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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캐로 멱살 캐리-191화 (191/205)

# 191

엔렌즈 나무

“세상에······.”

호위대들은 놀란 표정이었다. 그것은 벨로바도 마찬가지였다. 벨로바가 아무리 다수를 상대하는데 특화된 존재라고 했지만 일단 그는 태어날 때부터 화신을 다룰 수 있었던 천재 마족이었다.

그런 그가 진심으로 날린 공격에도 끄덕없던 문이 카시마르의 칼질 한 번으로 두 동강이 나버렸다. 제일 놀란 사람은 문의 견고함을 직접 확인한 카심이었다.

“들어가죠.”

호위대들은 카시마르를 낮게 보지 않았다. 그렇지만 은연 중에 카시마르가 사냥꾼 중에서는 그다지 강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던 호위대들도 있었다.

그러나 방금 그 수법 한 번으로 그 생각은 쏙 들어가게 되었다.

결계는 일단 침입을 막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렇기에 이런 종류의 결계는 물리 데미지에 특히나 더 잘 견디게 설계되어 있었다.

카심이 우려의 말을 한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

호위대나 벨로바가 잠시 감탄을 한 사이에 카시마르가 안으로 들어섰다.

간단히 말하자면 안은 화려함의 극치였다. 곳곳에 진귀한 물건들이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카시마르는 꽤 사치스러운 공간이라고 생각했지만 호위대는 물론이고 벨로바는 입이 벌어질 정도로 놀라고 있었다.

“넓네요. 좋은 물건이 있습니까?”

“이···이건 개인이 소장할 수 있을 정도의 컬렉션이 아닙니다.”

피서가 말했다.

“맞습니다! 이 정도 물건이면······ 작은 상단 정도··· 아니 그보다 몇 배는 규모가 크네요. 희귀한 물건이 너무 많습니다.”

“개인이 이런 물건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 겁니까?”

“쉽지 않습니다. 결코 쉽지 않죠. 리크토가 그렇게까지 고위 존재인 것도 아니고······ 탄탄한 가문의 후광을 입은 것도 아니니까요. 그는 굶주림에 속해 있긴 하지만 아웃사이더 느낌이니······.”

“혹시 이 물건들이 불멸의 굶주림의 것은 아닐까요?”

“그들의 창고라는 말씀입니까?”

“네.”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불멸의 굶주림 같은 기둥들은 거대한 창고가 있습니다. 사냥꾼이나 시간의 광기에도 그렇고요. 고대 때부터 있던 창고라 그곳을 이용하는 게 훨씬 편하죠. 이건 리크토 개인의 창고라고 봐야합니다.”

벨로바가 말했다. 그는 말을 마친 다음 재빨리 한 마디 덧붙였다.

“어! 저건!”

벨로바가 관심을 가진 물건은 작은 구슬이었다. 워낙 신기한 물건이 많아 그냥 지나칠 법도 한 물건.

그러나 벨로바는 묘한 빛을 내고 있는 황금색 구슬 몇 개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구슬은 다섯 개가 전부였다.

“저게 뭡니까?”

“이건 광탄인 것 같습니다. 엘더 쪽 고위 존재들이 쓰는 것이죠. 이건 저희 같은 존재들에게는 치명적입니다. 특히 마족에게는 더 그렇죠.”

지지직!

벨로바가 손을 뻗어 광탄을 만져보았다. 그러자 광탄에서 황금색 스파크가 일어났다.

“확실하네요. 광탄 맞습니다. 황금색이면 최고위 광탄인데······.”

“광탄이 그런 물건입니까? 근데 개수가 별로 안 되는군요.”

“이 정도도 상당히 많은 겁니다. 난사해서 쓰는 아이템이 아니니까요. 이거 하나가 우주적 존재의 아이템과 맞먹는다고 보시면 이해가  가십니까?”

“일회용이 아닌 겁니까?”

“일회용입니다. 그러니까 그만큼 대단한 위력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게 그런 위력이라는 거죠?”

카시마르가 광탄을 만지려고 하자 피서가 제지했다.

“함부로 만지시면 다치십니다.”

“그런가요?”

“네.”

카시마르는 염력으로 광탄을 조종했다.

“광탄은 엘더 갓의 영향력이 응축되어 만들어진 아이템이라고 합니다. 우주적 존재의 아이템과 다른 점은 누구나 쓸 수 있다는 점이죠. 물론, 저희들은 쓸 수 없지만 말입니다.”

“누구나의 범주에는 필멸자가 들어가는 겁니까? 대표적으로 인간?”

“네. 좋은 성능의 총에 장착하여 사용하는 것이 정석이지만 급하면 던지기만 해도 성능이 나온다고 합니다. 하위 괴수들은 이걸 보기만 해도 멀리 달아날 정도입니다.”

