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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캐로 멱살 캐리-177화 (177/205)

# 177

껍데기

리크토는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서 카시마르와 라코이 카너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로서는 이 새끼들이 왜 여기 와 있나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설마 빚을 갚겠다라는 말 때문에?

그가 떠올린 접점은 바로 이 부분 밖에 없었다. 그 외에는 어느 누구도 자신과 엮이려고 하지 않았으니까.

리크토는 나체로 있었다 리크토에게는 그저 껍데기에 불과한 몸.

그래서 라코이 카너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스킨 도펠의 본질은 끔찍한 괴물.

그러나 드러내는 모습인 껍데기도 본질 못지않게 중요했다. 그 이유는 스킨 도펠이 껍데기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었다. 뛰어난 육체를 지닌 껍데기를 취하면 그만큼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것뿐인가 뛰어난 스킨 도펠은 껍데기가 지닌 육체적 능력 뿐만 아니라 기억, 능력까지도 흡수할 수 있다고 되어 있었다. 물론, 매번 그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매번 되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기에 껍데기는 스킨 도펠에게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런데 리크토는 약하디 약한 여인의 육체를 취하고 있었다. 가죽이랄 것도 없어서 고양이의 발톱에 긁히기만 해도 상처가 나는 족속들.

뱀파이어도 유사 인간에 속한다고 하지만 육체적 능력은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적어도 뱀파이어는 자신이 기르는 동물에 물리지는 않는 존재였으니까.

리크토는 이전과는 다른 눈빛을 지니고 있었다. 카시마르는 그걸 확실히 느끼는 중이었다.

한 단계 위의 존재가 되었다는 것.

카시마르는 그걸 느낄 수 있었다. 리크토도 그 사실을 뽐내려는지 마음 껏 기운을 방출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곳이 그의 저택이어서 그러는지도 모른다고 카시마르는 생각했다.

높은 존재가 된다는 것.

아바타를 만들어 부릴 수 있다는 것.

이제부터는 진짜 우주적 존재로 가는 길의 도입부에 이른 셈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리크토를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나라신이어서가 아니라 화신을 다룰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랬다.

작은 신, 지역 신, 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영향력이 있다고 해서 나라 신.

그러나 이러한 등급들은 계단 세계의 존재들이 서로를 구별하기 쉽게 만들어놓은 형식에 불과했다.

계단 세계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없으며 낮은 영향력의 존재여도 높은 영향력의 존재를 못 잡아먹으리라는 법은 없었으니까.

당장 카시마르만 하여도 작은 신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그는 여행자라는 특수한 신분이었으니 예외로 적용해야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무슨 일로?”

리크토가 물었다.

“빚을 갚겠다는 약속을 하시지 않았습니까.”

“지금은 아니지.”

리크토는 귀찮은 표정이었다. 카시마르는 나체 상태로 있는 리크토의 모습에 별 감흥이 없었지만 라코이 카너는 묘한 느낌을 계속 받았다. 영향력을 차단하는 고위 아이템을 들고 있음에도 그랬다.

카너는 그게 이상했다.

아바타를 다루는 경지에 이른 존재를 한 두 번 만나보는 게 아닌 그였다.

리크토는 이제 막 그 경지에 이른 존재.

그런데도 이상하게 리크토는 그가 가진 아이템들의 힘을 뚫고 영향력을 보내고 있었다.

‘스킨 도펠 출신이어서 다른 존재들보다 월등하게 강해진 것인가?’

이 세계는 공평하지 않았다.

격이 낮은 존재는 다시 태어나도 낮은 격으로 태어나고, 그 격은 계속 대물림 된다.

필멸자들은 영원히 고위 존재들의 노리개나 먹이감으로 살아야한다는 뜻이었다.

고위 존재도 마찬가지였다.

작은 신의 자식은 작은 신으로 태어나고, 우주적 존재의 자식은 우주적 존재로 태어났다.

뒤집히지 않는 불공평.

그러나 이게 완전무결하게 뒤집히지 않는 불공평이라고 해야하는가?

그건 아니었다.

낮은 격으로 태어나 고위의 존재가 되면 될수록 그는 다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강함을 손에 넣는다.

스킨 도펠도 그러한 낮은 격 중에 하나였다.

완전한 필멸자인 카시마르와 비교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의뭉스러운 표정이군. 이 껍데기에 관심이 있나?”

