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
새로운 호위
몰텍은 카시마르의 저택으로 이동한 상태였다. 그는 카니발이 끝난 후 종일 목욕을 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지금은 목욕을 도중에 중단하고 나온 상태였다. 그만큼 카시마르에게 들은 이야기는 솔깃했다. 베르긴과 렘까지 호출할 만큼의 이야기였다.
“그 두 가지 아이템이 모두 나왔다는 이야긴가?”
“그렇습니다.”
상대에게 빼앗은 아이템은 카시마르에게 직접 전달되었기 때문에 몰텍도 알 수가 없었다. 카니발은 아우터 갓이 주최하는 행사이기 때문이었다.
“이건 굉장한 일 아닙니까? 불멸의 굶주림의 이빨 하나를 봉인할 수 있습니다. 바로 창고에 넣어버리죠.”
베르긴이 말했다.
“그건 우리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베르긴.”
“왜?”
“이 친구는 전투에 크게 참여하지를 못했어. 그래서 전리품이랄 게 키니에게서 빼앗은 거밖에 없어.”
전리품과 보상은 취급 방식이 조금 달랐다. 둘 다 마켓에 자동 등록되는 건 사실이었지만 보상과 다르게 전리품은 취급 권한이 빼앗은 자에게 있었다.
그러한 부분 때문에 많은 존재들이 카니발에서 목숨을 걸고 상대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었다.
많이 죽일 수만 있다면 자신이 죽는다 하여도 더 많은 득을 볼 수 있으니까.
다만 많은 전리품을 빼앗고 죽었을 때는 약간의 페널티가 있었다. 마켓이 그가 죽은 상태에서 열리기 때문에 전리품 처분 권한이 수장에게 넘어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카시마르는 카니발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상태였다. 그렇기에 전리품 처분 권한은 그에게 있었다.
“맞아. 그랬지. 그렇다면 우리가 끼어들 수 있는 문제가 아니로군.”
“그렇게 생각했다면 연락을 드리지도 않았을 겁니다.”
카시마르가 베르긴과 렘의 대화에 부드럽게 끼어들었다. 그러자 몰텍이 물었다.
“그러면 처분 권한을 내게 맡긴다는 것인가?”
“그건 아닙니다.”
“흠··· 그러면?”
“제 보좌관이 설명할 겁니다.”
카시마르가 눈짓을 하자 라코이 카너가 재빨리 브리핑을 시작했다.
“로스티드의 공을 오히려 경매에 내놓자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최고의 인기 상품이 될 겁니다.”
“어차피 둘은 세트 아이템이나 마찬가지니. 내주자는 건데. 어떻게 생각하나 베르긴?”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봅니다. 로스티드의 공 그다지 쓸모 있는 아이템이 아니지요. 그렇지만 키니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아이템. 굶주림 쪽에서는 반드시 그걸 구하려고 할 겁니다.”
“시간의 광기에서도 구하려고 할 겁니다.”
“시간의 광기에서?”
몰텍이 카너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
“경쟁이 붙는다는 이야기로군.”
“네. 로스티드의 공은 시간의 광기에서도 원하는 아이템이니까요.”
“창고에 넣기 위해서?”
“예.”
“그렇지만 이 사실을 불멸의 굶주림이나 시간의 광기에서 모를 리가 없다.”
“그러니 제 주인님을 첫 번째 교환 대상자로 지정을 해주시길 바라는 겁니다. 주인님은 키니 밖에 잡은 대상자가 없으니까요.”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자는 이야기로군요.”
렘이 몰텍을 바라보면서 말을 받았다.
“네. 그렇습니다.”
“이 수에 넘어올까? 허점이 없는 건 아닌데······.”
“일단 저쪽은 반쯤 패닉 상태입니다. 로스티드의 공이 나왔는데도 컨택 시도 조차 안 했다면 후폭풍이 두렵겠죠. 불멸의 굶주림의 핵심 전략을 담당하는 아이템이니까요.”
“그게 중요하다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닐텐데······ 내놓는다면 너무 대놓고 패를 보여주는 듯한 느낌아닌가.”
“시간의 광기에서 어떻게 나오느냐가 중요합니다. 그쪽에서 호응을 잘 해주기만 한다면 불멸의 굶주림 쪽에서 넘어올 가능성이 큽니다. 로스티드의 공을 높은 가격에 넘길 수만 있다면 작전은 성공이죠.”
“그러면 강압적인 초대를 창고에 넣는 건 확실한 건가? 그걸 넣기만 한다면 한 번 시도해볼만한 이야기인데.”
베르긴이 카시마르를 보며 물었다. 조용히 있던 카시마르는 베르긴의 말에 바로 대답했다.
“그럴 생각입니다.”
“잘 생각하도록 해. 강압적인 초대는 우주적 존재의 기운이 담긴 아이템 중에서도 제일 높은 등급의 아이템이야. 솔직히 그 가치는 따지고 들자면 엄청날 거야.”