“엘더 사인과 비슷한 건가 보군요.”

“그보다 강력합니다. 이건 보호의 용도가 아니라 섬멸의 용도로 만들어진 물건이니까요. 엘더 사인이 아주 오랫동안 응축되어서 만들어진다고 하는데, 인위적으로 만드는 방법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엘더 갓쪽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었는데 새로운 게 많군요.”

“저희와 비슷한 체계입니다. 디테일한 부분에서 조금 다를 뿐이지요. 그리고 그곳은 광신도들이 주축이라는 게 다르지요.”

“그러면 엔렌즈가 더 필요하겠군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엔렌즈가 엘더 갓쪽 인사들에게는 비싸게 팔립니다. 솔직히 펫을 강화하는 방법이야 다양하지 않습니까. 굳이 엔렌즈를 쓰지 않아도 되니 이곳에서는 엔렌즈가 그다지 비싸지 않지요. 그리고 룰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저희들은 엔렌즈를 발견하면 펫에게 그냥 먹여 버립니다. 하지만 저쪽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죠. 귀하니까요. 그런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물건들은 리크토가 엔렌즈를 거래하면서 얻은 물건이라고 봐도 되겠습니까?”

카시마르가 직접적으로 물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인물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사실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이게 밝혀지면 꽤 큰일이 벌어질 테니까요.”

“이게 그렇게 큰일입니까?”

“엘더의 광신도들은 사냥개 최대의 적입니다. 그들의 목적은 계단 세계를 유지하는 것. 대척점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사냥개의 세 기둥은 어쨌든 같은 편입니다. 견제를 하는 시스템으로 만들어졌지만 목적은 같지요. 하지만 엘더 쪽과는 양립할 수가 없습니다. 조용한 시기가 계속되고 있긴 하다고 해서 그들과 같이 갈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그런 건 우주에 계신 분들이 용납할 수 없을 겁니다.”

“왜 이런 공간을 만들어 놨을까요? 리크토 정도면 이공간 아이템을 충분히 살 수 있을텐데요. 솔직히 이런 재력이면 그렇지 않습니까?”

“이공간 아이템은 저렴한 편이 아니니까요. 물론, 이 정도 재력이면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휴대용 이공간 아이템은 몇 가지 한계가 있습니다. 일단 이 정도로 많은 물건은 다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거기다 이공간 아이템은 보유에 한계가 있으니······.”

“한계가 있었습니까?”

“네. 카시마르님은 지금 몇 개 지니고 계십니까?”

“두 개입니다.”

“다섯 개가 넘어가면서부터는 무게의 영향을 받게 되고 행동에도 제약이 들어가지요. 거기다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이공간에다 아이템을 보관하는 것이지만 본신과 미약하지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자유자재로 아이템을 넣고 빼고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지요.”

“그러니 희미하게 흔적이 남습니다. 엘더 갓의 냄새, 기운을 귀신 같이 알아보는 자들이 있으니 이런 걸 이공간 아이템에 넣어 가지고 다니다가는 화를 당할 수 있겠지요.”

설명을 차분히 들은 카시마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저 광탄도 지니고 다닐 수는 없겠군요.”

“그건 아닙니다. 저 광탄은 전용 총기에 넣어가지고 다니면 흔적을 없앨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다만 엘더 쪽 인사들이 아닌 이상 굳이 저걸 가지고 다닐 필요가 있겠습니까? 엘더 쪽 인사들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는 아이템입니다.”

“어느 정도 위력이 있을 줄 알았는데요.”

“저건 그들에게 사용하면 회복제가 됩니다. 상처를 치유하거나 저주나 독을 풀어버리죠. 황금색 광탄이니 죽어가는 자도 살릴 수 있을 정도일 겁니다.”

“신기한 물건이군요.”

“그것 말고도 보실 게 또 있습니다.”

이번엔 카심이었다. 카심이 가리킨 물건은 평범하게 생긴 휴대용 카세트였다. 현실에서는 이제 사용되지도 않는 골동품 같은 물건이지만 말끔한 모습으로 재현이 되어 있었다.

“이건 특별한 게 없는 것 같은데요.”

“저와 같은 공부를 한 자들에게는 아주 귀한 물건입니다. 귀하다 못해 보기 드물죠. 보면 피해야 하는 물건이기도 하고요.”

“이게 뭔데 그럽니까?”

안타깝게도 카심을 제외하면 아무도 그 카세트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는 듯했다.

“제 예상이 맞다면 이건 우주로부터 흘러나온 음성입니다. 광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저희 같은 존재들에게는 아주 치명적이죠.”

