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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캐로 멱살 캐리-183화 (183/205)

# 183

서로 다른 움직임

익숙한 풍경이었다. 게임 초기에 카시마르는 투기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때 수없이 투기장에서 게임을 했고 지금 있는 곳과 비슷한 곳에서 수없이 싸움을 했다.

키니가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존재들을 잡아먹었는지 모르지만, 카시마르 보다는 적을 것이었다.

휭!

선제 공격은 키니의 몫이었다. 키니는 카시마르를 보자마자 로스티드의 공을 하나 던졌다.

히데오의 공격보다 빠르고 강력했다. 무엇보다 키니는 다섯 개의 공을 꺼내놓고 시작한다는 점이 달랐다.

키니는 마크리엘과 거의 흡사한 생김새였다. 다른 점이라면 마크리엘이 남성형 호박 인간이라면 키니는 여성의 체형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었다.

단순히 체형으로 성별을 구분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키니는 마크리엘과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스키니한 몸은 그대로였지만 가슴 부근이 불룩하게 나와 있었고, 크기도 마크리엘보다 더 컸다.

쿵! 쿵!

장난스럽게 로스티드의 공을 던지는 키니.

카시마르는 살짝 고개를 트는 것만으로 공을 피해버렸다. 이렇게 날아오는 공을 상체 움직임만으로 피하는 건 현역 시절에 자주 하던 훈련 중에 하나였다.

“리크토의 말이 사실이었네. 그놈이 이렇게 써먹을 때가 있을 줄이야. 작은 신 치고는 강렬한 기운이긴 하지만 맞네.”

키니는 기쁜 표정을 지었다. 카시마르는 침묵했다.

쿵! 쿵! 쿵!

키니는 허공을 자연스럽게 걸어다니면서 공을 던졌다. 벽에다 공 놀이를 하는 듯한 모습이었고, 카시마르는 부드럽게 그 공을 피했다.

키니가 제대로 공격할 의사가 아직 없었다. 그렇다면 굳이 자극하지 않는 게 그로서는 유리했다.

계획은 차분하게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블러드 포그는 혈마법으로 분류되어 있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마법이 아니었다.

명확히 따지자면 저주.

블러드 포그를 익힐 때 나타나는 고통은 작열통 보다 위라고 되어 있기에 능력이라기 보다는 저주라고 하는 게 더 알맞았다. 그 저주를 공격으로 이용하는 게 바로 블러드 포그였으니, 키니의 공이 반응하지 않는 건 당연했다.

“공격 안 할 거야? 시간 끌면 끌수록 나는 좋아. 난 이대로 가면 계속 유리해져.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초대의 쿨타임은 초대가 시작된 순간부터 돌아가거든. 네가 여기서 시간 오래 끌어 봤자 다음 초대의 순간은 결국 온다는 거야.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필사적으로 덤벼봐. 혹시 알아? 내 몸에 생채기라도 낼 수 있을지 모르잖아.”

“오히려 공격을 바라고 있는 것은 같은데.”

카시마르가 말했다. 그러자 허공을 걸으면서 이리저리 움직이던 키니의 걸음이 멈췄다.

“그렇지. 낙하산 인사라곤 해도 사냥꾼이니까 어느 정도 정보는 주었겠지. 근데 그건 알아? 이건······ 네가 공격하지 않아도 이렇게 늘어나.”

키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로스티드의 공이 하나 더 늘어났다. 늘어난 공은 카시마르에게 날아가는 듯 하다가 바로 멈췄다. 키니가 멈춘 것이었다.

“그리고 곧 죽을 테니까 말해두자면 네가 이번 카니발에 들어온 것하나로 게임은 끝난 거야. 아니지. 멍청하게 리크토와 거래를 한 게 결정적인 것이라고 할까?”

“나 하나 잡는 것에 너무 큰 의미를 두는 것 같군.”

“맞아. 널 잡는 것에는 큰 의미가 없어. 중요한 건 초대장을 카니발 시작부터 돌렸다는 게 중요하지. 그게 왜 중요한지 알려줄까?”

“공의 개수 때문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건가?”

카시마르는 일부러 대답을 조금씩 늦게 하고 있었다. 이렇게 대화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사이에도 안개는 조금씩 퍼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블러드 포그가 이런 상황에서 주요한 이유는 바로 일정 농도 이상 퍼지기 전에는 육안으로 구분하기가 힘들다는 점이었다. 무엇보다 호흡을 길게 내뱉는 걸로 블러드 포그를 내뿜을 수 있기 때문에 쉽게 의심 받지 않는다는 점도 적절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블러드 포그는 카시마르가 호흡할 때마다 발생되었다. 그러나 평소에는 호흡을 길게 내뱉지 않기 때문에 블러드 포그의 안개가 다시 카시마르의 폐속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주위에 어떤 피해도 주지 않지만 길게 내뱉을 때는 안개가 다시 회수되지 않고 퍼져나간다.

