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9
습격
리크토의 저택을 습격하기 하루 전.
벨로바가 합류하고 서열 정리가 끝났다. 그때 카시마르는 새로운 계획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단 가야할 방향이 정해지자 필요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대량의 강화제를 구입할 수 있을만한 돈.
카시마르가 원하는 강화제의 양은 어마어마했다. 단순히 우주적 존재 아이템 몇 개를 팔아서 충당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래서 카시마르는 계획을 논의했다. 마켓도 계획 중에 하나였지만 지금 그에게는 크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마켓은 이미 확정된 일 중 하나 이제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중요했다.
“여행자 사냥꾼을 잡는 것은 어떨까요?”
이스메네에게서는 큰 수확이 없었다. 그래서 여행자 사냥꾼을 찾는 일은 일단 보류된 상황이었다. 일단 그들에 대한 정보를 가득 가지고는 있었지만 정확히 어디 거주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면 시행하기 어려웠다.
계단 세계는 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었다.
나라 신 위의 고위 존재들도 계단 세계가 얼마만큼 큰지는 알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단순히 아우터 갓, 엘더 갓이 대립하지 않는 그런 지역도 존재하는 곳이 계단의 세계였다.
그러니 여행자 사냥꾼을 잡으려면 정보를 수집하는 게 중요했다.
무엇보다 지금보다 더 강해져서 여행자 사냥꾼들을 수월하게 잡을 수 있을 정도가 되는 게 더 중요했다.
여행자 사냥꾼들 대부분이 이스메네보다 강력한 존재라는 걸 생각해보면 카시마르의 선택은 옳은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지금도 꽤 강력해진 그였지만 더 강해져야 했다. 어떤 돌발 상황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일단 오이디푸스나 이스메네가 부활의 조짐을 보이면 다시 시도해볼 순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습니다.”
카너가 말했다.
“그래요. 여행자 사냥꾼은 일단 보류하는 게 좋겠습니다.”
“부활하는데 시간 얼마 걸리지 않는데 그러십니다.”
벨로바였다. 벨로바는 베르긴에게 참교육을 당한 뒤 카시마르에게 깍듯이 대하고 있었다.
벨로바는 고위 마족이었다. 그렇지만 고위 마족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삶이 대단히 술술 풀리는 건 아니었다.
일단 같은 일족이어도 베르긴처럼 아우터 갓의 의지를 따르는 존재들이 있는가 하면, 벨로바처럼 그런 것에 크게 관심 없는 자들도 있었다.
그래서 벨로바가 골치였다.
벨로바는 태어날 때부터 화신을 다룰 수 있었다. 그래서 일족의 기대가 가장 큰 존재였다. 문제는 벨로바가 위로 갈 생각이 없다는 것이었다.
벨로바는 지역 신으로 태어나 지금까지 계속 지역 신으로 머무르고 있었다.
정상적인 성장 속도였다면 지금쯤 나라 신의 위치를 갈무리하고 그 위의 존재로 올라설 준비를 해야 했다. 하지만 벨로바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머물고 있었다.
그래서 일족에서는 최후의 방법을 썼다. 일족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 중 하나인 베르긴에게 맡긴 것이었다.
다양한 방법으로 벨로바를 개과천선하려던 베르긴은 몰텍의 심부름꾼으로 추천하기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그 방법으로도 벨로바는 별로 변한 게 없었다. 명령 받은 일은 딱딱 해내지만 그뿐이었다.
그래서 베르긴은 카시마르의 호위로 벨로바를 붙여버렸다.
카시마르가 사냥꾼의 일원이긴 하지만 벨로바 입장에서는 굉장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일 수 있었다. 보통의 호위도 아니었고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보필 해야하는 보좌관 개념의 호위였기 때문이었다.
“부활하는데 꽤 오래 걸리는 거 아니었습니까?”
“에이. 몇 달이면 대부분 부활합니다. 길어야 일 년. 아주 드문 경우로 그보다 더 걸리는 것인데요. 좀 기다려 보시지요.”
벨로바가 말했다.
“이 멍청한 새끼야! 그걸 누가 몰라? 그럼 그 사이에 선생님은 뭐 소풍이나 다니라고?”
퍽!
강숭이가 점프해서 벨로바의 뒤통수를 가격하면서 말했다. 벨로바가 분노한 표정으로 강숭이를 바라봤지만 더 손을 쓰지는 않았다. 짧은 사이에 아예 서열 정리가 끝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라코이 카너는 보좌관이라 강숭이와는 서로 크게 건들지 않았다. 하지만 벨로바는 호위라는 명목으로 따라다니긴 하지만 포지션을 따지자면 강숭이와 비슷했다. 베르긴이 와서 확실하게 못 박았으니까.
“사원은 어떻습니까?”
