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주캐로 멱살 캐리-178화 (178/205)

# 178

암흑 사원(1)

리크토는 약속 시간을 지켰다. 그는 자신이 말한 대로 정오가 되자마자 카시마르의 저택에 모습을 드러냈다. 리크토는 두 명의 하인과 여덟 개의 짐수레를 끌고 나타났다. 두 명의 하인이 4개씩 연결된 짐수레를 끌고 있었다.

리크토는 차크람 같이 생긴 커다란 고리 위에 앉아 있었다. 자세히보면 차크람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가운데는 텅 비어 있고 테두리에는 날카로운 금속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금속에는 묘한 모양의 글자들이 깨알같이 있었는데, 움직일 때마다 그 깨알 같은 글자들의 비취색으로 빛났다.

리크토는 그 차크람의 가운데 윗 부분에 앉아 있었다. 완전히 비어 있어서 리크토가 언제든지 그 아래로 떨어질 것 같았는데, 그러지 않았다.

하인들이 짐수레를 끌고 허공을 밟으면서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마치 의자에라도 앉아 있는 것 같아 보일 정도로 편안한 모습이었다.

리크토는 상당히 많은 준비를 하고 나타났다. 그가 올라타고 있는 차크람은 이전에는 지니고 다니지 않는 것이었다.

“혹시 모른다면서.”

리크토가 카시마르와 카너를 향해 대뜸 말했다. 질문이 나오기 전에 먼저 대답을 한 것이었다.

“짐이 많군요.”

카너가 말했다.

“네가 들고갈 것도 아닌데 무슨 문제 있나?”

“문제 없습니다.”

“그래. 없어야지. 카너!”

리크토는 카너를 바라보면서 카너를 불렀다. 그러자 짐수레를 들고 있던 난장이 하인 하나가 재빨리 다가왔다. 두 난장이 하인 중 한 명은 멀쩡한 모습이었고, 한 명은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한 상태였는데 그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한 하인이 다가오고 있었다.

“너 부른 거 아냐. 이 녀석 이름이 카너라서 말이야.”

리크토가 비릿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유치한 행동이었다. 고위 존재가 하는 행동이라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

“걱정 마. 저 녀석 이름은 아직까지는 카시마르가 아니니까.”

리크토가 다른 하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쯤되면 노골적인 수준이었다. 그러나 카너나 카시마르나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둘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리크토는 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저희는 팔번토 쪽으로 움직일 겁니다.”

예상대로 이스메네는 그리 먼 곳까지 움직이지 못했다. 팔번토는 사냥개의 들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다만 사냥개의 영역은 아니어서 움직이는데 주의가 필요했다.

“팔번토면 암흑 사원이 있는 곳 아닌가?”

“암흑 사원이 어디지?”

리크토의 말을 들은 카시마르가 카너에게 물었다.

“이쪽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 중 하나입니다. 그것들을 아주 오래된 옛 건물이라고 부르죠. 우주적 존재들이 직접 힘을 행사하여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는 곳입니다. 아직까지 그 기원에 대해서는 완전하게 밝혀지진 않았습니다.”

“암흑 사원이라······ 어떤 우주적 존재의 힘이 닿은 곳입니까?”

“혹시 암흑 돼지라고 아십니까?”

카시마르는 암흑 돼지를 어디서 들어보았다고 생각했다. 예상대로 암흑 돼지라는 말에 반응을 보인 건 강숭이었다. 카시마르는 강숭이의 표정을 캐치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표정을 보고서야 머릿속에 떠오른 무언가가 있었다.

좌팔계.

달로스의 만신 중 최고 높은 존재.

그러나 카시마르에게는 그냥 동족을 잡아먹는 돼지일 뿐이었다. 별다른 힘이 없지만 만신이라는 이유 하나로 대접 받고 살아가는 존재. 그런 존재의 사원이 있다는 게 약간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거기다 그냥 사원도 아니라고 한다.

아주 오래된 옛 사원 중 하나라니.

아주 오래된 옛 사원은 계단의 세계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곳이었다.

그곳의 기능은 다양한 게 있지만 일단은 바깥 세계의 던전과 비슷한 기능을 하기 때문이었다.

