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1
강압적인 초대
“그럼. 전투의 축복이 잘못된 건 아니로군요.”
베르긴이 축복을 읽던 사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몰텍은 관자놀이를 엄지로 누르고 있었다.
“그래.”
“누구를 들이신 겁니까?”
“······.”
“······.”
베르긴의 질문에 몰텍이 침묵했다. 그러자 베르긴이 렘을 바라봤다.
“누군데 그래?”
“필멸자야.”
“필멸자?”
“그래. 필멸자. 지금은 작은 신 정도겠지.”
“어떻게 된 겁니까?”
베르긴이 몰텍을 향해 물었다. 그러자 몰텍이 제대로 고개를 들었다.
“이렇게 될 줄 몰랐던 일이다. 카니발이 이 타이밍에 열릴 줄 몰랐지.”
“몰텍님. 저희들은 인원이 워낙 적습니다. 그렇기에 신중하게 들여야 한다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그냥 뽑은 건 아니었어. 몰텍님도 생각이 있으셨다.”
렘의 옹호에 베르긴이 날카로운 시선을 풍겼다. 카니발은 단순히 서로 죽이는 이벤트가 아니었다.
카니발 뒤에는 막대한 보상이 따른다. 물갈이 과정에서 흘린 피를 아우터 갓의 보상으로 메꾸는 형식인 것이었다.
거기다 다 똑같은 보상을 받는 게 아니었다.
제일 많이 죽이고, 살아남은 주축이 제일 큰 보상을 받는다. 물론, 두 번째도 많은 보상을 받는다. 그렇지만 제일 문제는 마지막이었다. 제일 순위가 낮은 주축은 보상을 받지 못한다.
그래서 카니발은 어렵다.
그래서 고위 존재들도 카니발이 열리면 긴장했다.
목숨은 물론이고 모든 것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카니발의 룰은 재미난 부분이 많았다.
다시 계시가 떨어질 때까지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각 주축의 수장이 죽게 되면 카니발은 끝이난다.
다시 재미난 부분은 수장이 죽는 것이 순위 시스템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라는 점이었다.
수장을 죽이면 큰 점수를 얻는 건 맞았다.
그러나 그게 절대적인 건 아니었다.
수장을 죽여서 카니발이 끝나더라도 집계된 성적이 좋지 않으면 꼴찌를 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단순하기까지 한 룰.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
그러나 그 단순한 룰 안에서 각 주축의 구성원들은 치열한 머리싸움을 해야 했다.
카니발에서 가장 중요한 건 1등을 하는 게 아니라 3등을 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1등이나 2등은 큰 차이 없이 보상을 받을 수 있지만 3등은 보상이 아예 없었다.
아우터 갓의 계시니 카니발 이후에 내려주는 보상도 간단한 게 아니었다.
그러니 카니발은 엄청난 기회이면서도 동시에 재난이기도 했다.
특히 사냥개의 사냥꾼과 같이 다른 주축보다 인원이 적은 쪽에게는 지금 상황이 난감할 수 밖에 없었다.
시간의 광기나 불멸의 굶주림은 인원이 오백 명 가까이 되었다.
반면에 사냥개의 사냥꾼은 정예들로 이루어진 주축.
아흔 아홉 명이 전부.
대신에 그 아흔 아홉 명이 모두 정예들이었다. 그래서 사냥개의 사냥꾼들은 한 명, 한 명이 더 소중했다.
오백명에게 한 명은 그리 큰 점수가 아니었지만, 아흔 아홉 명 중에서 한 명은 꽤나 큰 점수라 할 수 있었으니까.
“대체 필멸자를 왜 받아들이신 겁니까?”
“깃발의 문에 들어갔었다. 거기서 그놈을 만났지. 필멸자인 걸 알아서 공격을 해보라고 했지. 근데 그놈이 들고 있는 무기가 내 목을 파고 들었어.”
“필멸자가 가지고 있는 무기가요?”
“그래. 하마터면 목이 베일 뻔했지. 그대로 생 하나를 잃어버릴 뻔 했다. 나는 그놈이 탐이나서 데려온 게 아냐. 그놈이 가지고 있는 무기가 놀랄만한 것이어서 데려온 거다.”
“혹시 우주적 존재의 무기 아닙니까?”
“처음 보는 것이었다.”
“모든 우주적 존재의 무기를 아시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냄새는 알지. 어떤 우주적 존재의 힘이 작용했는지 냄새로 알 수는 있어. 근데 처음 맡는 냄새였다. 슈브님의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고. 하지만 희미했어. 처음 맡아보는 냄새였다.”
“엘더 갓 쪽의 물건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느낌이 달랐겠지. 엘더 갓 쪽 물건도 아니고 아우터 갓 쪽 물건도 아니었다.”