라코이 카너가 재빨리 화제를 전환했다.
“암흑 사원 말하는 거죠?”
“예.”
“거기 들어가려면 길잡이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곳은 길잡이 말고도 필요한 게 많습니다. 차라리 엘더의 광신도들이나 잡으러 가시죠 . 둘 다 죽을 확률이 9할 이상 된다는 건 같으니까요.”
벨로바가 끼어들었다.
“리크토에게 빚을 갚으라고 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카너가 말했다.
“리크토가? 이봐. 카너. 리크토가 빚을 갚겠다고 했어?”
“예.”
“카시마르님. 그걸 믿으신 건 아니지요? 그놈이 빚을 언제 어떻게 갚겠다고 약속을 한 게 아닌 이상 기대하시면 안됩니다.”
“솔직히 기대도 안 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지금 막 좋은 생각이 떠올랐네요.”
“무슨 생각 말입니까?”
“생각해보니까. 너무 좋게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가 빚을 갚을 생각이 없다면 직접 가서 받아야지요.”
“그건 안됩니다. 카니발도 아닌데 같은 사냥개를 건드리는 건 금기 사항입니다.”
“마켓이 열리는 시기를 노릴 생각이신 겁니까?”
카너가 카시마르에게 물었다.
“아니. 마켓이고 뭐고 간에 같은 사냥개를 건드리면 안 된다니까요? 리크토도 일단은 불멸의 굶주림 일원입니다. 뒷감당을 어찌하시려고요.”
“흔적만 깔끔하게 지운다면 괜찮지 않겠습니까?”
카시마르가 벨로바를 보면서 물었다.
“흔적이 지운다고 지워집니까? 조사하면 바로 나오는데요.”
“타밀라의 물감이라면 어떻겠습니까?”
“타···타밀라의 물감이요?”
벨로바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타밀라의 물감은 상당히 좋은 아이템이었다. 강압적인 초대만큼은 아니지만 우주적 존재의 아이템 중에서는 상위에 랭크 되어 있는 아이템.
거기다 타밀라의 물감은 사냥개 내부에서 꽤 이슈가 있었던 아이템이었다. 그러다보니 벨로바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느낌이 들었다.
“네.”
“그걸 어디서? 이번에 새로 얻은 겁니까?”
“타밀라의 물감이라면 괜찮지 않겠습니까?”
“그거라면 문제는 없습니다. 흔적을 완벽하게 지워주니까요. 확실히 괜찮겠네요. 사냥개 내부의 다툼은 증거가 확실하지 않으면 건드리지 않는 게 원칙이니까요.”
“무엇보다 지금 리크토는 이전보다 더 고립되어 있을겁니다.”
카너의 말에 벨로바가 고개를 끄덕였다.
“불멸의 굶주림 인사들이 좀 속이 좁죠. 리크토의 제안이 좋았다 하더라도 결과가 완벽하게 틀어졌으니 불만이 많을 겁니다.”
“그렇다고 수장이 죽은 상황에서 대놓고 움직이지는 못 할 테니 기회가 맞긴 하군요. 평판이 좋지 않다는 건 이래서······.”
“리크토가 그동안 빌미를 주지 않으려고 했던 게 바로 이러한 부분 때문입니다.”
“벨로바.”
카시마르가 벨로바를 바라봤다.
“네.”
“리크토의 힘은 어느 정도입니까?”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제 막 아바타를 가지고 놀 게 된 녀석이니 큰 문제는 없을 거에요. 다만 제가 걱정되는 건 타밀라의 물감을 어디서 얻으셨냐는 겁니다. 불멸의 굶주림이 아니라 시간의 광기 쪽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벨로바가 물었다. 그러자 카시마르와 카너가 서로를 바라봤다. 카너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타밀라의 물감은 리크토에게서 얻은 겁니다.”
“네?”
카시마르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를 들은 벨로바가 큰 눈을 끔뻑거렸다.
“그러니까 지금 리크토에게서 얻은 타밀라의 물감으로 리크토를 공격하겠다는 거죠?”
“네.”
“그러면 바로 알아차리지 않을까요. 그렇게까지 확실하게 흔적을 지울 수 있는 아이템은 타밀라의 물감 밖에 없습니다.”
“알아차려도 움직일 수 없을 겁니다. 리크토가 타밀라의 물감을 지니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요.”
“그렇군요. 그러면 리크토는 누군지 알아도 움직이지 못하겠군요.”
벨로바가 웃었다.
리크토는 움직이지 못할 것이었다. 라오가 가장 필요할 때 타밀라의 물감을 주지 않았던 그였으니까. 그가 나서게 되면 그것 자체로 문제가 커질 수 있었다.
“그러면 리크토를 공격하는 겁니까?”