베르긴의 말에 다들 살짝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반응했다.
“내가 무얼 해주면 되겠나?
몰텍이 물었다. 그러자 카시마르가 카너에게 싸인을 보냈다.
“강압적인 초대를 사냥꾼의 창고에 넣는 대신에 마켓이 끝난 후에 창고를 이용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등급 제한 없이 이용하길 바라는 거겠지?”
“예.”
카너의 말에 몰텍이 렘과 베르긴을 바라봤다.
“둘의 생각은 어떤가?”
몰텍이 말하자 베르긴과 렘이 서로를 한 번 바라봤다. 그리고 베르긴이 먼저 답했다.
“보통의 아이템이었으면 괜찮은 거래라고 말하겠지만······.”
“조금 걸리는 게 있지? 현재 창고에는 강압적인 초대만큼의 기운이 담긴 아이템이 없으니까.”
“그렇습니다. 그런 아이템은 창고로 넣지 않는 추세라······.”
우주적 존재의 아이템은 우주적 존재의 기운과 아이템이 융합해서 만들어진다. 우주적 존재가 직접 아이템을 만들어서 하사하는 경우도 있고, 우주적 존재의 힘이 자연적으로 아이템에 스며들어서 생성되는 경우도 있었다.
전자든 후자든 아이템의 등급을 결정하는 기준은 우주적 존재의 기운이 얼마나 많이 스며들었냐에 따라 달렸다. 대부분 우주적 존재의 기운이 많이 스며들어있을 수록 뛰어난 능력을 지는 아이템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었다.
물론, 예외도 있었다. 우주적 존재의 기운이 많이 담긴 아이템일지라도 성능이 그다지 좋지 않은 경우가 있긴 했다. 그렇지만 대부분이 우주적 존재의 기운이 담긴 비율이 높을수록 좋은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강압적인 초대장도 그러한 아이템이었다. 방어가 아예 불가능한 아이템.
“창고에 쓸만한 아이템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 하지만 강압적인 초대만큼은 아니다. 그래도 괜찮겠나? 사실 강압적인 초대는 누가 써도 좋은 아이템이야.”
“괜찮습니다.”
“정말 괜찮겠어?”
베르긴이 물었다.
“예.”
“하긴 강압적인 초대를 가지고 있는 게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불멸의 굶주림 쪽에서 강제로 취하려고 할 수도 있을테니.”
“그런 것도 가능합니까?”
카시마르가 물었다. 원칙적으로 사냥개의 3개의 파벌은 서로 공격이 금지되어 있었다. 공격은 물론이고 서로의 영역에 함부로 침입하는 것도 금지였다.
“몇 번 시도가 있긴 했지.”
“하지만 사냥꾼을 상대로는 없었다. 우리가 룰을 어긴 자를 심판하는 자들이니까.”
사냥꾼이 다른 기둥들보다 정예로 이루어진 이유가 바로 이러한 부분이었다.
틴달로스의 사냥개의 룰을 어긴 자를 처벌하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었다.
시간의 광기는 사냥개의 기록을 관리하는 자들이었고, 불멸의 굶주림은 우주적 존재에 대한 제사를 주관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제게는 그럴 수도 있다는 뜻이군요.”
카시마르의 덤덤한 말에 몰텍, 베르긴, 렘은 딱히 답을 하지 않았다. 카시마르도 뒤에 더 말을 붙이지 않았다.
“마켓이 열리는 즉시 강압적인 초대는 창고에 넣도록 하겠다. 그리고 네게는 마켓이 끝난 후 창고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지. 고를 수 있는 아이템은 3개다. 잘 선택해서 고르도록. 베르긴, 렘. 강압적인 초대라면 이 정도 가치는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떤가?”
“옳은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몰텍의 결정으로 짤막한 회의는 종료되었다.
몰텍과 렘은 바로 귀환했고 베르긴은 남아서 카시마르와 차를 마셨다.
베르긴은 상당히 수다스러운 존재였다.
그렇지만 카시마르는 긴장감을 놓치지 않았다. 의식이 회복된 뒤 베르긴이 싸우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카너의 보고서에도 몰텍을 제외하고는 사냥꾼에서 최고로 위험한 존재라고 되어 있었다.
음속의 불새와 호각을 이루는 존재.
사냥개 도살자
베르긴이 사냥개 도살자라고 불리는 이유는 사냥꾼들 중에서 가장 많은 사냥개를 죽인 자이기 때문이었다. 그 말은 그가 그만큼 많이 카니발에 참여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초대장을 넘긴 건 좋은 선택이야. 다만 3개와 교환한 건 그다지 좋은 선택은 아니었어.”
“초대장이 그리 가치가 높습니까?”
“비교 대상이 없으니까. 3개가 아니라 30개라도 안 바꾼다는 사람이 있을 거야.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은 한계가 있으니.”
