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
마터칸 수도회(1)
“일주일 사이에 많이도 복구했군.”
리크토의 저택이 저 멀리 보였다. 카시마르의 신체 능력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었다. 그건 시력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전보다 더 멀리 볼 수 있었다.
“그런 걸 전문으로 하는 존재들이 있으니까요. 자금만 충분하면 일주일이 아니라 반나절만에도 저택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
“예.”
“저택을 늘려볼까······ 그것도 업적이 된다고 하지 않았나?”
“물론입니다. 그렇지만 규모가 대단히 넓어야 합니다.”
카시마르는 이제 자연스럽게 카너에게 하대를 하고 있었다. 카너는 그걸 더 편하게 받아들였다. 이전까지는 왠지 모르게 거리감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선생님. 그거 말고도 달성한 업적은 많지 않습니까요. 그건 나중에 위로 올라가서 해도 되는 일 같습니다요.”
“이건 강숭이님 말이 맞습니다. 쉽게 달성할 수 있는 업적들은 나중에 쓰는 게 좋습니다. 그래야 더 쉽게 영향력의 크기를 올릴 수 있으니까요.”
계단 세계에서 영향력은 묘한 의미로 쓰였다. 흔히 말하는 아우라와 비슷한 느낌이긴 했지만 그 영향력으로 많은 걸 할 수 있다는 게 달랐다.
그 영향력의 크기는 진급을 하듯이 크게 진화를 하는데, 그걸 이쪽 사람들을 작은 신, 지역 신, 나라 신 같은 입맛에 맞게 나눠놓은 것이었다.
그래서 카시마르는 영향력의 크기에 크게 집착하지 않았다. 지금 있는 영향력으로도 고위 존재들을 상대하는 데 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까마득할 정도로 영향력이 차이 나는 존재와 부딪힌다면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도 지역 신의 위치에 오르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일이었다.
물론, 지금 상태로도 영향력만으로 카시마르를 압박할 존재는 거의 없었다. 그러니 카시마르는 영향력을 높이는데 크게 집착하지 않고 있었다.
“라코이 가문에도 저런 인력이 많이 있나?”
“저희는 저런 인력을 쓸 수가 없습니다. 필요할 때마다 돈을 주고 부리는 것이지요. 호위대를 제외하고는 가문 전속으로 고용해서 쓸 수 있는 인력이 없습니다. 그게 가능하다면 가문의 규모가 지금보다 훨씬 컸을테지요.”
“그렇다면 사냥개의 일원이 그런 사업을 하는 건 문제가 있나?”
“문제는 없습니다. 아······.”
일행이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리크토의 저택에 거의 다다른 상태에서였다.
“혹시 사업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어차피 내게 필요한 건 자금이야.”
“그렇죠. 다른 사냥개들은 이런 사업에 관심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위로 올라가는 것에만 관심이 있으니까요. 어차피 그 정도 위치에 다다르면 자금이라는 건 무의미해집니다. 그들이 필요한 것은 업적, 혹은 희귀한 아이템. 그러나 이런 것들은 물물교환 혹은 직접 구하는 것만 가능하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주인님은 아니죠.”
“그래. 그러니 사업을 해도 되겠지?”
“물론입니다. 하지만 위에서 보는 시선이 그리 좋지는 않을 겁니다.”
“그거야 크게 상관 없다. 사냥꾼들 쪽에서 조금 안 좋게 보려나?”
“그건 아닐 겁니다. 카시마르님은 이미 사냥꾼에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그런걸로 꼬투리를 잡을만한 존재는 없습니다. 현재 사냥꾼에서 카시마르님의 인기는 최고니까요.”
“그런가요?”
“예. 카너 보좌관은 시간의 광기나 불멸의 굶주림 쪽에서 의견이 나오는 걸 걱정하는 것 같습니다.”
벨로바가 말했다.
“특히 불멸의 굶주림에서 말이 많이 나오겠죠?”
“네. 카니발을 통해 알려지셨으니까요.”
“흠··· 그래도 문제는 없겠지?”
카시마르가 카너에게 물었다.
“문제될 건 없습니다. 사냥개라고 해서 개인 사업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 건 아니니까요. 다만 최근에 신규로 사업을 벌이는 경우가 없어서 조금 소문이 빨리 퍼지기는 할 겁니다.”
