?”
“지금 준비하려고 합니다. 가장 좋은 건 사냥꾼 쪽에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지만 그쪽에서는 이런 일에 끼어들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끼어든다고 해봤자 많은 걸 요구하겠죠.”
“그렇겠죠.”
“그래서 리크토를 섭외하는 건 어떠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리크토요?”
“네. 스킨 도펠의 눈을 넘겨줄 때 빚을 갚겠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그가 빚을 이런 식으로 갚을지는 의문입니다. 그는 위험한 일은 잘 안 하는 존재 아닙니까.”
“그렇지요.”
리크토는 유명한 존재였지만 잘 나서거나 하는 존재는 아니었다. 이전에도 언급했다시피 그의 생존 전략 중 하나는 명분을 주지 않는 것이기도 했으니까.
워낙 그를 혐오스러워하는 존재들이 많아서 리크토는 작은 명분 하나에도 바로 공격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리크토는 본인의 거처에서 잘 나오지도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동족 사냥을 한다는 혐오스러운 시선만 거둬놓고 본다면 리크토는 사냥팀의 그 누구보다도 든든한 존재였다.
아바타를 부릴 수 있을 정도로 고위 존재로 성장한 그였기 때문이었다.
같은 나라 신 등급인 이스메네가 아바타를 다루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는 상당한 힘을 지니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거기다 동족 사냥을 하면서 최초의 업적이나 위대한 업적을 달성했을 가능성도 있으니 희귀한 능력이나 희귀한 아이템을 많이 가지고 있을 것이였다. 그것도 우주적 존재의 힘이 담긴.
“그를 합류시킬 방법이라도 있는 겁니까?”
“가문의 창고를 열었습니다.”
“그의 관심을 끌만한 물건이 있나 보군요.”
“사실······ 저희 가문에서 스킨 도펠의 눈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런가요?”
“별로 놀라지 않으시군요.”
“철저하게 거래로 이루어진 관계인 리크토를 언급할 정도라면 그 정도 미끼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군요. 리크토는 스킨 도펠의 눈에 대한 냄새는 귀신 같이 맡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가문의 창고에 들어간 걸 그가 맡을 수는 없지요. 그리고 창고에 있는 스킨 도펠의 눈은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입수한 것들입니다. 그러니 그가 단서를 찾지 못한 것이지요. 단서를 찾지 못했으니 저희 가문에게는 보유하고 있냐고 질문도 하지 않았습니다. 관심 밖의 일이었던 것이죠.”
“그래서 그 귀한 걸 풀겠다는 겁니까?”
“딱히 귀한 물건은 아닙니다. 가문의 은인에게는 충분히 드릴 수 있는 물건이지요. 스킨 도펠의 눈은 그렇게까지 희귀하지 않습니다. 리크토에게만 비싸게 팔리는 물건이지요.”
라코이 카너가 웃으면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