“암흑 사원은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는 사원입니다.”

“사원이 피해를 주기도 합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그 사원 안에 사는 우주적 존재의 종속들이 피해를 주는 것이지요.”

“광신도들이니까. 사원 안의 존재들이 밖으로 나와 먹이감을 잡아가거나, 피해를 주곤 하지. 아주 오래된 옛 사원의 종속들은 그만큼 강력해서 주는 피해도 크고.”

리크토가 설명을 덧붙였다.

“맞습니다. 그래서 보통 아주 오래된 옛 사원의 주변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 우주적 존재들을 추종하는 자들이나 있죠.”

“암흑 돼지의 사원은 다릅니까?”

“그쪽은 사원 밖으로 나오질 않습니다. 다만 안으로 들어가는 건 매우 위험합니다. 암흑 돼지들이 있으니까요.”

“종속들이 사원 밖으로 나오는 이유는 먹이감인데, 암흑 돼지들은 자급자족하니까. 그들은 어린 동족들을 먹고 살거든. 그들이 모시는 신이 그러라고 했나 봐.”

강숭이는 입이 근질거렸지만 참았다. 일행들은 얼른 준비를 마치고 팔번토로 움직였다.

“일단 암흑 사원에 들어갈 일은 없습니다. 이스메네가 미치지 않고서는 거기에 들어갈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렇기야 하겠지. 어쨌든 간만에 사원을 보겠네.”

리크토는 팔번토로 움직이는 것에 큰 불만이 없는 것 같았다. 일행들은 얼른 준비를 마치고 팔번토로 움직였다.

강숭이와 카시마르는 함께 움직이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좌팔계가 정말 그렇게 시켰을까?”

“아무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변질된 것 같습니다요.”

“그러면 찰스인가 하는 놈을 모시는 놈들은 맞는 거지?”

“네. 같은 종족 아닙니까요. 찰스 그놈을 철썩같이 믿는 멍청한 놈들이 많긴 하지만 암흑 돼지들만큼 맹목적이진 않습니다요. 기복 신앙이라고 봐야죠. 달로스님 아니지. 달로스와 소통 창구니까 말입니다요. 솔직히 그 노친네는 듣지도 않는데 말입니다요.”

"너 달로스를 이야기하는 말투가 좀 달라졌다."

"헤헤. 여기 계단의 세계 아닙니까요. 그 양반 힘이 안 닿는 곳입니다요."

"나중에 다 이른다."

"헤헤. 선생님이 그런 성품의 사람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요."

"하여튼 말은 잘해요. 근데 돼지가 어린 돼지 잡아 먹는 거는 그놈 식성이니 괜찮은 거 아니겠어?”

“그건 말 그대로 찰스 그놈 식성입니다요. 그렇지만 그게 죄라는 걸 그놈도 알고 있습니다요. 그런데 그걸 그놈이 자신을 따르는 종속들에게 시켰을리 있겠습니까요. 거기다 여기 사원이 만들어졌을 때는 그놈이 그놈이 아닐 때라서 말입니다요.”

“그놈이 그놈이 아냐?"

"아주 복잡한 스토리가 있습니다요. 오래전 이야기지 않습니까요."

"그럼 계단 세계가 우주적 존재들과 분리되면서 변질된 게 맞나보군. 근데 좌팔계가 그리 높은 놈이었어? 우주적 존재라고 듣기는 했다만 그렇게는  안 보이던데.”

“선생님. 사실 저도 우주에서 꽤 날리던 놈입니다요. 저번에 보셨지 않습니까요. 카리스마! 키야아아!”

“때리기 귀찮다. 근데 한 번 더 그러면 맞는다.”

“아! 알겠습니다요. 아무튼 제가 힘을 잃은 것처럼 좌팔계 그놈도 힘을 잃었습니다요.”

“맞다. 힘을 잃고 그 사원인가에 붙어 있다고 했던가?”

“맞습니다요.거기는 사원이 아니라 달로스의 대신전입니다요.”

“그러면 그전에는 좀 강력했다는 거네?”