“사냥개들이 잡고 있는 사업에는 어떤 종류가 있지?”
“다양합니다. 다만 좀 덩어리가 크고 안정적인 사업들이 대부분입니다. 개인이라기 보다는 사냥개가 속한 가문에서 운영하는 게 대부분이죠. 벨로바님의 가문도 큰 사업을 하나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카시마르가 벨로바를 바라봤다.
“들판의 입장료를 가문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입장료? 그런 게 있었나요?”
“네. 들판은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일단 들판 안에 있으면 치안 걱정은 없으니까요. 누구나 들어와서 살고 싶어하죠. 하지만 그들을 다 받아줄 수 없는 문제라서요. 저희 가문에서 그걸 오래전부터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렘님의 가문은 들판의 이동 수단을 관리합니다.”
“그것도 돈이 드는 거였군요.”
“보통 하려고 하면 절차가 복잡하죠.”
들판에서의 공중 이동을 하려면 상당히 절차가 복잡했다. 다만 카시마르는 사냥개의 일원이라 복잡할 것도 없었다. 복잡한 일이 있어도 보좌관인 카너가 알아서 처리하니 카시마르 입장에서는 전혀 복잡할 게 없는 일이었다.
“굵직한 것들은 이미 다른 쪽에서 다 잡고 있다고 봐야겠군?”
“그렇지요. 하지만 관여하지 않는 사업도 많습니다. 사냥개의 일원이 관여하고 있는 사업들은 기반과 관련된 것들이니까요. 그 외에는 그냥 지낸다고 보면 됩니다. 어차피 그들 정도 되면 사업을 하지 않아도 웬만한 사업체보다 훨씬 큰돈을 벌어들이니까요.”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말인가?”
“그렇습니다. 우주적 존재의 아이템 하나의 가치가 어느 정도나 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아이템에 따라 다르겠지.”
“예. 지금 주인님께서는 그걸 골라서 사용하실 정도의 위치까지 오르셨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존재는 우주적 존재의 아이템을 소유한 번 못해 보고 죽습니다. 그러니 돈으로 환산할 수 없죠.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가치이지만 어떤 존재에게는 아무런 쓸모도 없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고위 존재들이 사업에 관심이 없는 겁니다. 이 세계에서 자금이란 명성과도 같은데, 그 명성이 아무리 많아봤자 업적을 늘려주지 못하고 아이템을 구할 수 없을 테니까요.”
“흠. 나는 자금을 많이 준다면 우주적 존재의 아이템을 처분할 생각이 있긴 한데 말이야.”
“주인님께서는 그들과 다른 길을 걸으시기로 하셨으니까요.”
카너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카너의 말대로 카시마르는 그들과는 다른 방향을 선택했다. 그들은 업적에 집착하지만 그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강화제는 흔한 재료들로도 만들 수 있었고, 쉽게 구할 수도 있었다.
하위 존재들이 가장 많이 찾는 것이 바로 강화제나 치료제였기 때문이었다.
계단 세계는 수 많은 고위 존재들이 있지만 그보다 더 많은 하위 존재들이 있었다.
그들 중에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자들도 있었지만, 운명을 거스르고 위로 올라서려고 하는 존재들도 분명히 존재했다. 강화제는 그런 하위 계층에 있는 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아이템이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기반 하나 없이 운명을 거스르려고 했으니까. 그러나 카시마르 같이 탄탄한 기반으로 시작한 자들은 솔직히 말하면 강화제가 의미가 없었다.
강화제를 먹는 것보다 아이템을 모으고, 업적을 쌓아서 강해지는 쪽이 훨씬 효율적이었으니까.
극악의 비효율을 보여주는 아이템.
카시마르가 만족할만큼 성장하려면 얼만큼의 강화제가 필요한지 라코이 카너 조차도 계산이 안 될 정도였다.
“용병단을 만드시는 건 어떻습니까?”
조용히 있던 벨로바가 말했다.
“용병단?”
“네. 사냥꾼들이나 호위 분쟁 임무에 파견을 보내는 것이지요.”
“상당히 좋은 의견입니다.”
“그런데 그쪽은 포화 상태이지 않을까?”
“자주 죽어 나가는 곳이라서요. 어차피 고위 존재들은 그런 일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들어갈 틈은 충분히 있을 겁니다. 무엇보다 그들을 거느리면 주인님의 호위로도 쓸 수 있을테니까요. 큰 도움은 되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그럼 그 건에 대해서는 카너가 긍정적으로 검토를 해보도록 해.”
