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
비밀 장소
리크토의 저택은 빠르게 수색 되었다. 어차피 보이는 공간은 큰 의미가 없었고, 보이지 않는 공간. 즉, 희귀한 아이템들을 숨겨놓은 비밀 창고가 중요했다.
본격적인 수색이 시작되자 숨어 있던 리크토의 수하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카시마르도 따로 움직이다 그들 중 하나를 만났다.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
팔번토까지 리크토를 따라왔던 하인 중 하나.
리크토가 카너라고 불렀던 난장이였다.
“이런 짓을 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난장이는 살짝 공포에 질려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카시마르의 공격이 그만큼 무자비했기 때문이었다.
원수에게나 할법한 공격.
난장이는 리크토와 카시마르가 어떤 사이인지 알고 있었다. 리크토가 카시마르의 정보를 굶주림의 일원에게 퍼트린 것도 알고 있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잔인한 모습을 보이는 건 그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호위, 하인은 물론이고 노예까지도 살아 있는 것은 모조리 죽인 카시마르였다.
“······.”
카시마르는 난장이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필요가 없었다. 리크토와 관계된 생명은 모두 죽여야하는 계획이었으니까.
휭!
난장이가 먼저 움직였다. 그는 리크토가 들고 있는 차크람과 비슷한 모양의 무기를 들고 있었다.
그 크기는 훨씬 작았지만.
난장이는 카시마르에게 차크람을 휘둘렀다.
휭!
카시마르는 무표정한 얼굴로 뿔 하나를 크게 휘둘렀다. 차크람의 날을 향해서.
그러자 차크람의 날과 함께 난장이가 깔끔하게 베였다.
두 동강이 난 난장이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카시마르님!”
저 멀리서 벨로바의 목소리가 들렸다.
“찾았습니까?”
“네.”
카너가 만들어준 리스트의 물건은 그다지 많이 없었다. 리스트의 물건을 건진 건 3개뿐이었는데, 대신에 마지막에 잭팟이 터졌다. 벨로바의 벌레가 비밀 창고를 찾았기 때문이었다.
비밀 창고는 소박했다.
상자 하나만 덩그러니 있을 뿐이었다. 문제는 그 안에 들어있는 물건.
호위대나 벨로바가 상자 안에 있는 물건을 보자마자 휘파람을 불었다.
상자 안에는 보랏빛의 작은 보석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석류알 같은 생김새였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보랏빛이라는 것과, 야광 물질처럼 주변을 환하게 비춘다는 점이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이건 엔렌즈라는 겁니다.”
“귀한 물건인가 보군요.”
“먹는 겁니다.”
“그래요?”
“네. 영원히 썩지 않는 과일이라고 부르죠. 리크토 이놈 대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엔렌즈를 구했는지 모르겠군요. 이 정도면······ 대단한데요.”
“이걸 어디다 씁니까?”
“이건 저희 쪽 물건이 아닙니다.”
“그러면?”
“엘더 쪽 존재들이 환장하는 물건이죠. 정확히 말하면 엘더의 광신도 들이요.”
“광신도라는 말을 또 들어보는군요.”
“광신도는 좀 낮게 부르는 말입니다. 보통은 사제라고 하죠. 우주적 존재를 모시는 자들을 말합니다.”
“그건 사냥개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조금 다릅니다. 저희는 우주적 존재의 지령을 받아 움직이는 존재이지만 자유 의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다릅니다. 그들은 우주적 존재 중에서도 하나의 존재만 섬기며, 그 존재의 뜻만 따릅니다.”
넬스가 설명했다. 그러자 벨로바가 설명을 더했다.
“거기다 그들은 저희와 목적이 다릅니다. 아니 목표가 다르다고 해야할까요?”
“뭐가 다르죠?”
“그들의 목적은 고위의 존재가 되는 게 아닙니다. 엘더 갓과 아우터 갓의 오래된 싸움에도 벗어나 있는 경우가 많죠. 그들은 모시는 존재를 동경하며 따라 하고 그리하여 닮아가죠. 결론적으로 모시는 존재와 하나가 되는 게 그들의 목표입니다.”
“광신도가 맞군요.”
“예. 그렇죠.”
카시마르의 말에 호위대와 벨로바가 미소를 지었다.
“광신도들이 아우터 갓 쪽에 있습니까?”
“네. 그렇지만 엘더 쪽이 훨씬 많은 편입니다. 그들은 기피 대상이에요. 말도 통하지 않을뿐더러 잘못 엮이면 무척 피곤해집니다.”
“강합니까?”