“그래도 우주적 존재라는 타이틀이 있으니까 말입니다요. ”

팔번토로 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들판에 있는 게이트를 이용해서 움직이면 쉽게 갈 수 있었다. 물론, 마지막으로 빠져나온 게이트에서 팔번토로 가는 길은 꽤 시간이 걸렸다. 그렇지만 그냥 날아서 움직였으면 며칠은 걸렸을 긴 거리였으니 시간을 많이 단축한 셈이었다.

“이제 어디로 가면 되지?”

리크토가 질문했지만 카너와 카시마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카너와 카시마르는 팔번토에 도착하자마자 심각한 표정으로 상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리크토는 둘의 표정을 보고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사원에 있네?”

“······.”

“사원에 있는 거 맞지?”

“예.”

“지도를 가지고 있었나 보군.”

“지도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쉽지 않은 곳 아닙니까? 아주 오래된 옛 사원입니다. 보통의 곳과는 다르죠.”

“저기 1층 2층은 그다지 위험하지 않아. 그 위쪽부터가 진짜지.”

암흑 돼지 신전은 거대한 높이로 되어 있었다. 루테스 대륙에도 신전이나 던전은 많이 있었지만 암흑 돼지 신전은 그 규모가 그쪽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넓었다.

과거 검은 교단의 건물이 활성화 되었을 때보다 몇 배는 더 큰 규모였다.

“들어가 보신 적 있습니까?”

“몇 번. 큰 수확은 없었어.”

“그렇다면 리크토님은 안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괜찮겠습니까?”

“나는 어느 정도까지는 커버가 가능해.”

리크토는 의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저택에 있을 때 만해도 모든 걸 귀찮아하던 그였지만, 막상 나오니 적극적인 모습이었다. 그 말은 이스메네의 껍데기가 생각보다 그에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도 되었다.

리크토는 예상 외의 상황에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반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바로 카시마르였다. 카시마르는 꽤 심각한 카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암흑 돼지 사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확실히 달리 달로스에서 보았던 건물과 비슷했다. 외관은 보통의 코즈믹 게이트에서 볼 수 있는 보통의 탑과 비슷했지만, 규모가 몇 배는 더 컸다. 거기다 다양한 색으로 빛을 내고 있었다.

이름과 어울리지 않게 아주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는 신전.

특히 암흑 돼지 사원은 다른 옛 건물들과는 다르게 이미지가 아주 좋았다.

그 안에서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계단 세계의 존재들은 그들이 다른 신전의 종속들처럼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게 중요했다.

거기다 웬만한 자연 경관보다도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으니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팔번토는 그런 의미로 만들어진 도시였다.

암흑 돼지 사원 주변으로 형성된 도시.

같이 온 사냥팀들도 암흑 돼지 사원을 경외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안이 그렇게 위험합니까?”

“살아 나온 자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물론, 저 사원을 완전히 정복했다는 존재도 없었고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거군요. 이스메네는 저기를 어떻게 들어간 겁니까?”

“말했다시피 1층 2층은 그리 위험하지 않아. 저 안 쪽의 지도를 가지고 있었겠지. 숨기에는 저기만큼 안전한 장소가 어딨겠어. 그녀가 나라신이라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카너가 대답했다.

“그러면 잘 숨어 있겠군. 어느 정도나 상세하게 추적 가능하지?”

“몇십 미터 안쪽까지도 추적 가능합니다.”

“그러면 안에서 찾는 건 어렵지 않겠네.”

“길안내를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어렵지 않아. 약속한 물건만 확실히 넘긴다면. 어차피 이 정도는 예상 했으니까. 그런데 내가 들어간다고 해서 될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리크토가 사냥팀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말했다.

“쟤네가 들어가려고 할까?”

주변이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아주 오래된 옛 건물은 아주 오래된 옛 건물이었다.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우주적 존재의 힘이 물건이 아니라 건물로 형상화된 모습이라고 보면 되었다. 우주적 존재의 힘이 직접 거대한 건물로 만들어졌으니 그 안에 얼마나 많은 기회가 있겠는가.

실제로 수많은 존재들이 아주 오래된 옛 건물을 정복하려고 노력했지만 그 성과는 그리 좋다고 할 수 없었다.