리크토가 카너를 바라보며 물었다. 물론, 카너가 하고 있는 생각은 다른 것이었다. 리크토가 이렇게 카너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습관의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리크토는 하위 존재를 눈빛 하나로 제압할 수 있었고, 더 나아가 생각까지도 읽는 게 가능했으니까.

“그것도 궁금하긴 합니다.”

“잘 맞는 옷이야.”

인간의 가죽을 잘 맞는 옷이라고 표현하는 모습이 그다지 좋게 들리지 않는 카시마르였다. 그러나 그는 늘 그렇듯이 나서지 않고 조용히 있었다. 이런 부분에서 이야기를 하는 건 카너가 그보다 한 수 위일테니까. 그는 중요한 순간에만 나서서 거들어주면 될 일이었다.

“그렇군요.”

“스킨 도펠은 저마다 잘 맞는 옷이 있지. 그 옷을 입으면 다른 옷을 입을 때보다 기분도 좋고, 능력을 발휘하기에도 좋지. 그래서 이 옷을 입는 거야.”

스킨 도펠에게도 잘 맞는 옷이 있다는 정보는 처음 듣는 것이었다.

“······.”

“혐오스럽다고 생각하는가?”

리크토가 꼰 다리를 풀며 말했다.

“그렇다면 동물의 가죽을 벗겨서 입는 것도 혐오스러운 일이 될 수 있겠지. 서로 입장이라는 게 있는 거야.”

“······.”

“서론이 너무 길었군. 빚을 갚으라는 이야기라면 잘못 찾아왔어. 내가 갚을 빚이란 내가 정하는 거야. 너희들이 정하는 게 아니라.”

리크토가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여전히 나신으로 있었다.

“그럼 언제 갚을 생각이었습니까?”

조용히 있던 카시마르가 물었다. 그러자 리크토가 카시마르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둘 사이에 몇 초의 시간이 흘렀다.

“네가 죽으면 복수는 해주지.”

복수를 하는 것으로 빚을 갚겠다. 그 말은 귀찮으니 꺼져라라는 말과도 비슷했다. 아니 적어도 카시마르와 라코이 카너에게는 그런 의미로 들렸다.

“잠깐 주인님과 이야기 좀 해도 되겠습니까?”

라코이 카너가 말했다.

“쓸데없는 이야기라면 그냥 나가줬으면 좋겠군.”

“잠깐이면 됩니다.”

리크토는 귀찮다는 듯이 인상을 쓰고는 손사래를 쳤다. 카너는 잠시 밖으로 나와서 품속에서 간이 결계를 만들어서 쳤다. 고위 존재라면 손쉽게 파괴할 수 있는 간단한 결계였지만 효과는 있었다. 지금은 침입을 막겠다는 용도가 아니라 대화 내용을 노출 시키지 않게 하려는 의도였기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더 뻔뻔하네요.”

카시마르가 말했다.

“그렇게 느끼셨습니까?”

“보좌관은 그러지 않았습니까?”

“전 충분히 예상했었습니다.”

“고위 존재들은 약속을 중요시 여긴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빚도 힘이 있어야 받을 수 있는 겁니다. 그가 언제 어떻게 갚겠다고 하지 않은 이상 큰 의미 없는 것이죠.”

“그렇군요. 제가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었나 봅니다. 그래서 말인데 지금이라도 거래를 취소하는 게 어떻습니까. 스킨 도펠의 눈은 리크토가 정말 간절할 때 써먹는 거죠. 이번에는 저번처럼 쉽게 넘겨주지 말고 말입니다.”

“주인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눈의 소유권은 이미 주인님에게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럼 돌아가는 겁니까?”

“아뇨. 눈이 없어도 거래할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났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요.”

“이스메네 말입니다. 그녀의 종족이 인간 아니었습니까? 그걸 미끼로 던지는 겁니다.”

“이스메네의 껍데기를 던져주자는 이야기입니까?”

“어쩌면 스킨 도펠의 눈보다 더 좋아할지 모르는 일입니다. 인간이 나라신 정도 되는 고위 존재가 되는 건 드문 일이니까요. 또 그런 고위 존재의 육체를 뒤집어 쓰게 되는 겁니다. 리크토 입장에서는 물지 않을 수 없는 미끼입니다.”

라코이 카너가 상인 가문의 뱀파이어라는 사실은 이러한 부분에서 드러났다. 열이면 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짤막한 대화를 이용해서 큰 거래를 이끌어 내고 있었다.