달칵!

카심이 버튼을 누르자 거대한 동굴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주위의 존재들의 표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예 구역질을 하는 호위대도 있었다.

달칵!

다만 카시마르는 그 소리에 전혀 영향력이 없었다. 카시마르는 어쩌면 광탄도 그에게는 별 데미지가 없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역시 예상이 맞았군요. 이건 엘더 갓의 음성이 담긴 테이프입니다.”

“그렇다면 이것도 우리 쪽의 존재들을 공격할 수 있는 물건이군요.”

“그렇습니다. 다만 이건 아주 오래전 물건이라 광탄만큼의 효용은 없습니다. 이 소리만 듣지 않게 되면 영향을 받지 않거든요. 그래서 사라진 무기입니다. 다만 가치는 높죠. 엘더 쪽 인사들에게 이 카세트는 강화 마법과 다름 없으니까요. 그것도 아주 고위의 강화 마법 말입니다.”

“엘더 쪽의 물건들이 왜 쓸모가 없는 줄 알겠군요.”

“예. 양날의 검인지라······ 굳이 이렇게 보관할 필요가 없는 물건입니다. 물론, 이걸 가지고 장사를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요.”

“리크토가 엔렌즈를 대체 얼마나 거래했길래 이 정도 물건들을 구한 걸까요?”

카시마르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못해도 천 점 이상의 아이템들이 있었다. 카세트처럼 평범한 물건들도 있었지만 평범하지 않은 물건들도 더러 있었다.

“그게 의문입니다. 엔렌즈는 자연히 발생하는 것이라서 쉽게 구해지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아우터 갓의 후원을 받는 지역에서는 거래가 금지된 것이라서요.”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하죠.”

벨로바가 끼어들었다. 벨로바는 파란색 액체 괴물 같은 젤리를 보고 있었다. 축구공만한 사이즈였는데 아무렇게나 진열되어 있었다. 벨로바는 그걸 찔러보기도 하고 냄새도 맡으면서 있었다.

“이거 끝내주는데요?”

“그건 또 뭡니까?”

“저건 아마도 쿤쿤의 뼈 같습니다. 쿤쿤은 초소형 용족입니다. 용족이지만 용족만큼의 지능도 없고, 마법도 쓰지 못합니다. 미물에 가깝죠. 대신에 그 뼈는 무척 단단합니다. 보통의 용족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죠. 엘더 갓의 애완동물이라는 소문에 걸맞게 저 뼈로 무기를 만들면 저희들에게 큰 타격을 입힐 수 있습니다.”

“죄다 무기와 관련된 것들이로군요. 리크토는 이런 걸 모아서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아. 아까 하려던 말 해주시죠. 벨로바님.”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리크토가 가지고 있던 엔렌즈는 한 가지 색이었습니다. 그가 사냥개가 관리하는 지역에서 엔렌즈를 긁어모았다면 한 가지 종류의 엔렌즈는 아니었을 겁니다.”

“대부분 엔렌즈가 발견되면 그냥 소비하니까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사냥개의 일원이 엔렌즈를 구하고 다닌다면 소문도 날 테고요. 이건 아주 간단한 추론이죠.”

“그러면 엔렌즈가 생성되는 곳을 리크토가 알고 있다는 겁니까?”

“정확히는 엔렌즈 나무가 있는 곳이겠죠. 보랏빛 엔렌즈 나무.”

“하지만 벨로바님. 이 근방에 엔렌즈 나무는 죄다 고대에 사라졌습니다. 거기다 엔렌즈 나무는 가치를 매길 수 없는 물건인데······.”

“그 엔렌즈 나무 저 위에 있어요.”

벨로바가 천장을 보면서 말했다. 화려한 물건을 보느라고 천장을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카시마르를 비롯해서 호위대 전체가 벨로바를 따라서 천장을 바라봤다.

천장에는 보랏빛 엔렌즈가 촘촘히 달려 있는 나무가 빛을 내며 거꾸로 뿌리박혀 있었다.

“거···거꾸로 자라는 엔렌즈.”

넬스가 말까지 더듬어가면서 말했다.

“뭐가 다릅니까?”

“보통의 엔렌즈 나무보다 몇 배는 빠르게 열매를 생산하는 나무입니다. 저거라면 이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됩니다. 엘더 갓 쪽과 손해 보면서 거래를 했더라도 단기간에 엄청난 재물을 끌어 모았을테니까요.”

넬스의 설명에 카시마르가 덤덤한 표정으로 다시 천장을 바라봤다. 어쩌면 입구에 있었던 문이 생각보다 더 대단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 물건들을 보관할 창고라면 그리 허술하게 방비를 해놓지 않았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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