“네. 사실 크게 기대도 하지 않고 있었어요. 하지만 리크토가 저렇게 나왔으니 가만히 있을 순 없죠. 저쪽이 서슴 없이 제 목숨을 노렸으니 이제 더 기다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
리크토의 저택은 상당히 넓었다. 카시마르의 저택보다 몇 배는 되는 크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카시마르의 저택은 임시로 지정된 곳이었기 때문에 사냥개의 일원의 집이라고 하기에는 그다지 큰 규모가 아니었다.
“리크토는 없는 것 같습니다.”
호위대 중 하나인 넬스가 말했다. 이마에 칼날 같은 긴 더듬이가 나 있는 사내였다.
벨로바는 그동안 쌓은 스트레스가 많았는지 신나게 총을 쏘고 있었다.
“여기는 벨로바에게 맡기도록 하죠. 나머지는 도망치는 자들이 없게 확실하게 마크해주세요.”
리크토의 저택에는 강력한 수하들이 꽤 많이 있었다. 이스메네의 저택보다 더 많은 수준이었다.
그렇지만 크게 문제는 되지 않았다.
고위 마족인 벨로바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었고, 라코이 가문의 호위대가 주변을 완벽하게 포위하고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카시마르는 이스메네의 저택을 처리할 때보다 월등하게 강해진 상황이었다.
염동력이 이전보다 더 정교해져서 다수의 적을 한 번에 쓰러트리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
파파파팡!
카시마르를 향해서 리크토의 수하들이 대거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카시마르에게 달려들기도 전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카시마르가 염동력으로 달려드는 자들의 움직임을 멈추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다수의 움직임을 봉쇄하려면 염동력의 힘이 상당히 높은 수준이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카시마르와 비슷한 위치의 존재들에게는 통하지 않는 기술.
그러나 이들은 그보다 훨씬 격이 떨어지는 존재들이었다. 적들의 움직임을 멈추게 만든 카시마르는 두 개의 뿔을 휘둘렀다.
푸슉!
간단히 열 명이 넘는 적을 처리한 카시마르.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상황은 종료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벨로바의 화력은 대단했다. 호위대들은 주변을 포위하면서 벨로바의 활약을 지켜보는 정도밖에 할 게 없었다.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카시마르도 긴장을 놓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때 넬스가 카시마르에게 다가왔다.
“대단하네요.”
카시마르가 말했다.
“벨로바님의 능력은 다수를 상대하기에 아주 적합하니까요. 특히 격이 낮은 존재들을 잡기에는 저 능력만한 게 없죠.”
넬스가 말했다.
“그에 대해서 잘 압니까?”
“예. 한때 저희 가문의 주요 고객이었습니다.”
“주요 고객?”
“카시마르님께서는 잘 모르실 겁니다. 저분이 처음 태어났을 때 바앍 가문에서 지원을 엄청 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화신을 다룰 수 있었다고 하니까요. 그때부터 주요 고객이었죠. 희귀한 물건들을 수집하는 걸 좋아해서 돈을 엄청 썼습니다.”
“그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근데 위로 올라가는 데 관심이 없었다고.”
“네. 그래서 점점 가문의 기대도 줄어들게 되었지요. 자연스럽게 지원도 줄어들었고요. 어느 순간부터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 태어날 때부터 화신을 다룬다는 게 그렇게 대단한 일입니까?”
카시마르가 물었다. 그러자 넬스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예. 화신이라는 건 복잡 미묘하죠. 사실 나라 신, 지역 신, 작은 신 이런 것도 이쪽 세계 사람들이 편의로 만든 체계에 불과합니다. 내뿜는 영향력의 크기로 판단을 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몇몇 학자들은 이런 체계보다 화신을 기준으로 격을 판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화신을 다루는 능력이 깊어지면 깊어질 수록 다양한 힘을 발휘하니까요.”
넬스의 설명이 끝날 때쯤 리크토의 저택이 정리가 되었다. 큰 저택 하나에 있는 존재들을 몰살하는데 걸린 시간은 한 시간도 되질 않았다.
“끝났으면 수색을 시작합시다. 리스트에 있는 물건부터 챙기세요.”
이곳에 온 목적은 리크토를 공격하기 위한 게 아니었다. 정확한 목적은 바로 돈이 될만한 물건을 챙기는 것.
그래서 카너는 리스트를 만들었다.
그동안 라코이 가문이 리크토와도 거래를 꽤 했기 때문에 리스트를 만들 수 있었다.
물론, 리스트대로 리크토의 저택에 물건이 있으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래도 시간 제한이 있는만큼 우선 순위를 정해두고 수색하는 건 시간을 절약하는데 도움이 될 터였다.
카시마르가 명령하자 호위대들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벨로바의 벌레들도 사방으로 흩어져서 물건을 수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