카시마르와 카너는 다시 리크토를 만나러 들어갔다. 리크토는 여전히 나신으로 쥐구이를 먹고 있었다. 리크토가 먹는 쥐는 새끼손가락만한 크기의 작은 쥐였다. 리크토는 쥐를 한입에 넣고 아그적, 아그적 씹어 먹는 중이었다.

살아 있는 쥐를 먹고 있었기 때문에 리크토의 입에서 찌지직거리는 쥐의 비명소리가 미세하게 흘러나왔다.

“스킨 도펠의 눈이라도 가져왔나?”

리크토가 말했다.

“그건 아닙니다.”

“그러면 더 할 말 없어. 나는 한동안 바깥 출입을 하지 않을 생각이니까.”

“다만 괜찮은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빨리해. 더 방해받기는 싫으니.”

“인간의 껍데기를 좋아하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이번에 저희 사냥감이 인간입니다.”

“널린 게 인간이야.”

“나라 신의 위치까지 오른 인간은 그리 많지 않죠.”

카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리크토가 쥐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카시마르와 카너를 번갈아서 바라봤다. 그의 눈동자의 모양이 기묘하게 변했다. 눈 속에 눈이 하나 더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방금 뭐라고 했지?”

“고위 존재의 육체를 드리겠다는 겁니다. 그걸 껍데기로 사용하시면 더 좋지 않겠습니까?”

“수컷인가?”

“여인입니다. 외모도 뛰어난 편입니다.”

라코이 카너는 카시마르에게 살짝 말하여 수배서를 받아서 리크토에게 보여주었다.

“이스메네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정말 나라 신인가?”

리크토가 카너를 빤히 보며 말했다. 그는 정말 조심성이 많은 자였다. 아니 의심이 많다고 하는 표현이 더 알맞을 거였다.

“맞습니다. 원한다면 계약을 해서 보증을 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내게 원하는 건?”

“리크토님에게 이 여인의 육체는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습니까?”

“높은 위치에 오른 인간의 육체. 가치는 있겠지. 하지만 내가 달려들만큼 필요한 건 아냐.”

“그렇다면 거래가 성립이 어렵겠군요.”

“뭐?”

“리크토님에게 그리 필요한 게 아니라면 저희 쪽도 얻을 게 그다지 없겠지요. 어쨌든 인간의 껍데기를 필요로 하는 건 리크토님 밖에 없으니까 말입니다.”

“그래도 가격은 후하게 주도록 하지. 10억이면 되겠나?”

“리크토님. 제 가문이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금화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럼 무얼 내달라는 거지?”

“리크토님이 가진 보물 중에 하나를 원합니다.”

“고작 인간의 껍데기 가지고 보물을 달라?”

“필요 없는 보물도 있지 않으십니까. 피 흘리는 강철 나무 정도면 괜찮지 않겠습니까?”

“피 흘리는 강철 나무는 선물로 받은 거야.”

“그렇지만 이미 죽은 나무 아닙니까. 큰 의미가 없죠.”

“죽은 나무이지만 그 가치는 대단하지. 피 흘리는 강철 나무는 이제 없으니까.”

“그래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저희 가문에서는 그 강철 나무를 비싼 값에 팔 수 있을 겁니다. 수집가들을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리크토님에게는 꼭 필요한 물건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 리크토님이 이득을 보는 것 아니겠습니까?”

카너의 화법은 교묘했다. 밀고 당기기를 적절히 사용해서 리크토를 휘두르고 있었다.

“그래서 피 흘리는 강철 나무를 내어달라?”

“정확히는 죽은 피 흘리는 강철 나무입니다.”

“그것만 내주면 되는 건가?”

“아닙니다. 내일 리크토님이 잠깐 몸을 움직여주셔야 합니다.”

“또 무슨 소리지?”

“이스메네는 말 그대로 고위의 존재입니다. 사냥팀을 소집했지만 그녀가 예상외로 강할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나보고 거들라는 말인가?”

“예상대로라면 저희 사냥팀으로도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예외라는 게 있지 않겠습니까.”

“결국 도와달란 이야기로군.”

“그렇게 받아들이셔도 됩니다. 어쨌든 외출할 가치가 있는 일 아니겠습니까?”

“······.”

리크토는 잠시 침묵하더니 알았다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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