블러드 포그가 내뿜는 안개는 한계가 없었다. 원칙적으로 블러드 포그는 카시마르의 생명력을 먹고 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저주라고도 표현하기도 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블러드 포그의 효용 가치는 점점 늘어날 것이었다. 익숙해지면 더 많은 양을 내뿜을 수 있는데다가 블러드 포그가 카시마르와 동화되면서 점점 더 강력해지기 때문이었다.

“공에 대해서 들었나보군. 이곳에서 늘어난 공의 개수는 카니발 내내 유지가 되지. 근데 그것만 가지고 달라진다고 이야기 하는 것 같아?”

“······.”

쾅! 쾅! 쾅! 쾅! 쾅!

아까보다 묵직한 울림이었다. 키니는 공을 다섯 번 연속으로 던졌다. 일부러 조금씩 시간 차를 둬서 카시마르가 피할 수 있도록 하게 만든 느낌이 들었다.

“솔직히 이 공은 그리 좋은 무기가 아냐. 발동 조건이 까다롭고 위력도 그다지 좋지 않아서 그다지 쓸모가 없지. 그렇지만 초대장과는 조합이 잘 맞아.”

“단순히 공의 개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강력해지는 건 아닐텐데?”

“그렇긴 하지. 하지만 개수가 일정 이상 늘어나면 다른 걸 할 수 있거든. 그건 네가 몰라도 될 부분이고. 아무튼 시간을 끌어주면 좋아. 공이 늘어난 상태에서 다음 초대를 할 수 있으면 나야 좋으니까.”

“보통은 시간을 끌지 않는가 보군.”

“너처럼 필멸자가 아니니까. 대부분 빨리 죽는 걸 택하곤 하지.”

키니의 능력이 까다로운 부분이 바로 이러한 부분에 있었다. 이길 수 있는 상대만 골라서 초대를 하기 때문에 초대를 받은 존재들은 대부분 조금이라도 빨리 죽는 걸 택하곤 했다. 시간을 주면 줄수록 키니를 더 강력하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강력하게 만들면 키니가 초대할 수 있는 대상의 범위가 더 늘어난다. 그건 다른 사냥꾼들에게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 될 수 있었다.

“필멸자야. 카니발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행사라고. 네가 우주적 존재들의 뜻을 알기나 해? 그분들의 위대한 뜻을 받들어 보기나 했냔 말이야.”

키니가 갑작스럽게 표독스러운 표정을 하며 말했다. 목소리도 이전보다 더 굵어진 상태였다. 카시마르는 키니의 이런 변화에 전혀 위협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우주적 존재를 운운하는 키니의 이야기에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글쎄······ 우주적 존재의 뜻이라. 그다지 알고 싶지 않아서 말이야.”

카시마르는 강숭이의 존재를 떠올렸다. 그가 만난 우주적 존재들은 하나 같이 어디 하나 나사빠진 것 같은 존재들이었다. 오른우, 좌팔계, 강숭이 다 우주적 존재들이었지만 그에게 큰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그나마 강력한 인상을 주었던 건 바로 달로스였다.

“몰텍이 그런 면 때문에 널 데려온 건가? 새로운 애인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말이야.”

“네가 할 소리는 아니군.”

“그 여유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지켜보도록 하지.”

키니가 웃으면서 말했다. 곧이어 로스티의 공이 마구 쏟아지기 시작했다.

***

“대체 무슨 생각일까요?”

“모르지. 그동안 키니가 더 위의 올라갔다는 이야기가 있었나?”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그 위로 올라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그렇다면 새로운 아이템을 얻은 것인가.”

“그런 이야기라면 소문이 이전에 퍼지지 않았을까요?”

라오는 측근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시간의 광기의 존재들은 이 당혹스러운 상황에 대해 논의를 지속하고 있었다. 세 진영의 한 가운데 떠오른 집을 바라보면서.

“그보다 사냥꾼 쪽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닐까요?”

“무슨 근거로 그런 소리를 하는가?”

“솔직히 키니가 카니발에 참여한 게 몇 번째입니까? 세 번? 네 번? 그 정도 위치에 있으면 한계가 슬슬 드러나는 시기 아닙니까.”

“그 한계는 깨지라고 있는 거니까.”

“쉽게 깨지지 않는 것이기도 하죠.”

“그렇지만 단번에 깨지기도 합니다.”

시간의 광기 두 존재가 기싸움을 시작할 기미가 보이자 라오가 손을 뻗었다. 보호막 밖으로 라오의 손이 삐져나오자 주위의 존재들이 입을 다물었다.

“사냥꾼 쪽에 문제가 있을 거라는 이야기. 좀 더 해봐. 리.”

라오가 말했다. 그러자 리라고 호명된 존재가 앞으로 나왔다.

“소문이 돌긴 했었습니다.”

“무슨 소문.”

“새로운 사냥꾼이 들어왔다는 소문 말입니다.”

“그 이야기는 다 아는 것이지.”

“근데 그 사냥꾼이 터무니없이 낮은 존재라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근데······.”

“그렇게 맞추면 저 상황이 설명이 되긴 하는군.”