“근래에 새로운 우주적 존재가 탄생한 적 없으니······ 이쪽 세계와 관련이 없는 우주적 존재의 물건일 수도 있겠군요.”
“우주적 존재의 물건이 아닐 수도 있지. 우주 그 자체의 기운이 담긴 물건일 수도.”
“여러모로 복잡한 녀석이로군요.”
베르긴이 말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지. 몰텍님의 피부에 상처를 냈다는 게 중요해.”
“혹시······.”
“그래. 네가 수면에 든 동안 몰텍님은 성체를 완성했다. 지금 여기 있는 누구도 물리적인 공격으로 몰텍님에게 상처를 낼 수 없어. 그건 다른 쪽의 수장들도 마찬가지지.”
몰텍은 특이한 능력의 소유자였다. 사냥개의 다른 주축들의 수장들과 비교하면 특별한 능력은 없다시피 했다. 전투 스킬도 다양하지 않았고 살상 능력도 높은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방어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만큼 강했다.
특히 물리 공격에 대한 방어력은 계단 세계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대단했다.
“몰텍님에게 상처를 입힐 정도면 누구에게든 통한다는 거로군.”
“그렇지. 하지만 작은 신 정도밖에 안 되는 영향력이라면 근처에도 못 가보고 소멸당할 거다.”
“히든 카드로 쓰려고 데려오신 거였군요.”
베르긴이 몰텍을 바라봤다. 몰텍은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올라오는 걸 봐서 지원을 좀 많이 해줄 생각이었다. 지역 신 정도만 되어도 충분히 써먹을 수 있었을 테니까. 근데 카니발이 너무 일찍 열렸어. 그놈이 사냥꾼으로 들어온지 얼마나 되었지?”
“한 달 조금 넘었을 겁니다.”
“그래. 그동안 변했으면 얼마나 변했을까.”
“그래도 그 친구 역시 사냥꾼입니다.”
“그래. 보호해야지.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살아남기는 쉽지 않겠지만.”
“공격대에 넣는 건 어떻겠습니까?”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스티널린이 이야기 했다. 그는 사냥꾼에서 중간 정도 위치에 있는 존재였다. 스티널린의 이야기에 렘과 베르긴이 그를 바라봤다. 스티널린은 둘의 시선을 애써 피하고는 계속 이야기를 꺼냈다.
“일회용으로 쓰자는 건가?”
“차라리 그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그 친구는 사냥꾼이다. 사냥꾼이 사냥꾼을 이유 없이 내치는 경우가 있었던가? 아무리 이 자리에 없고 자격이 모자라는 친구라지만 일회용으로 쓰자는 이야기를 담는다니!”
베르긴이 흥분해서 말하자 스티널린이 얼른 입을 다물었다. 베르긴은 사냥꾼에서 몰텍 다음으로 영향력이 있었다.
베르긴은 마족이었다.
마족에는 수많은 종류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벨로바와 베르긴은 같은 가문으로 마족 중에서는 왕족으로 취급받는 존재였다.
몰텍 다음으로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고, 고위 마족이라는 정통성까지 있으니 몰텍도 베르긴을 무시하지 못할 정도였다.
몰텍은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렘과 더 친밀한 사이였지만, 사냥꾼 내 위치는 베르긴이 렘보다 위였다.
그렇다고 해서 사냥꾼에 파벌이 있는 건 아니었다. 사냥꾼은 불멸의 굶주림이나 시간의 광기보다 훨씬 끈끈한 팀웍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누구도 몰텍의 지휘력을 의심하지 않았고, 베르긴도 몰텍을 진심으로 따르니 몰텍 입장에서는 베르긴의 이야기를 더 무시할 수가 없었다.
“베르긴의 이야기가 맞다. 어쨌든 그 녀석은 사냥꾼의 일원이니 커버해줘야 해.”
“그렇습니다. 이미 카니발은 시작되었고, 그 녀석도 점수에 포함될 테니까요.”
“그러면 어떻게 활용할지 생각해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번에는 저번 카니발 같은 작전은 통하지 않을 겁니다.”
주축의 수장들의 목숨은 귀했다. 그래서 카니발이 열리만 팀원들은 수장을 보호하려고 애쓴다. 그렇지만 수장의 목숨이 가장 최우선으로 신경써야 할 부분인가를 놓고 보자면 그렇지는 않았다.
각 주축의 수장 정도면 목숨이 하나가 아니었다. 여러 개의 목숨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목숨을 내놓더라도 카니발에서 이기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저번 카니발에서는 몰텍의 죽음을 자처했다. 대신에 사냥개의 사냥꾼은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수장의 목숨은 귀하지만 후에 받을 수 있는 보상으로 충분히 커버가 가능했다.
몰텍은 그 뒤에 받은 보상으로 성체를 완성했고, 덕분에 물리적 공격에는 완전 면역 수준의 강인한 존재가 되었다.