베르긴은 카시마르에게 많은 이야기를 했다. 수다에 가까운 이야기였지만 그 이야기 중에는 꽤 쓸만한 정보도 많이 있었다.
“그리고 호위는 누굴 데리고 있나?”
베르긴이 물었다.
“일단은 라코이 가문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몰텍님이 따로 보내주지는 않았나보군?”
“네.”
“몰텍님이 워낙 바쁘시니까 그런 부분에서 무신경한 부분이 있지. 호위에 대한 건은 내가 몰텍님에게 이야기를 해볼게. 아마 좋은 호위를 구해주실 거야. 그리고 내가 개인적으로 호위를 하나 붙여주지.”
“예?”
“호위는 두 가지만 요건만 갖추고 있으면 돼. 하나는 충성심. 주인에게 충성심이 있어야 해. 목숨을 걸 수 있을 정도로 말이야. 그리고 두 번째는 실력이 좋아야지. 내가 그 두 가지를 충족시키는 녀석을 하나 보내 줄테니 거둬서 써.”
베르긴의 말에 카시마르는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얼른 라코이 카너가 옆으로 와서 귓속말을 건넸다.
“받으시지요. 베르긴님이 보내줄 정도의 호위면 쉽게 구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라코이 카너가 설명하기 전에 이미 카시마르는 중요함을 느끼고 있었다.
계단 세계에 있으면서 실력 있는 호위를 구하는 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었다.
“전문 호위는 아니야. 그렇지만 실력은 확실하니. 신입 네가 잘 좀 가르쳐 봐. 무보수로 부려먹어도 되니까.”
“무보수로요?”
“어차피 할 일도 없이 빈둥거리는 녀석이니까 무보수가 딱 적당해.”
베르긴은 그 말을 하고는 호위대와 함께 저택을 벗어나버렸다. 베르긴이 사라지자 카시마르와 카너는 서로를 바라봤다.
“뭔가 골치덩이를 떠맡기는 느낌입니다.”
카너가 말했다.
“그런 느낌이 들긴 하는군요. 그렇다고 취소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닙니까?”
“예. 하지만 베르긴님의 입에서 실력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강한 존재이긴 할 겁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 주인님께는 가장 필요한 자일수도 있습니다.”
“보면 알겠죠. 그보다 이번에 마켓에서 구입할 아이템 리스트 작업은 다 끝났습니까?”
“네. 다 끝나긴 했는데 정말로 이렇게 하실 생각입니까?”
“그래야 경쟁력이 있어요.”
“그렇지만 너무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쩔 수 없죠. 남들처럼 목숨이 여럿 있는 게 아니니까요.”
카시마르는 계단 세계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었다. 그중 제일 빠르게 적응하고 있는 부분은 바로 전투와 관련된 부분.
이미 카시마르는 고위 존재 둘을 혼자서 잡아낸 이후로 고위 존재들에게도 파고들 여지가 충분히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카시마르는 고위 마법이나 새로운 전투 기술을 익히기 보다는 확실한 것을 강화하기로 했다. 그에게는 누구라도 죽일 수 있는 뿔이 있었으니까.
카시마르는 고위 존재의 영향력을 뚫고 들어갈 수만 있다면 누구든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에 얻은 아이템을 신체 강화와 관련된 아이템으로 다 교환할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그냥 신체 강화와 관련된 아이템들이 아니었다.
카시마르가 구하고 있는 아이템들은 그중에서도 강화제.
쉽게 표현하자면 강화 물약.
한 번 흡입하는 것으로 영구히 신체 능력을 향상시켜주는 아이템.
효과는 확실했지만 단점은 명확했다.
아이템보다 효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 그렇지만 카시마르는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베르긴의 말처럼 다양한 아이템이 있어 봤자 그걸 사용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럴 바에는 확실한 부분을 밀어주는 게 좋았다.
다행스럽게도 카시마르의 신체는 이미 고통과 관련된 여러 수련법으로 꽤나 강력해진 상태라는 점이었다.
그 상태에서 다른 여러 능력치가 올라간다면 꽤 강력해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 필멸자인 그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살아남을 확률을 높이려면 일단 신체 능력이 강해야 했다.
다른 전투 기술을 배우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지만 아무런 연고도 없는 카시마르가 최고위 전투 기술을 배운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
그래서 카시마르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신체 능력을 강화해서 고위 존재의 영향력과 방어 능력마저도 뚫고 들어갈 수 있게 만든다.
카시마르는 확실하게 위로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을 택한 것이었다.
“주인님. 베르긴님이 보낸 호위가 도착했습니다.”
카너의 말을 들은 카시마르는 개인 훈련을 중단하고 밖으로 나갔다. 밖에 나간 그는 아주 익숙한 얼굴을 보았다.
베르긴이 보낸 호위는 바로 카시마르를 제일 처음 안내했던 벨로바였던 것이었다.
“······.”
“······.”
둘은 꽤 오랫동안 서로를 바라보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