“제가 한 번 설득 해보겠습니다.”

카너가 사냥팀을 설득하려 움직였다. 그러자 리크토가 차크람을 집어넣고 하인 카너가 있는 짐수레 쪽으로 다가갔다.

짐수레 쪽에서 짤막한 주문을 외우자 리크토의 모습은 다른 차원으로 넘어간 것처럼 사라졌다.

암흑 돼지 사원은 20층까지 있는 건물이었다. 20층 정도의 건물이었지만 한 층의 높이가 보통 건물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저 꼭대기에 있는 동상이 좌팔계의 모습인가? 실물이랑은 좀 다르네?”

카시마르가 가리킨 동상은 좌팔계의 모습과 완전히 달랐다. 그보다 훨씬 그로테스크했다.

여덟 개의 돼지 머리가 한 몸에 달라붙어서 흉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세히 보시면 좌팔계의 모습도 보입니다요.”

강숭이의 말을 들은 카시마르가 좀 더 동상을 살펴보았다. 강숭이의 말대로 좌팔계의 얼굴이 있었다. 그나마 제일 온순해보이는 돼지 머리였다.

“여덟 개의 인격을 가진 그런 존재라는 건가?”

“아닙니다요.”

“그러면?”

“저 모습은 아주 오래전의 찰스 모습입니다요. 찰스의 형제들이죠. 찰스가 다 잡아 먹었습니다요.”

“잡아먹어?”

“한때 엄청 싸웠거든요. 여기 세계가 단절이 되어서 찰스가 하나로 변한지 모르고 있나 봅니다요.”

“뭔가 엄청난 이야기가 있는 것 같은데?”

“그리 심각한 거 아닙니다요. 형제들끼리 싸우다가 잡아먹기도 하고 그러는 거 아닙니까요?”

“형제끼리 잡아먹는 게······ 아무튼 그래서 힘을 잃었다는 거야?”

“그건 아닙니다요.”

“그럼 뭐야.”

“저놈들이 좀 건방져서 두들겨 패다 보니까······.”

“또 너냐?”

“그래도 죽이지는 않았습니다요. 저놈들도 저래 보여도 우주적 존재 아닙니까요. 제가 두들겨 팰 수는 있어도 죽일 수는 없습니다요.”

“근데 다 죽었다며.”

“제가 두들겨 팬 사이에 찰스가 다 잡아먹은 겁니다요. 찰스가 저기서 가장 서열이 낮아서 불만이 많았거든요. 뭐, 싸움도 못하기도 했고 말입니다요. 어차피 두들겨 패봤자 다시 살아나는 놈들이니 찰스가 영원히 뱃속에 넣어버린 겁니다요.”

“그래서 한 놈이 된 거다?”

“그렇습니다요.”

“힘도 죄다 잃어버리고?”

“뭐, 그전에도 그다지 센 놈들은 아니어서.”

“저거 보니까 많이 세 보이는데?”

카시마르가 턱짓으로 암흑 돼지 사원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다 허세입니다요. 허세.”

“그래서 너도 저런 거 있냐?”

“아. 선생님. 저는 유치하게 저런 거 안 키웁니다요.”

“오. 그래?”

“주인님. 이야기를 전달했습니다.”

카너가 되돌아오는 바람에 카시마르와 강숭이의 대화는 더 이어지지 않았다.

“뭐라고 합니까?”

“못 들어가겠다고 합니다. 솔직히 무리한 이야기이긴 합니다.”

“한 명도 안 들어가겠다고 합니까?”

“미친 짓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그렇게까지 위험한 곳이로군요.”

“예. 죄송합니다. 설마 그녀가 이런 식으로 숨을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이건 보좌관 잘못이 아니지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카너가 물었다.

“생각을 좀 해보죠.”

“예.”

“아. 일단 사냥팀은 돌려보내세요. 안으로 들어가지 않을 거라면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대기를 하라고 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마음이 없는 자들을 붙잡아 둔다고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또 저들이 있으면 저들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겁니다. 다른 방법을 찾아 야지요.”

“알겠습니다. 이야기를 전달하고 오겠습니다.”

카너는 인사를 하고 다시 사냥팀에게로 향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