“하지만 사냥꾼입니다. 솔직히 인정하기 싫지만 사냥꾼들의 전투 능력은 뛰어나지 않습니까.”

“너한테 질문하지 않았다. 페퍼스. 리.”

“예.”

“키니가 시작부터 공의 개수를 늘리고 시작한다면 귀찮아지겠지?”

“라오님. 솔직히 말씀드린다면 귀찮아지는 정도가 아닐 겁니다. 지금 들어간지 30분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 정도면 키니는 로스티드의 공을 다섯 개는 뽑아냈을 겁니다.”

“개수에 제한이 없다고 했던가?”

“예.”

“그따위 허접한 공을······.”

“물론, 라오님에게는 큰 위협이 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 개수가 늘어나면 키니가 생각보다 일찍 활동을 하게 된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리되면 부상을 입은 대상을 노리지 않아도 되니 귀찮아지는 정도가 아니게 되지요.”

“미물 한 마리가 게임의 판을 바꿔버리는군.”

“솔직히 키니의 전투 능력은 형편없지만 강압적인 초대는 최상위 능력 중 하나이니까요.”

리의 말은 사실이었다. 우주적 존재의 능력이나 아이템 중에도 등급은 있었다. 우주적 존재들 끼리에도 서열이 있는데 그들에게서 나온 부산물들이라고 서열이 없을까. 하지만 단순히 더 높은 우주적 존재의 기운이 담긴 능력이나 물건이라고 해서 최상위로 분류되는 건 아니었다.

부산물들의 등급을 결정하는 건 대부분 우주적 존재의 기운의 농도로 정해진다고 봐야 했다. 당연히 예외는 존재했지만 대부분은 이런 방식으로 아이템이나 능력의 우위가 결정되었다.

강압적인 초대는 그런 의미에서 우주적 존재의 농도가 짙게 배인 능력이었다.

그렇기에 그 어떤 방법으로도 초대를 막을 길은 없었다.

심지어 라오나 몰텍도 키니가 초대를 한다면 초대에 응해야했다. 그럴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테지만.

라오는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리는 라오가 생각에 잠긴 걸 알고는 살짝 뒤로 물러나서 방해하지 않았다. 눈을 뜨고 있던 라오는 아예 잠이라도 자듯이 눈을 감아버렸다.

그리고는 5분 정도 후에 눈을 떴다.

아직 세 진영은 조용했다. 사냥꾼들은 가능성이 없는 걸 알면서도 키니와의 전투가 끝나길 기다리는 중이었고, 불멸의 굶주림은 애초에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가장 움직일 이유가 많은 쪽은 시간의 광기였는데 그들은 앞서 나온 상황대로 이 상황을 파악하느라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지금 벌어진 상황은 그들에게도 꽤 큰 충격이었다.

“단넨.”

생각에 잠겼던 라오가 말을 꺼냈다.

“네.”

“몰텍에게 전령을 보내.”

“어떤 말을 전할까요?”

“일단 굶주림부터 처리하자고.”

라오의 말에 주변 존재들이 눈을 크게 떴다. 자존심이 강한 라오의 입에서 저런 이야기가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정말로 전합니까?”

“키니가 나온다면 어디부터 노릴까? 부상당하지 않은 녀석들도 노릴 수 있다면 어디부터 노릴 것 같아?”

“저희겠군요.”

“사냥꾼에게도 받을 게 많지만 다음으로 미룬다.”

“사냥꾼 쪽에서 받을까요?”

“받을 거다. 받지 않으면 그쪽과 공격을 할 테니까.”

“굶주림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겠군요.”

“그런 멍청한 짓이 벌어지는 것만큼은 피할 놈이야. 몰텍은 카니발에서 이기기 위해서라면 목숨도 내놓는다.”

“바로 전하겠습니다.”

단넨이 말을 마쳤다. 단넨은 전투 능력은 그리 뛰어나지 않지만 특수한 능력이 있었다. 바로 눈에 보이는 상대에게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전령을 보내는 기술이었다. 이런 그의 능력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상당히 큰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었다.

단넨의 전령은 빠르게 몰텍에게로 향했다.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몰텍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다.

“흥미로운 제안이지만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몰텍의 대답은 빠르게 라오의 귀에 들어갔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단넨의 이야기를 들은 라오도 몰텍과 똑같은 반응이었다. 라오는 시선을 돌려 리를 바라봤다.

“몰텍이 이리 말하네. 이러면 소문이 잘못된 건가?”

“믿고 싶은 것 아닐까요? 굶주림 쪽은 이미 분위기가 상당히 업되어 있습니다.”

리가 불멸의 굶주림의 존재들이 모여 있는 곳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몰텍이라면 그럴 수 있지. 좋아. 그럼 지켜보도록 한다. 몰텍의 말대로 어찌 움직여야 할지는 결과가 나와봐야 하는 거겠지.”

사냥개들이 밖에서 치열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안에서는 의외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한창 카시마르를 몰아세우고 있어야할 키니가 바닥을 기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도 초록색 피까지 토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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