“강하다는 말로 표현하기가 그렇습니다. 그들은 저희 들과 다릅니다. 신의 힘을 빌려 쓰기 때문에 체계가 아예 다르다고 봐야 합니다.”
“엔렌즈는 그 광신도들이 쓰는 아이템입니까?”
“네. 그들은 위를 향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수명에 한계가 있습니다. 또 우주적 존재의 힘을 견뎌내기 위해서는 많은 수행이 필요하죠. 그걸 보충해주는 게 엔렌즈입니다. 광신도에게는 엔렌즈가 수명이며, 힘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죠. 엔렌즈를 통하여 생명을 얻고, 엔렌즈를 소비하여 우주적 존재에게 힘을 빌립니다.”
“그럼 이게 그들에게는 중요한 물건이겠군요.”
“네.”
“이 정도면 얼마나 가치가 있습니까?”
“보랏빛이 도는 물건이니 중상급의 엔렌즈입니다. 최고 등급의 엔렌즈는 황금빛이 돈다고 하는데 직접 본 자는 극히 드물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정도면 원래 예상했던 것보다 리크토의 재산이 많다고 봐야 합니다.”
“큰 수확이로군요.”
“재미난 부분은 왜 리크토가 엔렌즈를 가지고 있냐는 겁니다. 기념으로 한 두 개 지니고 있다고 하기에는 너무 양이 많습니다.”
“문제가 됩니까?”
카시마르가 물었다.
“네. 이 정도 양이면 리크토가 그동안 모은 전 재산 수준인데······ 리크토가 이걸 왜 지니고 있는지가 궁금하군요. 엘더 쪽과 거래할 게 아니라면······.”
“보통 엔렌즈는 어떻게 거래가 됩니까?”
“엔렌즈는 이 세계 전역에서 나타납니다. ‘갑자기 자라는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인데, 저희 들은 취급을 하지 않습니다. 금지거든요.”
넬스가 말했다.
“라코이 가문에서도 취급을 하지 않는다는 겁니까?”
“네. 보통 이런 물건이 들어오면 펫에게 먹여 버립니다. 그러니 이렇게 많이 지니고 있을 이유가 없어요.”
“괴수들에게 먹이면 효과가 있습니까?”
“기계 괴수들을 제외하고는 효과가 좋습니다. 수명도 길어지고 능력도 강력해지죠. 일정 이상 먹으면 탈이 나기 때문에 그리 많은 양은 필요 없습니다.”
“그렇다면 기르던 펫에게 주려는 의도라고는 볼 수 없겠군요.”
“네. 그렇습니다. 그러려면 이렇게 모아두지도 않았을 겁니다. 이 정도 양이면 한두 해 모아서 될 수 있는 양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의도는?”
“한 가지 의도밖에 없습니다. 거래를 하려던 거겠죠. 그것도 엘더의 광신도들과요.”
넬스의 말에 호위대는 물론이고 벨로바의 표정까지 굳어지기 시작했다.
***
“이건 리크토를 한 방에 보낼 수 있는 카드가 될 겁니다. 다만······.”
“리크토를 한 번에 보낼 수 있는 카드면 제게도 독이 될 수 있겠군요.”
“예. 그렇지만 여기 있는 자들은 다 서약을 했으니 큰 문제가 없습니다. 이쪽도 깔끔하게 정리했고요.”
“일단 챙기죠. 처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생각해봐도 될 일이니까요.”
“알겠습니다.”
호위대가 상자를 닫고 수레에 실었다.
“이제 끝난 겁니까?”
“네. 다 끝났습니다. 필요한 물건은 모두 챙겼습니다.”
“카시마르님. 잠시만요.”
정리가 다 끝났을 때쯤 벨로바가 카시마르를 불렀다.
“뭔가 찾은 것 같습니다.”
“숨겨진 공간이 또 있단 말입니까?”
“그런데 조금 장소가······.”
“장소가 왜요?”
“여기서 좀 떨어져 있습니다. 1km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피서.”
카시마르가 상황을 지켜보던 피서를 불렀다.
“네.”
“그 정도 떨어진 곳이면 누구의 영역입니까?”
“정확히는······.”
피서가 말끝을 흐리자 넬스가 나섰다.
“제가 알기로는 이 일대 전체가 리크토의 영역입니다. 다만 리크토가 다른 사냥개들처럼 저택을 확장하는 취미가 없어서 이 정도 규모로 머무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리크토의 저택은 결코 작은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열 배가 넘는 듯한 영역이 리크토의 것이었다.
“가보죠. 근데 어떻게 찾은 겁니까?”
카시마르가 벨로바에게 물었다.
“혹시나 해서 이 상자와 같은 냄새를 찾게 했습니다. 냄새를 잘 맡는 건 저희 일족의 특기 중 하나니까요.”