“예.”
허공에서 대화를 마친 그들은 리크토의 저택으로 강하했다. 리크토의 저택은 오히려 이전보다 규모가 커진 듯한 모습이었다.
***
리크토의 저택은 그럴싸 했지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카시마르가 도착하자 리크토가 피 묻은 몸으로 밖으로 나왔다.
“이거? 사기꾼들을 잡아놔서.”
리크토가 자신의 몸에 묻은 피를 내려다보더니 말했다. 리크토가 말한 사기꾼이란 결계를 만들었던 자들이었다. 엔렌즈 나무가 있던 곳의 결계를 만들었던 곳. 리크토는 한참 그들을 고문하는 중이었다.
“근데 반응이 이상해. 이놈들은 제대로 설치했다는 거야. 끝까지 거짓말이지.”
“진실을 말하는 걸 수도 있지.”
“그 결계에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갔는지 알기나 해?”
“돈은 의미 없지 않나?”
“비용을 뜻하는 거야. 근데 결계를 어떻게 풀었는지 알려주지 않을 건가?”
“그 결계가 있다는 걸 알고 들어간 것도 아닌데 어떻게 풀었을까?”
카시마르는 시큰둥하게 말을 뱉었다. 그러자 리크토의 표정이 일순간 매서워졌다.
“내가 모르는 우주적 존재의 아이템을 지니고 있었던가?”
“계속 궁금해 하라는 의미야. 알려주지 않을 테니까.”
리크토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그의 말투도 충분히 카시마르가 봐주고 있는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엄연히 카시마르보다 아래에 있었다.
“그래서 무슨 일로 왔나?”
“암흑 사원.”
카시마르의 입에서 암흑 사원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리크토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잔뜩 귀찮아질 걸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여기 정리도 안 되었어.”
“이 정도면 훌륭한데.”
“안은 텅 비었어. 당장 시중들 하인 하나 구하지 못했단 말이야.”
“그러게 멀쩡한 하인을 왜 죽였나.”
“내가 죽였······.”
“네가 죽였지. 마켓까지 따라간 하인들이 있었을테니까.”
카시마르가 리크토의 말을 잘랐다. 리크토는 반박하지 못했다.
“아무튼 이 정도면 멀쩡하네.”
“암흑 사원 만만한 곳 아닌데. 벨로바님 이거 설명 했습니까?”
“나를 걸고 넘어지지 마. 결정은 카시마르님이 하는 거니까.”
벨로바가 외면하자 리크토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암흑 사원에 같이 들어가자는 이야기지? 단순히 정보만 내달라는 게 아니라?”
“그래.”
“솔직히 같이 못 들어갈 것도 없어. 나도 꽤 궁핍해진 상황이니까. 그런데 지금은 안 돼. 엔렌즈를 처분할 시기거든.”
“그냥 하는 이야기 같은데?”
“정말이야. 무엇보다 이번에는 외상값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서 준비할 게 많아.”
“외상값?”
“저 엔렌즈 나무가 보통 나무랑은 다르다는 거 알고 있지?”
“그래.”
“양이 많아서 한 군데서 처분을 못해. 엘더 쪽도 여러 세력이 있거든. 솔직히 세력의 크기로 보면 그들이 우리보다 많지. 안 그런가?”
리크토가 카너를 보며 말했다. 그러자 카시마르도 카너를 바라봤다.
“맞는 말입니다.”
“우리 쪽에서 인정하지 않을 뿐이지. 그런데도 이 세계가 팽팽하게 유지되는 이유가 뭘까? 지들끼리 죽어라 싸우거든.”
“그래서 엔렌즈를 거래하는 곳이 여러 곳이라는 이야기지? 핵심은?”
“그래. 핵심은 그래.”
“그래서 준비할 게 무엇인데?”
“외상값을 받으려면 뭘 준비해야 할까? 힘을 준비해야지. 순순히 주기만 한다면 뭐······ 큰 문제는 없을 거고.”
“거래하는 곳이 어디지?”
이번에는 벨로바가 물었다.
“마터칸 수도회요.”
리크토의 입에서 마터칸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러자 다들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좋은 반응이 아니라는 걸 즉각적으로 알 수 있었다.