“몰텍님이 성체를 완성했다는 사실은 알려진 게 아니니 또 먹힐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어쨌든 수장의 목숨은 팀원의 목숨 열 개와 바꿀 수 있을 정도니까요.”
“우리에게는 다섯 명이지.”
수장의 목숨은 보통 팀원들보다 큰 가치가 있었다. 그렇지만 목을 맬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수장의 목숨을 노리는 대부분의 이유는 카니발을 끝내기 위함이었다.
“몰텍님의 이야기는 철저히 입단속을 했으니 새어나갈 일은 없다. 하지만 저번 카니발에서 썼든 그 방법은 다시 쓰긴 어려울 거야. 저쪽도 멍청이들만 있는 게 아니거든.”
사냥개의 사냥꾼들은 저번 카니발에서 아주 큰 승리를 거두었다. 1등과 2등이 받는 보상 차이가 크지 않은 건 사실이었지만, 카니발의 내용에 따라서 차이는 생기기 마련이었다.
바로 잃는 목숨의 숫자.
없는 게 없는 계단 세계지만 목숨은 구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고위 존재들이 목숨을 여럿 가지고 태어난다고 한다지만 귀한 것은 귀한 것이었다.
그러니 카니발에서는 순위도 중요하지만 팀원을 잃지 않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 팀원을 많이 잃게 되면 받는 보상이 아무리 많다 해도 그 세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으니까.
이전 카니발에서 사냥개의 사냥꾼들은 피해가 거의 없었다. 피해가 없는 상태로 1등을 거머쥐었다.
몰텍의 목숨을 하나 내주고 얻은 기가 막힌 승리.
“그러면 이번에는 그들이 협력을······.”
“그러지는 않을 거야. 그러기에는 이전 카니발에서 맺힌 게 많을테니까.”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지.”
한참 수뇌들의 이야기가 진행되었을 때 회의실의 문이 열렸다. 바로 카시마르였다.
카시마르는 100인은 거뜬하게 앉을 수 있게 설계된 긴 식탁을 보고는 빈 자리에 가서 앉았다.
모두의 시선이 카시마르에게로 향했다.
“카니발이 열렸다는 이야기는 들었겠지. 카니발이 무엇인지 대한 이야기는 보좌관에게 들었겠지.”
“어느 정도는.”
카시마르는 크게 긴장하고 있지 않았다. 그걸 장내에 있는 사냥꾼들은 느끼고 있었다.
그러자 제일 먼저 반응한 건 베르긴이었다.
“몰텍님이 선택한 이유를 알겠습니다. 전혀 위축되지 않습니다.”
“그것도 어느 정도 성장했을 때의 이야기지.”
몰텍은 카시마르를 가까이 불렀다. 카시마르가 가까이에 앉기 위해서 다른 존재가 자리를 비워야했는데, 베르긴은 눈짓으로 스티널린을 지목했다.
그러자 스티널린이 자리를 비켜서 카시마르의 자리로 움직였다.
“곧 카니발이 시작된다. 간단히 말하자면 싸우는 거니 이해하는 데 문제는 없겠지. 그런데 네가 걱정이야. 고위 존재들의 전투니까.”
“무엇을 하면 됩니까?”
카시마르가 물었다.
“그게 고민이야.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일단 써먹을 방법은 있어. 저쪽에서는 너에 대해 잘 모를테니 말이야.”
“그것도 아닐 겁니다.”
몰텍의 말에 카시마르가 바로 반박했다.
“무슨 소리지?”
“리크토라고 아십니까?”
“그 동족 사냥꾼 녀석?”
베르긴이 바로 반응했다.
“리크토와 거래를 몇 번 했습니다. 리크토가 불멸의 굶주림 소속이라고 들었으니 저에 대해 알고 있겠지요.”
“하필······.”
“그러면 더 할 이야기가 없는 것 아닙니까?”
베르긴이 몰텍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렘이 카시마르를 보며 설명을 덧붙였다.
“불멸의 굶주림 중에 강압적인 초대라는 능력을 쓰는 녀석이 있다. 그다지 강한 녀석은 아니지만······.”
“제가 감당하기에는 힘들 거라는 이야기로군요.”
“그래. 그래도 나라 신의 위치에 있는 놈이니까.”
“그 초대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까?”
“없다. 그 능력은 우주적 존재가 부여한 능력이다.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벗어나는 방법은 그를 이겨서 나오는 거지.”
“이번에는 곧바로 초대를 받을 수도 있겠습니다.”
“원래 키니라는 놈은 후방에 있다 카니발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 능력을 사용한다. 약해지거나 부상당한 존재가 나오는 걸 기다리는 거지. 그리고 초대를 사용해서 잡아먹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시작부터 널 지목할 거다.”
카시마르는 덤덤한 모습으로 설명을 듣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