호위대는 빠르게 벨로바가 찾은 장소로 움직였다. 벨로바의 벌레 중 하나가 한 위치를 빙빙 돌고 있었다. 마치 똥파리와 같은 행동이었다.
“카심.”
피서가 카심을 불렀다. 카심은 호위대 중에서 결계를 다룰 줄 아는 존재였다.
카심이 잠시 바닥을 살피자 바닥이 꺼지면서 계단이 드러났다. 계단이 드러나자 불빛이 환하게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간 일행은 5미터 정도 크기의 커다란 석문을 맞이했다. 석문의 중앙에는 작은 원이 있었고, 그 원에는 열쇠가 들어가는 곳이 보였다.
“잠겨 있군요.”
“열수 있겠습니까?”
“살펴보겠습니다.”
카심이 앞으로 나서면서 말했다.
“꽤 복잡한 장치가 되어 있네요. 이걸 여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어떤 방법입니까?”
카시마르가 물었다.
“말씀 낮추셔도 됩니다. 카시마르님.”
“천천히 그리 하도록 하죠. 아무튼 방법은 무엇입니까?”
“고위 결계사들이 필요합니다. 지금 제 수준으로 경보 장치까지 해제하고 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냥은 열 수 있습니까?”
“그것도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 결계의 경보는 리크토의 저택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의 저택이 산산조각 났으니 입구에 설치되어 있던 함정들도 작동하지 않은 겁니다.”
“그러면 다른 방법은 무엇입니까?”
“간단합니다. 부수는 겁니다. 근데 어느 정도 강도로 만들어진 문인지 모르니······ 다른 장치가 되어 있을 수도 있어서요.”
타타타타타탕!
카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벨로바가 총을 쏘기 시작했다. 좁은 공간에서 총을 쏘기 시작하니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뿌옇게 연기가 피어올랐다.
타타타타타탕!
뿌연 연기 사이로 다시 되돌아오는 총알.
호위대 몇 명이 총알에 맞아서 쓰러졌다. 카시마르는 그로를 넓게 펴서 재빨리 방어막을 만들었다. 카시마르 주변에 있던 호위대들은 그로의 방어막 덕분에 피해가 없었다. 다만 조금 멀리 떨어져 있던 호위대 몇 명이 부상을 당했다.
다행스럽게도 호위대 중에 치료사가 있었다.
“그리 큰 부상은 아닙니다. 제대로 맞지 않아서요.”
문은 멀쩡했다.
“공격을 반사하는 장치가 되어 있나 봅니다. 벨로바님의 공격을 튕겨낼 정도면 꽤 강력한 장치로군요.”
벨로바의 벌레들이 방금 쓴 총은 강력했다. 두꺼운 벽이 있어도 그곳을 뚫고 적을 사살할 수 있을 정도였다. 무서운 연사력을 자랑했지만 위력은 한 발, 한 발이 대물 저격총에 비견될 정도였다.
웬만한 존재들은 스치기만 해도 몸이 터져버릴 정도로 강력한 공격.
“멀쩡하네? 그럼 좀 더 센 걸로 가보겠습니다.”
벨로바가 말했다. 호위대들이 자연스럽게 카시마르의 뒤로 몰려들었다.
라코이 가문에서 상당한 실력자들만 모아왔기에 벨로바의 총알을 맞고도 큰 부상을 당하지 않은 것이었다. 호위대 중 하나가 그로의 방어막 앞에다 투명한 보호막을 쳤다.
콰콰콰콰콰콰쾅!
아까보다 강렬한 총소리가 들렸다. 벌레들이 소음기를 뺀 상황이어서 그 소리는 훨씬 강력했다.
콰콰콰콰콰콰쾅!
다시 반사되어서 나오는 총알.
벨로바의 눈빛이 피처럼 붉은 색으로 변했다. 그러자 벌레들의 크기가 커지면서 다른 총을 꺼내 들었다. 마치 벌크업이라도 한듯 벌레들의 움직임도 좀 더 흉폭해 보였다. 그들이 꺼내든 총은 저격총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보통의 저격총이 아니라 대물 저격총 같은 생김새였는데 생김새가 흉흉했다.
“그만.”
“네?”
“그만하시죠. 그런 방법으로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카시마르가 그로를 회수하고 앞으로 나섰다. 뿔이 하나의 큰 칼로 합쳐졌다.
휘이잉!
큰 칼을 두 손으로 직접 쥐고 강력하게 휘두르는 카시마르.
벨로바의 강력한 공격도 굳건하게 견뎠던 문이 두 조각이 나서 쓰러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